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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확인하는, 20년 전 전두환의 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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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확인하는, 20년 전 전두환의 복제"

[RevoluSong] 마제(Maze)의 <Sugarcoated>

몇해 전, 백담사에 들렀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거의 도피에 가까운 생활을 했던 1980년대 말 당시의 거처를 고스란히 보존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던 방에는 그들이 살던 당시의 사진이 붙어있었고, 그들의 쓰던 생활용품까지 남아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곳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분의 거처'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줄을 서다시피 하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전두환을 희대의 학살자이며 부정부패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들의 거처가 역사의 흔적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처럼 담백하게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 놓은 백담사 측의 발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불교가 말하는 자비라고 할 수 없었고 다만 몰역사의 극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웠던 것은 아무도 왈가왈부하지 않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미 짧은 수형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기 때문인지, 아무도 그 앞에서 그를 비판하거나 욕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즐거운 여행 사진처럼 김치나 치즈를 외치며 셔터를 누를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전두환 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표를 준 것도 국민들이었으며, 그의 후예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표를 준 것도 국민들이었다. 그리고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를 구속하라고 여론을 만든 것도 국민들이었다. 요즘은 우리 국민들이 모두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일궈온 것처럼 말하지만, 역사의 순간순간을 돌아보면 국민들은 바람보다 먼저 누울 때도 적지 않았다. 지금 많은 이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역시 쿠데타로 집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욱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올드스쿨 하드코어 밴드인 마제(Maze)의 곡 <Sugarcoated>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전 대통령 전두환 씨의 뻔뻔하기 그지없는 퇴임사로 시작한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대통령으로 국민 여러분들이 기억해주셨으면 한다"는 그는 백담사로 도망갔다가 10여년 뒤 구속되고, 다시 풀려나기까지 한 번도 진심어린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어이없게도 간간히 "전 재산 29만 원"같은 발언으로 짐승 같은 뻔뻔함을 확인시켜주는 그를 향해 마제의 보컬 김형군과 피처링하는 노 브레인의 보컬 이성우는 "우리를 위한단 거짓을 집어치워"라며 응수한다.

올드스쿨 하드코어 밴드답게 이들의 음악은 짧고 거칠다. 쉽게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원초적인 김형군의 보컬과 강력한 하드코어 사운드는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거짓된 독재자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곡의 말미에서 전두환 씨를 칭송하기에 급급한 언론의 용비어천가를 고스란히 다시 들려줌으로써 당시나 지금이나 사탕발림을 하는 세력이 결코 지배층만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채 3분이 되지 않는 곡 안에서 잊을 수 없는 과거의 목소리와 현재적 메시지를 함께 담은 밴드 마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성실하게 활동하는 올드스쿨 하드코어 밴드이다. 지난 2008년 <Sugarcoated>가 담긴 1집 [Struggle 4 Yourself]를 발표하며 헬로루키 연말 결산에 진출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은 한국 하드코어 씬을 튼실하게 이어가는 신예 밴드이다.

▲ 올드스쿨 하드코어 밴드인 마제(Maze). 지난 2008년 1집 [Struggle 4 Yourself]를 발표하며 헬로루키 연말 결산에 진출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은 한국 하드코어 씬을 튼실하게 이어가는 신예 밴드이다. ⓒ마제

이들의 노래는 거칠고 원칙적인 비판으로 채워져 있지만, 결코 20년 전의 지나간 역사라고만 볼 수는 없다. 국민을 속이며 정권을 유지했던 이들은 잠시 권력에서 밀려났으나 이제 전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사탕발림과 함께 다시 정권을 되찾았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유혹이 두 번의 민주주의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대체했지만, 지금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결국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과거 노골적이었던 정부의 사탕발림을 이제는 국민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이는 오늘, 권력과 자본의 사탕발림은 갈수록 세련되게 달콤해지고 있다. 그 수많은 욕망의 속임수들을 헤치고 민중으로서의 자존을 되찾지 않는 한 역사는 되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20년 전 전두환 씨의 진일보한 복제를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분명 우리가 함께 만든 진화된 괴물이다.




<Sugarcoated>

Feat 이성우 (No Brain)

You(I) Exist For You(Me)
결국 너는 나를 위한 나는 단지 너에게는
너는 나의 국가를 위해 충성해야 해
나는 너의 권위를 위해 더 숙여야 해
너는 나의 부를 위해 더 일해야 해
나는 너의 힘을 위해 짓밟혀야 해

Endless Pain
It's Sugarcoated

우리를 위한단 거짓을 집어치워
결국은 너희의 안위를 바랄 뿐
날 믿어 달라는 헛소린 그만 둬
어쨌든 모든 건 널 위한 거잖아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매주 화, 목요일 <프레시안>을 통해서 발표될 이번 릴레이음악 발표를 통해서 독자들은 당대 뮤지션의 날카로운 비판을 최고의 음악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 "다시 음악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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