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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간부 사퇴? 학부모들이 '소 닭 보듯'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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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간부 사퇴? 학부모들이 '소 닭 보듯' 하는 이유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청렴도 최하위' 서울시교육청

서울시교육청 고위직 간부 17명이 총사퇴했다. 그동안 '팔은 안으로 굽는다'며 온정주의로 서로를 감싸던 교육계 비리가 교육 자치 선거를 앞두고 터져 나온 것이다. 장학사들도 교직을 매매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비리 신고자에게 1억 원을 포상한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교원들 80퍼센트 이상이 인사 비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오래전엔 교육계에서 '감 오백, 장 천'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교감이 되려면 500만 원, 교장이 되려면 '통행세' 1000만 원의 뇌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울시교육청은 급식업자들과의 유착 혐의 등, 잇따라 비리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교육 일선에서 촌지를 부패로 인식하지 않거나 교육 재정 취약을 이유로 각종 찬조금을 걷고, 동료 감싸기 같은 온정주의, 내부 고발자가 '배신자' 취급을 받는 등 '부패에 대한 관대함'이 되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학부모들은 이번에 서울시교육청 간부들이 총사퇴 한다고 해도 소가 닭 보듯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뭐가 달라지려나?

▲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잇따른 비리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시교육청 브리핑룸에서 '2010 서울시교육청 반부패, 청렴 종합 대책'을 발표하는 정동식 과장. ⓒ뉴시스

3월 새 학년을 앞두고 일선 학교에서는 예·결산 작업이 한창이다. 얼마 전 학교운영위원회에 다녀왔다. 주요 안건은 2010년 예산안 심의이다. 100억 원 남짓의 예산을 심의하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학생 수 1500여 명의 학교의 경우, 1년 예산은 100억 원 남짓이다. 그중 55억 원이 인건비다.

인건비를 제외한 나머지 1년 예산이 대략 50억 원인데, 그중 8~9억 원이 수익자 부담금인 급식비, 4~5억 원 정도가 학교 운영비, 그밖에 8000만 원 정도가 교문 공사·방송실 공사 등 공사비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공사의 대부분은 급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행정실과 교장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이루어질 때가 많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있다고는 하나, 어떤 사업부터 할 것인지 체계적으로 논의하지 않는다.

1500명의 학생이 있는 학교에 도서 구입비는 총 예산 100억 원 중 700만 원 수준이라, 이를 증액하는 선에서 심의를 마쳤다. 내가 속한 학교는 비교적 학교 투명성이 강화된 학교이고, 교사들이나 학부모의 의식이 높은 편이라서 그나마 소통하면서 예산 심의를 마쳤지만, 일부 학교는 학부모들이 입도 한번 뻥끗 못하고 심의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선 학교의 예·결산 안건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 사항'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추인 형식'인 것이다.

이밖에도 학교에서 돈에 관한 일은 많아, 교장 선생님의 도덕성과 리더십 여하에 따라 교육 비리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불법 찬조금도 그중 하나이다. 아이가 학급 임원이 되면, 그 아이의 엄마가 자동으로 학급 학부모회 임원이 된다. 우선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임원 엄마들은 학교 찬조금에 대한 주문을 받는다. 보통은 10만 원에서, 많게는 그 이상이다. 학부모회는 현재 임의 단체이기 때문에, 돈을 일괄적으로 일정 금액을 걷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알음알음으로 전화를 해서 온라인으로 돈을 걷고, 대부분 당연하다는 듯이 찬조금을 낸다.

개인 소신에 따라 찬조금을 납부를 거부한다면, 감수해야 할 것이 많다. 우선 '왕따'가 될 각오를 해야 하고, 아이 때문에라도 불법 찬조금을 외면하기 힘들다. 교사들이 365일 야간 자율학습지도를 해 일종의 촌지가 일반화돼있고, 여름에 삼복더위를 참고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에어컨을 설치했는데 전기료는 모자란다고 하니, 학부모들이 외면 할 수 없는 현실 탓이다.

불법 찬조금을 주고받는 것. 바로 교육 비리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는 순간들이다. 불법 찬조금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교육 재정에 인색한 정부 탓이라 할 수 있지만, 교장선생님들 역시 부족한 교육 예산을 학부모에게 의존하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불법 찬조금을 뿌리 뽑기 위해 '학교 발전 기부금제'를 시행했지만, 잡음이 많아 존폐 위기에 처해있다. 학교 운영의 민주화와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치긴 하지만, 구조적으로 미흡할 수밖에 없다.

운영위원 선출도 무관심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학부모들 역시 이 제도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는 실정이니, 활성화도 어려워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인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권력이 특정인에게 쏠려 있으면 비리는 언제든 가능한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나 인사위원회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는다면, 인사 공정성·학내 민주화·투명성은 높아지기 어렵다.

교육계에서는 학교 공사를 많이 벌이는 이들을 지칭해 이른바 '대교장'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인맥이 좋아 공사비도 잘 따오고, 그 결과 공사를 할 때마다 시공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다. 때로는 인사 비리도 주도한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필요한 시설보다는, 리베이트가 많은 교문·방송실·조회대 공사 등 각종 시설 공사를 즐긴다.

교원 비리에 솜방망이 처벌도 예사다. 학생을 성추행한 교사가 해임되기는커녕, 옆 학교로 전근시키면 그만이다. 내부 고발자가 있어도 교장은 학부모회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고발한 사람을 왕따로 몰면 그만이다. 교육부,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해도, 막상 감사를 하는 곳은 교장과 '형님, 아우'하던 '절친' 사이들이니 감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절친'이 아닐 때는 무마용 뇌물이 오고가 결국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사학 비리도 끊이질 않는다. 이는 교육계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현행 사립학교법 탓이 크다. 사학 재단 이사장이 학교 돈을 횡령해 학생들 교육에 필요한 교육 종자돈을 훔쳤는데도, 다시 학교로 복귀할 수 있는 법이 현행 사립학교법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나라당을 비롯한 박근혜 씨가 지지자를 묶어 내며 전국을 돌면서 개정 사학법을 재개정했다. 사학의 주인은 학내 구성원이 아니라 설립자라는 주장이다. 재단 이사장의 횡령이 발각되고, 학교가 들끓다 못해 학생들과 여교사가 눈물을 흘리며 삭발을 해도, 횡령한 돈을 제자리에만 돌려놓으면 다시 이사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법이다.

지금도 상지대 설립자 김문기 씨가 학교 돈을 횡령한 후 이를 보전했다며 학교를 돌려달라고 해 학내 진통을 앓고 있다. 덕성여대, 세종대, 조선대 등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생선 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겨달라는 격이다. 교육계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사학 건전성을 높이 것이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을 비롯해 몇몇 교육감을 낙마시킨 교육감 선거 비리, 촌지, 위탁 급식 및 학교 공사 비리 등, 고질적 비리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들은 비리의 온상인 위탁 급식을 하지 못해 지금도 안달이다. 며칠 전에는 6월 교육감 선거에서 특정인을 교육감으로 만들기 위해 앞장 선 교육 공무원이 해임되었다고 한다. 교육계 줄서기의 대표적인 사례다.

앞으로 교육 자치 선거 레이스가 시작되면 줄 서기를 포함해 교육계 부조리가 다양하게 펼쳐질 것이다. 800여만 명의 직선제 투표 결과에 따라, 공립학교 교직원의 인사권, 6조 원에 이르는 교육 예산들이 배분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늘 하위권이다. 지난번 서울시교육청은 공공 기관 청렴도 순위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복마전이라고도 불린다. 역대 정부는 교육 비리를 척결하고자 수차례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몇 년 전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 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합쳐 '교육 투명성 협약'을 맺었으나, 이 또한 실효성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전국 만여 개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육 비리를 막으려면, 투명성을 담보할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시스템이란 교육감, 교육장, 교장 등 특정인에게 권력이 쏠려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를 갖추는 것을 말한다. 교수평의회, 학부모회를 정례화하고 법적 근거를 만들어 '설립자의 자율'이 아닌 '구성원의 자율 체제'로 가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학부모회 법제화보다는 100억 원의 예산으로 학부모회에 500~700만 원씩 돈을 지원해 자원 봉사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책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교육 비리는 관련법이 없어서 발생한 것도, 아니고 월급이 적아서 발생한 것도 아니다. 또 학부모들이 자원 봉사를 안 해서 교육 비리가 발생한 것 역시 아니다.

권력 분점의 시스템, 구성원의 자율성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고 '감 오백, 장 천'이라는 관행만이 학교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 지원이 교육 비리 척결과 학부모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정부가 기왕에 손을 대었으니, 교육 비리가 다시는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실질적인 교육 개혁에 앞장 설 것을 주문한다. 교육계 비리 척결은 '돈 안 드는 교육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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