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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이회창, 신한국당의 '후보교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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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위기의 이회창, 신한국당의 '후보교체론'

<손광식의 '1997 비망록'> (34) 정권 재창출 적신호

***34. 정권 재창출 적신호**

이런 와중에서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은 카드 한 장을 던졌다. 강화된 기업인수합병 기준이었다. 현대-대우-기아의 연합전선은 이 카드가 삼성의 기아인수를 지원하기 위한 속셈이 깔려있다고 공격했다. 새로 내 놓은 M&A(기업 인수합병) 심사기준은 현행 1개사의 시장점유율 50%이상, 3개사의 점유율 75%이상인 경우 합병 인수를 규제하도록 되어있는 것을 40%와 60%로 각각 내려 놓았다. 현대나 대우가 기아를 합병한다고 보면 이 새로운 기준은 현실적으로 모두 '진입 금지선'이 된다는 것이 규정 강회에 숨어있는 '음모'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거래위는 현재의 기준으로만도 현대나 대우의 기아합병은 '금지선'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논리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자동차 3사의 시장점유율은 현대 46.5%, 대우 13.8%, 기아 28.6%로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별도법인으로 둔 채 주식을 인수할 경우 현행규정상으로는 상위 3개사 시장점유율 75% 조항에만 저촉되지만 새 규정에서는 1개사 점유율 기준과 3개사 점유율 (88.9%) 기준에 모두 저촉되고 대우도 3개사 점유율을 초과하게 된다.

정치권이 '조순 바람'에 비상이 걸린 것과 때를 같이 하여 경제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드디어 해외자본조달에서 황색경보가 울린 것이다. 비교적 신용도가 높았던 국책은행까지 해외차입에 제동이 걸렸다.

중소기업은행은 미국의 단기시장에서 2억5천만달러의 CP(기업어음)를 발행키로 했으나 절반 정도만 소화되었다. 산업은행은 8월말까지 9억달러의 CP가 만기가 되는데 금리가 0.07%-0.08%포인트 올라 차환발행을 연기하거나 그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수출입은행도 CP시장에서 금리를 높여 투자자들과 접촉했으나 인수자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한보 기아사태의 여파로 국내은행의 신용도가 떨어지고 그 연장선상에서 국가신용도마저 동반 추락하고 있는데 따른 현상이었다.

결국 한보에게 물린 제일은행의 국제신용도가 추락하고 거기에 묻어서 국가신용도가 동반 추락하고 국가가 후견인으로 있는 국책금융기관이 함께 얻어맞는 '금융도미노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는 한보가 아니라 제일은행을 살리기에 바쁜 상황이 되었다. 급기야 한국은행은 2조원의 특융을 제일은행에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은행도 자구노력이 만족할만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내세웠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 세력들이 만신창이로 만든 그 은행이 이제 그 뒷책임까지 떠맡지 않으면 안되게 된 아이러니였다.

아들의 '병역문제'로 코너에 몰려있던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돌연 소하리의 기아공장을 방문, 기아의 회생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해 기아사태의 기류가 바뀌는듯 했다. '병역정국'도 벗어나고 여당후보로서의 이니셔티브도 잡으며 '경제대통령'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주려는 이 시도는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목적이야 어떻든 정치권력의 개입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반응은 시원치가 않았다. 더욱이 떨어지는 그의 인기, '조순바람'의 등장, 그리고 정치 프로세력들의 비판과 견제가 뒤엉켜 그의 '기아회생'이라는 카드는 먹혀들지가 않았다. 다만 새로운 이슈를 던짐으로 해서 묵은 이슈가 희석된다는 '시류의 법칙'에 따라 병역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정작 '병역문제'를 덮어버린 것은 다른 방향에서 불어닥친 바람이었다. 그 하나는 천도교의 전교령 오익제가 월북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신한국당 김윤환고문의 '잠재적 정치노선 변신'이었다.

오익제는 국민회의의 상임고문을 맡았던 적이 있어 자연 DJ에 대한 공격의 자료가 되었다. 신한국당의 구범회 대변인은 "오씨를 김대중씨에게 소개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중심으로한 친북 비밀지하조직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오의 배후를 밝힐 것을 국민회의측에 촉구했다. 이사철 신한국당 대변인은 "오씨는 불과 수일 전까지만도 국민회의 당무회의에 상임고문 자격으로 참석을 요청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서 DJ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 인물들의 사상검증이 필요하다고 공박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측은 오는 평통 상임위원으로 김영삼대통령의 통일문제 고문직을 5년째 수행하던 인물인데 그의 배경이나 월북을 신한국당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응수했다.

오의 월북 사실보다도 '색깔 논쟁'이 초점이 되었다. 더욱이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황장엽 리스트'를 내사하는중에 일어났다는 추정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잠재성을 지닌 '북풍'이 되었다.

'김윤환 파문'의 경위는 이랬다. 김고문은 8월14일 오후 3시쯤 여의도 사무실에서 일본 아사히신문의 서울지국장을 지낸 고바야시 게이찌 야하다 대학 교수의 예방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대통령선거에 따른 여러 가지 견해들을 주고 받았다. 그날밤 동아일보의 이낙연(현 민주당대변인) 기자는 한 아파트에서 고바야시교수를 만났다. 그리고 김윤환고문이 말한 내용을 입수했다. 이 내용이 8월16일 동아일보의 1면 톱으로 대서특필되었다. 보도의 내용은 이랬다.

"김윤환씨 '조순지원'을 모색중. 이회창씨의 이미지 변질로 대선 승산이 희박하다고 본 데 따른 듯 하며 본인은 신한국당의 탈당까지 염두에 둔 것 같다."

이미 미국으로 출국한 김고문은 이 기사가 파문을 일으키자 '그것은 와전된 것'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이런 파장까지도 계산한 '저울질'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저런 새로운 국면은 '병역의혹'을 자연스럽게 덮어 갔다. 물론 병역문제가 세론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8월17일 밤 MBC의 추적프로 <2580>은 사회지도층과 그 자녀들에 대한 병역면제 현황을 집중보도했다. 국회의원 4명중 1명이 군대에 갔다오지 않았으며 자녀들의 입영률도 일반인보다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마도 프로작성 취지는 사회지도층일수록 병역기피의 개연성이 높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가진자의 도덕적 책무)'를 강조하고자 하는 데 있었던 것 같았다. 과연 그 많은 사회지도층이 정당하게 병역면제가 되었느냐 하는 의구심과 그것을 밝히는 '추적 속의 추적'을 불러일으킬만 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다른 한편 '병역면제'가 특권계층에게는 보편화된 현상이라는 인식을 전파함으로서 '병역정국'이라는 예민한 사회적 기류로부터 이회창후보가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케 했다. 더욱이 뒤이어 조순시장의 세 아들도 병역면제가 된 사실이 밝혀져 '병가지상사'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보도들은 '드러내면서 감추는' 권력의 문법에 이용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결과로 볼 때는 아주 미묘한 언론의 역기능이었다.

'병역정국'에서는 회생하게 되었지만 이회창후보는 표를 잃었다. 여러 가지 변수들, 예컨대 양김과의 3인대결에서 조순. 이인제. 박찬종까지 몽땅 출마하는 '춘추전국형'이 되더라도 이회창후보는 이제까지 여유있게 달리던 선두자리를 내어주는 것으로 여론조사는 바뀌었다.

대선기류는 오익제의 월북으로 야당쪽에 역풍을 몰아왔다. 신한국당의 의지가 그런 것인지, 공안당국의 방향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상당수 정치인을 포함한 '황리스트'를 자료로 하여 대통령선거 전에 공개수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1면 머릿기사로 대서특필했다. 물론 소스는 여권의 고위관계자로 되어 있었다. 신한국당은 때를 같이 하여 DJ를 향해 '친북 컨넥션 8대 의혹'이라는 문건을 애드벌룬으로 띄웠다. '병역정국'의 수세에서 공세적 이니셔티브를 잡자는 의도가 분명했다. 무엇인가 안기부와 여당 사이에 교신이 이루어지고 있는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북풍파장'은 과거의 정치변혁기, 특히 정권교체기에 있어 여당에게 재집권을 만들어 준 전례에 비추어 확실히 신한국당의 호재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이번 '북풍'은 동해안의 한 항구를 떠나는 한 척의 배로 상징되는 '남풍'에 의해 한랭전선을 형성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8월18일 KEDO(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대표단 81명이 탄 한국해양대학실습선 한나라호가 북한의 함남 신포 인근 양화부두를 향해 동해항구를 떠난 것이다. 이 배에는 장선섭 경수로기획단장, 스티븐 보스워스 KEDO 사무총장, 한전. 현대건설. 동아건설. (주)대우. 한국중공업의 합동 시공단과 27명의 기자들이 타고 있었다. 제네바 합의 이후 34개월만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남북교류였다.

같은 시기에 북한 금호지구의 경수로 원전건설 현장에서 한국전력 본사로 최초의 우편물이 도착했다. 금호지구에 상주하고 있는 박영철본부장이 이종훈한전사장에게 보낸 안부편지와 공문이었다. 이 우편물은 경수로부지 안의 금호우체국-평양우체국-중국 북경우체국-서울우체국의 경로를 거쳤으며 12일이 걸렸다. 박본부장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래도 굳게 닫힌 벽의 한 부분이 열렸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남북교류 속의 메카시선풍, 그것은 확실히 밸런스가 잡히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정치공작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풍비박산이 된 한보는 산하 업체중 한보건설 하나를 건져냈다. 서울지법 민사합의 50부의 이규홍부장판사는 제3자 인수가 결정된 한보건설에 대해 법정관리 결정을 내렸다. 재산실사를 해 본 결과 지급보증도 많지 않고 영업상황도 양호해 회생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어 법정관리가 결정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한보의 재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태수는 재판정에서 '회생'의 모습을 보였다.

이날 서울고법형사4부 황인행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한보사건 항소심 2차 공판에서 그는 4개월간의 '실어'상태를 깨고 입을 열어 검사와 설전을 벌이는가하면 정치인들에게 건낸 돈의 대가성을 시인하는등 공격적인 증언을 했다.

그는 황병태피고인에게 준 2억원은 산업은행으로부터 5백억원을 대출받은 데 대한 사례금이며, 3천억원 대출건이 성사되면 5억원을 황씨의 지구당내 예천전문대 출연기금으로 내놓겠다고 약속했었다고 밝혔다. 홍인길에게 준 10억원도 적기에 대출해 달라고 부탁하며 준 돈이라고 말하고, 권노갑피고가 구치소에서 '당신은 무죄'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 달라고 하자 "내가 그렇게 말했어도 무죄 여부는 법관이 판단할 일"이라고 했다.

특히 정태수는 한보의 부도는 그 이후의 대농․진로․기아에 비추어 '유예처분'이 생략된 채 전격적으로 처리된 걸 보면 정치권의 숨은 의도(제3자 인수)가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몰아갔다. 그는 검찰이 잠을 안재우는 등 가혹하게 자신을 다루어 검찰조서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인정했었다고 해 피의자의 인권문제까지 끌고 나왔다.

워낙 정치적 계절인 데다가 정씨 자신이 정상배적 기질이 강했으므로 '자물통'을 연 그의 법정증언은 정치적 해석을 끌어 내었다. 수서사건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1백50억원을 준 사실을 끝끝내 감추어 주었던 그가 공격적인 자세로 나오는 것은 '최후의 흥정'이나 모종의 '폭탄선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들이었다.

그러나 한보사건은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했다. 8월19일과 20일 연이어 열린 서울지방법원의 정치인 관련 재판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공판정에 증인으로 나온 문정수 부산시장의 형 문정덕은 돈을 준 한보의 김종국사장도, 함께 동행했던 여지리(주)한보 부산제강소장도 본 적이 없고 그들이 주장하는 시간에 문시장은 집에 있지도 않았다고 2억원의 자금수수 자체를 부인했다.

다음날 열린 재판에서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정태영․김옥천․박희부 전 의원에 대한 증인심문이 있었으나 피고인측은 한결같이 뇌물성을 부인했고 검찰측 증인들은 국감질의 무마용으로 돈을 건넸음을 증언했다. 이 공판과정은 신문에 1단으로 보도되었거나 아예 보도되지도 않았다.

여야의 '메카시 공방'은 계속되었다. 특히 신한국당의 강삼재총장은 이른바 '황파일'을 배경으로 오익제의 월북과 국민회의 및 DJ의 관련여부를 걸고 대야공세에 앞장을 섰고, 안기부 출신의 정형근의원은 "DJ가 오의 월북을 사전인지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오를 통해 북의 자금이 유입되었을 수도 있다"고 뇌관에 불을 붙였다. '서경원 사건' '이선실 사건'이 다시 묻어 나왔고 DJ는 해방후 공산주의자의 혐의를 받고 미 해군함정에 잡혀간 일이 있다는 폭로에 미국측의 이례적인 부인성명이 나오기까지 했다.

야당측은 이 공세를 맞받아 오씨 월북은 안기부의 정치공작이라고 계속 비난하는 한편, 당차원의 고소. 고발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안기부는 야당측의 공세에 대해 '국가기관에 대한 음해'로 응수하는 한편, 여당에 대해서도 마치 '황파일'에 의해 대대적인 '정치인 토벌'이 있을 것처럼 전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권영해 안기부장이 직접 나서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황풍' '오풍'그리고 '메카시 선풍'은 신문지상을 요란하게 뒤덮고 하루에도 양측에서 몇차례씩이나 성명서를 발표할 정도였지만 어디까지나 '정치집안들'의 관심사일 뿐이었다. 이미 그런 정치적 공방의 내막을 뻔히 유권자들은 꿰뚫고 있었으며 야당의 대응도 상투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풍'은 부는데 조간신문을 장식한 것은 북한 신포 금호지구로부터 전송된 경수로 공사 착공사진이었다. "남북'협력의 새장' 열다-"

대중의 정치적 관심사는 오히려 '조순 바람'에 있었다. 8월20일 조순서울시장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출마선언을 했다. 그는 여러날 고민 끝에 총체적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히고 김영삼대통령을 극비리에 회동하여 이 사실을 알렸으며 YS도 자신을 만류하지 않았다고 여운이 있는 말을 남겼다.

이것을 두고 '이회창 낙마'를 성급히 점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YS의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탐색하기도 했다. 그런 징후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이인제 경기지사는 9월초에 사표를 제출키로 했고 박찬종 신한국당고문은 "정권 재창출에 적신호가 울리고 있다"고 말해 여당의 후보교체 필요성과 자신의 재출마를 시사했다. 여당진영으로 보면 일대 '난장'이 예고되는 상황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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