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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과 부시간 '거래'를 보고

<긴급 투고>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명분도 실익도 없어

***이라크 전쟁 지원-북핵 문제 주고받기?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명분도 실익도 없어**

13일 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거래'를 했다. 두 대통령은 전화통화를 통해 노 대통령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지지해주고, 부시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는 아무리 국제사회가 '정의'보다는 '힘'이, '대의명분'보다는 '실리'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거래'이다. 남의 불행을 통해 나의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발상 자체부터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번 통화를 '거래'라고 규정한 가장 큰 이유는 잘 알려진 것처럼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자체가 '더러운 전쟁'이기 때문이다. "사악한 지도자가 대량살상무기를 갖게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명분으로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진정한 의도는 중동의 석유 패권 장악과 자신의 강력한 정치적 기반인 군산복합체의 살찌우기에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더구나 '미국의 시녀'라는 혹평을 받아온 유엔조차도 이라크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사찰 및 해체 작업에 협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부시 행정부의 석유 패권 장악도, 대선 때 막대한 정치자금을 지원해준 군수산업체에 대한 답례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수십만명의 사망자와 수백만명의 난민 발생이라는 '인도적 대참사'를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기 가장 끔찍한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의 정부가 전쟁의 참혹함을 외면하고 더러운 전쟁의 부역자로 나서겠다고 천명하고서도,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인류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극히 의구심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성급한 이라크 전쟁 지지 및 지원 방침 발표가 더욱 큰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는 것은,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희망에 재를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 유례 없는 세계적인 반전운동, 미국의 막가파식 패권주의를 막겠다는 다수 국가들의 반제국주의 연대, 9.11 테러의 충격에서 점차 벗어나 전쟁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미국 등의 모습은 불가피해 보였던 이라크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이러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반전 의지에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망정, 전쟁을 돕겠다고 나선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존엄성과 자긍심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과 다름없다.

***자화자찬하지 마라**

청와대와 대다수 언론은 이번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거래'를 이라크 전쟁 지원이라는 대가를 통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 확인이라는 성과를 얻어 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도덕적인 문제는 뒤로하더라도, 이번 거래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명분의 희생을 대가로 얻을 실익도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님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및 국제테러방지를 위한 지도력을 항상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이를 지지한다"며 "한국정부는 한미동맹을 존중한다는 정신 하에 이라크 문제에 대해 미국과 협력해 나갈 것이다"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말했다.

자, 부시 행정부에 의해 세계 최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국가로 지목된 국가가 북한인가, 이라크인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는 국가가 북한인가, 이라크인가? 미국이 지정한 테러지원국에서 북한이 제외될 조짐이라고 보이는가? 부시 대통령이 언제는 '평화적 해결'을 말하지 않았던가?

부시 행정부가 원하는 것은 자명하다. 이라크 침공은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고, 북한 핵문제는 가급적 시간을 끌면서 '이라크 이후'에 북한을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부시 행정부의 바람일 뿐이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면 북한 핵문제도 악화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이라크 다음에는 자신이 될 것"이라는 강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면 뒤이어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에 나설 것이다. 더구나 4월10일부터는 북한의 NPT 탈퇴가 국제적으로도 효력이 발생한다. 협상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보장을 받아내는 것을 실패한다면, 북한은 이미 스스로도 밝혔듯이 핵무기라는 대미 억제력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가면, 한반도 운명은 그야말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전화통화에서 "미국의 정책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 가능성에 대해 일부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나, 미국의 정책기조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확인해줘 감사한다"고 화답했고,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전쟁을 언급하는 데 대한 강한 부정"이라며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으냐"며 배경 설명을 했다.

그러나 보라. 이미 미국은 공중 급유나 중간 기착없이 북한을 바로 폭격할 수 있는 B-1, B-52 폭격기 24대를 괌에 배치했다. 걸프 지역으로 향한 키티호크 항모를 대체한다며, 이보다 훨씬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칼 빈슨호도 어제(14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93년 팀스피리트 훈련이후 최초로 스텔스 전폭기인 F-117 나이트호크 6대는 이번주 토요일에 군산에 도착할 예정이다. 현존 최강의 전투기인 F-15E 20여대도 곧 한반도에 배치될 예정이다. 북한 전역에 대한 정찰 활동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 등 지하요새가 발달한 국가들을 잡겠다며, 지하시설 파괴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부시 행정부가 말하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특히 히틀러식의 예방전쟁 개념을 도입한 부시 행정부에게 있어서, 전쟁은 평화의 반대말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도 기어코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도, 북한을 세계 최대의 대량살상위협 국가로 지목하면서 '선제공격'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부시의 화법으로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핵시설을 공격하는 것을 '침공'이 아닌 '자위적 군사행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말까지도 나오고 있다는 것을 정녕 노무현 정부는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부시 행정부가 한국 등의 지원에 힘입어 이라크 전쟁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서, 대량살상무기 위협 제거 및 확산 방지를 위해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추진할 경우, 이라크 전쟁을 지원했던 노무현 정부는 어떤 명분과 논리로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려고 하는가?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된 상태에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할 때, 명분과 도덕성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한국의 지원이 갖는 근본적인 위험성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갖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 우리가, 이라크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염원하는 인류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쟁을 지원할 경우, 평화적 해결을 위한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될 수 있는 명분과 논리를 상실한다는 것을 노무현 정부는 정녕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한미동맹은 근본적으로 한반도 및 국제사회 안정과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미국의 명분 없는 더러운 전쟁에 병력과 돈을 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동맹이 갈수록 미국의 패권주의 추구의 도구로 활용된다면, 이는 정작 중요한 우리 국민들로부터의 외면을 당할 것이고, 이에 따라 한미동맹의 미래는 더욱 불안해질 것임을 한국과 미국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동맹논리의 늪에 계속 빠져들 경우 한국은 끊임없이 벌이겠다는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의 부역자로, 미사일방어체제(MD)의 최전방 기지로 전락하는 등 미국 패권주의의 도구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전쟁 지원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간절히 바란다. 많은 국민들이 전쟁을 반대한다며 거리로 나오고 있고,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인간방패'가 되어서라도 이라크 전쟁을 막겠다며 바그다드로 향하고 있다. 전투병이든 비전투병이든 한국군이 파병되면, 한국의 군인들과 평화운동가들이 조우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반전'과 '참전'이라는 '상이한 목적'을 갖고 있지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동의 운명'을 갖고 이역만리 이라크 땅에서 마주칠 이들의 지독한 역설은 비단 이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물론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이 시대의 숙제이자, 정부가 마땅히 미국에게 참전 약속을 하기 전에 국민들의 의사를 물었어야 할 소이이다. '참여정부'와 '토론공화국'을 자처하고 나선 노무현 정부가 이번에는 부시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하기를 기대해본다. 국민 여론을 묻고 참전 문제를 다시 알려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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