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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믹스 쌍두마차'의 경제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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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盧믹스 쌍두마차'의 경제철학

이정우ㆍ김대환 경제1ㆍ2 간사의 개혁 플랜

정권 인수위의 경제 투톱인 이정우 경제1분과 간사(52)와 김대환 경제2분과 간사(53)의 정책방향에 대한 경제계의 관심이 비상하다. 이들이 택할 경제정책의 방향이 향후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대그룹 등 각계는 이들에 대한 정보수집에 열심이나, 워낙 제도권과 거리를 두었던 인물들인만큼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벌써부터 DJ노믹스와는 상당한 차별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노(盧)믹스'의 방향성은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두 사람의 경제철학을 통해 가늠해 보도록 하자.

***너무나 닮은 두 사람**

경북대 교수로 재직중인 이정우 간사는 거시경제, 재정, 금융 등을 책임 맡았다. 인하대 교수로 재직중인 김대환 간사는 반면에 산업, 노동, 분배 등을 책임 맡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경제철학은 대단히 흡사하며 따라서 각기 맡은 분야는 달라도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할 것이라는 게 주변의 지배적 관측이다.

비록 이 간사는 미국 하버드대, 김 간사는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땄으나 두 사람이 워낙 절친한 서울대 동기(68학번)인 데다가, 당시 주된 관심사가 박정희 개발독재 및 압축성장에 대한 '대안'을 찾던 시절이었던만큼 동질성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존경하는 인물 조사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이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친일, 배신, 독재 등 박 전대통령의 어두운 과거를 논외로 하고 발전적 시각에서 밝은 미래만 논의한다 치더라도 '박정희 신화'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와 발전은 요원해 보인다."(이정우 교수, 2002년 11월25일 한국경제학회 창립 50주년 세미나 주제발표에서)

두 사람은 이같이 동일한 인식하에서 이른바 '박정희 신화'의 음지에서 고통받아온 노동자, 서민 문제에 누구보다 강한 관심을 보여왔다. 이정우 간사가 경북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김대환 간사가 인천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한 점도 이같은 동질성에서 기인한다 하겠다. 최대한'현장' 가까이에서 노동자등 소외세력의 문제를 풀고자 했던 실천적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열린 노동의 정치'**

"재계와 보수파에서는 한국 노동운동에 대해 과격성을 비난한다.
현재와 같은 국제경쟁시대에 대립적 노사관계와 지나친 임금인상 요구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협력적 노사관계가 간절히 요구된다. 노동자 참가를 통한 임금인상 자제와 혁신만이 돌파구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제 그만'이 아니라 '보다 많은 민주주의'가 확립될 때 진정한 노사화합과 경제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이정우 교수, 2002.11.25 한국경제학회 창립 50주년 세미나 발표논문에서)

"개혁의 이름 아래 많은 일이 벌어져 오고 있지만 그 주안점은 결국 구조조정에 두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조조정은 시장경쟁과 기업경영의논리에 기반하고 있는 바, 한국사회가 처한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구조조정의 불가피성과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같이 양적이고 건수 위주의 구조조정이 강조되면 될수록, 과정이나 절차상의 문제는 무시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사관계만 하더라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와의 사전협의가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지 않는 범위내'로 국한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실업은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강조되면 될수록 노사문제나 복지문제는 부차적이고 사후적인 지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김대환 교수, 2001.12.7 영남일보 기고컬럼 '구조조정이 곧 개혁은 아니다'에서)

이정우 간사와 김대환 간사의 '노사관계관'이 어떤 것인가를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다. 한 마디로 말해 '대등한' 노사 역학관계의 정립이 노사관계라는 난제를 풀 해법이라는 주장이다.

이 간사는 "현재와 같은 국제경쟁시대에 대립적 노사관계와 지나친 임금인상 요구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노동자 참가를 통한 임금인상 자제와 혁신을 통한 협력적 노사관계만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 허용으로까지 해석가능한 대목이다.

특히 김대환 간사는 같은 맥락에서 DJ노믹스의 실패 원인을 다음과 같이 신랄히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개혁피로' 현상을 운위하고 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개혁을 많이 해서 국민이 피로해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민들은 개혁과정에서 배제되어,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만 취급되고 있기 때문에 짜증이 날 뿐이다."(2001년 11월19일 영남일보 기고칼럼 <개혁이 성공하려면>에서)

그는 이를 '열린 노동의 정치'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IMF사태의 최대 희생자는 '지방에 사는, 저학력, 중고령 근로자들'**

이들의 관심은 단순히 노동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IMF사태 이후에는 구조조정 과정에 해고되고 빈곤계층으로 전락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지난 97년 한국 금융위기에 따른 충격은 사회 각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 98~99년 경제위기가 진행되는 기간중 대표적 희생자는 '지방에 사는, 저학력, 중고령 근로자들'이었다. 같은 기간 일정한 소득 이하의 빈곤계층은 2배로 늘었다. 기존 빈곤계층에 더해 인구의 약 5%가 이 기간에 '빈곤선'이하의 소득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부유층은 경제위기로 가격이 급락한 부동산을 사들였고, 이후 가격이 오르면서 자산이 늘게 됨으로써 빈부격차의 골이 더 깊어졌다.

이같은 점에 비춰볼 때 효과적인 분배정의 실현과 빈곤 퇴치 방안은 바로 '경기변동을 완만하게 이끌고 건전한 경제를 유지하며 더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다."(이정우 교수, 2002년 10월3일 논문 <불평등과 빈곤에 대한 시사점>에서)

"구조조정에 따라 사회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현실을 감안한다면, 구조조정이 곧 삶의 질 향상이라는 등식에 찬성하는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결국 이는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 별도의 사회정책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생산적 복지나 신노사문화와 같이 구조조정의 부차적 지위에 머물러 있는 부분적인 정책이 아니라,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면서 적어도 구조조정과 대등한 지위를 갖는 사회정책이 요구되는 것이다."(김대환 교수, 2001년 12월7일 영남일보 기고칼럼 <구조조정이 곧 개혁은 아니다>에서)

IMF사태후 김대중정부는 앵글로색슨형 자본주의를 도입했다. 그 결과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 숱한 희생자가 생겨났다. 특히 '지방에 사는, 저학력, 중고령 근로자들'이 집중적 피해자가 됐다. 이들에 대한 배려없는 앵글로색슨형 구조조정은 결코 성공작이 못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인 것이다.

앞으로 노무현 새 정부가 유럽사회복지형 구조조정에 주력할 것임을 예고케 하는 대목이다.

***김대환 교수의 '신산업정책론'**

여기서 또하나 주목해야 할 대목이 향후 새 정부가 취할 '산업정책'의 방향이다. 이와 관련, 특히 주목되는 것이 산업정책 밑그림을 총괄할 김대환 간사의 산업정책관이다.

김대환 간사는 재계가 지금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라는 심각한 고민에 직면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97년 위기가 '금융위기'였다면 앞으로 도래할지도 모를 위기는 '산업위기'일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DJ정부가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라는 고민에 대해 "경쟁과 벤처를 해서 먹고 살아라"고 답한 대목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같은 잘못을 극복하기 위해서 민관이 합동으로 '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노무현 새정부가 단지 재벌개혁만을 압박하지 않고, 민관합동으로 우리경제의 활로를 찾기 위해 고심할 것임을 감지케 하는 대목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당선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기업은 대기업, 재벌은 재벌"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다음은 김 간사의 '신산업정책론'의 골자다.

"한국경제의 활로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계되어야 한다. 철저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이후 한국경제가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에 대한 설계 없이는 구조조정마저 힘을 받기가 힘든 현실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살 길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비단 구조조정에 국한해서만이 아니라 한국경제가 세계화의 격랑을 헤치고 살아나갈 종합적인 설계가 결여된 것이 한국경제 최대의 위기가 아닌가 한다.

종합적인 설계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그동안 실종되었던 산업정책을 복원하는 일이다. 시장경쟁이니 벤처니 하는 것은 형식이지 내용이 아니다. 이 형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내용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벤처의 정신으로 그리고 경쟁원리로 체질을 강화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경쟁을 하고 벤처를 해야만 한국경제의 활로가 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리 나름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에 '경쟁과 벤처를 해서 먹고 살아라'고 답한다면 이는 문자 그대로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다.

혹자는 세계화의 대세가 산업정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할지 모르지만, 이는 현행 세계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무한경쟁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각국의 피나는 노력에서 산업정책이 빠져있는 경우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도 산업정책(금융도 산업이다)은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개발독재 시대의 산업정책은 반드시 개편되어야 하지만 산업정책 자체를 방기한 채 한국경제의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결국 시늉에 불과할 공산이 크다."(김대환 교수의 2001년 10월26일 영남일보 기고칼럼 <한국경제의 활로를 설계하라>에서)

***언젠가는 거쳐야 하는 관문**

이처럼 인수위의 경제정책을 총괄할 이정우, 김대환 간사 두사람은 여러 모로 닮은 꼴이며, 철저히 개혁적이다. 경제정책에 관한 한 역대 어느 인수위보다도 진보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재계는 이에 벌써부터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다. DJ정부때보다 더 강도높은 개혁요구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같은 개혁 드라이브는 한국경제가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언젠가는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단지 노무현 당선자의 출현으로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한국 맥킨지사의 도미닉 바튼 대표는 신저 <위험한 시장>에서 "가장 유능한 CEO는 위기를 경쟁자를 도태시킬 기회로 전환할 줄 아는 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과연 새 경제팀이 경제계에 제기한 위기(?)를 누가 도약의 계기로 전환할 것인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다음은 새 경제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영남일보에 연재됐던 김대환 교수의 칼럼중 주목할만한 글 세편의 전문이다.

***[김대환 경제칼럼] 구조조정이 곧 개혁은 아니다(2001.12.7)**

개혁의 이름 아래 많은 일이 벌어져 오고 있지만 그 주안점은 결국 구조조정에 두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조조정은 시장경쟁과 기업경영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는 바, 한국사회가 처한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구조조정의 불가피성과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같이 양적이고 건수 위주의 구조조정이 강조되면 될수록, 과정이나 절차상의 문제는 무시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사관계만 하더라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와의 사전협의가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지 않는 범위 내'로 국한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실업은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강조되면 될수록 노사문제나 복지문제는 부차적이고 사후적인 지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구조조정에 따라 사회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현실을 감안한다면, 구조조정이 곧 삶의 질 향상이라는 등식에 찬성하는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결국 이는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 별도의 사회정책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생산적 복지나 신노사문화와 같이 구조조정의 부차적 지위에 머물러 있는 부분적인 정책이 아니라,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면서 적어도 구조조정과 대등한 지위를 갖는 사회정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개혁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사회개혁을 외면하기 십상임과 동시에 때로는 반(反)개혁적일 수가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부패방지나 인권보호의 제도화가 구조조정에 밀려 지연되거나 충돌을 우려하여 약화된 것은 익히 아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삶의 질 향상에 긴요한 환경보호는 경제주의에의 함몰로 인하여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린벨트의 무분별한 해제는 구조조정을 떠받치고 있는 경제주의와 시장경쟁 논리의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의 구조조정은 그 자체가 미흡했을 뿐 아니라 개혁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개혁은커녕 구조조정마저도 순탄하게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자의 반발이 거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은 소유지배구조의 개선을 되돌려놓고 있으며 노조는 고용감축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혁은 지금까지의 구조조정을 단순히 연장.확대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OECD가 "한국의 개혁은 질보다 실적을 올리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새겨들을 만하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의 구조조정을 넘어 전반적인 사회개혁으로 나아갈 때만이 전체적으로 개혁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구조조정의 질을 높임과 동시에 개혁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조정의 질을 높여 개혁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순논리의 획일적인 적용을 경계하고 구체적인 사안이나 경우에 적합한 방안이 강구되지 않으면 안된다. 구조조정을 고용감축에 의존하는 것은 질보다는 건수 위주의 발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공기업 경영혁신의 경우만 하더라도 산업적 특성이나 국민경제적 위상은 물론 시장구조의 현황과 전망을 고려하여 보다 다양한 방안이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노사간 사전협의의 규정을 준수하는 것도 개혁의 질을 높이는 한 방법이다.

구조조정, 그것도 양적인 구조조정은 개혁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정치개혁과 세제개혁을 통하여 복지예산을 확충하고 노사관계의 안정적 발전을위해 제도를 개혁하는 등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고 자연환경을 보호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등 사회 전반의 개혁이 동시적으로 추진되어야만 한다. 이는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 질을 높이는 데에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김대환 경제칼럼] 개혁이 성공하려면(2001.11.19)**

환란(換亂)의 발발로부터 4년이 되는 오늘, 거의 완전히 고갈되었던 외환보유고는 1천억달러를 넘어섰고 'IMF 졸업'이 공식적으로 선언되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경제의 전망을 밝게 보는 국민은 드물다. 응급수술이 제대로 되었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는 가운데, 환자의 쾌유에 대한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

한국경제의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 것은 대내외적인 요인이 결합된 것이지만,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현정부가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해 청사진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는 데에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추상적인 국정지표를 가지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그야말로 병행하여 나열했을 뿐, 시장경제에 민주주의의 원리를 어떻게 접목시키고 어떤 경제질서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해 왔다.

IMF의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충실하면서도 "그것만은 아니다"라는 변명만 할 뿐 구체적인 청사진은 물론 명확한 경제철학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이것이 'DJ노믹스'의 실체라고 한다면, 그것은 포퓰리스트적 위험이나 유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정부가 개혁이 일정한 진전을 보이고 있는 데도 국민들이 박수에 인색하다고 섭섭해한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 동안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실업의 고통을 감내해 온 국민들, 특히 서민들은 이제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라고 되묻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이 물음이 잠재워지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IMF관리체제라는 특수상황을 이유로 결과적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외자본의 이익에 충실하고, 대주주의 이익은 보호하면서도 중산층 이하서민의 권익에 대해서는 시혜적인 차원에 머무는 구조조정 정책을 서민들은 더 이상 진정한 개혁정책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국민의 '개혁피로' 현상을 운위하고 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개혁을 많이 해서 국민이 피로해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민들은 개혁과정에서 배제되어,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만 취급되고 있기 때문에 짜증이 날 뿐이다.

청사진은 물론 철저한 계획과 사전점검을 소홀히 한 채 '개혁'의 이름으로 몰아치면서도 일관성을 상실한 졸속이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만을 초래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교훈으로도 충분하다. '피로 현상'은 이에 따른 정부나 관료의 피로이지, 국민의 피로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은 '준비된 대통령'의 '준비되지 않은 개혁'에 분노하다 급기야는 냉소적으로 되어가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임기응변적 '구조조정 정책'이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개혁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할 시점은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대통령 1인에게 책임을 미룬 관료주의적 임기응변을 지양하고, 기본원리에 충실한 철저한 준비와 일관성있는 추진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은 하루이틀에 끝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며,특정 정권의 전유물은 더더구나 아니다. 국민은 스스로 '영구개혁'을 선언하고 이에 상응하는 끈기를 배양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과만을 바라는 한 개혁의 과정은 물론 성과도 졸속이 될 위험이 있음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하는 식의 안이한 발상과 부분적인 문제가 있다고 갈팡질팡하면서 개혁의 일관성마저 훼손하는 식의 시행착오가 더이상 개혁의 땅에 발을 붙여서는 안된다. 철저한 준비와 민주적 절차를 바탕으로 한 끈기있는 개혁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개혁은 아무리 몰아치더라도 성공하기가 힘들며, 비록 성공으로 선전되더라도 그 베일은 곧 벗겨지게 마련이다.

***[김대환 경제칼럼] 한국경제의 활로를 설계하라(2001.10.26)**

한국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대두되고 있다. 현 상황이 위기인가 아닌가하는 논쟁은 열은 많을지 몰라도 빛은 별로 보여주지 못한다. 어느 쪽이든 한국경제가 난관에 봉착해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앞으로의 활로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활로에 대한 논의 역시 무성하지만 각개약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하고 활로를 진지하게 모색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외환보유고 1천억달러 돌파에 과도하게 쳐들었던 정책당국의 고개가 숙여져야만 한다. 그리고 무책임한 각개약진이나 부분적인 땜질처방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현실가능한 활로를 함께 모색하는 일이 시급하다.

한국경제의 활로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계되어야 한다. 철저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이후 한국경제가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에 대한 설계가 없이는 구조조정마저 힘을 받기가 힘든 현실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살 길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비단 구조조정에 국한해서만이 아니라 한국경제가 세계화의 격랑을 헤치고 살아나갈 종합적인 설계가 결여된 것이 한국경제 최대의 위기가 아닌가 한다.

종합적인 설계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그동안 실종되었던 산업정책을 복원하는 일이다. 시장경쟁이니 벤처니 하는 것은 형식이지 내용이 아니다. 이 형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내용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벤처의 정신으로 그리고 경쟁원리로 체질을 강화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경쟁을 하고 벤처를 해야만 한국경제의 활로가 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리 나름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에 "경쟁과 벤처를 해서 먹고 살아라"고 답한다면 이는 문자 그대로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다.

혹자는 세계화의 대세가 산업정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할지 모르지만, 이는 현행 세계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무한경쟁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각국의 피나는 노력에서 산업정책이 빠져있는 경우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도 산업정책(금융도 산업이다)은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개발독재 시대의 산업정책은 반드시개편되어야 하지만 산업정책 자체를 방기한 채 한국경제의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결국 시늉에 불과할 공산이 크다.

이 산업정책을 기초로 거시경제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각 시나리오에 따라 복지수요나 분배요구를 어떻게 충족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설계도 필요하다. 종합적인 설계없이 다분히 상황대응적으로 베풀어진 복지정책은 지속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는 현재의 복지수준이 과도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 종합적인 설계가 없는 정책은 복지의 지속적인 확충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복지수요는 늘어나지만 그 충족수단은 오히려 줄어드는 딜레마를 어떤 수순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정책설계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이와도 관련하여 우리는 현재와 같이 경제적 난관을 자초한 데 대한 책임소재가 분명해야만 한국경제의 활로가 모색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잘못된 정책과 경영에 대한 책임추궁이 분명히 이루어져야만 '피와 땀과 눈물'이 요구될 수 있고, 그러한 사회경제적 바탕 위에서만 유의미한 활로모색이 이루어질 수 있다. 책임에 대한 상대주의로 더욱 멍들어가고있는 한국경제의 현실은 이 문제의 중요성을 한층 증대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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