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김진표 경제팀의 법인세 인하 정책을 수용했다. 노대통령은 그러나 새 경제팀이 마련한 환경 및 수도권 규제 해제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김진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보고한 '최근 경제동향과 정책방향'과 관련,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 대선때 입장 바꿔 법인세 인하에 찬성**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김 부총리의 보고를 받고 재정 조기집행과 무리한 경기부양책 자제,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세제정비, 지역균형발전특별법(국회 계류중)의 보완과 조기입법 추진, 시장친화적 틀 마련, 일관성있는 개혁추진 등을 담은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잘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때의 법인세 인하 반대 입장을 공식철회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이회창 후보가 재계가 요구한 법인세 인하 방침에 찬성한 반면, “법인세를 2% 인하할 경우 1조5천억원의 세수가 줄어드는데 그중 1조2천억원의 감면혜택은 대기업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3천억원만 소기업이 혜택을 받게 된다”면서 법인세 인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실제로 2001년 진념 당시 경제팀이 경기부양을 명목으로 국회에서 법인세를 1% 인하한 결과, 총 7천5백억원 세수감소분중 5천5백억원이 상위 0.3%의 대기업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4일 김 부총리의 법인세 인하 방침을 승인함으로써 재경부는 본격적으로 법인세 인하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총리는 이와 관련, 이날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동남아 등 경쟁국들이 법인세를 낮추고 있는 추세"라며 "경쟁국보다 좋은 여건에서 기업하도록 해 줘야 한다"고 법인세 인하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그는 "각종 세금의 감면.축소와 자영업자 과세 양성화 등을 통한 세수확대폭을 미리 계산한 뒤 5년동안 인하수준을 미리 알려주는 게 좋다"며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경부는 현재 27%인 법인세를 싱가포르 수준인 22%로 낮춘다는 목표아래 해마다 1%포인트씩 법인세를 낮출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환경-수도권 토지규제 해제에는 반대**
노 대통령은 그러나 김진표 부총리가 보고한 몇몇 규제 완화 방침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김 부총리의 보고를 받고 즉석에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보고 내용 중 일부를 수정하도록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자유로운 경제활동, 기업하기 좋은 나라 등 3가지가 정책기조"라며 "경기가 좋지 않다고 단기처방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런 기조 아래서 이번 연말 정기국회 때까지 예산안과 각종 법안을 종합적으로 준비해 전문가들이 이것을 보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환경 및 수도권 규제를 정비한다는 김 부총리의 보고에 대해 "경기부양을 위해 규제를 푼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고, 수도권 규제완화는 지방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이므로 국토의 종합.균형발전이라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문구의 수정을 지시했다.
재경부는 그러나 이같은 노 대통령 지시가 단순한 문구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동안 마련한 환경 및 수도권 토지관련 규제 해제 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재경부는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자동차업계가 요구해온 경유 승용차의 조기 허용, 골프관광에 따른 여행수지를 줄인다는 명분아래 수도권에서의 퍼블릭 골프장 건설 대폭 허용 등을 추진해왔었다. 이같은 재경부 방침에 대해 환경단체 등은 "환경문제를 도외시한 친재벌적 정책"이라는 비판을 해왔었다.
이러던 차에 노 대통령이 이날 재경부의 환경 및 수도권 토지관련 규제 해제에 제동을 걸었고, 그 결과 이들 정책은 당분간 재추진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제시민단체들 반발**
이같은 노 대통령의 방침에 대해 환경-수도권 토지규제 해제 정책의 제동에는 찬성하는 의견이 많으나, 법인세 인하에는 반대의견이 적잖아 앞으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우선 경제시민단체들의 반대가 크다.
참여연대는 3일 납세자의 날을 맞아 '2003년 세제,세정 개혁과제'를 발표하며 김진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밝힌 감세 추진 정책과 관련, "현재 재경부를 중심으로 감세정책 실시와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다"며 "그러나 감세는 대선 당시 재정부담을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도 반대한 사항"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었다.
참여연대는 성명에서 "우리는 제반 여건이 가능할 경우 조세부담을 낮추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과세 기반 확충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계산, 정책대안 없이 감세만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또 "더욱이 조세개혁이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고 그 어떤 성과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지금 감세를 언급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새 경제팀이 추진하고자 하는 감세정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재경부도 며칠 전까지는 법인세 인하 반대**
이와 별개로 재경부도 자기모순에 빠져들었다. 지난번 대선때까지만 해도 재경부 역시 법인세 인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전윤철 당시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7월26일 노무현 대통령후보도 참석했던 전경련 최고경영자 서머포럼에서 한나라당과 전경련의 법인세 인하 요구에 대해 "한국의 법인세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평균치보다 낮다"며 "더욱이 재정문제를 감안할 때 경제계의 법인세 인하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후 이같은 입장을 계속 고수해왔었다.
재경부 관할하에 있는 국책연구원인 조세연구원도 지난해 8월23일 '법인세 논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보고서에서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감세보다는 재정지출 확대가 바람직하며, 감세를 정책수단으로 채택할 경우에도 법인세율보다는 소비세율을 인하하거나 투자에 대한 조세지원이 훨씬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처럼 법인세 인하에 적극 반대하던 재경부가 경제부총리 교체후 입장을 1백80도 바꾼 대목은 앞으로 두고두고 재경부의 법인세 인하 주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법인세 인하에 대한 국제경제기구의 부정적 시선도 앞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 예로 OECD는 지난달 20일 발표한 <2003년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으로 재정지출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법인세, 소득세, 부가세의 특례 면제를 줄여 세수를 확대할 것"을 촉구했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이번 법인세 인하 허용은 재계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노 대통령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킬 공산이 큰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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