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대담에서 여야 대표 회담을 제안한 데 대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조건을 달아 역제안을 하고 나섰다. 회동 자체는 필요하지만, 문 대통령이 제안한 의제·방식으로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10일 오전 경북 영천 과수농가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과 여야 대표(간의) 회담은 해야 할 일이고 하겠지만 의제가 합당한 것인가"라며 "대통령을 만나 북한에 식량 나눠주는 문제만 얘기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황 대표는 "국정 전반에 현안이 많다"며 "패스트트랙 등 잘못된 문제 전반에 대해 논의한다면 얼마든지 응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한국방송(KBS) 대담에서 민생·경제 등 현안은 기존의 '여야정 상설협의체'로, 대북 문제는 여야 대표 회담으로 접근하자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 문 대통령은 "민생법안이 많이 있고, 추경 문제도 논의해야 해 여야정 상설 국정협의체를 가동해야 한다"면서도 "패스트트랙 같은 당장 풀기 어려운 문제를 주제로 하기 곤란하다면 식량 지원 문제, 안보 문제에 국한해서 회동을 할 수도 있다"며 "대북 식량지원 합의를 위해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회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황 대표가 이에 대해 '대통령-당 대표 회동' 의제를 대북정책 문제로 국한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면,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통령-5당 원내대표'로 구성된 기존의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비교섭단체인 민주평화당·정의당을 뺄 것을 요구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제가 수 차례에 걸쳐 제1야당을 제1야당으로 인정하는 여야정협의체를 요구했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말하는 협의체는 한국당을 들러리로 세우는 5당 협의체이고 '범여권협의체'"라며 "소통했다고 변명하기 위한 구색 갖추기, 생색내기용 여야정협의체는 안 된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말한 "진정한 여야정협의체"의 의미에 대해 "여당과 청와대가 제안한 것은 6석 정당(정의당)과 114석 야당(한국당)을 똑같이 인정하는 구색 맞추기용"이라며 "교섭단체 정당들로 이뤄진 '3당 여야정협의체'를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은 문 대통령의 제안에 대체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대통령이 모처럼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했는데 일단 환영할 일"이라며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빠질수록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다. 대통령이 나서서 대북 식량지원과 안보 문제에 대해 국민 의견을 모으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점에서 환영"이라고 했다. 손 대표는 "대북 식량지원 문제뿐 아니라 산적해 있는 국정과제를 여야가 한자리에서 흉금을 털어놓고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다른 정당, 특히 한국당도 국정 논의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덧붙였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도 "늦었지만 당연한 수순"이라며 "지난 10개월 넘게 야당 대표와의 소통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원내대표 청와대 회동은 두어 차례 있었지만 소통이라 말할 수 없다. 즉각 여야 대표, 지도자 간 소통과 회동을 촉구한다"고 했다. 다만 정 대표 역시 황교안 대표와 마찬가지로 "의제를 대북 식량(지원) 문제, 남북문제로 한정한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북미 대화도 무슨 의제를 한정해 두고 만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당연히 현안과 관련해서 민생 문제, 선거제 개혁 등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비판적으로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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