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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금감원, 두산 오너들 불법행위 조사키로

시민단체들, "이제는 두산이 잘못 시인하고 사과해야"

지난달 28일 참여연대가 해외신주권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한다면서 두산그룹 오너들이 사실상 이를 불법. 편법증여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두산측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던 금융감독원이 마침내 13일 "두산이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면서 공시의무를 위반한 혐의가 짙은 것으로 보고 조사권을 발동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당시 BW 발행 주간사인 동양종금(현재 동양종금증권)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는 한편 담당부서를 공시심사실에서 조사권이 있는 조사국으로 넘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의 이번 발표는 지난 6일 참여연대가 '두산의 5대 의혹'을 제기하며 조사의뢰서를 금감원에 공식접수함에 따라 위법. 위규사항이 있는지 검토한 끝에 나왔다. 하지만 이같은 입장 변경에는 이번 사안에 대한 금감원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대한 여론의 압력이 큰 작용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산 국내공모 공시위반 혐의 짙어**

금감원에 따르면 두산이 지난 99년 발행한 해외 BW는 국내 기관들이 인수한 것으로 일부 확인됐다. 해외공모는 유가증권신고서 제출의무가 없지만 국내공모는 반드시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공시위반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다만 아직 전모가 파악되지 않아 공시위반 여부를 단정지을 수 없고 계좌추적권을 발동해 더 깊이 조사를 해봐야 한다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참여연대는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부당내부거래 혐의도 강력하게 제기했지만 이에 대해서 금감원은 "당시에는 해당 규제조항이 없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두산은 주가하락에 따른 행사가격 조정(리픽싱:Refixing) 조항이 공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BW발행을 전후해 자사주 90만9천6백30주를 5만원대(6일 현재 1만4백원)에 매도해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두산의 주가는 BW 발행전인 99년 1월 2만원대이었으나 BW 발행전후 5만원대로 올라선 뒤 그해말 다시 2만원대로 떨어졌다. 행사가격조정으로 신주인수권이 5배가량(올 11월 현재 8백11만주정도)으로 늘어나 주가에 악영향을 받을 줄 몰랐던 소액주주들이 자사주를 매입해 피해를 입게 됐다는 것이다.

두산이 발행한 BW 경우 당초 행사가는 5만1백원이었으나 주가가 떨어지면 그만큼 행사가격을 낮추도록 한 반면 주가가 다시 오를 경우는 행사가를 높이지 않는 '특혜성 조항'을 붙여 11회에 걸쳐 현재 9천4백60원으로 무려 20% 이하가로 행사가가 낮아진 상태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2000년 7월에야 공시심사 가이드라인을 제정, 행사가조정을 연 4회 이내로 제한했다. 또 올해 4월4일 발행공시 규정을 개정해 행사가조정 사유 등을 이사회에서 정하도록 하되 발행당시 행사가격의 70%까지만 조정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를 근거로 금감원은 "행사가조정 규제가 만들어지기 전에 일어난 일에 소급제재를 할 수 없으며 당시 해외증권 발행공시 서류와 그 첨부서류인 이사회의사록에 신주인수권 행사가격 조정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었으므로 공시위반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한 "당시 통상적으로 리픽싱조항이 붙기 때문에 불공정거래로 보기도 힘들다"는 판단이다.

결국 금감원은 두산이 1999년 7월 해외BW를 발행할 당시 실제로는 국내 대주주들을 대상으로 발행하면서 해외공모인 것처럼 꾸민 의혹이 있다는 참여연대의 주장만 인정한 상태다.

금감원은 정작 참여연대가 핵심의혹으로 제기한 'BW발행을 통한 경영권 편법 승계'에 대해서는 "감독원 수준을 벗어난다"며 발뺌하고 있다.

***두산 행위는 재계의 윤리경영 분위기와도 동떨어진 것**

그러나 이같은 금감원의 태도는 요즘 재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윤리경영'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주고 있다.

지난 9월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박삼구 금호 회장은 그룹의 4대 경영 플랜 가운데 하나로 윤리경영을 거론할 정도로 기업윤리를 강조했다. 실제로 박 회장은 지난 추석 명절 때 금호임직원들에게 선물을 돌렸던 1백13개 협력업체 대표를 불러 앞으로 선물이나 금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는 등 윤리경영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처럼 국내 대기업들은 그간 '윤리강령 선포' 등 초보적인 수준을 넘어서 윤리경영 자체를 시급한 경영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기업분식회계 사태로 미국 굴지의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등 달라진 경영환경에서 불법.편법으로 쌓아올린 경영성과는 모래성과 같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대기업 관계자들은 "윤리경영은 기업들이 당연히 먼저 해야 하는 최소한의 문제이지 다 갖추고 난 뒤에 생각해 보겠다는 차원을 벗어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삼성그룹도 지난달 이건희 회장이 "고객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신뢰받고 존경받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는 윤리 경영의지를 내비치면서 각 계열사가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LG그룹도 구본무 회장이 주창하는 '정도경영'을 바탕으로 윤리경영을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윤리경영을 기존의 감사·법무 쪽과 연계시켜 가시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재계 분위기하에서 이번에 두산 사태가 터짐에 따라 두산사태를 지켜보는 여론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산, 이제는 솔직히 잘못 시인하고 사과할 때**

두산 편법증여 의혹을 파헤쳐온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박근용 팀장은 "소액주주들에게 핵심사항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본문에 공시하지 않고서 이사회 의사록에 첨부하는 방식으로 공시의무를 다했다는 것은 명백히 부실공시에 해당한다"면서 "교묘하게 규정을 피해가는 수법이 뻔뻔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주주와 소비자들에게 책임져야 할 경영진들이 편법적인 행위와 함께 박용성 회장의 경우 거짓말까지 하다가 이것이 들통나자 이번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윤리경영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이쯤되면 대표의 사과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금까지 두산그룹 홍보실은 "불법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했다. 또한 이번 사건에 얽힌 두산의 박용성 상공회의소회장은 지난 11일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사태를 문제삼고 있는 소비자단체와 시민단체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감원도 밝혔듯, 최소한 공시위반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두산의 경우 나름대로 법망을 피하면서 일을 꾸미려다가 몇가지 실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두산같은 대기업에게는 불법보다 편법을 일삼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 더 무섭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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