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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학생이 두산 직원입니까?"

[현장] 대기업 대학 인수 후 편집권 '몸살' 앓는 대학 언론

2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 본관 앞. 때 아닌 곡소리가 교정에 울려 퍼졌다. 검은색 천을 씌운 관과 분향소가 등장하자, '언론 자유'라고 쓰인 영정 앞에 학생들이 차례로 헌화를 시작했다. 이날 이 학교 학생 50여 명이 "2010년, 대학 언론은 사망했다"며 '대학 언론 장례식'을 연 것.

대학 구조 조정으로 학생·교수·학교본부 간 몸살을 앓고 있는 중앙대가 시끄럽다.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고, 박용성 회장이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부터 '대학의 기업화'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엔 '언론 자유'와 '학생 자치권'이 화두다. 연초 대학가 최대 행사인 '새내기 새로 배움터(신입생 오리엔테이션·새터)'가 학교의 일방적인 통보로 사실상 폐지됐고, 이 학교 교지인 <중앙문화>·<녹지> 역시 폐간 위기에 놓인 것.

▲ 중앙대 학생들이 교지 <중앙문화>, <녹지>에 대한 학교의 예산 전액 삭감 방침에 항의하며 '대학 언론 장례식'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배포 중지 소동 빚은 '재단 비판' 기사

사건은 지난해 11월 25일 시작됐다. 이날 발간된 <중앙문화> 58호에는 '기업은 대학을 어떻게 '접수'했나'라는 제호의 기사가 실렸다. 대학 구조 조정안과 관련해 이 대학 박범훈 총장을 풍자한 만화도 함께 실렸다.

그러나 교지가 교내에 배포된 지 3시간 만에, 학교 본부가 교지를 전량 회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기사와 만화 내용 중에 문제가 있으니, 총장에게 허락을 받은 뒤 배포하라"는 이유였다. "일단 본관에 배포한 교지라도 치워 달라"는 이 학교 언론매체부장 장영준 교수(영문학)의 말에 학생들이 본관으로 달려가 보니, 이미 배포된 교지가 전량 회수돼 트럭에 실려 있었다.

장영준 언론매체부장은 "교지 발행인인 총장을 조롱하는 기사를 싣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며 "총장님께 먼저 보여드린 후 배포하자는 제안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학생들은 즉각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중앙문화>는 그간 '대학의 기업화'와 관련, 학내 구성원의 의견 수렴 없이 진행되는 중앙대 구조 조정을 끈질기게 비판해 왔다.

▲ 2일 '대학 언론 장례식'을 연 중앙대학교 학생들. ⓒ프레시안(선명수)

대학도 정부처럼? 학교 비판 언론에 '예산 옥죄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엔 '예산'이었다. 지난달 13일, 박범훈 총장은 "2010년 예산 중 교지편집위원회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는 입장을 언론매체부장을 통해 <중앙문화>와 여성주의 교지 <녹지>에 전달했다.

이는 사실상 폐간 조치와 다를 바 없었다. <중앙문화>와 <녹지>는 1년에 3500만 원 남짓의 예산을 교비로 지원받아 인쇄비 등으로 사용해 왔다. 이 예산이 없다면 당장 발간이 어려운 상태다.

이에 학내 6개 언론사들이 '학내 언론 탄압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공동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학교 측은 20일 이메일을 통해 '교지 대금 자율 납부 시행'을 전교생에게 공지했다. 더 이상 학교가 예산 지원을 하지 않지만, 여전히 교지편집위원회를 대학 본부 산하 '언론매체부' 소속으로 둬 언론매체부장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했다.

이에 대해 <중앙문화> 구예훈 편집장(법학2)은 "결국 학교가 재정 지원의 '의무'는 안 하고 감독의 '권리'만 행사하겠다는 것"이라며 "학교가 자율 납부 전환 사례로 제시한 다른 학교 경우만 봐도, 교지 대금은 자율 납부로 하는 대신 편집위원회의 독립적인 소속과 자율적인 편집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반면, 학교 측은 학생들이 제기하는 '언론 탄압'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한다. 장영준 언론매체부장은 2일 "예산 삭감이 <중앙문화>의 비판적 논조 때문이라면, 논조가 더 강경한 편인 <중대 신문>은 진작부터 예산을 끊었을 것"이라며 "(예산 삭감 결정은) 교지 예산을 교비로 충당하는 게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며, 서울시내 주요 대학들도 자율 납부로 바꾸는 추세"라고 밝혔다.

"차라리 '두산대'를 만들라…우리는 두산 직원이 아니다"

2일 진행된 '대학 언론 장례식'에 참석한 학생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장례식과 규탄 집회가 이어지는 2시간 동안, 학교 관계자와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장례식은 애초 본관 2층에서 열기로 했지만, 학교 직원들이 학생들의 출입을 막아서는 바람에 영하 9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진행됐다.

이날 장례의 상주를 맡은 <중앙문화> 전 편집장 우상길(사회학4) 씨는 "두산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학교는 학생들을 기업 논리에 종속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학생이지 두산 직원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서 "아무리 대학이 직업 양성소가 되었다고 하지만, 기업 눈치 보느라 학문도 민주주의도 모두 내팽개친 학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며 "총장은 더 이상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 학생이 '언론 자유'라고 쓰인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뒤편으로는 학생들의 본관 진입을 막는 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대학 언론'이라고 쓰인 관을 들고 교정을 한 바퀴 도는 것을 끝으로 행사를 마친 학생들이 본관 안으로 진입하자, 이번에는 교직원 40여 명이 몰려나와 계단을 막아섰다.

이날 현장에 나온 장영준 언론매체부장은 발언자로 나선 고려대 학생에게 "중앙대 본관 안에서는 중앙대 학생만 말할 수 있다"며 "발언을 하고 싶으면 고려대 가서 하라"고 말해 학생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대화하자"는 학생 외침에…박범훈 총장 "촌스럽게 바보짓 하고 있다"

때 마침 본관 로비에 들어온 박범훈 총장도 집회를 진행 중인 학생들에게 '막말'을 해, 학생들의 원성을 샀다. 박 총장은 집회를 진행하는 학생들에게 "촌스럽게 바보짓을 하고 있다"며 "중앙대가 왜 이리 변화에 늦나"고 훈수를 던졌다.

임지혜 총학생회장(일어일문4)이 "대화해주세요"라고 말하자, 박 총장은 임 총학생회장을 가리키며 "자네가 총학생회장이야?" 그래 알았어"라는 한 마디만 남긴 채 유유히 2층 집무실로 올라갔다.

▲ 중앙대 박범훈 총장이 집회에 참여한 총학생회장을 가리키며 "촌스럽게 바보짓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이 자리에 참석한 우상길 씨는 "총장님이 우리가 부끄러운가 보다'며 "바보라서 유감이다"고 비꼬았다.

대학을 잠식하는 기업, 무너지는 학생 자치권

사실 기업이 대학을 인수한 뒤 이에 비판적인 언론 매체를 옥죄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2001년 삼성그룹이 성균관대를 인수한 뒤, 이 학교 교지인 <성균>을 전량 회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재단에 비판적인 글이 실렸다는 이유였다.

당시 <성균>에는 삼성 일가의 재산 증여 과정을 풍자한 만화와 학교가 등록금 투쟁에 나선 학생들을 중징계한 사건을 비판한 기사가 실렸었다.

▲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 캠퍼스 안에는 "학생 참여없는 구조 조정 반대", "학내 언론 탄압 중단" 등의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프레시안(강이현)

지난해 중앙대 구조조정 발표 이후, 들썩이는 것은 대학 언론뿐만이 아니다. 총학생회 활동 등 '학생 자치권' 역시 제한되는 실정이다. 이날 임지혜 총학생회장은 "두산의 중앙대 인수 후, 학생 자치권에 대한 탄압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장 새터가 폐지 위기에 놓였다. 학교는 지난달 13일 총학생회에 "기존의 새터를 입학식과 연동해 하루만 진행 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새터는 신입생이 입학하기 전인 2월 재학생과 신입생이 2박3일 남짓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는 행사로, 매년 새 학기 총학생회의 가장 큰 사업이다.

학교는 "새터는 비효율적이며, 다른 대학들도 점차 새터를 폐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지만, 총학생회는 "아무런 사전 소통도 없이 학생들의 자치 행사까지 폐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총학생회는 이달 17일부터 21일까지 학생회 독자적으로 새터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또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학교가 19일부터 21일까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학습 능력 평가' 일정을 잡은 것.

신입생 학습 능력 평가에 포함돼 있는 영어 말하기 시험은 필수 과목인 영어 수업을 수강할 때 기초 자료로 쓰이기 때문에, 사실상 신입생은 의무적으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에 총학생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총학생회가 오래 전부터 공지한 새터 기간과 겹치는 일정을 뒤늦게 내놓은 것은 학교가 신입생의 새터 참여를 막아 학생회를 압박하려는 방해 공작"이라는 지적이다.

임 총학생회장은 "일부 단과대 학장들은 해당 단과대 학생회장을 만나, 새터 예산보다 높은 액수의 엠티 비용을 전액 대줄테니, 개강 후 단과대별로 엠티를 가라고 회유하고 있다"며 "이는 학생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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