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사법제도 개혁 '패스트트랙'에 반발해 강경 장외 투쟁을 펼치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이번에는 전국을 도보·대중교통으로 돌아보는 '국토대장정' 형식의 투쟁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길게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당 대표가 전국을 돌며 반정부 투쟁을 벌이는 만큼, 한국당은 최소한 5월 중에는 여당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지도부는 지난주 KTX를 타고 서울·대전·대구·부산(2일), 광주·전주(3일)에서 잇달아 집회를 여는 '경부선 투쟁', '호남선 투쟁'을 한 데 이어, 오는 7일부터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면서 전국 각지의 기업체, 마을회관, 시장 등을 돌아보며 반(反)정부 민심을 부추기고 모아나가는 형식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황 대표는 지난 5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에게 이 정부의 총체적 실정을 알리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민생투쟁 대장정'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황 대표는 "기본 콘셉트는 국토의 남단에서 중앙까지 훑으면서 국민들의 말씀을 듣고 소통하는 투어(tour)"라며 "시골 숙소에서 같이 잠을 자며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대학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큰 집회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 안팎에서 들리는 얘기를 종합하면, 이 '대장정'에는 대략 한 달 안팎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20여 일'이라는 말도 있고, 1개월 예정이라는 말, 최장 2달까지 갈 수도 있다는 말도 있다. 어느 쪽이든, 최소한 5월말까지는 강경 투쟁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오는 7일 4월 임시국회 회기가 종료된 이후 한동안 국회는 공회전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한국당의 강경 투쟁 노선, 특히 황 대표의 장기 프로젝트성 행보를 놓고 내년 총선 전략, 나아가 대권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이 무성하다. 현역의원이 아닌 황 대표가 원내에 있는 타 정당 지도부 대신 일반 유권자들과의 접촉면을 늘리면서 존재감을 재확인하고 당내 영향력을 확장해가는 수순이라는 풀이다. '대장정' 출발지를 부산으로 잡은 것도, 부산·울산·경남(PK) 지역이 내년 총선 승패를 가를 전략 요충지로 꼽히는 사정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행보가 총선·대선에 미칠 영향을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응도 나왔다. 정치 원로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날 한국방송(KBS)·불교방송(BBS) 인터뷰에 나와 "우선 당 내를 정비하는 게 가장 시급하고 그 과정에서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게 긴급한 과제다. 지금 강경 투쟁을 하는 것은 그런 효과가 있다"면서도 "그런데 흩어졌던 고정 지지층을 흡수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선거를 못 이긴다. 외연 확장을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지금의 모습 가지고는 그게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전 장관은 "짐작컨대 아직 선거가 1년쯤 남았으니까 이렇게 강경 투쟁을 해서 당을 정비하고 지지층을 결속시킨 다음에는 아마도 다른 모습을 보일 시기가 오지 않겠느냐 기대한다"고 덕담조로 말했다.
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에 출연해 "이념적이고 진영논리에 너무 빠지게 되면 중도층들이 돌아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고 총선 전략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야당은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와야 하는데(효과적인데) 지금 한국당 전략은 '나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는' 전략"이라며 "불필요하게 과도한 힘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제가 캠페인 컨설턴트로서 한국당 (총선) 전략을 맡고 있다면 1번은 민주당·대통령에 대한 반대를 강화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이고, 2번은 한국당에 대한 반대를 약화시키는 것, '한국당이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걸 잘못했습니다'. '그래도 경제나 외교안보 문제는 그래도 우리가 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필해서 중도층의 반대 명분을 떨어뜨리는 것, 3번은 문 대통령 지지를 약화시키는 것, 중도진보층이 (대통령을) 지지할 수 있는 명분을 뺏는 것"이라며 "제일 마지막에 배치할 게 한국당에 대한 지지 강화일 것이다. 굳이 이건 안 해도 되는데 이걸 1번으로 놓고 있는 게 전략적으로 오류인 것 같다"고 평론했다.
박 대표는 또 "황 대표 본인으로 봐서도 이런 장외투쟁을 이끌 때의 위험, 보수적 색채가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동전의 양면이어서 득만 있는 게 아니라 실도 있다"며 "옛날 박근혜 대표가 사학법 투쟁을 이끌 때 굉장히 강경하게 이끌었고 그것 때문에 보수 지지층의 마음을 얻었지만 '보수 대표주자'가 된다는 건 중도층에게는 약간 거리감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은 이명박 후보한테 경선에서 지지 않았느냐. 나중에 대통령 선거 경선을 생각해보면 확장성에도 제약을 상당히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 전 장관이나 박 대표는 모두 한국당의 강경 투쟁 노선이 최소 한 달은 갈 거라고 전망했다. "일단 야당이 저렇게 장외에서 극한 투쟁을 시작하면 금방 멈추기가 어렵다. 관성이 있다. 황 대표가 대장정을 한다는데 그러면 아무리 빨리 한다 하더라도 5월 한 달은 가는 거 아니냐"(윤여준)는 것이다. 박 대표도 "바로 돌아오긴 어려울 것이다. 지지층들을 의식한 행보이기도 하고, 5월에 5.18도 곧 돌아오고 5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여서 양 진영이 마주앉아 원내에서 뭘 하기가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적어도 5월 중에는 돌아오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한국당이 계획하고 있는 장외 집회 계획을 봐도 한 달은 최소한 할 것 같다. 그래서 5월은 넘기고 그러면 6월엔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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