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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반민특위'가 '국론분열'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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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반민특위'가 '국론분열'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해전사' 출간 40주년 기념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해방 공간에서 친일 부역자 청산을 위해 출범했으나 끝내 실패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되새긴 책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오익환·김민웅·김언호 지음, 한길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연구한 대표 저작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 시리즈 출간 40년을 기념해 나왔다. <해전사> 시리즈는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에 걸쳐 총 47명의 학자가 61개 주제에 걸쳐 연구한 해방 공간에 관한 이야기가 6권으로 나뉘어 발간됐다.

<해전사> 시리즈는 군부 독재 시절 학생운동권의 필독서로 손꼽혔다. 당시 해방전후사 연구는 군부 독재 체제에서 금기시 됐으나, 이 시리즈가 친일 부역자 문제, 미군정 문제 등을 전면으로 다루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반민특위 활동 내역을 이 시리즈가 다루면서 친일 부역자 청산이 되지 못한 한국 현대사를 지식인 사회가 재인식케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반민특위는 1948년 9월 제헌국회가 제정한 법에 따라 설치된 위원회로, 친일 부역자의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고, 그에 따르는 처벌을 위해 설치된 기구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방해 공작 등으로 인해 창설 1년 만에 큰 성과 없이 해산했다.

반민특위로 처벌이 결정된 이들은 집행유예 5인, 실형 7인, 공민권정지 18인 등 총 30명으로, 이 중 대표적 인물은 노덕술, 이광수, 채만식, 최남선 등이다. 하지만 재심 등의 과정에서 모두 풀려나 제대로 처벌 받은 이는 없다. 대표적 사례가 악명 높던 친일 고문 형사 노덕술로, 이승만 정부가 그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가 삼권분립 원칙에 위반된다는 등의 이유로 반민특위 철회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정권 과정에서 반민특위에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해전사> 기념 기획 작품인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출간을 기념해 한길사는 3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작품의 의의를 설명하고, 반민특위가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이유를 재 환기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해전사> 시리즈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반민특위와 친일 문제가 설왕설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며 "역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건 (친일 부역자에게) 복수하자는 의미가 아니고,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이 책을 냈다"고 강조했다.

책은 크게 세 명의 저자가 나눠 쓴 세 편의 글이 묶인 형식을 띤다. 김민웅 경희대 교수는 '1949년 반민특위와 오늘'에서 미국의 냉전 정책으로 인해 친일 세력이 다시금 힘을 찾아, 결과적으로 반민특위가 실패했으며, 오늘날에도 반민특위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간 반민특위의 실패 원인으로 국내의 친일 세력이 주로 꼽혔으나, 김 교수는 강력한 반공 세력을 국내 핵심 권력으로 두려 했던 미국의 영향력을 깊이 다뤘다.

기자간담회에도 참석한 김 교수는 "(미국의 영향력으로 친일 세력이 아무 제재를 받지 않음에 따라) 이후 한국에서 친일 세력을 비판하는 이는 전부 '좌파'나 '빨갱이'로 낙인찍혀 제대로 된 반민특위 논쟁이 일어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반민특위의 실패가 이후에도 한국 현대사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그 대표적 사례로 김 교수는 박정희-전두환 독재 군부의 권력 쟁탈을 꼽았다. 대표적 친일 부역자 세력이었던 만주 관동군 출신 장교들이 제1공화국 군대를 아무 문제없이 장악했고, 이 배경에서 박정희와 전두환이 성장해 훗날 독재자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반민특위 해체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책에서 강조한 이유다. 그는 "반민특위 실패를 재조명하는 건 지난 70년 간 한국이 겪은 비극을 해체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며 "친일파가 이미 역사적으로 소멸했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 반민특위의 역사적 사명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챕터인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는 1979년 <해전사> 1권이 나올 당시 오익환 <경향신문> 기자가 쓴 글로, 이번 책에 다시 실렸다. 이 글은 반민특위의 성립과 해체 과정을 자세히 풀어 썼다.

김언호 대표는 세 번째 글 '나의 '해방전후사 인식' 만들기 역사정신 체험하기'를 직접 썼다. <해전사>를 직접 기획한 김 대표가 <해전사> 기획과 출간 당시 겪은 일을 풀어내고, 이 책의 의미를 되새겼다.

반민특위 문제는 올해 들어 정치권에서도 크게 논란이 됐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3월 14일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했다"고 말해 큰 비판을 받았다. 당시 올해로 백 한 살을 맞은 독립운동가 임우철 지사가 국회를 찾아 나 원내대표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훗날 친일 부역자였음이 드러난 독립유공자의 서훈을 취소하려는 정부 방침을 비난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비판이 일자 나 원내대표는 "현 정부가 친북,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해 이를 반대하는 과정에서 실언을 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친일 부역자를 비판하는 이에게 좌파 프레임을 덧씌워 반민특위가 실패했다는 게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저자들이 언급한 말이었다.

▲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오익환·김민웅·김언호 지음)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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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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