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시국을 덮은 아가냐 폭음**
어수선하고 막혀 있기는 정치판도 마찬가지였다.
3당대표의 TV토론 이후 신한국당 이회창후보의 두 아들 병역문제를 걸고 야당은 줄기차게 공세를 취했다. 세간에서도 이회창 아들의 179센티의 키에 49키로그램이라는 밑기 힘든 병역면제의 수치를 놓고 이후보측을 의심하고 비난하는 소리가 높아져 가히 '병역정국'이라 할 정도였다. 3당 대통령 후보의 TV토론 결과도 이후보에게는 불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에 비해 그의 자질은 반절 정도의 수준이라는 게 시청자들의 평이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이회창후보는 누가 나와도 이긴다는 반응이었다. 다만 그에 대한 지지도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각 언론의 여론조사는 밝혔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 가지 생산물이 산출되었다. 정치개혁입법을 둘러싼 최초의 장애물인 제정위원회 위원의 여.야동수 참여문제가 합의된 것이다. 한보사건과 관련된 이 개혁작업이 7개월 이후에야 겨우 '연구해보는'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정가에서는 이회창후보가 아들문제로 야당에게 몰리니까 양보를 했다는 정략의 산물이라는 평이 돌아 개운치 않은 맛을 남기고 있었다.
이런 정치.경제의 난기류와 무더위 못지않은 답답한 실황속에서 대중의 관심은 박찬호선수에게 쏠렸다. LA다저스의 에이스로 부상하고 있는 박찬호는 바로 대망의 10승고지를 향해 8월1일 마운드로 올라갔다. 그는 고국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 '위업'을 이루어 냈다. 국내의 모든 언론들은 일제히 흥분, 답답한 시국의 반동으로 이 사실을 대서 특필했으며 KBS의 인공위성 중계는 이날 열광하는 시민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이런 중계는 외화낭비가 아니다".
한 조간 신문의 기자는 이렇게 사회면 톱기사를 써내려갔다. "그것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폭염을 뚫고 터져나오는 장쾌한 소나기 세례였다.."
이회창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는 이후보가 8월3일 오전 당사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민사과를 함으로써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그는 A4용지 3쪽에 써 있는 해명과 유감성명을 굳은 표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나는 처음에 이 문제에 대해 특별한 대비도 하지 않았고 구차스러운 변명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군대에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것이 무슨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을 많이 하겠습니까. 부모들이 자식을 군에 보낼 때, 특히 어머니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고이고이 기른 아들들을 군에 보내고 그 목숨을 나라에 맡길 때, 그 찢어지는 심정을 왜 제가 모르겠습니까. 국민 앞에서, 우리 장병 앞에서 그 불꽃같은 눈길을 마주하고 무슨 변명을 하며 무슨 해명을 할 것입니까.
그러나 실은 많은 자제들이 여러 이유로 군에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같은 부모의 심정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들도 같은 국민으로 따뜻하게 받아주셔야 합니다. 이들도 다른 모습으로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에 헌신할 길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내 아들들도 반드시 국가의 부름에 따라 헌신하고 충성할 기회를 찾을 것이며 이를 마음으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내 개인의 변명이 무익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 아이들이 부정하게 군복무를 피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당은 이 성명이 나오자 즉각 7가지 의혹이 남아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시간은 사건 자체를 풍화시킨다는 법칙에 따라 '병역문제'는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고 객관적 증거가 나오지 않자 야당이 너무 정략적으로 이를 이용한다는 비판의 소리가 그런 흐름을 탔다. 결국 이 사건은 사실조작이라는 부정의 문제가 아니라 '공인의 도덕성'이라는 쪽으로 귀결되었으며, 고의적으로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체중감량을 시켰느냐의 여부로 후퇴했다. 사실과 진실의 문제, 다시 말해 두 아들의 체중미달이라는 사실은 사실이로되 그 결과가 진실성과도 통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남게 된 것이다.
이회창후보는 7월28일에 있었던 TV토론에서 '2중기준'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국제문제․납북문제에 대한 대통령후보로서의 견해를 말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이긴 하지만 사회적 관심사가 아들의 '병역문제'에 집중되어 있던 시기이며 페널리스트의 질문 가운데 가장 예민했던 부분도 여기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용어 선택은 미묘한 뉘앙스를 주었다.
그 자신도 이 부분을 가장 예민한 사안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심리적으로도 압박감을 받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면 '2중기준'은 그날의 토론회 질의에 대한 답변의 일반적 기준일 수 있다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었다. 즉 '병역문제'에도 2중기준이 있는 것이라는 반문으로 답한 것이 아닐까. 모든 부정한 병역문제에 대해 대중은 분노하지만 자신의 자식들을 '병역면제'시키려는 심리나 의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는 사실이었다. 이후보가 법률적 용어인 '2중기준'을 정치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병역문제'도 그렇게 설명하고 싶은 잠재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과 진실의 문제가 엇갈리는 상황은 비단 이회창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뿐이 아니었다. 기아사태를 둘러싼 정부 채권은행단 재계의 움직임도 표면적 사실과 진짜 내막 사이에는 짙은 안개막이 가로 질르고 있었다.
8월4일 명동소재 은행연합회 회의실에서 열린 59개 채권금융단 회의는 기아그룹 15개 계열사에 대한 부도유예조치를 9월29일까지 예정대로 밀고 가되, 김선홍회장의 사퇴와 인력․임금감축에 관해 노조의 동의서 제출이 없는 한 추가 금융지원을 봉쇄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아부품업체들의 연쇄부도문제가 일어나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당초 채권은행단은 1천8백50억원 안팎의 자금을 기아에 풀어준다는 지원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이 결정에 앞서 강경식 부총리, 김인호 청와대경제수석, 류시열 제일은행장, 김영태 산은총재는 기아문제와 관련, 회동을 가졌었다. 재계는 이 회동을 기아사태에 정부가 개입을 시작한 것으로 보았으며 기아측은 삼성쪽으로 넘기는 시나리오가 작동되기 시작했다고 긴장했다. 물론 강경식은 정부간여를 부인하고 은행과 기아와 재계가 자율적으로 처리할 문제이며, 다만 정부로서 저간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아침회동을 가졌던 것뿐이라고 회피했다.
기아측은 이런 정부쪽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부는 삼성쪽에 기울어 있으며 김선홍회장의 퇴진과 노조의 결의가 전달되었음에도 자금지원을 봉쇄하는 것은 제3자인수의 시나리오를 집행하기 위한 압력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류시열행장은 김회장과 경영진의 사직서가 첨부된 책임각서도, 노조의 인원감축 및 임금동결에 대한 동의서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 자금지원은 할 수 없으며 이날 채권은행단회의에서는 아예 부도를 내자는 주장까지 나왔었다고 되받아 쳤다.
이런 가운데 대우는 사모사채를 통해 조성된 5~6천억원의 자금중 일부를 기아쪽으로 흘려보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아특수강 공동경영으로 편성된 기아-현대-대우의 연합함대쪽도 정부-채권은행단의 공세에 만만치 않은 대응력을 보이고 있는 일단이었다. 특히 기아자동차의 부장급 이상 1백여명은 3만여명의 사원들의 김선홍회장 지지결의서를 김회장에게 전달, 배수진을 쳤다.
기아사태와 이회창후보 아들의 '병역문제'가 정. 경의 큰 흐름을 타면서 뒷전으로 밀려난 한보사건은 정태수의 '의혹에 찬 메모지'가 발견됨으로서 다시 세인의 관심권에 기어 들어 왔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아예 입을 봉해 왔던 정씨가 변호사와의 필담을 통해 이런 저런 사안들을 의논하면서 남긴 이 문제의 메모지에는 정계로비와 그룹 재건문제 등에다가 '1억'이라는 돈의 액수까지 적혀있어 대검중수부는 조사에 착수했다. 메모에는 대선주자중 이회창, 이수성, 이인제 등 유력3인의 이름도 등장하고 서청원, 강삼재 의원등 민주계 실세의 이름도 써 있었다. 메모에 적힌 내용들은 이러했다.
"지금 정부는 힘이 없다. 대선 끝나고 내가 나가서 문제를 해결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나가야 되지 않느냐.
12월 사면.
우리가 제시하는 조건 이하의 매각은 배임행위.
공장 넘겨주고 정치자금 받아서 대선 치르려한다는 의혹이 제기될 것.
민사는 항고까지 해서라도 대선이 끝날 때까지 끌고 가고 형사는 11월 2심까지만 한다.
최후진술에서 말한다.
중대발표.
내가 나간 즉시 법원에서 은행동의를 얻어 법정관리 취소를 하도록 추진...."
이 메모는 7월초 변호사와 필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졌는데 '의혹부분'에 대해 그의 변호인인 허정훈은 "1억이라는 숫자는 그동안 받지못한 변호사 수임료문제에 대해 정회장이 1억원을 일단 사용하면 추후 결제하겠다는 것이고 정치인 이름들은 신한국당의 경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후진술' 중대결심'은 최후진술에서 검찰이 정총회장에게 적용한 사기 횡령 신용금고법 위반행위 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법정에서 밝히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메모지로 미루어 정태수는 옥중에서도 정치계를 통한 로비를 기도하고 있고 협박용자료까지 가지고 있으며 한보재건이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혹과 비난을 받았다.
8월5일 강경식 부총리, 임창열 통상산업부장관, 류시열 제일은행장등 채권은행단 대표들은 은행연합회에서 조찬 간담회를 갖고 기아문제를 협의했다. 조찬회가 끝난 후 강경식은 기자회견을 통해 "기아의 제3자 인수는 현정부에선 없을것이며 경영 정상화는 채권은행단과 기아측이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채권단이 기아에 약속한 1천8백81억원이 지원되면 협력업체는 지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고 밝히고 이미 채권은행단은 지원할 돈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아측이 지원의 전제조건인 자구노력(김선홍회장 사표, 노조의 감원 등에 대한 동의서)에 응하지 않음으로서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부산한 움직임이었지만 별다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몇가지 변수가 새롭게 등장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자동차산업 노동조합연맹은 8월15일까지 정부와 채권단이 기아정상화를 위한 자금지원계획을 집행하지 않으면 총파업에 버금가는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들은 분명히 제3자 인수의 시나리오가 정부에 의해 작성되어 있다고 보고, 그 시나리오의 집행지휘자는 강부총리이며 따라서 기아경영진의 퇴진에 앞서 강경식 부총리가 사퇴해야한다고 정치적 공세를 폈다.
또 아시아자동차가 있는 광주에서는 YMCA 경실련 시민연대모임 등 3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지역경제와 아시아자동차 및 협력업체살리기 시민운동본부'가 앞장서 모금운동과 제일은행 거래 거부운동을 시작했다. 동아일보의 사설도 "기아 제3자 인수 안된다"고 측면 지원을 했다. 지극히 혼란하고 복잡한 국면으로 기아사태는 꼬여들었으며 이 과정은 또한 지극히 '한국적인 기업문제 해결방식'을 극명하게 노출했다. 이날 기아의 주가는 3자 인수 문제가 후퇴하는 인상이 악재로 작용하여 주식시장에서 폭락세로 돌아섰다.
이미 예고되어 온 바 있지만 같은 날 개각이 단행됨으로서 기아문제는 사회적 관심도에서 집중력이 분산되었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개각에서 신한국당 당적을 갖고 있는 내무장관을 비롯, 11개부처의 장관을 경질했다. 한보사건을 총지휘하던 김기수 검찰총장도 법무장관 경질에 따른 인사형평을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국면전환은 개각기사가 아니라 다음날 새벽 괌에서 일어난 KAL여객기의 추락 참사사건이 몰아왔다.
8월6일 오전 0시55분 서태평양의 미국령 괌섬 아가냐공항 남쪽 4.8km 지점에 승객 2백31명과 승무원23명을 태운 대한항공 801편 보잉 747 여객기가 추락했다. 이 참사로 2백25명이 사망 실종되고 29명이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대부분이 여름휴가를 맞아 현지로 가족여행을 떠난 사람들이었으며 참사를 당한 승객 가운데는 국민회의의 신기하의원도 끼어 있었다.
전 매스컴은 이날 하루 종일 이 대사건을 보도했으며 사회적 관심사도 여기에 집중되었다. '아가냐의 폭음'은 국내의 모든 '소음'을 압도했으며 참사현장에 피어 오른 희고 검은 연기는 기아도, '병역문제'도 덮어버렸다. 3당은 일단 정쟁을 휴전하고 사고수습에 대처했으며, 이회창대표가 마지막으로 출연할 예정이었던 MBC의 3당후보 아침 토크쇼도 연기되었다.
적어도 신한국당에게는 참사사건이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중진의원을 잃은 국민회의는 '상가집'의 침묵 에 잠겨버렸다. 같은 날 오후 1시56분에는 전투비행 훈련중이던 공군 모비행단 소속 KF16 전투기 한 대가 경기도 여주 남쪽 9km 지점에 추락하는 사고가 곁들였다.
개각을 계기로 한 정국의 새 기류는 24시간도 지나기 전에 완전히 '정체상태'로 들어갔으며 시중은 김영삼정부 탄생 이후 간단없이 계속된 대형 사고들을 놓고 또한번 개탄의 소리들을 높였다. 동아일보의 만화 <나대로 선생>은 KIM(김현철), KIA, KAL을 묶어 '추락 3K'라고 풍자했다. <계속>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