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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DJ표는 시멘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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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DJ표는 시멘트표"

<손광식의 '1997 비망록'> (39) 이회창 강압한 칼럼

***39. 이회창 강압한 칼럼**

신한국당은 10월10일 김대중총재에게 1백34억원을 준 10개업체의 명단과 내역을 담은 ‘비자금 제2탄’을 공개, DJ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폭로 내용은 이랬다.

91년 5월 (주)대호건설 2억2천만원→평민당.
91년 6월 풍성전기 5억원→김대중총재.
91년 7월 진로그룹 5억원→김대중총재.
91년 9월 대동건설 2억원→김대중총재.
92년 2월 삼성그룹 10억원→김대중총재.
91년 3월 삼성그룹 14억원→김대중총재.
92년 8월 중순 대우그룹 20억원→김대중총재.
92년 10월27일 벽산개발 4억원→김대중총재.
92년 11월 동아건설 62억5천만원→김대중총재.
92년 11월 동현건설 5억원→김대중총재.
93년 5월말 (주)한창 5억원→김흥업 등

강삼재 신한국당 총장은 이외에도 DJ의 큰 처남 이강호씨 명의의 32개 계좌에 90년 12월부터 96년2월까지 37억8천7백만원의 돈이 분산 입금된 바 있다고 밝히면서 이 돈 또한 DJ의 비자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83세의 노인으로 직업이 없는 이씨가 94년 11월24일 하루동안 동화은행 남역삼지점 7개 계좌에 2억2천만원, 서역삼지점 6개 계좌에 1억8천만원등 13개 계좌에 4억원을 입금한 사실이 있다고 밝히면서 이것이 의혹의 한 증거라고 했다.

강삼재는 DJ의 처조카 이형택의 고교동창인 이의돈 명의로도 동화은행 종로 5가 지점에 6억8천4백만원이 입금되었던 사실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의돈(원자력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이에 대해 이형택이 지점장으로 있던 동화은행 방배동지점에 91년 경 5백만원을 입금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계좌가 없다고 말하고 은행측에 전 거래내역에 대해 조회를 요청했다. 그러나 은행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국민회의측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한 마디로 신한국당의 ‘명단’은 괴문서로 규정한다”고 밝히면서 “우리는 그동안 조건 없이 야당을 도와준 기업을 끝까지 보호할 것”이라고 방어벽을 쳤다. 그러면서 92년 YS의 대선자금, 이회창후보의 경선자금을 먼저 밝히라고 역공을 취했다. 물론 이 공세도 방어적인 측면에서 나왔다.

그러는 한편 계속 이들 자료를 만드는데 국가기관이 개입됐다는 의혹을 제기, 측면공세 쪽에 더 중점을 두었다.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은 “지난 10월6일 밤 11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강삼재총장이 모 기관책임자와 만나 조작극을 마지막으로 손질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폭로했다. 박지원 국민회의 총재특보는 청와대의 모 수석이 최근 한 언론인을 만나 "강총장이 터뜨린 것은 94년 내가 수집한 자료인데 신빙성이 없고 내가 모시는 영감도 다칠 것 같아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거들었다. 그리고 국세청, 은행감독원, 대검 조사과 등에서 이형택이 근무한 은행 지점들을 대상으로 94년에서 96년까지 걸쳐 김대중총재 주변 인물들의 계좌를 조사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 측은 결국 ‘강삼재 폭로’는 집권당이 정권 재장악을 위해 만들어 낸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란 것을 계속 부각시키려 했다.

비자금 파문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YS와 청와대 측은 계속 침묵으로 일관했다. 발표를 보고서야 알았으며 ‘당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세간은 이 비자금 폭로의 오리지날이 YS쪽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또다른 차원의 의혹들을 갖고 있었다. 청와대가 ‘모른다’고 한 것은 정확히 말하면 ‘모르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라는 것이 그들의 해석이었다.

조선일보 논설주간 류근일의 10월11일자 칼럼은 그 주말의 여러 글중 가장 관심을 끌었다. 그는 <‘DJ 비자금’의 약효>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DJ비자금’을 폭로한 이유는 꼭 한가지. DJ대통령 당선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가장 핵심적인 사항을 하나를 잊고 있다. DJ는 지금 당선 가능성이 제일 높은 후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이 혹시 지금까지 'DJ 비자금‘이 폭로되지 않아서 그런 줄 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DJ 당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까닭은 바로 DJ를 반대하는 진영의 분열 그것이다. ’DJ 비자금‘ 폭로 아니라 그보다 더한 핵 폭탄을 터뜨린다 해도 그런 분열이 있는 한 DJ는 가만히 앉아서도 횡재를 하게 되어 있다. DJ가 6백70억 아닌 6천7백억을 비자금으로 굴렸다 치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지지해 온 전통적인 ’시멘트 표‘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정권 재창출을 하자니 ’이회창 3위‘가 좀처럼 바뀌지 않고 뒤늦게 후보교체를 거론하는 것은 때가 너무 늦은 데다 체면도 말이 아니고 제1야당을 각오하자니 ’이인제 2위‘가 앞을 떡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3등으로 떨어질 경우엔 당이 아예 풍비박산이 날 판이다.

그것만은 안되겠다....하면서도 뾰족한 묘책은 없다. 그렇다고 이회창씨 본인이 스스로 어떤 살신성인의 결단을 내려줄 성격의 인사도 아니다. 그래서 지금쯤 신한국당 일부는 어쩌면 JP내각제 제의를 그처럼 너무 야박하게 일축한 것을 내심 아쉬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DJ 비자금‘ 폭로는 DJ를 반대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약 65%의 유권자들에겐 별 약효가 없을 것이다. 그 65%는 그런 폭로가 없었더라도 DJ비자금의 존재 가능성을 충분히 짐작해 왔던 터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폭로‘가 있었건 없었건 어차피 DJ에겐 표를 주지 않을 사람들이다. 65% 유권자들은 ’폭로‘를 보고서 “DJ는 역시 그렇고 그런 사람이구나”하는 기존의 확신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한국당이나 반DJ진영 일반은 정권 재창출이란 ’남이 잘못한 덕에‘ 보다는 ’내가 잘한 덕에‘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점은 DJ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긴 하지만..."

류주간의 글은 거리의 많은 정치 분석가들의 공감을 얻어 상당히 열독율을 높였다. 그는 여당세력의 자멸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해 냈지만 글의 스탠스는 오히려 여당편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글에는 본인이 의도했건 안했건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이회창 후보가 살신성인으로 후보를 던져 버리면 돌파구가 있다’는 암시였다. 적어도 65%의 유권자는 반DJ라는 분석이 토대가 되어 그런 암시를 던졌다. 이 분석은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DJ를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가 곧 하나로 통합되는 세력은 아닌 것이다.

어떻든 실패를 만회하려는 신한국당의 ‘비자금 정국’은 여당의 의도대로 되지않았다. DJ를 지지하는 예의 ‘시멘트 표들’이 동요를 보이지 않았음인지 정치자금 문제는 여당이고 야당이고 누가 상대적으로 도덕성이 있느냐 하는 의문에서인지는 몰라도 대선 후보의 지지 흐름에 아무런 변동도 나타내지 못했다. 신한국당에게는 ‘실패가 또다른 실패를 낳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을 뿐이다.

‘비자금 폭로’로 긴장국면과 흐름의 변화 가능성이 나타나리라고 예상했던 기간에 DJ에 대한 지지도는 오히려 약간 상승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전국 3천1백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10월7일에서 11일까지의 단기 유권자 반응에서 김대중후보는 33.4%에서 35.8%로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갔다. 이회창후보는 이와 반대로 오히려 24.0%에서 17.8%로 무려 6.2%포인트나 추락했다. 이인제, 조순, 김종필후보는 약간씩 지지율이 올라가는 반사이익을 얻었다. 10월11일 기준으로 볼 때 김대중후보와 2위 이인제후보의(27.2%) 격차는 8.6%포인트나 벌어져(10월8일 기준 6.8%포인트) 반사이익면에서 DJ는 오히려 이인제후보를 앞서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보였다.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신한국당 진영은 자중지난의 기류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한동대표, 김윤환․김명윤․박찬종고문, 김수한 국회의장, 김덕룡․신상우․서청원 의원등 8명의 중진들은 10월12일 저녁 여의도 63빌딩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비자금 처리가 잘못되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특히 제2탄으로 폭로한 기업명단은 재계의 반발과 경제에 주는 악영향 등으로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여당쪽에서 볼 때 ‘강삼재 폭로전’을 결정한 과정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로 뒤바뀌는 흐름이었다. 특히 이한동대표는 자신이 대표이면서 이 결정에는 반대 입장을 취한 듯한 인상을 전파하려 애써 당 핵심 사이의 분열상마저 드러냈다. 신한국당의 패배는 류근일 주간의 분석처럼 분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볼 때 이미 그동안 너무도 많은 산을 넘어 와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것 같이 보였다.

10월13일 서울지법417호 대볍정. 1백70여석의 방청석은 이미 입추의 여지 없이 꽉 드러차 있었다. 김현철 비리사건의 1심공판은 ‘DJ 비자금’ 폭로가 맞물려 있는 정국의 파란적 흐름도 있어 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손지열부장판사는 판결에 앞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정치의 발길이 법정 문턱을 넘어설 수 없으며 여론의 바람도 법정으로 들어올 수 없다.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이 사건을 심리했다.”

주심판사의 자기변호 같이도 보여지고 권력과 사회에 대한 법의 권위를 선언한 것 같기도 했다. 이날 선고공판에서 김현철 피고인에게는 조세포탈 혐의와 알선수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3년의 실형과 벌금 14억4천만원, 추징금 5억2천4백20만여원이 언도되었다. 전 안기부 운영차장 김기섭 피고인도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및 추징금 1억5천만원을 선고하고 (주)심우대표 박태중 피고인에게는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8억7천만원을 언도했다.

비자금 폭로 이후에도 후보별 지지율이나 사회반응이 별로 개선되지 않아 주춤하고 있던 신한국당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대DJ 총공세를 재개했다. 공세의 선봉에는 이회창후보가 직접 나섰다. 10월13일 이회창후보는 부산기독교 지도자와의 조찬간담회, 울산지역 주요인사와의 오찬간담회에 이어 울산시 지부창당대회에서 한껏 목청을 높였다.

“이번 대선은 단순히 또한번의 대선을 거치는 기분으로 치러서는 안되며 우리는 분명히 혁명적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3김정치의 낡은 행태로는 미래가 없다. 집권당이 한 번 힘을 내기 시작하면 참으로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집권당이 호락호락 정권을 넘겨줄 수 있는가. 자존심도 없는가”고 질타했다. 여당후보로서 대야공세를 적극적으로 펴는 그의 자세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왜 ‘혁명 과업’이란 말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그의 공세의 표적은 비단 정적 DJ만이 아니라 우군의 YS까지도 겨냥하고 있다는 암시였다.

이런 그랜드 시나리오가 드러나서였는지 모르지만 신한국당은 결집하는 흐름인 것 같이 보였다. 한발짝 물러나 있던 박찬종 고문은 이회창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수락했다. 이회창 후보는 곧바로 이한동 대표, 박찬종 고문, 김윤환 고문, 김덕룡 의원 등 공동선대위원장과 굳게 손을 잡은 사진을 찍어 각 언론에 배부했다. ‘혁명과업’의 동지인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때를 같이하여 국회 국감장 법사위에서는 새로운 폭로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신한국당의 송훈석․안상수의원등은 “김대중총재가 87년부터 97년 사이 동화․신한․한일은행 등 18개 금융기관에 차남 김홍업씨등 친.인척 40명과 이수동 아태재단 행정실장 등 측근 인사 명의로 3백42개 계좌에 총3백78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분산, 은닉한 사실이 있다”고 폭로했다. 정형근의원은 “지난 88년 중간평가 유보 때 당시 청와대 박철언 정책보좌관이 김대중 평민당 총재에게 그 결정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2백억원을 줬다는 물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자신이 있던 안기부에서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을 수사할 때 DJ가 문목사에게 건네 준 3백만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김대중총재의 비자금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이같은 명백한 증거들이 신한국당에 의해 제시되고 있는 데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몰아세웠다. 국민회의쪽은 모든 폭로들이 사실무근이며 날조된 것이라고 공박하고 검찰은 국가 유관기관을 통해 이같은 금융거래 비밀을 채집, 조작해 낸 경위부터 조사하라고 응수했다.

파문의 핵심에 몰려있는 DJ는 기자회견을 통해 여당의 대선자금과 이회창후보의 경선자금도 함께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YS와의 단독회담을 제의했다. 적어도 그의 자세는 이날까지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국감장에서도 야당은 검찰의 입장을 옹호하는 쪽이었다.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완전히 전도되는 흐름이었다. 법사위에 ‘저격수’로 긴급 차출된 박상천 총무는 "신한국당도 야당할 생각을 해라. 야당도 해 보니까 보람있더라“고 야유할 정도였다.

그러나 DJ에 대한 지지율이 ‘비자금 폭로’ 이후에도 오히려 상승했다는 배경에서 여유있는 플레이를 하고 있는 국민회의에 야당진영의 또다른 후보인 조순 민주당-통추후보가 기습을 했다. 조순 후보는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부패정치의 기반을 둔 3김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신한국당을 비롯, 이인제지사, 시민단체등 건전한 세력과 힘을 모으겠다고 선언했다. 말할 것도 없이 ’반 DJ연대‘를 시사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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