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경제'가 이동기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국거래소 지부장의 특별 기고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 지부장은 지난 보수 정권은 물론,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지속되는 금융 시장의 갖가지 위기를 큰 틀에서 짚고, 정부가 금융 시장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위원장의 연재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편집자.
① 바보야, 문제는 금융위원회야! : 애완견이 된 워치독
① 바보야, 문제는 금융위원회야! : 애완견이 된 워치독
② 공매도 : 고빈도매매(HFT)와 증권거래세의 함정
③ 대체거래소(ATS), 투기자본의 저수지?
④ 공매도, 삼성증권 배당 사태, 그리고 예탁제도
⑤ 분식 프레임에 갇힌 삼바, 공시와 상장관리는요?
⑥ 코스닥 잔혹 사, 개미 홀로코스트
⑦ 대한민국 자본시장, 다시 기본으로!
구글 트렌드에 나타난 대한민국 공매도와 그 원인
증시에서 공매도(空賣渡, short sale)란 투자자가 증권을 보유하지 않은 (또는 차입한) 상태에서 먼저 매도주문을 내어놓고 결제 시점까지 그 증권을 구해서 갚는 투자기법이다. 약세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고 과열을 진정시키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증시폭락이나 (수량이 유한한 증권을 제때 구하지 못하면) 연쇄부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 증권을 미리 빌려놓아야 매도주문을 낼 수 있는 차입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만 허용하고, 무차입공매도(naked short selling)는 금지한다. 여기까지가 공매도의 일반론이다.
지난 15년 대한민국의 공매도는 어떤 모습일까? 빅데이터의 시대, 구글 트렌드로 살펴본 관심도는 2014년을 분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차입)공매도는 1996년 9월 기관투자자, 1998년 7월 외국인투자자에게 허용됐다. 무차입공매도는 2000년 6월부터 전면 금지됐다. 2004년 2~4월에는 FTSE 선진지수 편입을 앞두고 공매도 규제 완화여부에 이목이 집중됐다.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8월 유럽 재정위기가 터진 후 일정기간 공매도가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금지됐다. 결국 2004~2013년 공매도를 향한 관심 수준이 롤러코스터를 탄 이유는 공매도 정책 변화가 주된 원인이었다.
그런데 2014년부터 공매도 제한조치가 전혀 없었는데도 대중의 관심도가 꾸준히 증폭됐다. 주가가 떨어져서 공매도에 대한 원성이 커진 것도 아니었다. 2016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강세장이었음에도, 공매도에 대한 개미들의 청원이 청와대를 점령했다. 오히려 미중 무역 분쟁으로 증시침체가 시작된 2018년 하반기부터 공매도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2014년~2018년 공매도가 크게 주목받은 원인이 정책변화도 주가하락도 아닌, 다른 곳에 있으리란 추론이 가능해진다.
공매도라 불리고 고빈도매매(HFT)라 읽힌다
개미들의 분노 가득한 공매도 민원의 행간을 들여다보자. 주식시장은 경제학의 기본모델인 완전경쟁시장에 가장 근접해 있다. 수요량이 공급량을 초과하면 가격이 오르리란 기대는 당연하다. 그래서 개미들은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아직 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매수호가 수량(잔량)의 합계가 매도호가의 그것보다 큰 것을 확인하고 주가 상승에 베팅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매수 주문을 내자마자 그 많던 매수호가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대신 매도호가 잔량이 늘어나 있다. 오를 줄 알았던 주가가 오히려 떨어진다. 누구인지 궁금해 매도 주체를 확인해보니 조금 전 매수호가를 냈던 바로 그 증권사(지점)다. 매수 세력이 번개같이 매도 세력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 매도는 분명 주식을 보유하거나 빌리지 않고 이루어진 무차입 공매도다. 조금 전 주식을 사려 했다는 건 계좌에 주식이 없었다는 방증이고, 그 짧은 시간에 어디에서 주식을 빌려왔을 리도 만무하다.
무차입공매도가 없다는 당국의 설명도 눈앞의 현실 앞에 공염불이 된다. 지난 해 4월 삼성증권 배당사고가 심증을 굳힌다. 이쯤 되면 ‘손이 눈보다 빠르다’는 타짜들의 '밑장빼기'가 의심된다. "동작 그만, 너의 주문이 무차입공매도라는 데 내 모든 재산과 손모가지를 걸"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매도 잔량 합계가 많아 차익 실현 또는 손절매하려 팔았더니 번개같이 매수 잔량으로 옮겨갔다. 이건 공매도라기 보단 고빈도 매매(HFT : High Frequency Trading)의 전형적인 기법 중 하나다. 대량주문을 1주 단위로, 1,000분의 1초까지 분할하여 끊임없이 매수와 매도 주문을 넣었다 빼는 초단다매매다.
HFT : 미국·유럽에서 끝난 잔치, 한국시장 흥행 역주행의 비밀은?
2000년대 들어 세계 자본시장은 커다란 변혁을 겪는다. 먼저 불확실성 증대와 금융공학의 발달로 펀더멘털보다 변동성에 베팅하는 투자가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자본시장 권력이 브로커 또는 딜러(sell-side)에서 헤지·사모·국부펀드(buy-side)로 이동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초과수익을 얻는 필살기가 바로 고빈도 매매다. 퀀트(Quantitative Analyst)라고 불리는 투자 빅데이터와 첨단 분석도구로 절대수익의 알고리즘을 창조하고, 자동주문집행시스템 등 첨단 전자거래 인프라로 더 빠르고 더 빈번히 주문을 넣고 빼며 어떤 시장상황에서도 목표수익을 만들어낸다. 머리는 AI, 몸은 로봇 같은 이 새로운 종이 자본시장을 지배하는 건 당연한 귀결. 브로커 또는 딜러(sell-side)들도 퀀트와 초고속인프라로 무장하고 영업에 열을 올리니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초기에는 알파고처럼 사람 투자자를 상대로 승승장구했고, 나중에는 알파고끼리 경쟁하며 더 강한 '알파고 제로'가 거듭 새로 등장하는 셈이다. 딥마인드처럼 알파고에 계속 투자할 수 있는 대형 금융기관만이 살아남아 막대한 자금을 굴리게 되고, 이에 비례하여 시장지배력도 강화된다.
무한 경쟁을 통한 알고리즘의 진화는 최고의 AI조차도 예상치 못한 '블랙스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2010년 5월 6일 미국 주식시장이 급락했던 '플래시 크래쉬(flash crash)'가 그것이다. <빅쇼트(Big Short)>로 잘 알려진 마이클 루이스의 2014년 저서 <플래시 보이스(Flash Boys)>는 이런 고빈도 매매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 팩션(faction)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미국·유럽에서 소설화 될 정도로 일반화된 고빈도 매매가 우리 시장에선 왜 생소할까? 그 해답은 증권거래세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 한국에서 삼성전자 백만 주를 팔고 내일 미국에서 애플로 갈아타려는 글로벌 헤지펀드를 가정해보자. 백만 주 매도주문을 한 번에 내면 어떤 일이 생길까? 대량 매물이 시장에 충격을 주어 주가가 떨어진다. 목표로 한 가격에 팔지 못하면 내일 포트폴리오 교체도 어렵다. 또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대량매도 했다'는 정보가 삽시간에 퍼져 투자전략이 노출된다. 추종매도가 이어지면 목표달성은 더 요원해진다.
고빈도 매매가 절실한 순간이다. 먼저 삼성전자 1백만 주의 평균 목표 매도가격을 정하고 이를 달성해내는 알고리즘을 짠다. 조금 단순하게 설명하면 주가가 목표가보다 떨어지면 매수주문을 내고 올라가면 매도주문을 내는 식이다. 무조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게 좋지만, 때론 비싸게 사서 싸게 팔 때도 있다. 시뮬레이션을 해가며 평균적으로 목표가격만 달성하면 되기 때문. 그러다보면 당초 팔려던 1백만 주보다 더 많이 사고 팔게 된다. 그런데 우리 시장에선 2019년 5월까지 주식을 팔 때마다 거래대금의 0.3%를 거래세(농어촌특별세 포함)로 내야했다. 이런 유형의 고빈도 매매는 티끌모아 태산, 호가 가격단위(tick size) 하나하나를 노린다. 삼성전자의 어제 종가는 46,500원이고 50원 단위로 호가된다. 고빈도 매매의 목표가격이 달성되면 그 과정에서 몇 주를 사고 팔든 최소 호가단위(1틱)에 해당하는 50원만 남겨도 남는 장사다.
그런데 팔 때 거래세로 3틱 정도에 해당하는 0.3%를 내니 1틱에 해당하는 0.1%(50원/46,500원)밖에 못 벌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러니 적어도 거래세에 해당하는 3틱 이상 벌어야 한다. 그러려면 세배 이상의 비용과 노력이 든다. 거래세가 없는 미국에선 전혀 문제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파생상품시장에서만 고빈도 매매가 성행했고, 주식시장에선 거래세 비용을 극복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외국인들만이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주식시장에서 고빈도 매매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고빈도 매매가 공매도로 오인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우리시장에선 거래세가 고빈도 매매의 확산을 막아왔다. 공매도가 사실 고빈도 매매라는 필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거래세가 언제부터 누구에게 면제되었는지를 찾아보면 된다. 아래 자본시장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 시장의 공매도는 2013년부터 빠르게 늘어나 2015년부터는 시장전체 거래량을 넘어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1. 2013년은 오랫동안 거래세를 면제받아 온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이 몰린 시기다. 2012년 7.6조원이던 순자산이 2013년 10.2조원으로 증가했다. <The Journal of Portfolio Management>의 2016년 가을 호에는 'ETFs, High-Frequency Trading, and Flash Crashes'란 논문이 실려 있다. ETF와 시장조성, 고빈도 매매는 뗄 수 없는 관계다. ETF 가격이 기초자산인 주식바스켓의 가치와 괴리가 발생할 수 있고, 이때 고빈도 매매를 통해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기초자산보다 1.5~2배나 더 수익을 주는 레버지리ETF나, 기초자산과 반대로 수익을 안겨주는 인버스ETF와 같은 파생상품 특성을 지닌 ETF가 흥행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했다.
#2. 2015년 3월부터는 우리 대형 증권사 대다수가 거래세를 면제받는다. 명분은 좋았다. 파생상품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장조성을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떠안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주식을 거래하면 증권사가 부담할 거래세를 면제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초의 명분은 사라지고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외국인보다 주식시장에서의 고빈도 매매 원가가 낮아진 것이다. 그 뒤로 22억 원 연봉대박으로 유명한 양매도 ETN 등 증권업계에선 구조화상품 발행이 붐을 이룬다. 이런 상품은 보험에 가깝다. 판매사가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재보험을 들어야 하는 데 그게 바로 헤지거래다. 정작 파생상품시장보다 판매 대박이 난 구조화상품의 헤지거래에 거래세가 면제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 금상첨화? 또는 설상가상으로 2017년 4월부터 우정사업본부의 차익거래에 대한 거래세가 면제된다. 파생상품과 그 기초자산인 주식 가격 사이에 가격 불균형이 생겼을 때 이를 조정하면서 돈도 버는 게 차익거래다. 경제학과 파이낸스는 균형에 집착한다. 거미집 이론과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M)이 대표적이다. 균형이 절대선이고 여기서 이탈하면 뭔가 불안하다. 그래서 차익거래에 대한 면죄부는 정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말 그대로 차익(差益)만 따먹고 두 시장을 재정(再訂)하는 효과가 없는 거래에 거래세를 면제해주고 있는 지는 누구도 검증하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금융위, 성찰 없는 진격의 거인!
요리스 아위언데이크는 <상어와 헤엄치기>에서 뉴욕의 월스트리트와 함께 세계 자본시장의 양대 산맥인 런던 시티의 금융시스템을 인류학적 관점으로 분석했다. 여기서 상어는 피 내음을 쫓듯 돈에 몰려드는 대형 금융사를 은유한다. 그런 상어들의 야성을 적절히 규제해서 생태계를 지켜나갈 책임은 금융당국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 금융위는 스스로 죠스가 되어 금융사보다 더 돈을 쫓는 듯하다. 4차 산업혁명, 핀테크, 생산적 금융이란 미명아래 규제기능을 내던지고 상어들의 탐욕에만 귀 기울인다. 공매도의 실체가 정말 고빈도 매매인지, 거래세 면제라는 특혜가 정말 헤지·차익이라는 정당한 목적에 사용되었는지, 시장은 양적으로 활성화되었지만 질적으로는 성장하였는지, 투자자의 피로 투기자본의 배를 채우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는 게 금융위의 역할이다.
2018년 5월 31일 공매도 관련 국민청원에 대한 금융위원장의 답변은 무책임한 공무원의 전형적 패턴을 따랐다. 먼저 선 긋기, 공매도의 순기능과 글로벌 스탠더드임을 강조한다. 두 번째 책임회피, 우리나라 공매도 규제는 해외 어느 나라 보다 엄격하단다. 셋째는 돌려막기, 문제없지만 민원이 많으니 개인도 공매할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단다. 우리 자본시장 규모는 미국의 2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너무 많은 약자가 직접 참여하고 있다. 동네축구 선수와 프리미어리그 소속이 겨루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FIFA 규칙을 적용하는 셈이다. 순기능보단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외국인·대형금융사에 더 엄격한 룰을 적용하거나, 개미에게 보호 장구를 의무화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위는 금융산업이 양적으로 활성화되기만 바랄뿐, 질적인 분배문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소비자보호기능을 도외시하는 건 금융위의 구조적 문제다. 설계가 잘못된 자동차는 당장 운행을 중단시키고 리콜서비스를 해야 한다. 금융위는 자동차보다 더 중요한 국가 금융인프라를 좌지우지한다. 미국의 자본시장 규제철학 중 하나가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증권범죄는 배당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과 같은 사람들을 등쳐먹는 가장 나쁜 사기로 보아 엄히 다스린다. 그래서 금융당국의 최고 미션은 소비자보호다. 이런 상식이 실현되는 데 우린 왜 이리 오래 걸리는 것일까? 이제 금융적폐에 촛불을 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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