최 작가는 지난달 24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 '할매'들의 전복적인 말과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로 삶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이들이 자연스럽게 갖게 된 "힘과 지혜, 전략"을 꼽았다.
"지배 담론과 지배 기억에서 소외된 개인들이 기억의 존재를 인식하고 되살리는 실천 행위로, 근본적으로 민중지향적인 문학"인 구술사를 통해 기록된 할매들의 삶은 신선하다. 그들은 강고한 가부장제와 가족 질서 내에서 약자인 딸,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서의 무게를 견디고 극복하고, 때로는 부당함에 저항하며 살아온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적극적인 행위자였다. 남성, 아버지, 아들의 관점이 아닌 여성, 어머니, 딸의 입장과 시선에서 촘촘히 엮어낸 '미시사'는 일제 식민지, 6.25 한국전쟁, 빠른 산업화와 자본주의화라는 한국 현대사를 또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는 '대항 기억'이다. 최 작가는 "대항 기억(counter memory)은 '대중 기억(popular memory)'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는데, 이는 '기억 투쟁'으로까지 확대된다. 구술사가 저항적·대항적 관점을 지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50대 초반까지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하던 그가 구술사 작가가 된 것은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최 작가는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과 성소수자위원장을 거쳐, 2008년 총선에서 한국 최초의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후보(진보신당)로 서울 종로에 출마하기도 했다. 최 작가는 2008년 요양보호사로 노인복지 현장에 들어가 2009년부터 지금까지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이매진 펴냄),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이매진 펴냄), <이번 생은 망원시장>(최현숙 외 9명 공저, 글항아리 펴냄)<삶을 똑바로 마주하고>(글항아리 펴냄), <할배의 탄생>(이매진 펴냄) 등을 썼다.
다음은 최 작가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할매의 탄생>에는 '하하하'라는 의성어가 자주 등장한다. 최현숙 작가도 인터뷰 내내 '하하하' 소리 내 웃었다. 일반 기사와 달리, 구술하듯 웃음소리를 그대로 살렸다. 편집자)
"너무 홀라부리해가 그렇고, 거씨서 그렇고…"
프레시안 :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책을 읽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익숙해지니까, 할매들의 매력에 빠지게 되더라. 말과 글의 차이가 커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최현숙 : '대구광역시' 하고도 '달성군 가창면'에서 더 들어간 '우록2리'가 배경이다. 흔히 하는 말로 '깡촌'인데, 이곳에 사는 1928년생부터 1955년생(현재 65세부터 92세) 여성 6명과 남성 1명의 생애를 최대한 구술을 살려 기록했다.
나 역시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할매들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그래가, 나가, 너가, 엄마가' 등 어미 대부분이 '가'로 끝나는데,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인터뷰할 때 이해했던 부분도 녹취 과정에서는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다. 경상도를 고향으로 둔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해당 지역 사람들은 책에서 '음성 지원'이 되는 것 같다고 하더라. 하하하.
할매들 모두 뒤늦게 한글 공부를 하고 있는데, 글을 잘 모르는 이들의 말에는 글을 잘 아는 사람들과 달리 감정과 정체성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런 말을 글로 옮기면, 안타깝게도 힘도 맛도 가락도 깎인다. 사투리의 어려움을 포함해 입말의 횡설수설함, 문법 없음 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가독성을 위해 적당한 편집과 가공이 불가피했다. 그래도 어렵다면, 소리 내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하하.
"하유, 내가 혼자 속으로 그칸다. '어떤 놈은 너무 홀라부리해가 그렇고, 어떤 놈은 또 너무 거씨서(거칠어서) 그렇고' 하하하. 내보다 쎄지만도 나는 또 깡따구가 있어예. 그기 있기 따문에 겉이 살았지, 앵간하믄 한테(한데) 몬 살아예."(유옥란 구술, 130쪽)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모 숭궈야…"
최현숙 : <할매의 탄생>은 전작인 <할배의 탄생>을 본 한글반 선생님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한글반 선생님이 할매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게 된 계기도 재미있다. 하하하. 특수교육 교사로 생활하며 장애여성청소년들과 공동생활을 하느라 우록2리에 들어왔다가 몸이 안좋아지면서 퇴직하고 그곳에 정착했는데, 한 할머니가 약봉투를 들고 와 아침에 먹는 약과 저녁에 먹는 약을 구별해 달라고 해 '한글을 모르시는구나' 싶어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록2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의원 시절 지역구다.(박근혜는 1998년 4월 2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보궐선거를 통해 15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16대, 17대, 18대까지 대구 달성군을 지역구로 내리 4선을 했다. 편집자) 그런데 지금도 마을까지 들어가는 버스가 없다. 버스를 타려면, 2킬로미터 정도를 걸어 나가야 한다. 정말 산중 깡촌이다.
이곳은 식민지시대 일본군 차출(징용·징병)도 없었다. 6.25 한국전쟁 역시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 국가 입장에서 특별히 관심 가질 이유도 없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우록2리는 다른 농촌 지역과 또 다르다. 훨씬 가난한, 훨씬 고된 상황에서 어떤 사회운동과도 접촉하지 못한 채 그저 '어떻게 하면 자식들을 나보다 덜 고생시킬까? 어떻게 하면 자식 공부시켜 도시로 보낼까?'만이 삶의 목표였다.
프레시안 : 도시와 농촌 간 차이도 클 것 같다.
최현숙 : 그렇다. 주로 도시에 거주하는 가난한 노인(혹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해 왔기 때문에 우록2리 작업은 나에게도 낯선 일이었다. 그런데 도시 노인들의 뿌리 역시 대부분 농촌이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누구는 도시로 이주하고, 누구는 농촌에 남았을 뿐. '도시에 가야 먹고살 게 있다'는 분위기 속에 도시 이주는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자 성공으로 여겨졌다. 할매들도 주변 사람들 모두 서울로 올라갈 때 자신은 이곳에 주저앉았다고 이야기한다. 하하하.
현재 시선으로 보면, 도시 노인이 농촌 노인보다 경제적·사회적 소외감이 크다. 도시 노인 상당수는 빈곤에 시달리며 가족 해체를 경험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부양의무제'(일정한 소득이 있는 가족에게 부양의 의무를 지우는 제도)가 가족 간 해체를 가속화하는 측면도 있다. 부양의무자가 없는 노인일수록 기초연금을 더 받기 때문이다.
반면, 농촌 노인은 '송곳 꽂을 자리도 없이' 시작했어도 자기 생애에 대한 보람이 크다. 70·80대가 된 지금 집도 있고 땅도 있다. 자식에게 물려줄 게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곧, 가족 해체가 아닌 가족 결속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문만 열고 나가면, 밭이 있고 일할 게 있고 만날 사람이 있다. 특히 땅(밭)은 이분들의 몸과 연결된 것이자 자신과 연관된 대상이다. 그러니 자식들이 '제발 일 좀 그만해라. 병원비도 안 나온다'라며 말려도 이분들 입장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다. 하하하.
또 농촌 여성들의 생계유지 능력을 보면서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 허구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난한 집일수록 남성보다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거둬들일지, 시아버지도 남편도 아닌 여성이 주도했다. 밍지(명주)를 짜 돈벌이한 것도, 두부를 만들어 식당 영업에 나선 것도 여성이었다.
"다 알지마도, 그래 안 하마 이 멍충이 할마이들은 사는 거 겉지가 않은 기라. 그래밲에 몬 살아본 기라. 그래가 그기 몸에 밴 기라. 난리가 나도 밭을 갈고, 피란을 가도 논 따문에 멀리 몬 가고 가차이 숨었다 와가, 김 매놓고…… 그래가 살아온 거라.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모 숭궈야 하는 거라. 그라이 아무리 기가 차고 억울해도 땅은 갈아야 하는 거라."(곽판이 구술, 361~362쪽)
"'내가 끝까지 산다' 그런 맴 가지고…"
프레시안 : 노동 최일선에 선 것도, 사회적 규범을 지킨 이들도 여성이다. 특히 가부장제를 유지시킨 것도, 전복시킨 것도 여성이다.
최현숙 : 할매들이 '가부장제'라는 단어는 몰라도 '남성 중심, 시집 중심'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를 깰 엄두를 못 냈던 것인데, 그러다 보니 견딜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견디면서도 때때로 배반하고, 힘이 좀 생기면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대들면서 전복과 예외를 만들었다. 하하하.
반면,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고된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해 내뺐다가 '젖이 불어' 돌아왔다는 구술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고부 갈등'이라는 말도 있지만, 같은 여성으로 공통의 경험과 아픔을 통해 이해와 화해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시대적인 한계가 컸을 테지만, 개인적인 또는 문화적인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체제 밖 생존 방법을 배운 바 없는 여성들 입장에서는 깨는 것만으로도 존재가 위태로워진다. 체제에 순응하며 그대로 남은 것은 읍소나 복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일종의 전략일 수도 있다.
가부장제는 남녀 모두에게 억압적 기제다. 순수한 피해자도, 순수한 가해자도 없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느냐에 따라 강해지거나 확장될 뿐. 폭력이나 성폭력 피해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상황이 병합된 방식인데, 피해-가해 구도로 단순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여성=가부장제 피해자'라고 단순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모성애 역시 그런 측면이 있다. 첫 번째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를 시작으로 이번 <할매의 탄생>까지 서평 대부분이 모성애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모성애 역시 많은 갈등과 감내가 뒤섞인 감정이다. 말처럼 매끄러운 모성만은 아니다.
최현숙 : 할매들은 '모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저 내 새끼 안 죽이려고, 나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입히고 먹이고 공부시킨 것이다. 인간은 시대 속에 존재하는데, 그 시대의 특정 문화에 있어서는 한계도 뚜렷하다. 성격에 따라 순응하는 이도 있지만 도전하며 전복을 꾀하는 이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략적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하하하
"시오마이는 허구한 날 지 아들한테 "조걸 지집이라고 딜꼬 사노. 후치뿌지(내쫓아버리지)" 그캐도 나는요 속으로 '할마이야, 내가 끝까지 산다' 그런 맴 가지고 버팄어예. 자슥들만 안 맨들었으마, 그런 맴도 안 오지예. 안 오고말고…."(조순이 구술, 64쪽)
프레시안 : 할매들 모두 생의 마지막은 '집에서' 보내고 싶은 바람이 있는 것 같다.
최현숙 : 그렇다. 생애 마지막을 집이 아닌 곳에서 맞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한 할매가 치매에 걸렸는데, 밥도 같이 먹고 일도 같이 하던 동네 할매니까 다른 할매들이 그 집에 드나들면서 챙겼다고 한다. 그런데 자식 입장에서는 혼자 사는 어머니의 병세가 심해지자 치료도 할 겸 모셔갔고 그렇게 요양원 생활을 하게 된 건데, 할매들은 '아들이 요양원에 입원시키는 바람에 빨리 갔다'며 원망 아닌 원망을 한다.
사실 이분들 세대에게는 '부모 봉양'이 법이었다. 특히 할매들은 시아버지나 시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셨다. 하지만 본인들은 자식들에게 봉양 받는 걸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압축적 근대화와 핵가족화를 겪으면서 전통적 의미의 가족 관계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봉양 문제에 있어 억울한 세대다.
"그냥 여서 살다 여서 죽는 거를 몬 기둘려서, 지네 맘때로 요양원에다 가둬놔뿌고, 집을 싹 뿌솨뿔고 땅을 파 뒤집어 꽉꽉 누르고 뚜딜고 해놓으니…… 집이고 땅이고 그기 그 할마이 살아온 긴데, 저들 키우느라 알맹이는 다 즈그들한테 뽑아주고 이자 남은 껍따구가 그 집하고 그 할마인데, 집을 그래 뿌쏴뿌니 할마이 껍따구가 남아납니꺼? 내는 거 집 뿌시는 거 보믄서, 할마이가 그래 뿌솨지는 거 같더라마. 내 맴이 그래 그런가, 할마이가 그래 뿌솨지는 거고, 내도 얼마 안 있으마 저래 뿌솨지겠구나 싶어라 카이."(임혜순 구술, 399쪽)
"구술사는 '대항 기억'이다"
프레시안 : <할매의 탄생>은 다큐멘터리이면서 르포르타주(Reportage, 기록문학)의 성격도 갖고 있다. 구술 방식에 있어 남녀의 차이가 컸는지?
최현숙 : 그렇다. 생애구술사는 직접 현장을 찾아 당사자를 만나 기록한다는 측면에서 다큐 혹은 르포이다. 내가 만난 할배와 할매 모두 교육과 경제 수준이 낮은 분들이지만,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구술하는 데 있어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들의 이야기에는 근현대사라고 할 만한 사건과 자신이 연관된 경험이 많다. 주로 일자리를 위한 이동이었지만, 돌아다니는 공간이 넓다 보니 그만큼 본 것도 겪은 일도 많다. 사회와의 접점이 많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대개 '나'로 시작하며, 어조 또한 확신에 찬 모습이다. 생애 경험에 따른 자기주장이 확실한 편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이야기에는, '자신'이 아닌 '관계' 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식 이야기 속에 있는 나, 남편 이야기 속에 있는 나, 친인척 속에 있는 나 등. 가난하고 못 배운 여성일수록 이야기가 뒤섞여 자기주장이나 자기확신이 떨어졌다.
예외가 있었는데, 두 번째 책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에 등장하는 50대 여성이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릴 뿐 아니라 전문대 교육을 받은, 비교적 주체적인 여성이다. 이분의 이야기는 '나'로 시작하는 게 많았다. 하하하.
무엇보다 여성들은 사건 발생 시간을 특정하지 못해 생애를 기록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그 일이 몇 살에 있었나요?' 하고 물으면, 여성들은 대개 '큰아들 중학교 들어갈 때'라는 식으로 자신과 관계된 중요 인물과 연결해 이야기한다. 반면, 남성들은 연도를 기억하거나 '70년대 중후반쯤'이라며 시간대를 특정해 이야기한다.
특히 우록2리 농촌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는 시간을 묻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떤 작물을 심느냐와 같은 품목의 변화가 일부 있지만, 농사는 1년을 단위로 반복된다. 봄에는 씨 뿌리고 가을에는 추수하고 등. 그렇다 보니, 정확한 시간 개념이 없다. 가능한 정확하게 하려고 연표 작성도 해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몇 년도 몇 월과 같은 시간을 밝히는 게 이분들의 생애와 큰 연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생애구술사 또한 하나의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학술적으로 분류하자면, 미시사(微時史)에 속하는….
최현숙 : 보통 역사는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지만, 구술사는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 의존한 이야기로 주관적이다. 특히 지배 담론과 지배 기억에서 소외된 개인들이 기억의 존재를 인식하고 되살리는 실천 행위로, 근본적으로 민중지향적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대항 기억(counter memory)'이라는 용어를 통해 지배 기억에서 무시되고 억압받은 개인 기억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웠다. 대항 기억은 '대중 기억(popular memory)'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는데, 이는 '기억 투쟁'으로까지 확대된다. 구술사가 저항적·대항적 관점을 지니는 이유다.
생애구술사는 바로 그런 관점을 살려야 한다. 화자 자신의 관점에서 남기고 싶은 기록이 아니라, 가난·고통·성별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청자의 관점이 살아있어야 한다. 따라서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넘어서 청자가 어떤 질문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프레시안 : 그런 면에서 화자를 대하는 청자의 태도도 중요할 것 같다.
최현숙 : 화자도 청자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듣고 있는지 끊임없이 파악하면서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한다. 첫 책의 경우 어머니도 등장하는데, 화자들과 최소 1년 반 이상 라포(Rapport)가 형성된 관계였다. 그렇다 보니, 삶의 경험과 고통 및 비정상성으로 인한 낙인에 대해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우록2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사별 후 연애 이야기, 좌우 갈등 속에서 남편이 학살된 이야기와 같은 낙인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듣게 됐다. 그래서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한 그녀들의 말'이라는 소제로, <할매의 탄생>에 포함했다.
라포 형성이 부족해도 여성 입장에서 여성의 이야기는 알아듣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남성 화자의 이야기는 한계가 있었다. 사회적·공간적·물리적 생애 경험이 너무 달랐다. <할배의 탄생> 작업을 하면서는 그래서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하하하.
프레시안 : 생애구술사를 하면서 변화가 있다면?
최현숙 : 2008년 요양보호사로 노인 복지 현장에 들어가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구술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람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할까? 아니, 보다 세밀해졌다고 할까? 하하하.
어떤 상황이든 양면이 있다는 것, 또 처지와 맥락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무엇이 가해고 피해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특히 옮고 그름은 당시에는 옳은 일이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용·반작용을 거치다 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해지더라. 한 시절의 특정 상황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여러 가지가 있다.
또한 고통을 제대로 극복한다면,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힘과 지혜, 그리고 전략이 나온다는 것을 배웠다. 할매들은 사회나 계급은 모른 채 그저 새끼들을 위해 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온당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에 기여한 점이 크다. 하하하.
프레시안 : 앞으로의 계획은?
최현숙 : 가난한 노인들에 이은 부자 노인들의 생애사도 다룰 생각이다. 부자 노인이기는 하지만, 혈연으로 엮인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 외에 지금도 성매매를 하고 있는 60대 이상의 여성들 이야기도 작업할 계획이다.
특히 선감학원 피해자처럼 어린 시절 국가폭력에 희생돼 교육의 기회도 사회화 과정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을 만나고 싶다. 우리 사회가 '범법자'라고 이름 붙인 이들의 억울함과 분노, 이런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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