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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은, 모럴 해저드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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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은, 모럴 해저드 심각

하이닉스 지원, 과도한 컨설팅비 등 문제돼

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의 23일 전격사임 배경에는 하이닉스 반도체 지원 및 주주 기업에의 과도한 컨설팅 비용 지출을 둘러싼 뉴브릿지캐피탈 본사와의 오랜 갈등이 주요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그동안 제일은행이 외국계 펀드의 국내 상업용빌딩 매입 등에 과도한 대출을 해주는 등 ‘외국계의 사금고’ 역할을 해온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돼 향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23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퇴진 결정은 내가 스스로 결정했으며 어떤 개입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4백12만주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의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포기와 관련해서는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직답을 피하고, 이어 퇴진과 관련해서도 “수개월전부터 자발적으로 생각해온 것이고 최근 결정은 며칠사이에 내렸다”고 말해 상당히 오래 전부터 말못할 갈등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제일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호리에 행장은 뉴브릿지캐피탈 본사와 올 들어 상당히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쟁점이 된 부문은 하이닉스반도체 지원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호리에 행장은 지난해 12월 시티은행 주도로 국내 10개 은행이 참여, 하이닉스에 8천억원을 지원한 신디게이트론에 외국계로서는 이례적으로 주도적으로 참여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당시 제일은행은 하이닉스에 1천억원을 신규대출해줬다. 호리에 행장은 또 하이닉스 주가가 대폭락하며 대다수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추가지원을 거부하던 지난 7월27일에도 기자회견을 통해 “하이닉스가 추가로 자금 지원을 요청해올 경우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같은 호리에 행장의 행보에 대해 미국의 뉴브릿지캐피탈 본사는 강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일은행 관계자는 호리에 행장 퇴진직후인 23일 “기업여신 리스크(위험)관리 전문가인 로버트 코헨 행장이 온만큼 더 이상 하이닉스에 대한 신규지원은 없을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이닉스 문제에서 발을 빼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이닉스 여신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국제기준으로 쌓을 경우 당초 올해 목표했던 4천억원의 이익 목표는 달성하기 힘들어 보인다”며 “행장의 교체는 이같은 경영목표 달성 실패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토로했다. 호리에 행장의 교체가 하이닉스 처리를 둘러싼 본사와의 갈등에 따른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호리에 행장이 하이닉스 문제와 관련, 지속적 지원을 주장한 이면에는 시티은행과의 두터운 연대도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일은행 관계자는 “호리에행장이 시티은행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 온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같이 두터운 친분으로 인해 호리에행장은 시티그룹 증권자회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가 재정자문사 자격으로 주도한 하이닉스 지원에 깊게 빠져들게 됐고, 그 결과 은행에 큰 손실을 끼치면서 스톡옵션도 빼앗기고 중도퇴진하게 된 것으로 분석했다.

호리에 행장은 또 뉴브릿지캐피탈에 참여한 주주들과도 경영측면에서 적잖은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제일은행 관계자는 “제일은행의 지출 가운데 인건비 다음으로 많은 것이 컨설팅비용”이라며 “문제는 뉴브릿지캐피탈에 주주로 참여한 컨설팅업체에게 주로 컨설팅용역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 예로 베인 앤드 컴퍼니(Bain & Co.)의 경우 뉴브릿지캐피탈의 주주인 동시에 제일은행 컨설팅기업”이라며 “호리에행장은 은행 흑자경영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는 본사의 이같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해왔다”고 말했다.

한편 제일은행은 뉴브릿지캐피탈로 넘어간 뒤 종전에 재벌의 사금고 역할 대신에 외국계의 사금고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 대표적 예가 지난해 8월 미국의 모건 스탠리가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하누리 빌딩을 살 때 해준 특혜성 대출이다. 당시 제일은행은 하누리 빌딩을 2백40억원에 사들이는 데 매입비용보다 많은 2백47억을 대출해줬다. 모건 스탠리는 단 한푼도 들이지 않고 제일은행에서 돈을 빌어다가 하누리 빌딩을 사들이며 큰 차익을 남긴 셈이다.

제일은행측은 이에 대해 “하누리 빌딩에 국내최대 로펌인 김 & 장이 들어가는만큼 안전하다고 판단해 대출을 해줬다”고 해명하나, 모건 스탠리가 제일은행을 활용함으로써 외자 유입에 따른 환 리스크 헤징(위험회피) 비용등을 절감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본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약한 편이다.

이번 제일은행장 교체 파동을 지켜본 한 국내 금융전문가는 “제일은행 해외매각시 우려했던 부작용들이 하나씩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정부는 더 이상 제일은행의 파행운영을 방관하지 말고 제2 대주주 자격으로 경영감독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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