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750톤의 폐기물이 발생한다. 이 폐기물은 우리 모두가 사용하고 내놓는 것이지만, 종량제 봉투에 넣을 수도,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할 수도 없는, 달라도 한참 다른 폐기물이다. 해마다 750톤이라니 그리 많지 않다고? 그러나 1그램만으로도 수천 명을 죽일 수 있고 1미터 앞에 17초만 서있어도 누구나 예외 없이 사망에 이르게 되는 폐기물이다. 10만년 이상, 영구적으로 격리 보관해야 하는 폐기물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독성물질로 불린다. 사용후핵연료. 방사능 농도가 높아서 고준위핵폐기물이라 부른다.
한국은 1978년 고리1호기 핵발전소를 가동한 후 40년 이상 핵 발전을 해왔지만, 이 위험한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안은 마련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위험한 폐기물을 안전하게 10만년 이상 봉인할 수 있는 방법과 부지를 찾는 일이 쉬울 리가 없긴 하다.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답이 없는 물질을 대책도 없이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다.
여태까지 38개국 621기의 핵발전소에서 고준위핵폐기물이 발생했지만, 세계 어느 곳도 이 폐기물 처분장을 마련하지 못했다. 한국을 비롯해 핵 발전을 하고 있는 나라들 모두 핵폐기물 처분장을 찾는 일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핀란드만이 유일하게 지하 500미터 심지층 처분장을 짓고 있는 상황이다.
이 위험한 폐기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고된 숙제다. 10만년 이상을 격리·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에 안전한 처분, 적합한 부지, 세대 간 지역 간 형평한 처분이란 말이 문장으로는 가능해도 실제로도 가능한 일일까?
수십 년간 한국 정부는 핵 폐기장 부지를 일방적으로 발표해왔고, 이 과정에서 물망에 올랐던 지역의 극심한 반발과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서 해결하겠다며 나섰지만,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이름뿐인 공론화 얼개였다. 결국 시민 사회의 외면을 받았고, 지역주민들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핵산업계의 이해만을 담은 관리 정책이 만들어졌다. 주요 골자는 핵발전소 부지에 임시저장시설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지역과 시민사회의 의사를 반영한 제대로 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줄기차게 이어졌고, 문재인 정부는 공약대로 기존 핵폐기물 관리 계획의 백지화와 재 공론화를 위한 준비단을 구성, 운영했다. 준비단은 6개월 동안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을 수립할 공론화위원회의 구성과 공론화 범위, 의사결정 방식 등을 의제로 논의를 끌어갔지만, 합의를 도출하기 쉽지 않았다.
공론화준비단 활동이 종료된 지 5개월이 지난 4월 3일, 산업자원부는 공론화위원회를 우리사회 각 부문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문사회, 법률과학, 소통갈등관리, 조사통계 분야의 중립적 인사 15인 이내로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중립적 전문가' 후보군을 구성한 후 원자력발전소 지역과 환경단체, 원자력계 대표 단체에게 제척 기회를 부여해 최종 선임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중립성'의 의미는 '관련 없는' 전문가라는 의미 외에 무엇이며, '관련도 없는' 인적 구성으로 과연 중차대한 문제의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산자부가 공론화위원회를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한 이유는 이해관계자가 포함될 경우, 위원회 활동이 자칫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의 무산이 우려되는 것일까? 그럴 경우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고 포화 시점에 맞춰 증설해야 할 임시저장고 문제를 해결할 시점을 놓치게 되는 것이 우려되는 것일까?
그동안 행보를 보면, 포화할 임시저장고를 서둘러 증설하는 것만이 산자부의 목적이었다. 이 일을 무난히 처리하기 위해 관리정책을 재수립하겠다고 나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이를 보장하는 공론화가 필요할 뿐,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 정책을 어떻게 수립할 지는 애초에 관심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핵발전소 소재 지역과 환경단체의 주요 요구사항이었던 '이해당사자가 포함된 공론화위원회'가 아닌, '이해당사자가 배제된 공론화위원회'로 구성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 마련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는 고준위핵폐기물 처분 원칙이 무엇인지, 중간저장을 할 것인지, 영구처분장을 세울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부지를 선정할 것인지, 이러한 의제들에 참여할 당사자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할 것인지 등을 숙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단지 찬반으로 나눌 문제도, 기술적으로 접근해서 될 문제도, 단기간에 결론지을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때문에 이 복잡한 사안을 9개월이라는 정해진 일정표에 따라 서둘러 끝내려는 것 자체가 애초 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인식의 한계 혹은 우선 일시 봉합(임시저장고 증설)이란 소기의 목표 달성, 딱 그만큼의 의도였다고 밖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임시저장고가 포화해 핵폐기물을 둘 곳이 없다면, 핵 발전을 멈추면 될 일이다.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을 재수립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전 국민적 공론 주제이자 책임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전자 기기의 전원을 켜고 편리하게 전기를 쓸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전기를 쓰는 만큼 핵폐기물을 만들어내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할 필요조차 없었던 대다수의 국민에게 1미터 앞에 17초만 있어도 사망에 이르는 위험한 핵폐기물 문제의 심각성과 관리의 어려움을 알려야 한다. 먼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를 쓰고 있는 누구나 안고가야 하는 문제라는 것, 지금 당장 적당한 장소에 묻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10만년 이상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핵폐기물이라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해법을 함께 찾아나가는 과정으로서의 공론화여야 한다. 여태 쌓아둔 약 1만6500톤의 핵폐기물은 그저 지금까지 뱉어낸 양일 뿐이고, 우리가 핵 발전을 할수록 그 양은 추가로 누적됨을 알려야 한다. 핵폐기물에 대한 성찰 없는 핵 발전과 전력소비 방식을 재고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저 임시 저장고를 늘리려는 '임시' 봉합적 태도여서는 곤란하다. 이 핵폐기물을 과연 어디에 어떻게 들이실 수 있겠느냐고 물어야 하는 문제다. 이 조차 지금 당장 곤란하다면, 핵 발전을 멈추는 것 외에 답이 없다. 이 조차 못하는데 어찌 핵폐기물을 계속 뱉어 내려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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