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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큰일 났습니다"

<손광식의 '1997 비망록'> (46) YS의 심야통화

***46. YS의 심야통화**

대내적으로 안정 회복의 흐름이 나타난 듯 했으나 대외적 교란 요인이 발생했다. 이 현상은 11월의 둘째주 피크를 이루었다.

'한국산업은행이 부도를 냈다'
'10월 말 외환 보유액이 3백5억달러라는 한국은행의 발표는 거짓말이다. 실제로는 그 3분의1 또는 2분지1 정도다'
'한국은 환율변동폭을 하루 2.25% 상하에서 10%로 확대할 방침이다'
'곧 군부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의 국지전 발생 가능성이 높다'

풍문이 횡행하고 이와 관련한 외신보도가 잇달았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경제에 관한 진단기사를 계속 연재하면서 한국정부가 경제위기를 잘못 대응,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불름버그 뉴스라는 통신은 서울발 기사를 통해 "한국의 금융위기는 태국보다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 부실여신이 급증해 도산사태가 우려된다. 외환보유고는 최저 1백50억달러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곧바로 뉴욕․파리․런던․홍콩․도쿄에서 현지 인쇄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1면 톱 기사로 전재되어 엄청난 파장을 몰아왔다. 주가는 최대의 낙폭으로 떨어져 5백선의 바닥권으로 곤두박질치고 환율은 달러당 1천원을 돌파하는 비상 상황을 서울의 금융시장에 몰아왔다. 외국 언론들은 과장된 분석으로 한국 경제가 피해를 입고있다는 한국 정부의 강력한 반발에 '이유 있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NYT(뉴욕 타임스)는 이제까지의 한국경제 분석과는 다른 각도의 기사를 보도하고 나섰다. 11월10일자 보도에서 이 신문은 태국이 뻥튀기에 불과한 거품경제를 즐긴 데 비해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도쿄나 방콕만큼 폭등하지 않은 것이 양국간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또 한국은 변동환율제여서 떨어진 원화만큼 수출시장에서 국제경쟁력을 갖게 되기 때문에 태국과 같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이 분석 기사는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재벌들이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충당하기보다 은행 빚에 의존해 과잉투자를 일삼은 것과 경제가 정부 주도로 이뤄진 점, 그리고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한 노조가 존재하는 것들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떻든 경제문제가 최대의 국가적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대선행사에 휘말려 집중력은 약화되어 있었다. 국회의 경우 회기를 30일 앞당겨 11월18일까지로 하기로 했으나 대선 싸움에 몰려들어가 예산안을 비롯하여 각종 법령 심의는 졸속처리되고 토론조차 생략되는 비생산적 흐름이었다. 예결위는 5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10명 안팎이 참석하는 정도였고 그나마 수시로 자리를 비우는 형편에서 지역구에 대한 선심발언등으로 예산안 심의는 공전했다.

11월7일 저녁. 신한국당의 이회창총재와 민주당의 조순총재는 63빌딩에서 전격 회동하고 양대 정치세력의 합당을 공식으로 선언했다. 두 당 총재의 합당 합의문은 이렇게 대의명분을 선언했다.

"우리는 낡고 부패한 3김 정치 시대를 청산하고 정치혁신을 주도하여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를 이루어 나갈 건전 정치세력 형성을 위해 서로의 뜻과 힘을 모으기로 하고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연대는 당대 당 통합의 원칙으로 추진한다.
2. 3김정치를 연장시키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무원칙한 권력 나눠먹기식 DJP연합에 단호히 맞서고 총체적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구국적 차원에서 우리는 자신을 비우는 상호 양보의 원칙 위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 임한다.
3. 우리는 두 당의 단순한 통합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권의 창출을 위해 새로운 당명과 당헌당규로 통합한다.
4. 우리는 3김정치 청산과 정치 혁신, 그리고 21세기를 향한 국민 대통합이란 취지에 동조하는 모든 정치세력 및 시민대표 등으로 '3김 정치 청산 범국민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두 세력은 통합을 깃점으로 대선후보는 이회창으로 총재는 조순으로 하기로 하고 신 정치세력 규합과 반 DJP의 깃발을 흔들고 나가기로 한 것이다. 결국 97년의 대선은 한 달 남짓을 앞두고 일단 김대중․이인제․이회창의 3파전으로 압축되었고 언론은 유권자를 향하여 이번 대선 싸움은 '정권교체' '세대교체' '3김정치 청산'의 싸움이라고 단순화시켜 해설했다. 모처럼 긍정적 선택의 기준을 제공한 것이다. 이에 따라 통합신당은 새로운 당명을 만들고 조직전열과 출정식을 갖기로 했다.

같은 날 YS는 특별담화를 통해 "오는 15대 대선을 어느 후보에게도 치우침 없이 엄정하고 공정하게 관리하고 국정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신한국당을 탈당한다" 고 밝혔다. 그의 탈당은 그와 청와대 세력이 이인제후보와 국민신당을 지원한다는 협공이 일어나고 급기야 2백억원의 자금이 손명순여사에 의해 이인제후보의 부인인 '경기도의 힐러리' 김은숙씨에게 전달되었다는 국민회의의 주장까지 나오자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 졌다.

이회창-조순의 연합함대가 편성되고 YS가 제3지대로 탈출하는 두 가지 정치 이벤트가 일어나자 각 언론사는 기민하게 유권자 반응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김대중-이인제- 이회창의 순차는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각 매체별 지지율 편차는 달랐다.

중앙일보 조사는 1위 김대중 37.0% 2위 이인제 31.6% 3위 이회창 25.7%로 이회창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조선일보의 조사는 1위 김대중35.7% 2위 이인제 28.0% 3위 이회창 20.7%로 역시 같은 결과인데 중앙일보 조사보다는 지지율이 다같이 낮았으나 이회창 후보는 급상승한 것으로 나왔다.
경향신문도 순위의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왔으나 이인제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다른 매체의 6-7%포인트와 달리 10%포인트 이상 벌어진 상태로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의 조사는 김대중후보가 이인제후보보다 7%포인트 앞서가고 이인제후보는 역시 이회창후보보다 7%포인트 아직 뒤져있는 것으로 발표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회창지지율이 '급상승' 혹은 '대약진'하고 있다고 제목을 뽑아 이회창캠프를 고무시켰는데 이인제 캠프는 중앙일보의 여론조사를 포함해 대선보도가 계속 이회창쪽으로 기우는 불공정 보도라고 비판하고 '보도 성향'을 걸어 언론중재위에 제소하자는 격앙된 분위기마저 당 내부에 흘렀다. 여론조사에 대한 진위 여부를 둘러싼 유권자의 의심은 이제까지는 주로 이인제 돌풍과 그의 지지율 강세에 대해서였는데, 이제는 이인제후보측이 여론조작이 있다고 공격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는 상황의 반전이었다.

YS는 11월10일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엄정한 대선 관리를 강조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이뤄지는 선거 행위는 보호해야 되겠지만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들고 국가의 안정까지 해치는 정당간의 저질적 상호 비방과 거짓 선전은 엄단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검찰은 국민신당의 고발에 따라 손명순-김은숙 자금 지원 라인을 발설한 것으로 알려진 국민회의의 김민석 부대변인과 신한국당의 구범회 부대변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식으로 YS의 사법적 대응 의지가 천명된 이 사건에 검찰이 손을 댄 것과 관련,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는 특정 정파를 지원하기 위한 '공안정국'의 재현을 경계했다. 즉 이인제 측을 지원하려는 속내를 깔고 중립 엄정을 YS가 들고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그 진위를 알아보기 위한 테스팅 케이스로 신한국당은 이인제 캠프의 김운환의원이 말한 흑색선전을 들고 나왔다.

김의원의 허위사실 유포혐의는 이랬다. 세계일보는 11월10일자 지방판에서 "김운환의원이 이회창- 조순총재는 합당을 싸고 금전거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신한국당의 이총재 측이 민주당 조총재 측과 통합하면서 조총재와 그의 부인, 민주당 지역구, 전국구 의원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자금 출처는 이총재 측에서 나온 것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조총재에게 부채 변제 목적으로 7억원, 그의 부인에게 1억원 등 8억원을 제공했고 이기택 전 총재에게도 합당을 조건으로 그의 부인 이경의 여사를 통해 20억원을 제공했다고 했다. 또 민주당의 지역구, 전국구 의원들에게 통합에 대한 반발 무마조로 각 3억원, 1억원 씩을 제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김의원이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김의원의 항의로 시내판에서는 빠졌다. 김의원은 한 지구당 위원장이 이런 설을 귀뜸해 주었으나 증거도 없는 얘기로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이사철 대변인은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김의원이 부인을 하고 신문 핑계를 대고 있다고 비난하고 검찰은 즉각 흑색선전의 표본으로 이 사건을 입건하라고 촉구했다.

여야의 협공을 받고있는 입장이었지만 국민신당을 향한 행렬도 만만치 않았다. 신한국당의 중진급인 서석재의원, 박종율의원, 홍재형 전 부총리 등이 입당하는 등 친YS가 주류를 이룸으로서 'YS의 태자당'이라는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국민신당은 의혹을 불식시키는 일환으로 창당자금을 공개했다.

일본의 개림호 나포와 독도에 설치한 한국측의 접안시설물로 긴장상태로 들어갔던 한일간의 외교분쟁은 일본측이 개림호 선장 이몽구씨를 기소유예하고 석방조치함으로써 일단 가라앉았다. 이 조치를 전후하여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월드컵 예선 서울경기에서 한국이 일본에 져 일본팀이 기사회생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송 일본인 처 15명이 북한-일본의 외교관계 수립 분위기 조성용으로 일본을 방문하게된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한국측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 이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법한 일이었다. 하긴 국제적으로도 강택민-클린턴의 워싱턴 회동, 강택민-옐친의 북경 정상회담 등 협력 기류가 주조를 이루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것이 미국 일본 러시아의 '신 3강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적 움직임인가의 판독은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유엔의 무기사찰을 이라크가 거부하고 나섬으로써 발생한 새로운 중동사태는 이같은 큰 흐름과는 달리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11월10일 아시아 6개국 순방 계획을 전격 취소할 정도로 사태는 긴박해 졌다. 외교 소식통들은 미국이 조만간 이라크에 대한 공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으며 CNN의 중동통인 바네트기자가 현지로 급파되었다. 이같은 긴장국면으로 서울에서 열기로 되어 있었던 제29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와 제19차 군사위원회는 무기 연기되었다.

그러나 긴박한 실제상황은 서울에서 벌어졌다. 외환 부도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전 부총리 홍재형의 보고로 무엇인가 심각한 국면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린 YS는 한은총재 이경식을 불렀다. 드디어 잠재되어 왔던 외환위기가 현재화한 것이다. 엄청나나 달러가 철수를 시작했고 환율 방어용으로 풀어준 보유 외환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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