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지주금융지주회사에 이어 이번에는 제일은행이 조흥은행을 사겠다고 나섰다.
로버트 코헨 제일은행장은 30일 한국은행에서 자청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조흥은행의 정부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의향서를 (입찰신청 만료일인) 지난 23일 이전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인수자금은 제일은행 자체 자금 및 뉴브리지로부터 증자를 받아 조달할 예정이며, 합병은행을 상장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흥은행의 지분 51% 이상을 인수할 생각"이며 "가격은 시장가격에 프리미엄을 더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헨 행장은 "조흥은행은 역사가 오래된 좋은 은행이며 과거에 비해 강한 은행으로 발전해 인수했을 경우 통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조흥은행은 강력한 여신절차 및 경영 프로세스를 필요로 하며, 자본도 보완될 필요가 있다"며 "우리(제일은행)가 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헨 행장은 "만약 인수후보자 그룹에 포함되지 못할 경우, 후보로 선정된 다른 업체와 협상을 통해 자격을 얻어낼 생각"이라고 밝혔다.
***코헨의 노림수는?**
코헨행장이 이처럼 조흥은행 입찰의향서 제출 사실을 밝힌 데 대해 정부나 금융계 반응은 시큰둥하다.
우선 정부측 반응은 불쾌하다는 것이다. 국제관행상 입찰 참여여부는 매각희망자나 매입희망자 모두가 '침묵'하는 게 상례다. 언론보도를 통해 입찰사실이 알려진 신한지주는 아직껏 "입찰참여 여부를 밝히면 '입찰 옵션'에 걸리기 때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같은 국제관행을 깨고 코헨 행장이 입찰참여 사실을 공개한 것은 모종의 '노림수'를 깔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게 정부측의 의혹어린 눈길이다. 제일은행이 입찰에 참여한 뒤 투자제안서를 낸 8개사 가운데 4개사만 선정하는 실사기관에서 탈락하자, 입찰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정부에게 실사기관에 참여시켜 달라는 압력을 행사하려는 게 아니냐는 식의 의구심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코헨 행장의 기자회견은 국제관행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입찰서를 냈다가 탈락하면 그만큼 은행의 이미지가 나빠질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사기관 4개사가 선정된 뒤에 이같은 사실을 먼저 공개한 것은 제일은행을 추가로 실사기관에 끼어달라는 압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부의 또다른 관계자는 "외환위기후 IMF와 맺은 협정에 따라 불가피하게 제일은행을 뉴브리지에 매각할 때만 해도 나름대로 뉴브리지가 선진금융기법을 들여와 국내금융 발전에 기여하지 않겠냐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었으나 지금 제일은행이 보여주는 성과는 기대이하"라며 "이런 마당에 정부지분이 80%에 달하는 조흥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지분이 49%인 제일은행과 정부지분이 80%인 조흥은행을 합치면 누가 이를 좋게 보겠냐"며 제일은행의 조흥은행 인수 시도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한마디로 말해 코헨이 어떤 의도에서 입찰 참여 사실을 공개했든 간에, 제일은행으로 조흥은행이 넘어갈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게 정부측 반응이다.
***조흥은행 인수 발언은 '제일은행 위기'의 산물**
금융계 반응은 더 냉소적이다.
우선 인수대상자로 거명된 조흥은행의 반응은 대단히 불쾌하다는 것이다.
조흥은행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신한지주가 우리 조흥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서 뒤숭숭한 마당에, 뭐가 뛰니까 뭐가 뛴다는 식으로 어떻게 우리보다 형편없는 제일은행이 우리 조흥은행 인수 운운할 수 있느냐"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특히 코헨 행장의 "조흥은행은 강력한 여신절차 및 경영 프로세스를 필요로 하며, 자본도 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발언과 관련, "남 걱정 하기에 앞서 나날이 쪼그라들고 있는 제일은행이나 제대로 관리 잘 하라고 해라"고 냉소했다.
다른 시중은행들의 반응도 대동소이하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제일은행의 경우 나날이 규모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지자 하루바삐 지분을 팔고 철수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라며 "그러나 지난번 하나은행과의 매각협상에서도 드러났듯 뉴브리지가 원하는 높은 가격으로 인수할 은행이 없자 조흥은행을 인수해 덩치를 부풀린 뒤 높은 가격에 팔겠다는 속 보이는 계산 아래 이번에 조흥은행 입찰에 뛰어든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또다른 시중은행 임원은 "뉴브리지가 인수한 뒤 제일은행은 은행경쟁력의 핵심인 IT(정보통신)투자를 소홀히 하고 자산 또한 다른 은행들에 비해 줄어드는 등 여러모로 위기를 맞고 있다"며 "이에 명목상 관리자였던 호리에 전 행장 대신에 뉴브리지의 실력자인 코헨을 새 행장으로 파견해 국민은행 등에 매각 사인을 보냈으나 협상이 진행되지 않자 막판으로 조흥은행 인수를 희망하고 나선 게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그는 "이처럼 궁지에 몰린 제일은행이 정부를 압박하는 형식을 빌어 조흥은행 인수를 희망하고 나선 것은 한국 정부와 한국 금융계를 우습게 보는 행위"라며 "뉴브리지는 아직도 우리나라가 IMF사태직후처럼 미국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 나라인 줄 착각하고 있는듯 싶다"고 일침을 가했다.
금융계에서는 이밖에 정권이 바뀔 경우 새 정권이 DJ정부의 대표적 실정으로 '제일은행 헐값 매각'을 문제삼으며 청문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는 금융계 전망도 코헨 행장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 한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요컨대 코헨 행장의 조흥은행 인수 발언은 '위기의 제일은행'의 현주소를 스스로 드러낸 악수(惡手)중 악수라는 게 금융계의 지배적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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