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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장·허장환 광주회견…전두환은 왜 광주를 선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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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장·허장환 광주회견…전두환은 왜 광주를 선택했나?

신군부의 철저한 시나리오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카터도 손 들어 줘

5·18 당시 미 정보단 소속 정보요원이었던 김용장 씨와 계엄군의 실질적 지휘소 역할을 한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 근무한 허장환 전 정보요원이 서울 국회 기자회견에 이어 14일 항쟁의 현장인 광주에 와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5·18기념재단 대동홀에서 오후 2시부터 진행된 회견에는 언론인들 뿐만아니라 5·18관련자, 일반 시민 등 300여 명의 청중이 운집해 광주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5·18 당시 미국 정보요원이었던 김용장 씨와 505보안부대 수사관이었던 허장환 씨가 전날 국회 증언에 이어 14일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진실 증언에 나섰다. ⓒ프레시안(박호재)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이철우 기념재단 이사장은 "39년째 5월 그날이 다가서고 있지만 진실규명에 한 걸음도 진척이 없어 5월 영령들 앞에 설 면목이 없었는데, 두 분의 용기 있는 증언 때문에 고개를 들게 됐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용장 씨는 "죄송하고, 미안하다, 광주 얘기 나오면 눈물부터 나온다"며 다소 잠긴 목소리로 말문을 열면서 "사직할 때 기밀 함구 각서를 썼지만 광주의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39년째 함구했던 증언에 나섰다"고 말했다.

김용장 씨는 "지금까지 알려진 5·18의 역사는 잘못 쓰였다"고 강조하며 "광주항쟁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박호재)

김 씨는 "5·18은 정권 찬탈을 위한 신군부 시나리오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다"고 단호하게 규정하며 "대구·부산은 그들 대다수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대전은 수도권과 가깝다는 점에서 배제됐으며, 광주는 작전을 펴기에 도시 규모도 적당하고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내란음모로 엮기 적당한 도시라는 점에서 광주가 선택됐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그런 차원에서 "미 정부에 당시 내가 썼던 보고서들을 원본 기록 그대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김용장 씨는 5·18과 미국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지미 카터가 신군부의 손을 들어주고 지원했다"고 명쾌하게 선을 그었다.

김 씨는 "글라이스틴 대사의 왜곡된 보고서가 국무성 라인을 통해 카터에게 전달됐고, 이에 따라 결국 카터가 군부의 손을 들어줬다"고 말했다.


또 김용장 씨는 '편의대'라는 선무 공작원이 항쟁 기간 동안 광주에서 활동했다는 사실도 증언했다.

김 씨는 "40여 명이 수송기로 광주전투비행장에 와서 격납고에 본부를 차렸다. 당시 자신이 직접 격납고에 가봤는데, 넝마 옷을 걸친 이상한 차림의 두 사람이 격납고 밖에서 환담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이었던 허장환 씨는 "같은 대학 선배이기도 한 피지에 살고있던 김용장 씨를 5·18기념재단 조진태 상임 이사와 함께 직접 찾아가 모셔왔다"고 말하며 "21일 전두환이 광주에 내려와 사살 명령을 내렸다"고 거듭 강조했다.

허장완 씨는 당시 상사가 "사령관이 왔다 갔다. 발포가 있을 것이다. 사복 차림으로 시내에 나갈 일이 많은 수사관들은 조심하라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허 씨는 광주국군통합병원에서 시신 처리를 했다는 증언이 사실임을 거듭 밝혔다.


▲기자회견 중 쉬는 시간을 활용해 기자들과 얘길 나누고있는 허장환 전 505보안대 수사관 ⓒ프레시안(박호재)

허 씨는 자신이 처리 반은 아니었지만 "가매장한 시신을 다시 수습해 통합병원에서 화장했으며, 유골은 광주 인근에 다시 매장했으며, 시신 일부는 해양 투기를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통합병원장의 시신처리는 없었다는 언급에 대해서도 허 씨는 "5·18 후 훈포장이 있었다. 당시 통합병원장이 서열 네 번째인 큰 훈장을 받았다"고 말해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강조했다.

또 허 씨는 "편의대라는 선무 공작이 분명히 있었다"고 김용장 씨의 증언에 힘을 실으면서 "당시 탈취된 APC 장갑차는 군부대에 납품할 예정인 신형 장갑차였다"고 설명한 후 "그 장갑차를 운전할 수 있는 광주시민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유언비어 유포, 무기 탈취 등 일들이 광주 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안사 선무 공작에 의해 자행된 일이다"고 증언했다.

이날 회견은 기자들과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지며 3시간 이상 진행됐으며, 두 사람의 증언을 지켜본 시민들은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5·18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야 한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6일 한국에 온 김용장 씨는 18일 '5·18 39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뒤 피지로 돌아갈 것으로 전해졌으며 허장환 전 505보안대 수사관도 김 씨와 전 일정을 함께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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