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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에게 세번 연속 물 먹인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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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에게 세번 연속 물 먹인 YS

<손광식의 '1997 비망록'> (36) YS의 이회창 딴지걸기

***36. YS의 이회창 딴지걸기**

기아문제가 지리멸렬하고 있는 가운데 부총리 강경식은 "부도유예협약을 폐지하거나 부분보완, 법제화까지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하겠다"고 중대발언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도유예 협약을 예찬해 왔던 당사자의 입에서 이런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이 나온 것을 두고 경제계는 어리둥절했다.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두가지였다.

첫 번째는 기아가 협약을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로.대농 때만 하더라도 협약의 강점이 잘 발휘되고 있었으나 기아의 경우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윤증현 금융정책실장은 "협약이 기아측에 의해 철저히 농락당하고 있다"고 했다. 채권단의 요구는 무시한 채 국민경제를 볼모로 정치게임을 하고 있다는 시각이었다.

두 번째는 금융계가 기아사태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뒤이어 강만수 재경원차관은 기아가 경영권포기등 채권단 요구를 거부할 경우 부도처리를 한 후 법정관리로 넘길 것이라고 강경한 처리방향을 다시 발표했다.

경제계와 언론계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정부의 방향선회는 기아를 압박하기 위한 '엄포'라는 해석이 등장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랴는 심시로 강부총리가 '칼집'을 두드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기아측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물론이지만 동이일보가 이를 강력하게 대변했다. <넉달도 못넘기는 경제정책>이라는 제하에 사설을 내 보내고 뒤이어 '강경식부총리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8월30일자의 이 사설 내용.

"강부총리의 리더십과 위기관리능력 부족은 기아사태 처리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금융혼란과 외환불안을 가져온 기아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감정싸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기아에도 문제가 있지만 자동차산업의 과잉중복투자를 부추긴 삼성의 승용차사업 진출에 앞장 선 장본인이 강부총리라는 점이 기아문제 해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삼성의 기아인수 음모설과 그 뒤에 강부총리가 있다는 재계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는 사태수습의 적임자가 아닌 것 같다. 현실에 맞지도 않는 교과서적인 시장원리에 집착하는 한 현 경제팀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강부총리를 포함한 경제팀의 교체는 빠를수록 좋다."

질타를 당한 강경식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반박했다.

"그런 이야기는 소모적인 논란만 가중시킨다. 국가경제를 운용하는 부총리로서 그런 차원의 발상을 할 수 있겠는가. 부총리에 대해 그 정도도 신뢰하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모전은 갈 데까지 간 지 오래였다. 이런 흐름으로 또한번 치명타를 얻어맞은 것은 증권시장. 환율인상에다 부도유예협약 수정까지 겹치자 주가는 힘없이 주저앉아 7백선이 맥없이 무너졌다.

대선판도도 대혼란이 가속화되었다. 예정된 수순이긴 하지만 조순 서울시장이 정식으로 민주당에 입당, 본격적으로 대통령출마에 시동을 걸었다. 계속 김대중후보와 장외인기 다툼을 벌이고 있던 이인제 경기지사는 YS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대선 출마의 안개를 피웠다. 여기다가 보수연합론까지 나와 정계개편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선여론조사는 여러 가지 가정을 앞세워 진행됨으로서 주도적인 흐름을 짚어내기는커녕 유권자나 각후보의 대선 캠프에 혼란만을 가중시켰다. 압도적이었던 이회창후보의 지지율은 '병역시비'이후 급속히 하락하더니 2위권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있었다. 급기야 이후보는 '대통합 정치론'을 들고 나왔다.

"계파와 정파를 다 떠나서 우리당(신한국당)이 앞장서 국민회의와 통추, 자민련 민주당 할 것 없이 모든 정파에서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통합의 정치를 열어 나가겠다."

기아사태와 대선 혼전은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이 교통사고로 파리에서 사망하자 잠시 쉼표를 찍었다. 모든 매체가 9월 첫날의 관심사를 이 '비운의 여인'에게 몰아갔지만 '거리의 논객들'은 대선흐름을 놓고 열을 올렸다. 이회창은? 이인제는? 조순은? 김대중은? 김종필은? 박찬종, 이한동, 이수성은?

이미 신선도는 떨어졌지만 전. 노 두 전직대통령의 사면문제는 역사의 측면에서나 법의 측면에서나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까지의 기류로는 '사면'에 대해 시기상조론이 지배해 왔다. 그런데 9월초 이 문제가 돌연 표면으로 부상했다. 이회창 캠프에서 사면건의를 김대통령에게 한다는 예고 기사를 흘려 언론이 다투어 대서특필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DJ는 "전. 노씨가 사과하지 않더라도 먼저 용서하는 차원에서 사면을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에드발룬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띄웠다. 정치적 소외를 당하고 있던 TK세력을 겨냥했음이 분명했다.

여당으로서는 아킬레스건 같은 이 문제에 DJ가 물꼬를 터 주자 즉각적으로 당의 방침을 의제하여 언론을 유인했다. 한 방송의 시사토크 쇼에서 그 과정이 밝혀졌다. 이른바 이회창캠프의 7인 멤버가 긴급회의를 가진 후 유력지 기자들을 하나씩 따로 불러 '사면' 정보를 은밀하게 전파한 것이다. 바로 특종경쟁을 이용한 것이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전. 노 두 대통령의 사면문제는 공론화되어 버렸다. 더욱이 그 시기를 추석 전으로 못박고 이회창후보가 청와대에 당무보고를 할 때 이를 건의한다는 시나리오까지 세워 놓아 상당히 감각적인 뉴스가 되었다.

즉각 재야와 시민단체 그리고 광주 시민쪽은 반발했다. 정략적 사면은 오히려 국민저항을 부를 것이라고 공격했다. 언론도 비판적인 논조로 대응했다. 그러나 논조들은 시기가 문제이고 정략적인 접근이 문제이지 '언젠가는 풀어야 할 매듭'이라고 일보 전진했다. 지극히 미묘한 흐름이었다. 이들 시각에는 전직 대통령을 잡아 넣었다는 국가체면론이 깔려 있었지만 국가체면은 불법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을 철저히 응징함으로서 고양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이미 기울어진 유권자 지지를 물리적 해결방식으로라도 끌어 올려보자는 여당의 발상에서 비롯되었음이 여실했다. 물론 DJ쪽도 한 번은 여당에 의해 이용될 이 카드에 미리 침을 발라놓겠다는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전․노 두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든 '공론화'라는 잡기 힘든 카드를 잡아낸 셈이었다.

한편 경제쪽에서는 기아사태 이후 자금줄이 막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러시가 일어났다. 더욱이 추석 대목을 앞둔 터여서 자금난은 심각했다. 9월중에 소화를 희망하는 회사채의 발행 신청액은 3조9천8백억원에 달했는데, 이는 8월달의 2조8천5백억원에 비해 39.5%나 늘어난 수준이었다. 자연 소화촉진을 위해 금리가 오르게 되고 주가는 곤두박질을 쳤다.

12월의 대선을 앞에 놓고 정치기류가 전면을 뒤덮었지만 경제논리는 국민정서라는 비경제적 요소가 약화되고 인수합병등 시장원리가 되살아났다. 신동방그룹과 성원그룹은 주식 맞바꾸기 계약을 통해 계열기업군을 재정비했다.

신동방그룹은 계열사인 대한종금이 보유하고 있는 코코스 주식 1백만주를 3백59억원에 인수하는 한편 코리아헤랄드. 내외경제신문 주식 3백86만2천주(42.53%)는 일단 인수계약을 맺고 매매대금은 자산실사후 결정하기로 했다. 대신 신동방그룹은 (주)신동방등 계열 7개사가 갖고 있는 동방페레그린증권 주식 8백31만6천주(51.97%)를 성원그룹에 넘겨주기로 했다. 대농그룹은 6월 부도유예 협약이 적용된 후 자구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성원그룹 계열 대한종금으로부터 4백40억원을 빌렸고 코리아헤럴드. 내외경제신문등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바 있었다. 신동방그룹과 성원그룹은 연초 대농그룹 계열사인 (주)미도파를 기업 인수합병(M&A) 방식으로 인수하려 했으나, 현대. 삼성등 대기업들이 대농그룹 지원을 선언하고 나서 성원그룹이 사들였던 미도파 주식을 대농측에 다시 넘겨 인수가 무산된바 있었다. 바로 적대적 M&A가 실패한 케이스였다.

결국 신동방그룹은 내외경제의 주인이 되어 신문업계에 진출하는 동시에 외식 체인업체인 코코스의 새주인이 되었고, 성원그룹은 대한종금과 성원파이낸스.할부금융. 창업투자사등 기존 계열사와 함께 동방페레그린증권을 묶어 종합금융그룹이 되었다.

뉴스전문 케이블방송 YTN의 주인도 바뀌었다. 한전 자회사인 한전정보네트웍은 연합통신이 보유하고 있던 YTN주식 90만주(지분율 30%) 전량을 인수키로 연통측과 계약을 맺었다. 지난 96년 자본금 3백억원으로 출범한 YTN은 96년 2백87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5백21억원의 누적 적자로 인해 경영난을 겪어 왔다.

이들 기업체의 주인 바꾸기보다도 경제계의 관심을 끈 것은 삼성의 해외자동차 인수 추진이었다. 임경춘 삼성자동차 부회장은 9월2일 부산공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2005년 경에는 국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한 뒤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삼성은 이런 전망 아래 해외 자동차업체를 인수, 경쟁력을 조기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고 밝혔다. 항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삼성의 기아인수로부터 경영전략을 대폭 선회한 것인지 외곽을 치고 나오는 전략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기존 자동차 3사는 아직 대상 해외자동차회사의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은 점을 감안해 보면 이는 기아의 삼성인수를 부정적으로 보아온 일부 여론에 대한 국면전환용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이 발표가 있자 정부는 '기아그룹 해체를 검토하고 있다'고 언론에 흘렸다. 아시아자동차를 포함한 27개 계열사는 채권은행의 판단에 따라 제3자에게 넘긴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고위당국자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했다. 이에 뒤이어 부총리 강경식은 '대마불사 신화 붕괴론'을 폈다. 그는 9월5일 인하대학 경영대학원 강연에서 "기업들이 덩치만 크면 정부가 망하지 못하게 할 것이란 대마불사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기업의 부도는 스스로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같은 '대마불사 붕괴론'은 기아를 염두에 둔 발언이 분명했다. 공세적 주도권을 잡으려는 흐름의 변화였다. 정치쪽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YS는 주도권을 잡고 이회창의 공세적 제스처를 한방에 날렸다. 이회창후보측에 의해 제기된 '전․노 추석전 사면'을 즉각 거부함으로서 범여당 진영의 '각개 약진'기류를 더욱 촉진시켰다. 청와대쪽에 의해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나오자 이회창후보는 9월2일 밤 김대통령에게 긴급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이대표가 국민화합 차원에서 조기사면을 건의하기로 했던 일면은 이해가 가기도 하나,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일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못박았다. 그는 전.노의 사면은 자신의 임기중 적정한 시기에 처리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결국 이회창후보에 의한 당과 주도 세력 장악, 그리고 시국주도 시나리오는 세 번째로 좌절되었다.

그 첫 번째는 총재직 조기이양, 두 번째는 당 정강정책 변경, 그리고 세 번째가 '전노사면' 시도였다. 이회창후보의 추락하는 인기와 당 결속의 실패로 신한국당은 그야말로 새로운 정치적 코마(마비) 상태에 들어갔다. 후보교체론이 공공연히 등장하는가 하면 이 기류를 타고 경기지사 이인제는 '탈당불사 출마'의 기세를 더욱 높였다. YS는 공식적으로 이회창후보를 지지하고 당의 결속을 강조했지만 스스로 정권재창출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전.노 사면'은 역사와 국민의 문제이지만 권력의 헤게머니를 누가 장악하면서 끌고 나가는냐는 미묘한 정치적 역학관계도 걸려있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 파동의 진정용으로 신한국당의 당직 일부가 개편되었다. 하순봉 비서실장이 자리를 물러나고 김윤환고문의 측근인 윤원중의원이 그 자리에 앉았다. 강재섭총무는 대표 정치특보로 뒤로 빠지고 원내총무 자리는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 목요상의원이 새로 맡았다.

그렇지 않아도 위기에 처한 신한국당의 이같은 내분파동은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파장은 베트남여객기 추락사고로 충격의 파장이 확대되지 않았다.

9월3일 오후1시40분 베트남 여객기 한대가 프놈펜 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중 추락했다. 희생자 가운데 21명이 한국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괌 참사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쇼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사건인 데다가 생생한 TV화면으로 해서 충격파는 컸다. 자연 '전.노사면 파동'은 뒷전으로 밀렸다. '전.노 사면파동'과 관련하여 물을 먹은 사람은 이회창후보였지만 귀책문제에서 언론은 YS를 물고 들어간 점이 흥미로웠다.

"나랏 일에는 그보다 몇십배 몇백배 더 힘겨운 것이 태산처럼 쌓여있는데 그렇다면 그런 일에서는 당총재와 당대표가 아예 전쟁이라도 치를까 두렵다. 지금같은 처지로는 신한국당이 국정주도 세력으로서의 초보적인 논의 절차조차도 갖추지 못한 셈이며 그런 허술함이 나라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적잖이 불안해진다.

이대표는 김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순조로운 이행이 가능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할 것이고, 김대통령은 '물려줄 사람'으로서의 허심탄회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틀어쥐겠다는 의지도 마음을 비우는 느긋함에 바탕해야만 보기가 좋다. 격하게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것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억제할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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