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숙되는 만큼 개별 국민들의 삶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경제적인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난 2017년의 경험을 통해 거대담론에서의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갔던 것처럼, 일상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독일에서 13년 동안 유학하면서 독일 정치와 사회를 직접 경험해 본 조성복 독일정치연구소장은 올해 출간한 신간 <독일 사회, 우리의 대안>에서 "독일 사회의 모습을 빌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 대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독일의 교육, 주거, 복지, 노동, 환경 등의 영역에서 한국 사회가 벤치마킹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는 것이 조 소장의 주장이다.
그는 우선 주거 문제와 관련, 독일에서 가장 놀랐던 일화를 소개했다. 조 소장은 쾰른과 베를린에서 집을 구했을 때 계약서에 임대 기간이 없었던 점이 가장 놀라웠다고 전했다. 기간이 없기 때문에 임대인은 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었다. 만약 나가고 싶다면 통상적으로 3개월 전에 통보하면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면 임대료를 높이는 방법으로 세입자를 쫓아내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조 소장은 "독일의 민법 558조에 따르면 임대인은 월세를 3년간 20%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했고, 동시에 도심과 같이 집이 부족한 인구과밀지역의 경우에는 3년간 15% 이상 인상하지 못하도록 했다"며 애초부터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 쾰른에 살 때 월세는 2003년 386유로, 2년 후에 389유로, 다시 391유로로 인상됐는데 5년 동안 5유로가 오른 셈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물가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조 소장은 독일이 이러한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이유로 국가 전체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주요 기관, 대학, 기업, 사회단체가 나라 전체에 골고루 분산되어 자리하고 있어서 인구가 한 곳으로 몰리지 않는다. 특히 대학에 서열이 존재하지 않고 고등학교도 평준화되어 있어서 우리처럼 자녀 교육을 위해 이사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특정 지역의 집값이나 월세가 특별히 오를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소장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수시로 내놓는 단기적 처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독일과 같이 인구와 자원을 골고루 분산시키는 분권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교육, 경찰, 조세 징수 등의 분야에 대한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지방으로 이전하여 각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강화하는 데에 있다"고 제안했다.
독일 슈퍼마켓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이유
"독일에서 가장 저렴하게 생필품을 파는 슈퍼마켓은 '알디'(ALDI)이다. 그곳에 가면 카트에 물건을 담은 후 거의 매번 계산대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검증된 중소업체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최소한의 인원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 싫으면 '카이저(Kaiser)'와 같은 조금 비싼 슈퍼마켓에 가면 된다. 인건비가 비싼 종업원을 더 많이 고용한 것도 물건 값을 조금 더 지불하는 이유 중 하나다"
조 소장은 <독일 사회, 우리의 대안>에서 일상 속 겪게되는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독일의 노동환경을 더 가까이서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조 소장에 따르면 독일에서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우스빌둥'이라는 직업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수공업, 농업, 상업, 공업, 공무원, 간호 또는 사회사업, 기타 서비스업 등 거의 모든 직업에 해당되는데 현재 독일에는 약 460개에 달하는 공인된 직종이 있다고 한다.
교육은 보통 학교와 현장에서 동시에 진행되는데, 현장교육은 해당분야의 마이스터(Meister), 즉 '장인'이 실시한다. 이 교육을 받고 공인된 시험을 통과하면 해당 분야의 정식 노동자로 일할 수 있다. 이후 이 분야에서 일정 기간 동안 경력을 쌓으면 장인이 되기 위한 자격시험의 기회가 주어진다.
보통 3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이 시험을 통과하면 누구나 마이스터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도제를 받을 수도 있게 된다. 이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이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독일 사회 내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
조 소장이 주목한 것은 독일 내에서는 이처럼 안정적이고 자립적으로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분야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는 "독일에서는 일부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만 잘 살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더라도 하나의 직업을 갖게 된 사람은 남부럽지 않게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며 "직업에 대한 보수 격차가 우리처럼 심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반드시 대학에 가기 위해 기를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러한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역시 제도의 힘이 크다. 조 소장은 "독일에는 해고방지법이 있다. 이법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51년이다. 노동자의 권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바이마르 공화국 이전부터 이어져 온 사민주의 전통 때문"이라며 우선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기 힘든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는 독일 내 산업별 노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조 소장은 "각각의 산별 노조와 사용자 단체가 자율적 협상을 통해 임금을 결정하면, 해당 산업의 노동자는 그것을 따르게 된다. 동일한 사업이라면 어디에서 일하든지 동일한 임금을 받기 때문에 같은 업종이라면 중소기업의 노동자가 굳이 보다 큰 기업으로 옮겨갈 이유가 없다"고 소개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직접 회사의 운영에 관여한다는 점도 노동환경 조성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조 소장은 "독일에는 노사가 함께하는 공동결정제라는 제도가 있는데 노사 양측이 각각 구성원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 뿌리는 1800년대 독일연합이나 독일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이를 '공동결정권리'라 하여 1920년 헌법에까지 명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노사 동수가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이 제도는 소위 말하는 경제윤리적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의 존엄성과 자주권 보호, 노사의 동등한 권리 보장, 민주주의 원리의 수호, 경제적 권력에 대한 통제'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노조 측은 이 제도를 통해 노동조건, 일자리의 장기적 안정성, 경제민주화 등의 주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 소장의 <독일 사회, 우리의 대안>에는 앞에서 언급한 주거와 노동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약자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독일 내에서 어떠한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는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독일 내에서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장치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조 소장은 그 해답을 '정치'에 두고 있다.
"정치인의 행태가 달라져야 하고,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여러 정당이 어렵지 않게 제도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점도 고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헌을 통해 정부 형태도 바꿔야 한다. 정치권에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새 정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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