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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비자금 폭로 공방의 볼모가 된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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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비자금 폭로 공방의 볼모가 된 YS

<손광식의 '1997 비망록'> (40) 비자금 폭로와 제로 섬

***40. 비자금 폭로와 제로섬**

이른바 신한국당의 'DJ 비자금 제3탄'으로 일컬어지는 'DJ 친인척 명의 3백78억원'이 폭로되자 검찰의 입장은 난처하게 되었다. 우선, 이런 식으로 개인 예금계좌를 불법적으로 조사 공개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이것은 신한국당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이런 규모의 돈이 DJ 친인척 주변에서 의혹의 안개를 피워 왔다면 이 또한 불법 축재의 의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이것은 야당 투사로서 DJ의 두 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국회법사위에서 "신중히 검토 수사여부를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일반론으로 장장 4시간의 의원 질의를 버텼다. 항간에서는 그의 출신지가 전라남도 장흥이며 얼마 후 정권이 바뀌게 되는데 검찰이 여기에 개입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언론의 만평 만화의 소재가 되어 등장했다.

기류변화를 암시할 수도 있는 1단 기사가 나온 것은 친인척 은닉 비자금이 터진 다음날이었다. 고위 사정당국자란 이름을 빌어 "김총재가 부정축재한 것이 있을 때 검찰은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라는 짧막한 보도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것이 신한국당이 준비한 '제4탄'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곧바로 드러나지 않았다. 언론은 줄기차게 '똥묻은 개 겨묻은 개'로 여론을 DJ측에게 불리한 쪽으로 끌어갔다.

10월16일자 주요신문들의 1면 톱 기사는 미묘한 뉘앙스를 보여주었다. 물론 정국의 흐름은 '비자금 폭로'가 주요 이슈였고 하루 전 날 신한국당은 법사위의 변정일 위원장 이하 8명의 명의로 이 문제를 검찰에 고발한다는 당 방침을 발표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조선일보는 '신한국당 오늘 김총재 고발'을 톱으로 올렸다. 중앙일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DJ 비자금 고발땐 수사'한다는 고위 사정관계자의 방침을 머릿 기사로 올렸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홍(사덕)정무 비자금 수사 반대 표명'이 신한국당의 고발을 밀어내고 머리에 올라갔다. 신한국당은 강삼재 총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고 DJ를 조세포탈죄 및 뇌물죄 혐의로 고발키로 결정했다. 이 사실은 즉각 언론에 발표되고 청와대에 보고되었다.

신한국당의 고발로 아연 긴장국면에 들어가자 홍사덕 정무장관은 사견인지 YS의 뜻인지는 알 길 없지만 중요한 발언을 했다. 그는 이날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가 주최한 '선거문화개혁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 "비자금 수사를 검찰에 맡긴다면 선거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수사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비자금 정국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민에 의한 평결, 폭로목록의 동결, 정책 비젼의 제시 등 세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불가분 각 정파의 대선 전략의 연계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신문의 기사선택은 여론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벆에 없었다. 신한국당의 고발을 톱 기사로 올리느냐, 그것을 반대하는 홍사덕 정무장관의 발언을 크게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여론의 흐름은 달라질수 있었다. 전자의 경우 DJ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고 후자의 경우는 그에게 유리하게 된다. 대표적 언론들의 톱기사 선정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치적 노선을 암묵중에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국민회의는 이같은 폭로와 사법적 차원의 공격으로 대선전투가 치열해지자 이를 날조조작극으로 몰아가는 한편, 친인척들을 동원해 개인예금 통장을 공개하고, DJ는 YS에게 거듭 단독회담을 제의했다. DJ가 YS를 만나려는 이유는 분명했다. 92년 대선자금과 이회창 후보의 경선자금도 조사해야 함으로 정치권의 공멸을 원하느냐고 협박하거나 YS의 임기 이후에도 정치보복을 안한다는 약속을 하기 위한 것으로 정가의 분석가들은 추정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집요하게 YS를 만나려 하는 것은 이회창의 '혁명 과업' 때문이었다. 혁명 과업이란 즉 YS까지를 포함한 구시대 정치를 한 물에 쓸어버리겠다는 시나리오를 설파하고 YS와 DJ의 묵시적 공동전선을 맺으려는 것이었다. DJ는 공개적으로 "김대통령이 공정선거를 하도록 촉구하겠다"고 했지만 그 이면에는 이같은 '정치9단들'의 격술이 깔려있었다. 여기서 홍 정무장관의 발언은 뉴스로서 중요가치가 드러나게 된다.

이제 싸움은 정치판에서 기억도 아스라히 사라진 YS를 다시 등장하게 하는 국면을 조성하고 있었다. 김현철 게이트에 대한 재판과 연관되어 '비자금 폭로'가 신한국당에 의해 부활되었다는 점에서도 YS의 복귀는 어쩌면 운명적인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쟁이 비자금공방으로 이전투구에 들어가는 한편에서 경제는 구조적 불황과 금융의 경색화 현상에 따라 더욱 악화되었다. 심각한 자금난 속에서 쌍방울그룹은 (주)쌍방울과 쌍방울개발 2개사에 대한 화의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조흥은행은 태일정밀과 뉴맥스, 동호전기, 동호전자, 삼경정밀, 남도산업, 태일개발등 7개사에 대해 부도유예조치를 취했다.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증시에서는 투매현상이 일어나 10월16일 주가는 대폭락, 5년만에 6백선이 무너졌다. 이날 종합주가지수는 579.25로 하루동안에 25.49포인트가 떨어지는 대폭락 현상을 보였다. 급기야 정부는 긴급시장대책을 협의하고 한국통신주의 상장을 연기하는 한편, 3년 이상 장기 주식 보유자에 대한 배당 소득세 분리과세, 근로자 주식저축 한도 확대 및 저축기간 연장, 증권거래세의 한시적 폐지 또는 인하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신한국당은 예고한 바대로 이날 DJ를 특가법상 뇌물수수 및 조세포탈과 무고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대검찰청에 제출된 신한국당의 고발장은 박헌기, 김영일, 이국헌, 황우려의원 등 4인의 이름으로 제출되었는데 당초 검사출신과 법사위원장으로 예정되었던 고발인의 명단이 바뀌었다. 그 사연은 이러했다. 법사위원들은 DJ를 고발하는 경우 앞으로 있을 법사위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그를 공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는 데 있었다. 즉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13조1항은 "의원은 직접 이해관계가 있거나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는 경우 그 사안에 한해 감사 또는 조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사 출신으로 구성된 신한국당의 법사위원들은 모두 이해당사자가 된다.

당 지도부는 부랴부랴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을 차출하기로 하고 소재 파악에 들어갔다. 대상인물 11명은 이 명단에서 벗어나려고 대부분 핑계를 대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결국 강삼재총장과 이사철대변인등이 통사정을 해 박헌기의원등 4명이 총대를 매게 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신한국당의 'DJ 비자금' 공세가 총력전인양 전파되고 있었지만 내부를 흐르는 기류의 일단을 보여준 해프닝이었다.

박순용 대검수사부장은 검찰에 고발장이 접수된 후 "검토결과 정식 고발사건으로 취급할만한 사안이라고 판단되면 서울지검으로 이송할 것"이라고 밝히고 "서울지검에서 이 사건에 대해 사건번호를 붙이고 담당검사를 확정하면 넓은 의미의 수사착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식사건으로 배당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고발인을 조사하거나 피고발인을 입건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매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박부장은 10월20일의 전국 고검장회의와 27일로 예정된 전국 특수부장회의에서 수사여부에 대한 일선검사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서 검찰의 총의로 이 사건을 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권력과 법이 심각한 갈등에 빠진 상황이었다.

이회창 후보의 비자금정국에 대한 인식표현에서 '혁명과업'이란 용어가 등장한 데서 암시된 바대로 그의 표적권에는 DJ 너머에 YS가 있었다. 이 총재는 10월16일 강릉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현재 여당의 92년 대선자금을 밝힐 만한 자료는 없다. 그러나 차후에 구체적인 사실이 나오고 사실을 밝힐 단계가 되면 차이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보다 앞서 이날 아침 연합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대선자금 문제도 들춰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밝혀 김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췄다. 이제 YS는 정국 흐름에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중심권으로 밀려들어가게 되었으며 양 진영의 '볼모'가 되고 있었다.

국민회의측은 검찰에 대한 고발에도 불구하고 맞고소의 맞불대응을 자제하고 검찰의 조사착수 여부를 지켜본다는 당 방침을 발표했다. 대변인들을 동원한 선전 해명전과 DJ의 친인척들로 이 파문에 의혹 당사자가 된 사람들을 동원, 날조조작극임을 부각시키려 애쓰는 등 파상공세로 맞받았다. 김홍일의원의 장모 권은애씨는 송훈석의원이 8천7백만원이 들어있다고 주장한 제일은행 통장을 기자들 앞에서 흔들어 보이며 "잔액이 54만여원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이것마저도 경로 교통수당 수령 통장이라고 주장했다.

김총재의 차남 홍업씨의 처제 신용련씨도 "10년 동안 서울 불광동에 살고 있어 신한국당이 주장한 신한은행 개포동지점에는 가 본 일도 없다"며 "은행측에 확인해 보니 계좌 앞 번호 115는 신한은행측이 사용하지 않는 번호였다"고 밝혔다. 김총재의 넷째 처남 이상호씨는 한미은행 역삼동지점 통장등 지난 91년5월부터 사용한 10개 통장을 기자들 앞에 증거로 제시하면서 "입금액 기준으로도 총 8억9백65만4백17원에 불과하다"면서 신한국당의 송훈석. 안상수의원의 주장은 날조라고 주장했다.

이 즈음 항간에서는 '반DJ 기류' 형성이라는 여론몰이의 일환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늙은 대통령의 병약이나 치매현상'은 국정운영에 심각한 문제를 던질 수 있다는 얘기가 서서히 머리를 들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한 칼럼니스트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건강이나 나이 탓에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들(후보들)에게 있는 것일까. 누가 약속을 우습게 아는가를 가리는 일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국민만의 몫이다"고 했다. 건강 나이 탓에 걸릴 후보는 누구일까. 국민선택에서 매우 중요한 기준과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였음에도 때가 때인지라 이 칼럼조차도 '특정목적'이 깔려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킬 만큼 정치적으로 감응도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신한국당의 DJ에 대한 공세는 파상적인 면을 띄었다. 예의 '색깔론'이 국회 국감과정에서 등장한 것도 이같은 파상공세의 일환이었다. 10월17일 국회 법사위에서 정형근 신한국당의원은 DJ와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 사이의 의혹을 제기하여 DJ의 아킬레스건을 다시 건드렸다. 그가 폭로한 내용은 이랬다.

"김총재는 오씨가 천도교 교령으로 있을 때인 89년 4월부터 94년 6월까지 서울 여의도 63빌딩 일식당, 소공동 롯데호텔 지하식당 등에서 주로 저녁 늦은 시간에 배석자 없이 단둘이서 여러 차례 만났다. 오씨는 김총재의 비서출신인 윤철상의원에게 5백만원을, 96년 2월 이경배 사무차장에게 2백만원을, 그리고 96년 3월에는 국민회의 중앙당 2차후원금으로 1천만원을 냈다. 오씨는 96년 2월 모 부동산중개업자에게 '국민회의에서 국회의원 공천을 받으려 하는데 경기 화성군의 임야 3천평을 빨리 팔아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고 4월총선 후에는 '전국구 공천을 받기 위해 국민회의에 2억원을 줬다'고 말한 사실도 있다."

정의원은 안기부의 모씨로부터 제보받은 것이라고 정보의 신빙성을 강조하고,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안기부는 서면 조사서를 DJ에게 보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참고인 자격으로라도 DJ를 소환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국민회의측은 이에 대해 오씨를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음해'라고 반박, 국감장은 육탄공방 일보직전까지 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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