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방비를 대폭 증액키로 해 큰 논란이 예상된다. 내년에만 최소한 5조원이 늘어나고 수년 뒤에는 연간 10조원이상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 증액되는 예산은 대부분 미국제 무기를 사는 데 쓰일 예정이다.
***정부, 한 목소리로 국방비 증액**
고건 국무총리는 3일 취임 1백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정부 5년간 매년 방위비 비율을 줄여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7%에 불과하다"며 "앞으로는 3%선을 넘어야 하며 내년 예산편성때부터 점차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국방비 증액 선언이다.
이같은 고총리의 발언은 지난달 5일 국방부가 내년도 예산신청을 하면서 올해 17조4천2백64억원(GDP의 2.7%)보다 무려 5조5천여억원이나 늘어난 23조원(GDP의 3.4%)을 신청한 것을 대폭 수용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방부 요구대로 될 경우 올해보다 국방비 예산은 무려 32% 가까이 급증하게 된다. 내년도 예산증가율이 6~7%로 책정돼 있다는 점을 보면 대단히 이례적인 국방비 급증이며, 지난 1980년의 46.2% 증가이래 최고 수치다.
국방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주국방력 강화'를 이유로 앞으로 10~15년간은 국방비 비중을 GDP대비 4%선으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년 국방비 예산 신청과정에도 당초 조영길 국방장관은 내년도 예산을 GDP의 4%로 확대해 짤 것을 직원들에게 지시했었다.
노무현대통령도 이미 국방비 대폭 증액을 결심한 상태다.
노대통령은 지난 5월27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년도 국방예산을 GDP 3.2%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의중을 분명히 드러냈었다.
"주한미군이 재배치될 거냐 철수할 거냐, 재배치든 철수든 아무리 빨라도 수년이 걸리는 일이다. 미국에 그 부분을 매달릴 게 아니라 그 기간 동안에 한국이 자주국방에 대한 자신감을 갖추어야 한다. 돈이 얼마 더 들고 덜 들고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방비가 보통 나라 국방비보다 높지 않다. 지금 GDP 비율이 2.7% 정도인데 일반적인 국가가 3.2%쯤 쓰고 있다. 우리도 자주국방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주국방할 자신도 없는 나라가 무슨 작전통제권을 내놓으라고 하나. 우선 자주국방부터 갖추고 (해야 한다). 물리적 국방도 중요하지만 국민들 정신자세부터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 하겠다는 자신감과 태세를 갖추고 그 다음에 작전통제권 말도 하고 소파 이야기도 하고 해야 한다."
***국방비 증액은 대부분 미제 무기 도입에 사용**
이같은 정부의 발빠른 국방비 증액 방침 발표는 지난 2일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 방한해 한국의 국방비 증액을 공식 요청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상호연관성을 의심케 한다.
미국은 향후 3년간 주한미군에 1백10억달러를 투자키로 하는 대신,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이에 상응하는 국방비 증액을 요구했다. 라포트 주한미사령관도 월포위츠와 마찬가지 요구를 했다. 과거 미국무기를 팔 때 미국이 먼저 첨단무기를 주한미군에 배치한 뒤, 한국군에게 작전체제 효율성을 이유로 동종 무기의 구입을 압박해온 것과 마찬가지 수순인 것이다.
특히 앞으로 증액될 국방예산은 대부분 미국제 무기를 사는 데 쓰일 것이라는 점에서 국방비 증액과 미국 압력간 유관성을 뚜렷히 읽을 수 있다.
조영길 국방장관은 지난달 6일 노대통령에게 '자주국방 비전'을 보고하며 향후 도입할 미국 첨단무기의 목록을 상세히 소개했었다. 주요 목록은 다음과 같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2005~2007년 1조8천억원을 들여 4대의 AWACS 구입. 현재 미군에게 90%이상 의존하고 있는 대북 군사정보의 독자적 수집을 위한 '0순위' 투자대상.
공중급유기: 2010년까지 2조원을 들어 4대의 공중급유기 도입.
차기 유도무기(SAM-X): 2004년부터 1조9천60억원을 투입해 2개 대대 규모의 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PAC-3) 48기 도입.
대형 공격용 헬기(AHX): 2조원을 투입해 2004년까지 18대 구입. 2006년이후 추가로 2조원 들여 18대 구입.
이지스함: 3조원을 들여 3척 도입.
이같은 구입대상 무기 가운데 차기 유도무기와 대형 공격용 헬기는 최근 미국이 주한미군에 향후 3년간 1백10억달러를 투입하기 위한 무기 목록이라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또한 이지스함이나 차기 유도무기는 미국이 내년부터 실전배치키로 한 미사일방어(MD) 체계의 주요 구성요소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국방부는 이같은 첨단무기 도입을 위해선 현재의 예산 갖고도 턱도 없다며, 국방예산을 GDP의 4%선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분단비용'이 '평화비용'을 압도하기 시작**
DJ정부 들어 GDP대비 국방비 예산은 2.7~2.8% 수준이었다. YS정부 마지막해인 1997년 예산이 3%였던 점과 비교하면 일정 부분 하향조정된 수치다. 이는 IMF사태 발발에 따라 민생복지 비용이 늘어나고 재정적자 구조로 빠져들면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나, 햇볓정책 추진에 따른 남북간 긴장완화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출범후, 특히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긴장이 고조되고 주한미군 재배치가 가시화하면서 과거 군부집권시절 수준으로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는 우파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정부가 국방비 대폭 증가를 공식추진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자주국방을 위해선 현재 미군에게 절대의존하고 있는 정보수집체계 등을 보강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지금 국방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무기의 상당수는 '공격용'이라는 점에서 향후 우리정부의 국방비 대폭 증액은 남북관계를 극도로 경색시키는 것은 물론, 동북아에 새로운 군비경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국방비의 기형적 급증은 사회복지 예산 등 다른 예산의 희생하에서만 가능하며, 동시에 재정적자를 급증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국가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국방비 급증이 결코 한반도 평화의 담보물이 되지 못한다는 대목이다. 또다시 '분단 비용'이 '평화 비용'을 압도하기 시작한 암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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