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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 "DJ비자금 수사 않겠다" 폭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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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 "DJ비자금 수사 않겠다" 폭탄선언

<손광식의 '1997 비망록'> (41) 검찰총장의 반전극

***41. 검찰총장의 반전극**

국회에서 '색깔론'이 제기된 것과 때를 같이 하여 미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날 상오 국회국방위에서 감사를 받고 있던 윤용남 합참의장은 메모지 하나를 건네 받고 김영구 국방위원장에게 긴급사태를 전하고 곧바로 육본 지하방카로 내려갔다. 북한군이 월경, 두 사람의 대성동 주민을 납치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국방위를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이 사실이 곧 전해지고 방송은 이를 즉각 보도했다. 윤합창의장은 육본 지하방카에서 상황을 점검하고 사건이 발생한 판문점 지역 전방군단에 경계강화 지시를 내리는 한편, 한미연합사와 긴밀한 협조 연락체제를 갖추었다. 해당지역 부대들은 전방의 모든 진지에 병력을 투입하는 최고의 경계태세인 A급 경계태세로 들어갔다.

그러나 긴박하게 사태를 전달했던 라디오 방송은 후속보도를 통해 주민납치는 북의 도발적 행위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경기도 파주시 대성동 마을 부근에서 농사 일을 하다가 도토리를 따러 군사분계선쪽으로 들어간 대성동 마을 전 동장 김근수씨의 부인 홍승순씨(66)와 이들 김용덕씨(41)가 북한군에게 납치된 것이라고 유엔군 사령부가 발표했다고 전했다.

평양방송도 이 사건을 보도했다. 사건 발생 10여시간 후인 오후 8시58분 "오늘 10시 30분경 개성시 판문군 선적리 앞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우리(북)측 지역에서 정상적인 순차근무를 수행하고 있던 인민군 군인들이 군사분계선을 침입한 남조선 주민 2명을 단속했다. 해당기관에서는 이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온 경위에 대해서 조사중이다"고 방송했다.

유엔사는 이 사건과 관련, 오후 4시반부터 판문점에서 라일리비서장(미군 대령)과 북한의 유영철상좌가 참석한 가운데 한 시간 동안 접촉을 가졌으나 북한측은 "아직 보고받지 못했다. 조사를 해봐야 알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북한측은 군사정전위 채널을 통해 송환의사를 전해왔다.

남북의 군사적 충돌을 야기시킬 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이 전달되자 국민회의측은 안도의 숨을 크게 내려 쉬었다. 남북의 긴장상황이 격화되면 선거에서 여당이 유리했다는 것은 야당에게는 신화가 아닌 실화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DJ와 오익제'로 레드 컴플렉스가 되살아나는 불길한 예보가 깔려 온 바 있어 야당이나 유권자의 기류는 지극히 예민했다. 북에 억류되었던 모자는 나흘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도토리를 따기 위해 들어가다가 우연히 북측 군사분계선(JSA)을 넘어가 북한군에 억류되었던 것이라고 유엔사측은 경위를 밝혔다.

'DJ 비자금'을 신한국당이 검찰에 정식으로 고발한 이후 유권자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자료일 수밖에 없었다. 흐름 자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신한국당의 판단과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회의 판단등 두 선거 캠프의 상반된 분석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신한국당의 역공은 만만치 않았으며 분열상을 보이던 여당도 검찰에 대한 고발을 계기로 통합의 기류가 흐르는 듯 했다.

10월20일자로 발표한 동아일보의 여론조사는 이같은 상반된 예측에 답을 주었다. 동아일보가 한길리서치에 의뢰, 신한국당이 김대중후보를 검찰에 고발한 직후인 10월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전국 유권자 1천5백명을 상대로 실시한 전화설문 조사에서 김대중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34.6%로 여전히 1위를 달릴뿐 아니라 오히려 약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시 2위는 이인제지사로 23.1%, 3위는 이회창후보로 13.2%로 나왔고, 4위 조순후보(7.3%) 5위 김종필후보(3.5%) 6위 권영길후보(1.1%)의 순이었다. 순위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었으나 이회창후보는 비자금 폭로 이후 오히려 지지도가 크게 떨어지는 추세를 나타냈다.

합종연횡을 가상한 질문에서도 DJ는 1위를 고수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DJP로 단일화될 경우, 지지율은 38.6%로 2위 이인제후보에 대한 지지율 23.5%보다 무려 15%포인트 이상 격차가 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이인제-조순 연대에 의해 이인제후보로 단일화되었을 경우도 DJ 38.6%, 이인제 29.5%, 이회창 16.0%로 DJ선두는 상당한 격차로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대세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이회창을 포함, '반 DJ연합'을 구축하여 단일후보를 만들어내는 길 밖에 없게 되었다. 동아일보의 조사를 토대로 볼 때 산술적으로 DJP연합은 39.1%, '반DJ연합'은 40.6%의 지지도를 보였다. 물론 '반DJ'유권자가 어떤 후보로 단일화 되는가에 따라 지지율은 변화를 나타내게 될 것이겠지만 'DJ 대세론'을 꺾을 단초는 이 길밖에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여당은 비자금 고발 이후에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환율이 오르는 등 정치 외적인 흐름이 결코 대선국면에 유리하지 않게 작용하자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은 10월19일 오후 여의도 신한국당 당사에서 당정 긴급협의회를 갖고 증시안정대책을 확정지었다. 주식을 3년 이상 가지고 있으면 배당소득에 대한 세금을 종합과세에서 제외, 10%만 세금을 분리과세하도록 했다. 97년말로 예정된 근로자주식저축제도도 1년간 연장하고 저축한도도 1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연내로 예정되었던 한국통신의 주식예탁증서 매각 및 국내 증시 상장은 다음해로 연기하기로 하고 벤처펀드에 5년 이상 투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금출처 조사 면제, 투자액의 20%를 과세소득에서 빼 주는 공제제도를 채택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조치가 발표된 다음날인 10월20일의 종합주가지수는 무려 19.07%포인트나 떨어졌고 환율은 사상 최고율인 달러당 9백24원까지 치솟았다. 급기야 정부는 이제까지의 '시장 원리'라는 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꾸어 금융기관에 대한 응급수혈, 부도위기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등 정부의 시장개입 정책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부총리 강경식은 기업에 대한 자금부족이 생기는 금융기관에게는 한은을 통한 특별금융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때마침 부도위기에 몰려있던 뉴코아 백화점 그룹은 이같은 정책선회에 따라 5백45억원의 자금을 은행들로부터 협조융자를 받게되었다. 이와함께 뉴코아는 2금융권에서 만기가 도래하는 어음 2백40억원과 와환은행이 지급보증한 회사채 만기분 1백40억원도 만기일을 연장받았다. 이에 앞서 뉴코아측은 납품업체들의 상품철수를 막는다는 이유로 점포문을 닫는 한편 경찰에 건물보호를 요청, 전투경찰이 투입되었다. 뉴코아 이석형 사장은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에 자금지원을 요청했고 한국은행에 있는 금융단 기자실에 자금지원이 거절되면 '화의신청 여부를 결정짓겠다'고 배수진을 쳤었다.

정부의 금융개입은 경찰이 동원되는 등 사회적 측면의 쇼크를 야기할 지도 모르는 뉴코아의 위기타개 작전에 말려든 것인지, 증시상황 환율급등 등 전반적인 경제기류의 악화현상에 따른 거시적 대응에서인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어떻든 뉴코아는 구사일생으로 도산을 모면하게 되었다. 동아일보는 정부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린 책임을 물어 강경식부총리를 바꿔야 한다고 또다시 사설로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번호 '97 형 제 110147'.

DJ비자금에 대한 신한국당의 정식 고발을 받은 검찰은 이 사건을 대검 중수부에 사건번호를 붙여 배당했다. 법적으로 정식 형사입건이 된 것이다. 주임검사는 중앙수사부 2과장 김인호 부장검사. 김부장검사는 부산지검 특수부장으로 일하던 때 당시 부산지검장이던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8월 정기 인사 때 중수부에 발탁된 인물. 박순용 중수부장과 김 부장검사를 잇는 박주선 수사기획관은 김총장의 광주고 후배. 이들은 모두 대형 비리사건을 다룬 경험들이 있으며 김총장 역시 문민정부 초기 대검 중수부장으로 동화은행 비리 율곡사업 비리 군인사 비리 등 굵직 굵직한 대형비리 수사를 이끈 특수 수사통이어서 검찰은 일단 총력체제를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수사체제 확립과 동시에 있었던 10월20일의 전국 고등검사장회의에서 검찰수뇌부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검찰의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색이 강한 이 사건에 곧바로 수사착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신중론'과 범죄구성 요건에 해당되는데도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검찰의 '중립성'을 해친다는 원칙론이 팽팽히 맞섰다.

신중론쪽은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가장 높은 제1야당 후보를 수사하는 경우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논리를 폈다. 반면 원칙론쪽은 여당이 특별검사제를 도입, 수사를 강행하는 경우 검찰의 명예가 관련되게 되고 만일 정권이 교체되어 그때 야당이 된 신한국당이 수사를 촉구하는 환경변화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에다 야당이 들고 나온 YS의 92년 대선자금, 이회창후보의 경선자금문제가 걸릴 경우 함께 수사해야 하는 '대 혼란'의 예측론까지 나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DJ에 대한 지지율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는 한 때 기세를 올리는 듯 싶던 신한국당 진영을 다시 침체기류로 몰아 넣었다. 또다시 정권창출의 위기론이 되살아나고 그에 대한 대응 논리로 '후보교체론'과 '반 DJ연합론'이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10월10일 저녁 63빌딩의 한 음식점에 신한국당의원 13명이 저녁을 같이 했다. 참석자는 김영구․서청원․김중위․박명환․박범진․이명박․김학원․유용태․이재오․이상현․강성재․홍준표․이신범. 이들은 이날 모임에서 이회창의 용퇴를 포함해서 모든 얘기를 다했다고 기자들에게 회의 내용을 전달했다. 이회창의 자진사퇴 없이는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이제는 이 문제에 당 지도부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보다 앞서 이날 낮 신한국당 고문들도 신한국당의 위기에 대한 대처문제를 협의했으나 '후보사퇴' '현실직시' '능동대처'등 우회적이지만 이회창후보를 바꿀 수 밖에 없다는 공론이 표출되었다.

이회창 총재와 신주류측은 이에 대해 어불성설이며 반당적 사고라고 비판하고 당의 대동단결을 촉구했다. 한편 조순총재가 제의한 '반DJ 연합론'은 열세에 몰려있는 신한국당측으로부터 반응을 일으켰다. 김덕룡 공동선대위원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 뜻이 같다면 새로운 3당합당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연합의 차원까지 넘겨 보았다.

그러나 이인제후보는 이미 자신이 확보한 지지율 2위라는 현실을 제외시킨 어떤 연합에도 흥미가 없다고 밝히고 단 조순후보와의 연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조순후보는 이미 자신은 마음을 비웠으며 이회창후보와의 연대도 개방되어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서 합종연횡도 지극히 복잡한 양상을 띄웠다. 양상이 복잡할수록 DJ에게는 결코 불리하지 않은 흐름이었으며 이제 이회창총재는 DJ의 최대 정적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역할을 맡는 형국이 되었다. 신한국당의 포문은 슬그머니 이인제의 캠프로 방향을 틀었다.

주요신문들은 이같은 움직임들을 대서특필했다. 이미 김영삼 대통령도 '후보교체' 등을 현실문제로 인식했다는 보도들이 전해짐으로서 이른바 '10월 대란설'이 실체화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일으켰다. 어떻든 정국은 일대 혼미의 장으로 돌입하는 단계로 진입하는 인상이었다.

10월21일 낮11시 김태정 검찰총장은 긴급기자회견을 소집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수차례 목소리를 가다듬은 김총장은 'DJ 비자금'에 대한 검찰수사를 대선이 끝날 때 까지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 온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검찰은 신한국당의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 대한 고발 사건 및 이와 관련된 수사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방침을 결정하였다. 검찰은 이 수사를 15대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 그 이유는 과거의 정치자금에 대하여 정치권 대부분이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이 사건을 수사할 경우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극심한 국론분열 경제회생의 어려움, 국가전체의 대혼란이 분명해 보이고 수사기술상 대선 전에 수사를 완결하기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이번 15대 대선을 돈 안드는 깨끗한 선거, 일류국가로 도약함에 부족함이 없는 공명선거 풍토 조성과 선진 선거문화 정착을 위하여 진력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15대 대선이 조금도 선거풍토를 개선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국민공감대가 모아질 경우에는 즉시 수사에 착수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어떠한 여건이나 상황을 고려함 없이 철저히 수사할 것이며 수사대상은 과거 정치자금은 물론 15대 대선의 당선자 및 대선후보자의 정치자금 모두가 포함될 것이다."

급전직하 정국의 방향을 틀어 놓는 검찰의 놀라운 선택이었다. 고발장 접수후 수사체제까지 세우고 담당검사등 수사실무 팀까지 정한 뒤 검찰의 수사착수를 중수부장이 공언한지 24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간에 이루어진 전격적인 조치여서 이 발표는 대단한 파장을 일으켰다. 여당인 신한국당은 검찰의 자세를 공격하고 나섰고 야당인 국민회의는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고 환영했다. 여야의 입장이 대회전한 '검찰 대란'이 아닐 수 없었다. 신한국당의 이회창 캠프는 검찰에 대한 비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유보 조치'는 정치적 흑막이 있으며 배후에는 YS와 청와대가 개입되었다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의 독단적인 결정이라고 했으나 아무도 이것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검찰은 권력기관인데 그 권력의 최고 우두머리인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을 리 없고 적극적 개입은 없었다고 할 지라도 이른바 4개 방안에 대해 최종 의견을 내렸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더욱이 이 사안은 대선이라는 정치 최대의 이벤트와 권력의 향배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YS가 행사하는 카드가 아니냐 하는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신한국당의 주류측은 '청와대 흑막' 'YS-DJ의 합작'이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들고 나왔다. 이회창 캠프가 '분노'하고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날 검찰총장의 발표는 이총재가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는 같은 시간이었으며 이날은 신한국당의 새 체제가 새 당사로 입주하는 이른바 '이회창의 제3 런칭 데이'의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속된 말로 초를 쳐도 묵사발이 되게 초를 치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YS의 동조 묵인 없이 검찰의 결정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일설에는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만났으며 YS는 검찰총장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다고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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