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사태 오판케 한 숫자들**
MBC TV는 이런 흐름 속에서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를 열었지만 어떤 패널리스트도 한보나 부패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질의를 하지 않았다. 한보사건이나 김현철 게이트가 시간의 흐름 속에 '풍화'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조차도 두달 남짓 후에 있을 대선의 의미와 권력부패라는 심각한 현실문제를 연계 지어내지 못했다.
오직 정치의 초점은 신한국당의 분열과 이회창 흔들기에 모아졌다. 그것도 어떤 정치 윤리나 사회적 공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정사실화하는 쪽의 사실보도 경쟁 뿐이었다. 이회창 후보가 빚은 '병역문제'와 그의 인기하락의 함수는 이미 합법적 선출 절차를 마친 그의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자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공당의 대통령 후보를 갈아치운다는 비민주적이고 비윤리적인 흐름에 어떤 제동도 걸지 않은 채 '경마식 보도'에 열중했다.
정치야 어차피 대선쟁투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겠지만 기아사태가 목에 가시처럼 걸린 경제는 해결은커녕 오히려 악화상태로 들어갔다. 기아측이 전격적으로 '화의신청'을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정부쪽이나 채권은행단은 이 화의신청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어떤 사전 협의도 없이 제출한 것으로 보아 김선홍회장과 노조가 마지막 베팅을 한 것으로 간주했다.
IMF(국제통화기금).IBRD(세계은행) 연차총회 참석차 홍콩에 머물고 있었던 강경식 부총리는 그런 식으로는 문제해결이 안되고 화의신청이 떨어지더라도 기아나 협력업체에 대한 추가 금융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압박을 가했다. 기아측도 지지 않을세라 이런 정부태도는 법정관리로 떨어뜨려 제3자에게 기아를 넘기려는 음모의 연장이라고 버티었다. 정치건 경제건 세력들의 줄다리기 계절이었다. 그렇다고 승패가 갈리는 것은 없고 오히려 분파적 현상만이 불거져 나오는 것이 특질이라면 특질처럼 되어버렸다.
가치기준이나 판단에 일반인들도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대선에서 누구를 찍어야 하느냐는 우문 아닌 우문은 모든 모임의 화두이자 결론없는 마무리였고 이런 흐름으로 해서 사회적 부정심리는 더욱 확산되는 터였다.
왔다갔다하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시장경제에 모두 동의,합의한 것처럼 되어있었지만 그 원칙에 대한 신념은 그렇지도 않았다. 예를 들면 환율같은 것에 대한 견해가 그랬다. 이미 9백원대를 지난지 오랜 환율은 매일같이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시장개입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 전혀 상반되는 주장을 내놓곤 했다. 9월26일자 같은 날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환율에 대한 시장개입은 자제되어야 한다'로 주장했는가 하면, 조선일보는 중앙은행의 강력한 정책의지와 시장에서의 기능강화를 역설했다.
'갈등의 계절'에서 가끔씩 뿌리는 시원한 소낙비가 있었다. 스포츠였다. 8월에서 9월 하순까지는 박찬호였다. 현지교민은 물론 고국의 사람들마져 그야말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때로는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지만 기죽지 않은 그의 투구는 환희의 도가니로 몰아넣곤 했다. 그가 소속한 LA다저스 팀은 어느 샌가 '우리 팀'같은 자리매김을 할 정도였다.
9월의 마지막 주말은 축구열기로 고조되었다. 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진출의 중요관문인 한․일전이 일본 도쿄에서 열리게 되자 매스컴의 선동도 있었지만 양국 사이의 감성적 흐름도 있어 뜨겁게 달아올랐다. DJ․김윤환․박태준같은 정치거물들도 참관을 위해 도쿄 현지로 날아갔다. 저마다 정치적 계산과 유권자를 의식한 것은 물론이다.
남북관계나 북한 사정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이벤트가 있었다. 하나는 김정일이 당총비서직에 추대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우의 김우중․정희자 회장 부부가 추석때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이벤트는 제한된 정보 때문에 크게 이슈화되지는 못했다.
김우중회장은 9월25일 청와대로 YS를 방문, 방북내용에 대해 보고를 했지만 청와대측은 어떤 정치적 해석도 하지말라고 했다. 김우중의 방북은 남포공단을 방문하여 남북 최초의 합작회사인 '민족산업총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협의했을 따름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정치권은 김회장이 남북의 현안문제에 대한 밀사로서 북에 간 것이 아니냐는 탐색들을 했다.
경향신문의 김상택 화백은 DJ가 '혹시나....'하는 의심을 가지고 이회창후보의 경기고등학교 후배인 김우중회장이 그를 도우려 북에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는 만평을 그렸다.
9월28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한일예선전에서 한국팀은 일본팀에 2대1로 역전승했다. 전 매스컴은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기류속에 사회적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있는 시기에 일어난 이벤트인지라 일제히 흥분했다.
"한국축구 일본열도를 침묵 시키다."
"한국축구 일본열도 울렸다."
"축구 도쿄대첩."
신문의 헤드라인은 흥분을 하고 TV는 이 감격적인 드라마를 여러 차례에 걸쳐 재방송했다. "하면 된다"는 구호가 다시 부활되어 나왔으며 국가적 위기도 축구처럼 하나로 뭉쳐 뚫고 나가자는 켐페인 마져 벌어질 정도였다.
'역전승'의 메시지가 용기를 주었음인지 이회창후보는 "후보사퇴는 있을 수 없고 소신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목청을 높였고 이 경기에 김대중후보가 참관한 바 있는 국민회의쪽은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예감이라고 기세를 돋구었다.
그러나 정운경화백은 중앙일보 만화에서 환희작약하는 선수들 옆에 DJ의 얼굴을 그려 넣어 한판 잔치에 '젓가락' 들고 나온 것으로 꼬집었다. 그러나 이 만화는 DJ의 의표를 찝어내지 못했다. 정운경화백의 4컷 짜리 만화의 마지막 장면은 TJ(박태준)와 어깨동무하고 춤추는 걸 그렸어야 했다. '축구 대첩'이 있던 다음날 도쿄 데이고쿠 호텔에서 두 사람은 조찬회동을 갖고 정치적 협력을 다짐한 것이다.
DJ로서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10%선으로 올라서 있다는 자신에 대한 영남 지지율을 더 이상 파고 들어가 대세 굳히기를 하자는 것과 JP에 대한 압력이었다. TJ는 이 회동에서 협력을 시사했으며 이에 따라 정국의 변수는 신한국당의 전당대회와 맞물려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한국당의 전당대회는 이회창 후보가 YS가 내놓은 총재직을 받아 당권의 헤게머니를 장악하게 되는 이벤트였다. 이를 계기로 그가 당의 통합을 이뤄낸다면 전세는 새로운 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가 주변의 일반적 해석이었다.
기아사태는 부도유예협약이 9월29일로 만료되었으나 화의냐, 법정관리냐의 줄다리기 속에서 노조가 시한부 파업에 들어가 혼미상태를 거듭했다. 이에 따라 기아협력사들은 무더기 도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경기회복과 경상적자 폭의 감소가 나타타기 시작한 것. 통계청은 7개월 후의 경기상황을 알려주는 경기선행 지수가 6개월째 연속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어 경기는 바닥을 지나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발표했다. 8월중의 산업생산도 반도체-선박-화학제품을 중심으로 회복, 96년 8월에 비해 8.6%가 상승했다고 밝혔다. 경상수지 적자 폭도 무역수지가 2개월만에 다시 흑자로 돌아서 8월중 7억1천만달러에 그쳤다. 96년 같은달 적자폭은 36억2천만달러였다. 8월 말까지의 경상적자 누계는 1백18억3천만달러, 96년 보다 39억4천만달러가 줄어들었다.
언론은 경제의 수치는 좋아지고 있다지만 실제 체감경기는 아직도 냉냉하다고 이 통계에 회의감을 나타냈다. 어떻든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심리적 지구전에 이 지표들은 약간의 불안심리를 해소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축구의 대일 승전보, 산업생산의 회복세, 국제수지 적자 축소등 이른바 복합호재로 9월을 마감하는 '예감'은 주가에서 나타났다. 9월의 마지막 날 종합주가지수는 무려 22포인트나 급반등했다.
같은날. 대구 실내체육관에서는 신한국당의 이회창후보가 주가 만회를 위한 이벤트의 기회를 잡았다. 전당대회에서 김영삼대통령으로부터 총재직을 이양받은 것이다. 신한국당의 총재로 취임하면서 그는 '3김 청산'과 '국가대혁신'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한동고문이 새 대표로 선출되었고 YS는 고별연설을 했다. 그러나 YS는 이회창후보에 대한 격려와 그의 당선을 위한 당원의 지지나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당을 뛰쳐나간 이인제지사에 대해서는 말을 의도적으로 아꼈다. 그보다는 자신의 개혁로선에 대한 업적과 감회에 연설내용의 중심을 잡았다.
이를 두고 언론은 YS의 '양 심(兩心)'이 아닌가 의문들을 던졌다. 어떻든 YS는 자신이 경선때부터 노태우에게 강요했던 그 방식이 부메랑이 되어 오는 걸 느끼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선택조차도 노씨가 취했던 '중립' '공정 선거관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회창 후보로서는 이날 전당대회가 주가를 부양시키기 위한 찬스임에는 틀림없었다. 당권을 장악함으로써 당내의 헤게머니를 장악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른바 지지도에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있기에 그러했다. 동아일보의 여론조사에서 그런 최초의 반응이 나타났다.
당일날 하오 한길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회창후보는 이제까지의 3위 고착에서 이인제를 누르고 박빙이나마 2위로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역시 1위는 김대중후보(30.2%), 2위 이회창후보(16.7%), 3위 이인제후보(16.5%), 4위 조순후보(7.2%), 5위 김종필후보(2.4%) 그리고 노동계와 시민운동 그룹의 지지를 받고 대권 레이스에 뛰어든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은 6위(0.8%)로 나타났다. 1위를 달리고 있는 김대중후보는 지지세가 약간 늘었고 이인제후보 지지도는 두 주일 만에 7%포인트이상이나 떨어지는 급락세를 보여주었다.
10월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며 등장한 것은 '미국문제'였다. 한미 양국은 무역상에 야기되는 마찰로 대립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교역상의 문제는 항례적인 것이라 할수 있지만 10월에 등장한 '마찰'은 미국의 일방적 압력뿐 아니라 한국쪽도 미국의 수출품에 대한 비관세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워싱턴쪽의 관심 품목도 이제는 섬유가 아니라 자동차가 되었다.
한국은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O-157이라는 박테리아 균을 발견하고 미국산 쇠고기 경계령을 내렸다. 한국 소비자들은 수입 쇠고기점 근처에서 멀어졌으며 장사를 하는 정육점 주인들도 자진해서 미국 쇠고기 반입을 거절하고 나섰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국측은 자동차에 대한 수출을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한 여건 개선을 한국측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의 슈퍼 301조를 발동했다. 국내에서는 '대선전쟁'이 진행되고 밖으로는 미국과의 '통상전쟁'이 전개되는 내․외압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한미간의 무역전투는 미국산과일에 대한 긴급 금수조치가 발동됨으로서 긴장수준이 높아지고 있었다. 농림부 산하 국립식물검역소는 10월 9일 오랜지 자몽등 9종의 미국과일에 대해 이같이 조치했는데, 미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해충인 지중해 파리가 발견되었다는 주한 미국 검역관의 통고에 따라 취해진 조치였다. 한편 미국의 USA 투데이지는 "미국은 올해 1월부터 육류에 대한 세균 검사기준을 강화했지만 대부분의 도축장이나 가공공장에서 병원성 대장균 O-157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태진전이 확대될 수 있는 요인들이었다. 그러나 여․야의 '비자금 전투'에 압도되어 작은 흐름으로 밀려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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