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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막판 최대파문, '언론의 선거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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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막판 최대파문, '언론의 선거개입'

<손광식의 '1997 비망록'> (52) 경제의 ‘버섯구름’

***52. 경제의 ‘버섯구름’**

엄청난 경제위난으로 대통령 선거전은 정치일족들에게는 부산하고 열띤 마당이었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사에서는 크게 밀려났다. 이회창후보의 작은 아들 수연이 미국에서 돌연 귀국, 서울대학병원에서 키를 재고 돌아가고 병무청 직원 이재왕이 ‘양심선언’을 통해 이회창후보의 장남 정연이 고의감량을 했다는 사실을 주장한 사건들이 화제의 중심이 될 정도였다. 그야말로 대상황은 밀려나고 해프닝만 연출되고 있었다.

11월25일 이후 각 후보의 지지도 여론조사 내용이 공표되지 않아 추세 전달은 확연치 못했다. 다만 언론들은 김대중후보는 약간 상승세, 이회창후보는 정체, 이인제후보는 상승세라는 내용을 해설의 행간에 끼워 넣고 있었다. 조선일보사와 한국갤럽이 12월10일자로 조사한 예상 투표율에서 이런 상황이 빚은 국민심리의 변화가 나타났다. ‘꼭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유권자는 83.4%로 1주일전 조사의 88.1%보다 4.7%포인트가 줄었다.

‘재협상론’의 파문으로 수세에 몰린 국민회의는 예의 폭로전을 가동시켰다. 한나라당이 5백억원의 사채를 쓰려다가 들통이 났다는 폭로였다. 사채업자 강동호란 사람이 국민회의 주선으로 12월12일 여의도 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를 폭로했다. 한나라당이 천안 연수원과 약속어음 5백50억원을 담보로 사채시장에서 5백억원을 조달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 증거물로 강씨는 한나라당 김태호 총장과 백남치 조직위원장이 이서한 약속어음 두장을 흔들어 보였다.

이에 대해 백남치위원장은 갑을상사에 천안 연수원을 매각키로 하고 그 중도금조로 갑을이 가지고 있던 동국실업 명의의 어음 2백50억원을 받아 이를 현금으로 바꾸려고 사채업자를 물색중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선거자금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회의 측은 이 사실을 한나라당의 금권동원으로 몰아갔다.

금융계의 부도-도산은 계속되었다. 고려증권에 이어 한 때는 수탁고 1위까지 올린 적도 있는 극동건설 그룹의 동서증권이 2백50억원의 콜자금을 결재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같은날 외국인 주식 매입한도가 50%로 확대되었으나 여전히 증시는 침체기류로 ‘수직낙하’ 현상을 멈추지 않았다. 외환시장은 단 4분만에 가격 제한선에 도달, 달러당 1800원에 육박하여 바로 문을 닫았다. 수출입 업무마저 마비상태에 들어가고 백화점의 매출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는가 하면 한달 전만 해도 다음해 1월 예약이 끝났다고 했던 제주도의 호텔 골프장은 개업휴장 상태로 들어갔다.

'IMF의 핵폭탄‘으로 한국의 경제는 마비상태에 들어갔다. 일부 수퍼마켓에서는 매점매석 현상이 일어나 진열대의 상품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종금사와 문을 닫은 증권회사에서 고객들은 아우성을 쳤다. 수출입 업무가 중단되고 은행은 학자금 외화송금을 거부하는 현상마저 일어났다. 일반 서민들은 ’핵폭탄‘의 피폭지점에서 피어 오르는 경제의 불길을 서서히 실감하기 시작했다.

12월13일 아침. 청와대 백악실에서 긴급 영수모임이 있었다. 이날 회동은 IMF 협약을 ‘군말 않고 이행한다’는 정치 지도자들, 특히 다음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대선 열전을 벌이고 있는 3당 후보들이 김대통령과 더불어 또 한 번 각서를 쓰기 위해서였다. YS로서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두 차례나 협약이행에 따른 성실성을 경고받은 터여서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자존심이 크게 손상되어 있었다. 그러나 상황 자체가 워낙 다급했고 이런 모임을 통한 정치적 제스쳐가 필요하다는 것이 막료들의 건의 차원을 넘은 ‘요구’였다.

그러나 이날 회동은 이회창후보와 김대중후보의 가시돋힌 설전으로 한시간 가까이를 허비했다. 이회창후보는 두 번씩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각서를 쓰는 수치스런 결과와 국가신용의 실추를 몰아 온 것은 김대중 후보가 ‘재협상론’을 들고 나온 데 있다고 공격했다. DJ는 즉각 이를 받아 IMF측의 불신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외환통계를 속인 정부와 그런 사실들을 기록한 IMF의 비밀보고서가 일부 언론에 의해 공개된 데 있다고 응수했다.

두 사람은 이 설전이 며칠 후 있을 선거에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YS가 정치권의 단합을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나서 싸움은 끝났다. 네사람은 공동발표문이라는 형식으로 문건을 작성, 발표하고 끝을 냈다.

"우리들은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선거의 후보자로서, 그리고 장차 대통령이 되거나 야당의 지도자가 될 사람으로서 당면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오늘 긴급회동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합심단합하여 모든 고통을 감내하면서 더욱 분발할 것을 호소한다.
2. 정부. 정당이 솔선해 근검절약하며 국민들의 재산보호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최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3.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사항을 준수하여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신인도를 높이고 금융시장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세사람은 문서에 서명을 했다. 그러나 DJ는 이름대신 ‘대’자를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 나중에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계산 때문인 듯 했다. 이것은 협약의 이행각서라기보다는 정치적 문건에 불과했다. IMF의 권고나 요구사항이기보다는 한국측이 ‘알아서 기는’ 자발적 대응이라 보는 게 옳았다.

이미 실질 권력도 사라지고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되었지만 YS는 그가 대통령으로 국가를 대표할 수밖에 없다는 형식논리에 의해 모처럼 한 순간 자기존재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 회동과 거의 같은 시각. 캉드쉬총재는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 TV의 앵커 짐 레러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는 IMF와 한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모든 당사자들이 약속을 잘 지키면 최악의 상황을 맞지 않을 것”이라고 처음으로 난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한편 재경원은 연 25%로 제한되어 있는 법정금리 상한선을 40%로 올리고 정부출자로 국가은행이 된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중 한 곳을 외국은행에 팔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12월16일부터는 환율변동 제한 폭을 폐지했다. 국제금융기관과 워싱턴쪽의 불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판독해 낼 수 있는 자료가 이 조치에 숨어 있었다.

청와대 긴급회동이 있던 다은 날 세 후보는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후보들의 마지막 공동토론회가 KBS 홀에서 열린 것이다. 유권자들은, 특히 갈등을 겪고있던 부동표들은 이날 후보들 가운데서 감동적인 면모를 발견하려고 TV를 지켜 보았다. 그러나 3후보는 주제보다는 상대를 흠집내는 데 열을 올렸다. 사회-문화분야의 정책 비젼은 원론적 수준의 언급으로 끝나고 한나라당의 ‘사채조달’, 이회창의 ‘아들 병역문제’, DJ의 ‘재협상’‘20억원 수수’같은 묵은 설전을 재현했을 따름이었다.

이 토론회에서도 김대중-이인제후보는 심리적인 ‘연합’을 드러냈다. 특히 이인제후보는 ‘YS= 신당설’로 2위자리에 치명타를 먹었다는 피해의식과 이 고비에서 이회창 표를 이탈시키면 자신에게로 몰릴 것이라는 계산으로 이회창후보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캠프는 다음날 신문 광고지면을 통해서 "YS와 이회창후보의 물밑거래에 국민과 함께 분노합니다"라는 공격을 퍼부었다. 한겨레신문이 12월13일자로 보도한 청와대 비서관들의 이회창후보에 대한 자료지원 폭로 내용을 재현시킨 광고였다.

한편 이회창 캠프는 북한이 1971년에 DJ에게 20만달러의 지원금을 준 것이 드러났다고 DJ에 대한 마지막 공격을 시도했다. 재미목사와 범민련 미주본부 전 고문이라고 밝힌 김영훈, 최정렬 등 두 명이 12월13일 일본 도쿄 데이코쿠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두 사람은 최근 북한을 방문한 바 있는데 김병식 전 재일조총련 부의장이 "71년 도쿄에서 선생(DJ)의 민주화 운동을 위해 20만달러를 보태드린 적이 있다. 대선에서 꼭 승리하길 바란다"는 내용이 써 있는 편지를 전해달라고 북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이어 12월16일 재미교포 윤홍준은 63빌딩에서 DJ에 대한 비방회견을 가졌다. 무엇인가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었다.

이회창 후보 큰아들의 고의감량을 들고 나온 병무청 직원 이재왕씨의 ‘양심선언’을 감표작전으로 삼고 있는 국민회의측에 대응할 수 있는 큰 카드라고 본 한나라당은 공세의 강도를 계속 높였다. ‘북풍’과 안기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최후의 이벤트였다.

경제폭격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두 주일이 지나자 폭음소리는 조금씩 줄어들고 시장은 정신을 가다듬는 듯 했다. 환율은 1500원대로 진정, 직상승 곡선을 꺾었고 일제히 거꾸로 쳐박혀 온 주식 시세의 화살표도 머리를 들어 하루에 종합주가지수가 26포인트나 회복되었다. 회사채 금리도 20%수준으로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단 ‘외환광풍’은 진정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선거라는 광풍마저 72시간만 지나면 끝장이 나게 되어 있는 시간적 요소도 시장의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고 있었다. 한국은행은 11월중 경상수지는 4년만에 처음으로 6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환율이 하향세의 흐름을 나타내자 이른바 ‘장농속의 달러뭉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강남의 어떤 은행들에서는 1백만달러를 환전해 가는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국가 경제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환차손으로 국부를 날리고 있는 동안에 환투기로 톡톡하게 재미를 보는 개인들이 있다고 신문은 고발했다. 외환 딜러들은 약 40억달러 정도의 돈이 달러 형태로 시중에 떠돌고 있다고도 추정했고 그 수준이 아니라 1백억달러에 육박하는 ‘장외 달러’가 기업의 금고 속에 혹은 가정의 장농 속에 은닉되어 있다는 얘기들도 있었다. 단숨에 50%이상 뛰어 올랐던 외환시세로 계산해 볼 때 1백만달러 정도를 환투기 했을 경우 약 5억원의 환차를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소박한 계산까지 나왔다. 어떻든 환율이 한풀 꺾이자 이런 달러들이 은행으로 계속 줄을 이었고 이에 따라 환율도 계속 내려갔다.

정부는 금융광란 현상이 진정되는 데 용기를 얻어 보다 대담한 정책들을 밀어갔다. 외화표시 국채 1백억달러와 무기명 장기채 3조원을 발행키로 하는 한편, 3개 정파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1년 내지 3년간 유보하는 특별법을 제정키로 합의했다. 그런대로 가닥이 잡혀가는 흐름이었다.

선거개시 사흘을 앞둔 시점에서 국민신당은 중앙일보에 대한 두 번째 공격에 나섰다. 당원들을 동원, "중앙일보는 한나라당 기관지" 등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렸다. '대선 양자구도 압축'이라는 이 신문의 1면 톱 기사가 ‘정치공작’의 일환이라고 규정하고 공격에 나선 것이다.

국민신당측은 12월15일부터 각 여론조사기관이 지지도 조사에 나선다는 점을 겨냥하여 미리 언론조작을 통해 이회창후보에게 유리하게 국면을 이끌려는 공작에 따라 이런 기사가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문제의 기사가 실린 중앙일보가 평소 이 신문을 보지 않는 곳으로 알려진 강남의 아파트 밀집지역에 살포된 것으로 보아 보급소와 한나라당 조직이 합동작전을 벌인 것이 분명하다고 비난했다. 중앙일보는 거의 똑같은 제목의 1면 톱 기사를 수차례 보도한 바 있었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동업 동아. 조선 두 신문으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경기도 고양시의 중앙일보 지국 배달원이 경쟁지인 동아. 조선 두 신문 2천8백21부를 훔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첫 번째 사건은 이른바 ‘매스컴 선거’라고 하는 97년 대선이 어떤 형태의 정.언 유착관계를 갖고 진행되고 있는가하는 면에서 탐색의 한 자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었다. 제 세력간의 이해득실에 의한 유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하는 상당히 고급스런 문제로부터 여러 정파가 언론에 대해 얼마나 금전살포를 했는가 하는 ‘형이하학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숨은 그림’이 있었음은 부인할 길이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은 96년 7월에 중앙일보 판매요원이 조선일보 판매요원을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과 마찬가지로 판매 헤게머니 쟁탈전이 빚은 부도덕한 행위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한꺼풀 벗겨 보면 사세확장을 위한 신문들의 얽히고 설킨 암투가 드러난다.

적어도 IMF와 관련, 조선일보가 ‘재벌해체’를 요구하고 나섰다고 기사를 비약시킨 이면에는 삼성과 중앙일보, 그리고 그들의 무한 자금에 대한 공격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헤게머니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신문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중앙일보 쪽은 자유경쟁, 시장원리라는 명분을 들고 나오지마는 삼성재벌의 막강한 자금력으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장을 지배하려는 목적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권력이 정치적 패권을 추구한다고 보면 언론 또한 또다른 정치적 패권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으며 정치계절에는 그런 측면이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는 그 헤게머니 장악이 정치적인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떤 매체도 중립의지를 표명하고 또 기자들 자신은 그것을 보도의 제일 가치로 스스로 규정하지만 알게 모르게 그들은 ‘어떤 신문이 킹 메이커의 역할을 하는가’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언론사 자체의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기자 자신들의 어휘선택이나 의도적 분석 관점이라는 테크니컬한 선택에 따라 결과되기도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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