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신문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한국 정부가 전투병까지 파견해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전하는 기사를 11일자 1면으로 보도, 파문을 빚고 있다.
매경은 특히 이같은 주장을 펴면서 전투병 파병론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주장을 펴 반전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낳고 있다.
<사진: 매경 스캔 받은 것>
***'정부 일각'은 누구인가**
매경 기사의 제목은 '전투병 파병도 적극 검토해야'다. 인터뷰한 사람의 말을 직접 기사 제목으로 뽑을 때는 큰 따옴표(" ")를 붙여주는 것이 기사작성의 통례인데, 이번 기사는 이같은 상식조차 지키지 않았다.
매경은 이날 기사에서 "미국의 지원 요청은 한국 정부에 대한 '테스트'의 성격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소간의 '손실'이 있더라도 한미간의 관계 회복을 위해 '차제에 화끈하게 밀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보도했다.
매경은 또 "비록 중동에서 다소간에 국익손실이 있다 하더라도 한미동맹을 이번 기회에 공고히 과시하고 이를 통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국익의 상위개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문제의 매경 기사에서도 어디서도 전문가들이 '전투병 파병'을 주장한 전문가들을 찾아볼 수 없다. 매경이 실명으로 인용한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한미공조'와 '적극적 지원'을 강조했을 뿐이다.
매경과 인터뷰한 것으로 되어있는 이근 서울대 교수는 "한미공조를 공고히 하는 기회다"고 말했으며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도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밝혀야 한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이 기사에서 인용한 전문가들의 말 중에서 전투병 파병을 언급한 것은 "전투병 파병 등은 부시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단 한구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같은 말조차도'정부 관계자'가 한 것이라고 모호하게 넘어가고 있다. 이 기사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주장한 사람들은 김정원 석좌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부 일각' '정부 관계자' '다른 관계자'였다.
매경은 정부의 지원방안에 대한 사실관계(팩트)도 모호하게 전하고 있다.
이 기사는 미국이 "우리 정부에 '전투병 파병'을 비롯한 포괄적인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그러나 이 기사의 중반부에도 나와 있듯,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이 우리 정부에 대해 지지 의사 표명, 의료, 난민 처리 등 지원을 요청했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난 10일 보고한 것이 미국 요청 내용의 전부다. 어디에도 '전투병 파병'요청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경은 '전해졌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사실관계를 흐리고 있는 것이다.
***"국익에 도움되면 전문가 핑계 대지 말고 당당히 말해라"**
매경의 이같은 보도 태도에 대해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매경측 생각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며 "그토록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전문가 운운하지 말고 매경의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얘기해라"고 주문했다.
정 대표는 "영국처럼 우리도 파병해서 경제적 전리품이라도 챙겨야겠다는 매경의 생각을 전문가의 얘기라며 돌려 말하고 있다"며 매경의 '경제 식민주의적 접근 태도'를 비판했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전쟁반대평화실현공동실천의 김광일씨도 "매경등 보수 언론들이 말하는 파병으로 얻게 된다는 국익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냐"고 되물으며 "파병이 국익에 도움된다는 말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강력 비판했다.
참여연대도 11일 이라크전쟁에 관한 정부지원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내 "명분없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원한다는 것은 유럽의 전쟁 반대 국가들과 중동 및 이슬람권 국가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국익 손상이 예상될 수 있는 것"이라며 '국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매경의 주장을 일축했다.
매경의 이번 보도는 과도한 미국의존적 사대주의 관념과, 최근 전세계적으로 진행중인 미국 일방주의적 질서에 대한 저항 및 재편 흐름을 도외시한 우물안 개구리식 관념의 복합물로 앞으로 두고두고 논란을 낳을 것으로 전망돼 귀추가 주목된다.
다음은 11일자 매경 기사 전문이다.
***전투병 파병도 적극 검토해야/매일경제, 11일자**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우리 정부에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같은 요청은 한국이 미국의 `진짜 동맹`인지를 테스트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선택은 물론 한국의 몫이다.
그러나 북핵위기를 맞이해 한국이 미국과 같은 배를 타는것을 국익으로 판단한다면 차제에 화끈하게 미국을 밀어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비록 중동에서 다소간에 국익손실이 있다 하더라도 한미동맹을 이번 기회에 공고히 과시하고 이를 통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국익의 상위개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투병 파병`과 같은 전면적 협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이 주도하는 대테러전을 한국이 확실히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10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미국이 우리 정부에 대해 지지 의사 표명, 의료, 난민 처리 등 지원을 요청했다는 보고를 했다"고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같은 미국의 요청에 대해 한미동맹관계 등에 비춰 미국에 대한 지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대미전문가들과 정부내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동맹이 첫 시험대에 올랐다"며 "북한 핵문제 등은 한미공조를 통해 풀어야 하기 때문에 한미공조를 공고히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도 "올해가 한미동맹 50주년이다. 미국이 어려울 때 한국이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며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일각에선 `전투병 파병` 등으로 한미간 동맹을 공고하게 다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워싱턴에 확산되고 있는 반한 분위기를 친한 분위기로 전환시켜야 한다"며 "전투병 파병 등은 부시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우리 정부에 `전투병 파병`을 비롯한 포괄적인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 특사단이 성과없이 돌아와 대미채널의 복원이 시급하다"며 "미국이 포괄적 지원을 요청한 만큼 파격적인 조치로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전투 병력을 파견 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91년 걸프전 때와 비슷한 수준에서 의료.수송지원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날 "우리는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미국을 지지한다는 방침"이라며 "그러나 전투요원은 파견하지 않을 계획이며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원단 파견시기와 관련해 "전쟁이 발 발하면 곧바로 지원에 나설 계획이지만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기를 못 박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내외에 확산되고 있는 반전 여론에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있다. 섣부르게 미국 지지를 자처하면 곧바로 이슬람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는 점도 정부의 선택 폭 을 좁히고 있다. 특히 전투병 파병은 `우리 젊은이들이 피를 흐릴 수 있다`는 점에 서 국회의 동의가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되고 있다. <이동주 기자 / 윤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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