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해 폭력 사태를 유발하고, 시민군의 정보를 캐낸 '편의대'라는 선무 공작대가 1979년 부마 항쟁에도 존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군의 불법적 활동이 전두환 신군부 이전인 박정희 집권기에도 있었음을 밝히는 사안이라 관심이 집중된다.
부마 항쟁 당시 자신이 편의대로 활동했다는 홍성택 씨는 1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편의대의 자세한 활동 내역을 증언했다.
홍 씨는 라디오 청취 중 '저는 부마 항쟁의 편의대였습니다. 경남대학에서 한 달여 머무는 동안 편의대로 학생들에게 접근하여 대화하다가 11월 3일 데모 이야기가 나오면 따라 다니던 형사들에게 말해서 체포해 가고는 했습니다. 10월 26일로 그 일이 끝났지만 지금도 마산분들께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방송에 보내 인터뷰를 자청했다.
홍 씨는 1978년 8월 군 입대 후 특전사에 차출돼 공수 훈련을 받은 정예 병사였다. 부마 항쟁이 일어나자 서울 근교에서 계엄군으로 근무 중이던 그는 부산과 마산으로 차출돼 시위 진압군으로 활동했고 박정희 서거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경남 창원에 위치한 경남대학교에 머물렀다. 홍 씨는 경남대학교에 머무를 때 편의대원으로 차출됐다.
홍 씨는 "그냥 부대에서 '너는 오늘 사복 입고 나가라. 가서 학생들에게 11월 3일에 데모를 어떻게 하는지를 한번 이야기 들어봐라'"는 지시를 받고 형사들과 함께 학생들이 모인 장소를 찾았다고 언급했다.
홍 씨는 이어 "다방에 있었던 몇 명의 학생들에게 가서 저는 서울에서 온 누구누구인데(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인데) 11월 3일 당신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어봤으며 그들의 신원을 확인 후 자신이 형사에게 신호를 해 학생들의 신병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홍 씨는 이 같은 불법적 신병 구속을 세 차례 했다고 증언했다.
홍 씨는 "제가 항상 머릿속에 지금까지도 '편의대'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며 "이런 프락치 역할을 하는 게 편의대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홍 씨와 같은 역할을 한 군인이 상당수 있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도 제시됐다.
홍 씨는 "버스가 와서 학생들을 실을 때 저도 같이 탔는데, 그 안에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며 "저도 그 학생(자신이 신고한 학생)하고 같은 줄 알고 그 안에 있던 군인이 저를 때려가지고 '저는 공수부대 군인'이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이어 "버스가 여기저기 가서 계속 싣고 가는 걸 보면 그 일(편의대 활동)을 저 혼자 했던 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홍 씨는 "부마 항쟁 때 저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몽둥이로 막 후드려치던, 그게 지금도 굉장히 마음 아프다"며 "왜 내가 그 사람들을 때려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후회했다.
이어 "제가 안 때리면 제가 맞으니 무서웠다"며 "당시는 빨리 저 사람들(민주화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 이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설명했다.
홍 씨는 마산 시민에게 사과하기 위해 실명 인터뷰에 나섰다고 전했다.
그는 "편의대라고 하면 다른 어떤 조직이 있는 게 아니라, 편파적으로 보내서 사복 입고 나갔다가 일을 하고 돌아온 거기 때문에 어떤 죄의식도 없"었다며 "나중에 보니 굉장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홍 씨는 이어 "그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그때는 그게 애국하는 일인 줄 알았다"고 전했다.
홍 씨는 5.18 당시 편의대의 존재를 언급한 김용장 전 미군 정보부대 정보관이 용기를 내준 사실에 고마움을 밝혔다.
그는 "김용장 씨는 이 일을 증언하기 위해서 (피지에서) 한국까지 오셨고, 저도 조금이라도 보태야지 해서" 인터뷰를 자청했다고 밝혔다.
홍 씨는 5.18과 부마 항쟁 당시 편의대의 존재를 증언할 용기를 지닌 이가 계속 나와주기를 기대했다.
그는 '군인들 중에 그 무렵에 편의대로 활동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었을 텐데 왜 홍 선생님과 같은 양심선언이 그간 나오지 않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아마 이제는 나오지 않을까 싶다"며 "그간에는 어디서 말할 내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16일에 부산과 마산 등지에서 박정희 유신 독재 체제를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일어난 민주화 시위다. 박정희 정권은 시민 수천 명 규모로 일어난 대규모 항쟁을 무력화하기 위해 육군 특전사 병력을 부산과 마산 등지에 투입했다.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은 시민 100~200만 명을 죽이는 대규모 살상을 감수하고 민주화 시위를 진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편의대의 존재는 5.18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를 폭력 지대로 만들기 위해 가동했다는 김용장 씨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지난 13일 김용장 씨와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신군부가 30~40명가량으로 구성된 편의대를 이용, 광주 시민 학살의 빌미를 만들려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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