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이다. 그리고 16일이다. 세월호 참사의 날이다. 아픈 기억이 5년이란, 길다고 보면 긴 세월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 용산역 인근 한 영화관에 앉아 있었다. 세월호 상업영화 <생일> 시사회가 열린 그 영화관에서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전도연의 연기도 물론 한몫했다.
그날 세월호 참사 유족,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희생된 비정규직 김용균의 어머니, 제주 실습생 이민호 군의 아버지, 삼성 백혈병의 상징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의 유족 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이 영화를 관람했기 때문에 더욱 아려왔던 마음이 눈물을 더 자아내게 했을 수도 있다.
다시 세월호 참사의 날을 다섯 번째 맞았다. 그리고 영화와 연극, 다양한 문화행사, 추모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추모의 공간은 기억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내가 사는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 거리 곳곳에 세월호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그들의 이름을 새긴 깃발을 천개의 바람이 되어 찾아온 세월호 아이들이 펄럭이는 것 같았다. 국가 행사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시민들이 세월호 5주기를 맞아 보이고 있다.
세월호는 대한민국에서 더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인명 피해가 많았던 안전사고 내지는 재난 참사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그렇게 기억되어서도 안 된다. 세월호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당당히 살아 있다. 잠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감히 외쳐본다.
세월호가 침몰한 날은 이제 추모의 날을 넘어 이 땅에 생명과 안전을 약속하는 날이다.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는 기업과 정치인을 징치하는 날이다. 인권을 부활하는 날이다. 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부활하는 날이다.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제도와 관습, 사고를 땅 속 깊이 파묻는 날이다. 세월호 유족들이 서로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영화 <생일>에서처럼 다시 꿋꿋하게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다짐하는 날이다.
지난 5년간 과연 부끄럼 없는 안전사회 만들었는가?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그들의 희생에 한 점 부끄럼 없는 사회를 만들어왔다고 자부하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유족들은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분노한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동안 세월호 특조위와 선체조사위원회가 나름의 활동을 했지만 침몰 원인과 관련해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다. 갑자기 배가 급회전을 해 급격히 기울어 침몰한 원인을 만인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몫이 됐다.
필자도 사참위 위원 가운데 한 명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참사의 근본 원인을 파헤칠 수 있을지 자신감보다 걱정이 앞선다. 세월호가 급변침해 순식간에 기울기 시작한 시각인 아침 8시 49분을 전후한 2~3분이 침몰 원인을 밝혀내는데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시각 3분 전까지만 배의 디지털영상녹화저장장치(DVR)에 영상이 담겨 있다.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세월호 진실은 결코 침몰 할 수 없어 : 기적 같은 양심선언 기대
그 원인을 5년이 지나도록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숨기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고 그것에 매달렸던 박근혜 정부에서 이상한 짓을 했을 것이란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한 짓이란 이 DVR에 손을 댔을 것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이 의문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합리적 의심을 실체적 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결정적 물증을 찾아내야 한다. 만약 DVR에 손을 댔거나 실체적 진실을 숨기기 위한 작전을 펼쳤다면 여기에는 분명 한두 명이 아니라 그 이상의 사람이 관여했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양심선언을 하면 모든 것이 풀릴 터인데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4·16연대에 관여하는 한 간부는 최근 이런 말을 내게 했다. "얼마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도 수십 구의 광주 시민 시신을 군수송기로 김해 등으로 옮겼다는 사실이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 드러났죠. 은폐에 가담한 사람들이 양심선언을 하는 것은 지난하다"라는 것이다. 그래도 현재로서는 기적 같은 양심선언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성찰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사회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제도 개선과 함께 참사에 책임이 큰 사람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벌어진 우리 사회의 재난 사례들을 살펴보면 아직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수북이 쌓여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메르스 창궐, 낚싯배 전복, 포항 지열발전소 개발에 따른 대규모 지진 피해, 위험 외주화에 따른 잇단 노동자 산재 사망 사고, 제천·밀양 대형 화재 참사, 고양 온수관 파열 피해, 서울 아현 kt 통신공동구 화재, 강릉 KTX 탈선 사고, 살충제 계란 파동, 라돈 침대 파문 등 너무나 많은 재난 내지 준재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이 가운데 예방이 가능했거나 재난 수준까지 가지 않았을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정치권 일부의 강원 산불 일탈 언행, 안전사회 걸림돌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매우 높아졌지만 기업과 정부 관료, 그리고 정치인들의 의식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재난 사태에 대해 정부는 신속한 원인 조사와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라돈침대 사태와 관련해 책임 있는 조직의 고위층이 외려 수장으로 승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정치권의 일부 인사들은 여전히 국민 안전보다는 눈앞의 정쟁을 우선시하고 있다. 강원도 산불과 관련해 야당 일부 인사가 허위 또는 왜곡된 사실을 가지고 대통령을 공격하거나 야당 원내 대표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국회 상임위에서 계속 붙들어둔 일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보다 한참 뒤처지는 안전 의식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여전히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세월호 마이 했다 아이가. 이제 고만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들이 소수지만 제법 있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땅 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세월호 참사에 아파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들에게 무료 영화권을 주어 <생일>을 한번만이라도 보도록 만들고 싶다.
세월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망각이다. 그 망각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아니 발휘해서는 안 되는 일대 사건, 역사적 사건이 바로 세월호 참사다. 봄의 푸른 새싹이 가지마다 돋고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4월, 세월호 영령들이 대한민국 5000만의 가슴에 살포시 들어와 명령한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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