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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네덜란드 모델'이다"

[심층 리포트] 盧정부의 新노동정책, 한국서 수용가능할까

이정우 청와대 정책수석이 1일 노무현정부의 노사관계 추구모델로 '네덜란드 노사정 모델'을 제시하자, 각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며 벌써부터 논쟁이 일고 있다.

네덜란드 모델이란 노동자측이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유연성을 받아들이고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사용자측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고용을 최대한 보장해주고 노조의 경영참여를 허용하며, 정부는 신뢰받는 중재자로서 이같은 합의가 지속가능하도록 노력하는 '사회계약' 체결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같은 계약을 도출하기 위해선 노동계 대표, 재계 대표, 정부 지도자들의 뛰어난 지도력과 카리스마, 도덕성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극심한 불황과 노사갈등의 산고끝에 이같은 합의를 도출해냈고, 그 결과 현재에 이르러서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체질을 갖춘 '강소국(强小國)'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프레시안은 지난해 1월20일 방영된 KBS 일요스페셜 '네덜란드의 기적'을 본 뒤 네덜란드에 대한 심층 리포트를 실은 적이 있다. "지구상에 어떻게 이런 나라가 있을 수 있을까"라는 게 당시 이 프로그램을 본 모든 이들의 공통된 경탄음이었기 때문이다.

16년간 암스테르담 시장을 지내고 내무장관까지 지낸 인물이 공직기간중 단 4백만원을 유용한 사실이 네덜란드 최악의 부패 스캔들이 되고 있는 나라, 2백여명의 국회의원들 가운데 단 한명도 자가용 운전수를 두고 있는 이가 없을뿐 아니라 대다수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나라, 청교도 전통에 따라 가진 자가 극도로 검소한 삶을 살고 있어 계층간 위화감이 없는 나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여 실업 발생을 막고 있는 나라. TV에 비친 네덜란드는 너무나도 부러운 '인간의 공동체'였다.

프레시안은 이에 이 프로그램 제작의 토대가 된 젤 비세르와 안톤 헤메리지크의 공저 <네덜란드의 기적(A Dutch Miracle)>을 긴급 입수했다. 아울러 캐나다의 민간경제연구소 AIMS의 수석정책분석가 프레드 맥마흔이 <네덜란드의 기적>을 다각도로 심층분석한 <성장으로 가는 길>(ROAD TO GROWTH)도 구했다. 네덜란드 기적의 이면을 심층 분석하기 위해서이다.

프레시안은 이들 자료에 기초해 지난해 1월22일부터 24일까지 3회에 걸쳐 '네덜란드 기적'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었다.

프레시안은 지금 이 기사를 재록키로 했다. 노무현 정부가 '네덜란드 모델'을 정책지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기사가 새로운 해법을 필요로 하는 노사문제에 대한 소모적 논쟁이 아닌 생산적 논의의 한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네덜란드의 기적,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국가경쟁력 세계 5위,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인 네덜란드. 1980년대초 서유럽 최고의 '문제국가'에서 오늘날 유럽의 스타 국가가 된 것을 두고 ‘네덜란드의 기적’(Dutch Miracle)이라고 부르며 경제 위기를 겪는 나라들이 지금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제기적은 미국식 자본주의와는 다른 길을 걸은 케이스라는 점에서 특히 우리에게 주목된다. 미국의 시장경제주의가 ‘강자의 논리’라면 네덜란드의 자본주의는 ‘모두의 논리’다.

네덜란드는 정부보다는 민간의 자율과 협력에 기반을 둔 ‘협의주의’ 전통이 강하다.

네덜란드는 모든 것을 협의체를 구성해 결정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국제무역을 주름잡던 동인도회사 역시 각 도시 상인들의 협의체에 의해 경영됐다. 17, 18세기의 네덜란드 공화국도 절대왕권이 없는 상태에서 7개 주 대표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국정을 주도했다.

네덜란드에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왕이나 권력자가 없었고, 따라서 도시를 운영하는 협의구조가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의 통치구조가 되었고 이는 계속 남아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노사정 협의체가 경제 기적 일궈내**

우리나라에서는 번번히 실패로 끝난 노사정위원회가 네덜란드에서는 ‘기적의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네덜란드의 노사정위원회가 바로 '세르'(SER)다.

네덜란드식으로는 사회경제위원회로 명명되는 SER는 1950년 정부자문기관으로 설립되었다. SER는 노사협의를 최종적으로 조정하는 기관으로 정부의 각종 사회경제 정책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노조와 경영자측 대표, 그리고 공익을 대표하는 전문가 집단(정부 임명)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집단은 모두 11명씩 대표를 갖는다. 이 곳에서 결정되는 내용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져 정책으로 추진된다.

1980년대초까지만 해도 파업과 진압이 끊이지 않던 서유럽 최악의 경제였던 네덜란드가 지금은 유럽의 스타 경제국가가 되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생산비용을 증가시키는 각종 규제가 심했다. 이로 인해 경제가 피폐해지자 정부는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추진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삭감해 공무원 월급을 깍고 감원을 하는 동시에 기업주와 노동자가 내던 의료보험, 고용보험료 등을 깍아주는 과감한 감세정책을 폈다. 이것은 노사정이 모여 합의한 임금삭감, 일자리 나누기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초 네덜란드의 경제가 얼마나 위기에 처해있는가를 살펴보자.

<표1>

1984년 실업률은 17%로 치솟았다. 1881~1983년 사이 3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1984년 매달 10만명씩 실업자가 늘어나 80만명에 이르렀다.

1980년대 네덜란드의 경제성장률은 0%선에 머물렀다.

정부지출은 1973년 GDP의 40%에서 1983년 58%로 급증했다. 그런데도 당시의 완벽한 사회보장제도 덕에 사람들은 임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표2>

***반 빈의 식탁에서 이뤄진 네덜란드의 기적**

경제파탄이 극심해지자 네덜란드 국민은 위기 극복을 위해 뜻을 모았다. 1982년 네덜란드 정부는 비로소 사회적 비용 감축과 경제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시장개혁과 정부지출삭감에 초점을 맞춘 개혁은 강력한 성과를 가져왔다.

1982년 미국의 비벌리힐즈에 해당하는 헤이그의 북쪽 바세나르에서 당시 네덜란드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VNO-NCW 회장 크리스 반 빈은 직장에 나가는 아내 대신 아이를 돌보느라 주로 집에 있었다. 당시 그는 네덜란드 최대노조단체 FNV의 빔 콕 회장과 자기 집에서 모임을 자주 가졌다. ‘네덜란드의 기적’을 가져온 가장 핵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 바세나르 협약은 바로 반 빈의 식탁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바세나르 협약은 임금조정과 민간의 수익향상에 대해 집중했다. 경제상황이 악화되자 현실에 대한 극적인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 중 네덜란드가 먼저 놀라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3가지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첫 번째, 1980년대초 지나친 사회보장제도 등으로 혹독한 불황을 겪고 있음에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통제불능의 상태였다.
두 번째, 네덜란드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개방형 경제여서 국제 경쟁에 압박감을 더 크게 느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사회각부문의 이해관계가 복잡한데도 불구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협의체적 전통이 강했다는 점이다.

통제불능이라고 할 정도의 사회상황에서 바세나르 협약이 극적으로 맺어진 것도 놀랍지만 이것이 효과를 봤다는 것은 더 놀라운 것이다.

바세나르 협약에 따라 2년내에 기존의 모든 규약 중 3분의 2가 갱신되었다. 1985년 생계비 완전보장 조항은 10% 대로 바뀌었다. 평균실질임금은 9%가 떨어졌다. 그 대신 노조는 일자리 재분배를 위해 주간 노동시간 감축에 나섰다.

1982년에는 1994년에 물러날 때까지 네덜란드 사상 최장수 총리였던 루드 루버스가 이끄는 새로운 정부가 등장했다.

루버스 정부는 공무원 봉급과 사회보장비, 최저임금 등을 동결했다. 1983년에는 이마저 3.5%씩 삭감했다.1986년 공공노조는 전후 최대의 파업으로 저항했으나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자 3%의 임금 삭감과 주당 38시간 노동에 합의했다.

그러나 1987년 경제안정은 다시 위협받았다. 1988~1991년 국제적인 경기호조 분위기에 따라 노조는 다시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감세, 복지제도 민영화 등 사회적 비용 줄이는 데 성공**

바세나르 협약 정신이 흐트러지면서 네덜란드 경제는 1992년 다시 불황에 빠졌다. 세계적인 전자회사 필립스와 포커 항공사 등 네덜란드의 대표 기업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네덜란드의 제조업 일자리 1백만개 중 10분의 1이 1992~94년에 사라질 정도였다.

위기는 다시 영웅을 불러냈다. 1994년 총선에서 네덜란드 사상 최초의 좌우익 연합정권이 탄생하면서 바세나르 협약을 이끌어냈던 노조지도자 빔 콕이 수상이 되었다. 새로운 정부는 정부지출 삭감, 세금감세, 시장경제활성화, 규제완화, 사회복지제도 수정, 민영화 등 과감한 조치를 실시했다.

빔 콕 정부가 정부가 취한 조치는 1982년 때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것이었다. 빔 콕 정부는 1994~98년 중앙정부의 지출을 6% 삭감하기로 했다. 국민 저축은 재정적자를 줄이고 감세로 인한 세입을 보충하는 데 돌렸다. 새로운 정부는 이전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경제를 예측하는 바람에 재정 적자를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한 점에 주의해 긴축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그런데 개혁정책과 노동계의 달라진 태도로 인해 경제는 예상보다 1% 포인트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1994~95년 GDP 성장률은 연평균 3.25%를 기록했다.

이때부터 네덜란드 경제의 악순환 고리는 선순환 구조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네덜란드 정부는 1996년 재정적자를 GDP(국내총생산)의 2%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다. 1997년에는 재정적자가 GDP의 0.9%에 불과했다.

<표3>

또한 세금 삭감은 2백억 길더(약 10억 달러)나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GDP의 2.5% 가까운 것으로 목표치의 두 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것이었다.

세계은행 통계(1997년)에 따르면 GDP에서 세입의 비중이 1993년 46.1%에서 1995년 42.9%로 떨어졌다. 1998년에는 42.5%로 더욱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장기적으로 세금삭감에도 불구하고 세수가 많아지려면 GDP가 세입 감소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 네덜란드 통계청 자료(1999년 8월)은 1998년에 세수가 8.8% 늘 것으로 추정했다.

세금삭감은 네덜란드의 비용경쟁력 측면에서 상당한 효과를 주었다. 1982~1997년 세금 부담은 평균 2.8% 줄어들었다. 영국은 이 기간에 세금부담을 1.9% 줄이는 데 그친 것과 비교된다. 반면 독일은 세금부담이 2.6% 늘고 프랑스는 2.3% 늘었다. 전반적으로 유럽연합 국가들은 세금부담이 평균 2.6% 올랐다.

이 점만으로도 네덜란드가 경제성장과 고용률에서 앞서가는 이유를 잘 말해준다. 영국과 아일랜드가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직업 창출과 경제성장에서 호조를 보이는 이유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1994~98년 네덜란드 정부는 사회보장 지출에도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병가에 대한 임금이 사회보장비에서 지출되었던 1990년 근무일 100일 중 7일은 병가로 쓰였다. 영국의 2.6일, 독일의 5일(1998 OECD)이라는 통계와 비교된다.

1996년 이 병가보조금제도는 기업의 부담으로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기업주에게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기업으로서는 종업원들의 복지를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주면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계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치로 1994~1997년말 병가는 25%나 줄어들었다.

사실상 본인이 원하면 노동장애인으로 분리돼 편안히 나랏돈을 받고 살 수 있는 복지제도도 개혁 대상이었다. 저임금층에서는 실제임금과 사회보장비와 거의 차가 없을 정도였다. 이에 따라 1990년대초 국민들의 건강이 가장 좋은 나라로 손꼽히는 네덜란드에서 6백만 노동자 중 1백만명이 노동장애인으로 분류될 지경이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노동장애인을 엄격히 심사하고 점차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민영화하고 있다. 이 역시 기업으로 하여금 종업원이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회적 비용이 감소하면서 네덜란드의 경제는 갈수록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다. 1998년 경제성장률은 3.8%로 예상되고, 1997년 실업률은 6.4%로 떨어지고 1999년 중반 4%까지 실업률이 감소했다. 1990년대 첫 3년간 15~64세 인구 중 56.3%의 고용률이 1997년 60.6%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실업률이 감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강소국' 네덜란드**

인구 1천6백만명에 국토 면적이 남한의 절반만한 네덜란드는 지난 97년 미국 덴버에서 개최된 서방7개국(G7) 정상회담에서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네덜란드의 경제기적을 성공 사례로 언급하면서 국제적으로 ‘강소국’의 반열에 올랐다. 덩치만 작을 뿐, 경제의 강력함에서는 미국과 필적할 만한 존재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강대국' 미국과 '강소국' 네덜란드 사이에는 여러 모로 차이가 많다. 가장 큰 차이는 경제강국을 이룬 과정이다. 최근 10년간 노동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주제가 OECD 국가에서 지난 20년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소득 불평등 문제다.

소득 불평등은 미국에서 눈에 띄게 심화되고 있다. 영국도 소득불평등이 상당히 심화됐고 저임금층도 늘어가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영미식 앵글로색슨주의를 택한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되는 현상이다.

***네덜란드의 빈민율은 세계 최저**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소득격차가 매우 적고 저임금층도 그리 많지 않다. 네덜란드의 빈민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네덜란드는 고용 성장을 위해 빈민을 양산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의 소득격차도 심하지는 않지만 네덜란드와 비교하면 매우 높은 축에 속한다.

비정규직, 낮은 실업률, 작은 소득격차 같은 요소는 개별적으로는 다른 나라에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이 성공적으로 결합된 케이스는 네덜란드말고는 달리 찾아 볼 수 없다. '네덜란드의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독보적인 것이다. 그것도 1980년대초 '네덜란드 병'이라고 할 정도의 피폐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이뤄낸 것이다.

실업률도 OECD 국가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다. 1982년부터 1995년까지 서유럽 국가들의 평균 연간 고용증가율이 0.5%포인트인데 비해 네덜란드는 고용률이 매년 1.4%포인트씩 늘어났다. 1982년 10% 가량이던 실업률은 2000년 3.5%까지 떨어졌다.

12개월 이상 장기 실업이 유럽 전체 실업에서 40%가 넘고, 스페인에서는 24세 이하의 노동가능 청년의 절반 이상, 프랑스와 이탈리에서는 28%가 직업을 갖지 못한 현실에서 네덜란드는 분명 ‘이상한 나라’다.

네덜란드에서는 똑같은 일을 하는데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 임금을 적게 준다. 인구의 13% 이상이 노동장애 수당을 받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62%만이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네덜란드는 '비정규직'의 나라**

이에 대해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네덜란드를 ‘세계 유일의 비정규직 경제’로 규정했다. 네덜란드의 비정규직 비율은 유럽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 평균 근무시간도 상당히 적다.

암스테르담대 노동연구소 비메르 살베르다의 연구에 따르면, 1998년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4.0%로 당시 미국의 4.5%보다도 낮았다. 유럽의 평균 실업률이 10%에 이른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례적이다.

살베르다는 “그것도 미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현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와 사회 민간부문이 합의를 거쳐 의식적인 노력으로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임금억제에 성공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보다 높은 고용률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살베르다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이기에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않다면 체계적으로 분석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다른 나라나 네덜란드 경제의 앞날을 위해서도 이런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3가지 질문을 제기했다.

첫 번째, 네덜란드의 노동시장이 근본적으로 달라져 고용률이 증가했는가.
두 번째, 이런 변화가 정책적 결과로 나타난 것인가.
세 번째, 네덜란드의 정책이 다른 나라에서도 유효하고 네덜란드에서도 앞으로 유효할 것인가.

1979년~1997년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28% 증가했다. 이 기간에 네덜란드의 고용구조는 현격하게 변했다. 연 4%씩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임시직은 1989년 이후 급격히 증가해 노동자의 3분의 1이 비정규직 등 임시직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반면 정규직은 5% 감소했지만 비정규직과 임시직이 이를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증가했다. 비정규직 중에는 주당 노동시간이 10~12시간 정도에 불과한 것도 적지 않다. 이것을 제외하면 비정규직 비율은 적어져 인구 대비 고용률이 68%에서 61%로 줄어든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던 네덜란드가 5% 미만의 실업률을 유지하는 이면에는 네덜란드의 발달된 사회복지제도가 있다. 노동장애수당을 받거나 조기 은퇴수당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싫어하지 않는 이유**

1995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86% 수준이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비정규직이 많은데도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1996년 통계를 보면 네덜란드의 전체 노동자 2.4%(또는 비정규직의 6%)만이 정규직을 선호했다. 유럽연합의 3.1%(유럽연합 비정규직 노동자 중 19%)와 대비된다.

이는 주로 네덜란드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통해 가계의 2차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임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57%로 상당히 낮다.

고용구조는 사람 수로 파악하는 것도 있지만 노동시간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전체노동시간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9%에서 19%로 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수는 18%에서 30%로 늘었다. 임시직은 3%에서 7%로 늘었다. 반면 정규직은 노동시간에서 88%에서 74%로 줄었다.

고용률을 머릿수로 계산하면 네덜란드의 실업률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1997년 실업률도 주당 10시간 정도인 임시직을 제외한다면 5.5%에서 6.1%로 늘어난다.

일할 의사와 능력을 갖고 있는 실업자를 기준으로 네덜란드의 실업률을 계산하면 12.3%로 늘어난다. 유럽의 평균은 15.7%다.

비정규직이 많다는 것은 청년 노동자의 입장에서 고용상황이 질적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청년들의 수가 감소하고 교육받는 인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직업을 가진 청년 중 3분의 1이 주당 12시간 미만 일한다. 이는 24세 이상의 성인보다 4배가 많은 비율이다.

최근 청년들의 임시직 비율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1992년~1997년 주당 12시간 정도 일하는 청년의 비율은 16.5%에서 27.5%로 급증했다.

***임금억제 노력도 주목할만**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다는 네덜란드 고용구조의 특성과 함께 임금억제는 네덜란드 기적의 양대 요인이다.

1979~1997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6%가 오른 반면 시간당 실질 임금은 6%만 올랐다. 임금은 생산성 대비 22%나 떨어졌다. 특히 1979~1985년 사이에 17%나 떨어졌다. 1983년 이후 임금억제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계속 올랐다.

살베르다는 “네덜란드의 기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고용창출이 특히 비정규직 활성화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비정규직은 미래의 고용 구조에 적합한 것으로 보이며, 제조업은 감소하고 서비스업이 늘어가는 추세로 볼 때 비정규직의 비중을 높이는 방식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모델을 다른 나라에 적용하는 데 제한이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네덜란드처럼 비정규직을 노동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정책의 다섯가지 특징**

네덜란드는 앵글로색슨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한 예로 기업들은 사업상 타당한 이유가 없는 한 근로자들의 작업시간 단축(또는 확대) 요구를 따르도록 하는 법을 지난 2000년 통과시켰다. 동시에 많은 첨단기업들은 ‘평생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도 고용보장에 힘쓰고 있다.

네덜란드를 포함한 대다수 유럽국가는 이처럼 독자적인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00년초 노조원들이 퇴직정년을 5년 연장해 미국과 같은 65세로 확대하는 안에 반대하며 25개 도시에서 수년만에 최대 규모의 가두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죽기 전에 인생을 즐길 시간을 갖고 싶다는 내용의 피켓을 흔들면서 재계 지도자들이 미국 기업의 ‘정글법칙’을 프랑스에 적용하려 한다고 성토했다.

이처럼 유럽의 전통적 복지국가는 미국식 사고방식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들 유럽국가 가운데 가장 성공모델이 다름아닌 네덜란드다. 복지낙원이라고 할 만큼 사회보장제도가 발달되어 있으면서 완전고용과 소득격차도 거의 없으며 국가경쟁력까지 갖춘 나라로 떠오른 네덜란드는 우리가 벤치마킹할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주변국들이 부러워하는 성과를 거둔 네덜란드 정책의 특징은 다음 다섯 가지다.

1.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임금억제
2.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증가, 임시직 증가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
3. 공공지출의 삭감
4. 독일 마르크에 대한 길더의 고정환율제
5. 직접적인 직업 창출 등 실업대책

페그제는 네덜란드의 경제가 부흥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로 평가된다. 네덜란드의 가장 중요한 수출입 대상국인 독일에 대한 페그제는 특히 수출에서 큰 효과를 주었다.

***외부환경 변화에 협의체 무력화될 수도**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네덜란드의 기적이 훌륭한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70년대와 80년대의 정책 실패에 따른 반작용이라고 주장한다. 정책적 오류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성장을 가져오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노사정이 합의해서 임금억제를 달성한 성과는 오히려 네덜란드의 협의체적 체제의 취약성을 보여준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사시 강력한 노조가 시장의 신호를 무시하고 임금을 급격히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초 네덜란드의 노조는 기업의 수익이 남지 않고 재투자 의욕을 잃게 할 정도로 임금을 올렸다. 수익이 급격히 많아지거나 막대한 보수를 받는 경영진이 늘어나면 임금 억제책은 흔들리게 되어 있다.

캐나다의 민간경제연구소 AIMS의 수석정책분석가 프레드 맥마흔은 “이런 상황에서 수익과 임금의 적절한 분배균형점을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네덜란드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노동과 자본에 대해 80대 20으로 나누어 분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 반면, 노조관계자는 수익의 규모보다는 네덜란드의 생산성과 인플레이션, 다른 나라와 비교한 생산비용의 수준이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7년 노총위원장이었던 스테켈렌부르흐는 외국기자들에게 네덜란드의 기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3년간 생산단가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프랑스에서는 30%, 독일에서는 40% 증가했다. 놀랍게도 네덜란드에서는 1% 넘게 떨어졌다. 그 대가로 우리는 고용을 늘렸다. 21%나 고용이 늘었다. 이는 프랑스의 10배, 독일의 4배에 해당한다."

임금 억제와 정부의 지출삭감으로 경제성장과 고용증진을 이루었기에 네덜란드에서 이같은 정책이 큰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협의체주의는 협상참여자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외부변화에 따라 효율성을 상실하기 쉽다. 네덜란드의 경제기관인 중앙기획원도 “네덜란드의 제도에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고 인정한다.

1990년대초 노동장애수당을 받는 이가 전체 노동자 6백만명 중 1백만명에 이르렀다는 것이 좋은 예다. 현재 노동장애 판정이 보다 엄격해지고 수당이 삭감되면서 사실상 이 수당을 받는 이들은 주로 55세 이상의 사람들이 되었다. 이로 인해 실제 노동장애자가 된 보다 젊은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이들이 받는 수당은 앞으로 사회보조금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입법은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없애서는 안된다는 기본 철학을 깔고 있다. 이런 이유로 네덜란드에서도 최고경영진의 소득세가 72%에서 60%로 경감되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목사와 상인의 나라’로 불렸다. 근검 절약을 강조하는 종교적 분위기와 함께 복지 논쟁에서 상인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네덜란드의 경제가 1970년대에 악화된 것도 이러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암스테르담대 우베 베커 교수의 지적이다.

***실업자 중 장기실업 비율이 절반 넘어**

네덜란드의 앞날에 대해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비정규직 비율이 특이할 정도로 높고, 노동시장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고용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이며 전체인구중 62%만이 직업을 갖고 있다. 네덜란드의 노동자는 1년 평균 1천4백시간 일하는 반면 미국 노동자는 2천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995년). 이러한 점이 네덜란드의 성장잠재력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DNB)도 1997년 네덜란드의 노동시장 규모가 2.5% 성장한 것은 주로 여성들이나 신규 인력들에 대한 시장의 확대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1년 이상의 장기 실업자들을 사회로 재편입시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실업자의 절반 이상이 1년 이상 장기실업자이며, 6개월 이상으로 치면 5분의 4에 이른다. 이는 장기실업자가 미국의 10~17%라는 것과 비교된다.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는 점도 네덜란드의 경제 부흥에 기여했다. 1960년~1997년 네덜란드의 인구는 32% 증가했다. 이웃 독일은 이 기간에 17% 증가한 것을 보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새로 늘어난 일자리 중에는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가 많다. 1980~1990년 네덜란드에서는 비정규직의 증가가 무척 높았다. 노동시간을 줄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자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노동시장이 상당히 유연해졌고, 최저임금법과 사회보장법 개정으로 저임금의 일자리와 노동자가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여성인력이 대거 직업전선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여성의 참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서구 선진국에 네덜란드 모델이 적용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더욱이 네덜란드 정부와 국민들은 비정규직을 늘리는 데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여가와 소득에 대해 노동자들의 선택폭을 넓여주는 방식으로서 비정규직을 선호한 것이다.

이것은 네덜란드 가정의 형태에도 유연성을 부여해 주었다. 부모 모두 또는 어느 한쪽이 비정규직을 선택해 육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독특한 환경에서 이뤄진 네덜란드의 기적은 지속가능한가. 프레드 맥하흔은 이에 대해 “장기적으로 볼 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적다”고 말한다. 네덜란드의 경제기적은 네덜란드의 특유한 토양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며, 고용구조상 장기적으로는 또다시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모델은 현존하는 지상의 여러 노사관계 모델 가운데 가장 성공한 모델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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