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경제지표는 정상?**
한보사태로 인한 불연속성기류속에 휘말렸던 경제는 조금씩 방향을 찾는 듯 했다. 한신공영이 부도를 내고 쓰러졌음에도 종합주가지수는 계속 오름세를 탔고 6월2일에는 총거래량이 8천4백여만주로 국내증시 사상 두번째로 많은 물량이 거래됐다. 통상산업부가 발표한 5월중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5월중 무역수지 적자는 6억8천6백만달러로 96년6월 이후 11개월만에 가장 낮은 폭으로 줄어들었다.
이른바 시국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요소와 더불어 국면전환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혹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 이동한다. 그리고 대중은 그것을 언론의 풍향에 의해 감지한다. 6월초에 들어서부터 그러한 ‘초점분화’현상이 나타났다. 과거 군사독재의 시대에 있어 이런 국면전환은 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방향을 틀고 언론조작에 의해 이루어진 예가 허다했다.
시시때때로 등장하던 ‘공안정국’의 내막은 심각한 정치 사회 경제적 사태를 호도하고 권력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면’이라고 보아 틀림이 없다. 물론 그것이 사회적으로 먹혀들어간 배경에는 ‘한반도 상황’이라는 특수여건과 ‘국가주의’라는 지배논리 때문이다.
그런 문법에 기초하여 ‘한 건’을 터뜨린 것인지는 몰라도 검찰은 전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한 사건 하나를 터뜨렸다. 고액 불법과외와 탈세와 수강료 초과징수 혐의로 서울 종로학원등 유명입시학원 원장 7명을 구속하고 8명을 불구속했다. 한보사태로 권력의 핵심주변을 두드려왔던 검찰 공권력이 방향을 바꾼 것이다.
사회적 비리를 척결한다는 차원에서 검찰이 의당 발동해야 하는 공권력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이 공권력 발동은 지배권력쪽에서 볼때 한보사태의 늪에서는 갈등적이었던 역할과 기능을 다시 순기능적으로 바꾸는 이벤트가 된다. ‘상방공격’으로부터 ‘하방공격’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여기에다 한총련이 무고한 시민 한사람을 타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6월4일 학생들의 시위에 참가하려고 한총련 집행부가 들어가 있는 한양대를 배회하던 선반기능공 이석(23)이 경찰 푸락치 혐의를 받고 한총련 학생들에 의해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 연이은 두사람의 인명희생으로 한총련 출정식은 사회적 관심의 표적권에 들어갔고 전 언론은 이들 세력을 해체시키라고 여론압력을 가했다. 결국 한총련은 그들의 과격노선으로 화를 자초하고 만 것이다.
대중적 지지에 실패했던 한총련은 ‘김영삼정권의 퇴진’을 들고 나왔지만 전술적 실패를 불러들였다. 일반 시민들의 보편적 정서도 ‘인명희생’이라는 결과 때문에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흐름이었으며 공권력은 사회적 비판과 언론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들 세력에 총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검. 경은 친북 폭력시위를 주동한 혐의를 두고 한총련 핵심간부 2백40여명에 검거령을 내렸다.
김영삼대통령은 6월 3일 오후 유지웅상경의 빈소를 방문하여 유족을 위로했다. 오랫만에 대중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반정부, 반권력의 기치를 내 걸고 한보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지만 한총련은 아이러니칼하게도 권력이 한보터널을 탈출할 수 있는 또 한갈래의 길을 터 준 셈이 되었다.
같은 날 한보사태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소송 한 건이 서울지방법원에 접수되었다. 참여연대(위원장 장하성고대교수)가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위임받아 제일은행을 상대로 한보철강에 부실대출을 해 은행에 손실을 끼친 이사들이 이를 변상하라는 주주대표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이 의미하는 것은 은행 부실대출과 관련하여 함부로 도장을 찍다가는 자기의 재산을 날릴 수도 있다는 사회적 압력을 실현시킨다는 데 있었다. 말하자면 정치적 혹은 제도적으로 금융비리를 막는다는 권력차원의 해법으로는 해결 가능성이 희박함으로 시민적 운동을 통해 은행경영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압력대출을 벗어날 수 있는 틀을 마련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을 제외하고는 언론은 이 사실을 중요 관심사로 보도하지 않았다. 같은 날 발표된 금융개혁위원회의 새로운 틀을 만든다는 개혁안을 주목한 것과는 크게 대조되었다. 따지고 보면 한보사태의 진실규명을 세차게 밀어 온 것은 검찰의 공권력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적 비판과 저항에 밀려 할 수없이 권력이 밀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금개위 자체도 그에 따른 산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자발적 시민운동에 대한 언론의 시각은 깊은 통찰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제도와 의식이 융합됨으로써 사회개혁이 이루어지고 진보가 있는 것이라 볼 때 세상의 흐름을 어느 쪽에 서서 바라보고 있느냐에 언론은 무엇인가 낡은 문법의 세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민사회적 의지와 생각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이즈음부터 대중의 입에서 한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자연현상일지 모른다. ‘국정표류’라는 표면상 설득력있는 문제제기와 이런저런 공권력의 발동, 4개월여에 걸친 국가적 ‘세미 코마(준 마비)’현상, 거기다가 연속극보다 재미있는 대선을 향한 ‘용들’의 권력 게임 등등.... 식자층마저도 ‘바깥방’과 ‘안방’은 TV와 주요일간 신문들이 집중보도하는 ‘용들과의 토크쇼’, 그리고 그들 부인들의 재치문답들을 놓고 그날의 화제 메뉴를 삼는 데 골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들과 그의 부인들은 돈 안내고 선전하는 쇼에서 진땀도 흘렸지만 신바람들이 났다. 모두가 애국자로 변신하고 현모양처로 둔갑했다. 한보는 안개가 물러가듯 스믈스믈 강건너 저쪽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무대극은 사건전개와 클라이막스가 지나면 조용히 막을 내린다. 그 ‘막내림’은 극이 끝났다는 하나의 형식이기도 하다. 관객은 저마다 관극의 과정을 정리하고 감흥을 떠올리며 뿔뿔이 돌아간다. 한보사태로 빚어진 정치 사회극도 막을 내리는 요식절차를 거쳤다.
6월5일 대검중수부장 심재륜은 김현철과 김기섭을 공식 기소하면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현철은 기업인들로부터 66억1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김기섭은 서초케이블 TV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이성호 전 대호건설 사장으로부터 1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김현철이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돈 가운데 32억2천만원에 대해서는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했다.
이날 발표에서 중수부는 김현철이 YS의 대선 당시 사조직이었던 ‘나사본’(나라사랑실천본부)에서 활동자금으로 쓰고 남은 1백20억원을 측근인 박태중이 운영하는 (주)심우의 사업자금 12억원과 합쳐 박과 박의 측근 및 가족명의로 관리해 왔었다고 밝혔다. 이 1백20억원중 50억원은 93년 10월 측근인 이성호 전 대호사장에게, 70억원은 94년 5월과 95년 2월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에게 맡겨 관리해 왔는데 김기섭은 자기가 맡은 돈을 (주)씨엠 기업에 맡겨 관리했으며 이 돈 70억원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심재륜중수부장은 기자들에게 “한보특혜대출의 ‘몸통’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누군가가 배후에서 은밀히 장기간 지휘해 온 것이 아니라 지난 4년간 정. 관. 재계의 광범위한 인사들이 정기적 단계적으로 지원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보와 김현철 사건은 전혀 별건이었지만 ‘두 사건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만은 볼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더 이상 언론이나 야당에 의해 탐색 추적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언론은 이날 검찰발표에 이렇게 ‘END마크’를 찍어 놓았다.
"검찰이 김현철씨를 기소함으로써 한보 및 현철씨 비리사건은 4개월여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같은날 서해상 연평도 근해에서 북한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남한 경비정을 향해 함포위협사격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총련의 폭력 치사 사건으로 예민해 진 시국흐름은 더욱 예각화되었다. 나중 국방부 발표에 의해 북한 경비정이 침범한 것은 북한 어선무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보이며 아군의 선체가 아닌 함미 방향을 향해 위협사격을 한 것으로 보아 도발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한총련으로 빚어진 ‘북풍’에 시너지효과는 오름세를 탈 수 밖에 없었다. 김지하 시인은 한총련을 일갈하는 글을 띄웠다.
"한총련 이쯤서 그만두라. 이쯤 해서 그만두는게 어떤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신록 속에서 작비를 흔쾌히 인정하고 새 공부에 정진하는 게 어떠한가. 말썽 많은 한총련을 해체하고 각 대학은 자유로운 연대에 의해 다양하고 창조적인 네트워크운동을 일으키는 게 어떠한가. 이미 연세대에 이어 20여개 대학이 과감하게 선택한 것이니 노선이라면 노선이다. 내용을 묻기 전에 이미 탈퇴 결정 소식만 듣고도 마음에 신선한 바람이 들락거린다.
그동안 한총련의 행보를 지켜봤는데 스스로 자기들의 행동에 취해서 모든 사람이 박수를 보내고 훗날 역사가에 의해 칭송되는 줄로 착각하는 듯 했다. 그러나 국민은 물론이거니와 북한 당국마저도 학생들의 과격운동을 그리 크게 기대하거나 높게 평가하고 있지도 않다. 코만도스 유격술에서 말하는 소모품 대접이 고작이다.
그렇다. 몇십번을 고쳐 생각해보아도 역시 그렇다. 젊은이의 사상과 행동은 마치 6월의 저 싱그러운 신록과 같은 것이요, 해맑은 생명과 사랑의 찬가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또 죽임의 소식이다. 사수대라는 말 자체부터가 죽임의 냄새로 가득한데 프락치를 잡는다고 구타와 고문을 해서 가난한 젊은이 한 사람을 죽였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자필 진술서를 받았다 한다. 끔찍한 정보부의 지하실이 연상된다. 그 진술서. ‘나는 공산주의자다’라는 진술서와 ‘나는 프락치다’라는 진술서가 다를 게 무엇인가. 전기고문 물고문이 사나운 쇠파이프 화염병과 다른 게 무엇인가. 길거리에서 데모 구경하던 한 할아버지 입에서 튀어나온 말 “저놈들이 정권을 잡으면 사람씨도 안남겠다.”
어찌할 것인가. 학생들이 본디 그렇게 사나운 사람들인가. 억압 밑에서 저항을 제 인생으로 선택한 인간에게는 좋든 싫든 자존심이 유일한 자기배경의 외로운 힘이다. 그래서 자존심은 괴팍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학생 전사들은 자존심도 없다는 것인가. 북한의 심리적 선전 선동의 코만도스를 자청하고 학교를 해방구로 착각하는 행동, 스스로 억압과 취조의 검은 인간이 되어 자필진술서를 받아내면서 이것이 혁명을 위한 것이라고, 북한의 노선대로 살면 해방의 찬란한 그날이 올 것이라고 착각하는 행동들. ‘주사의 창시자’는 이미 이 쪽에 와 있는데 여전히 북쪽을 국궁배례하는 행태에서, 일말의 혁명가적 자존심도 없이 거짓으로 자기를 설득하는 모습에서, 칠칠치 못한,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들 얼굴은 보일지언정 혁명가의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사회주의 50년에 식량문제 하나 해결 못한 북한을 따라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학생들의 쇠파이프와 화염병은 광기인가, 소극인가. 아니면 진부한 인생을 잊자고 시작하는 유희인가. 북한의 현실은 지금 심각하다. 발대식이니 진술서니 무기한 연기니 뭐니 그런 ‘배부른’ 소리를 할 틈이 없다. 북한 주민을 굶주림으로부터 어떻게 구할 것인가. 한총련을 해체하고 새로운 창조노선으로 행보를 과감히 바꿀 것인가, 어쩔 것인가.
남은 것은 진정한 용기다. 어쩌면 학생운동은 성년의례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키를 뒤집어 쓰고 소금 세례를 한 번 과감하게 받을 각오를 하라. 해남은 내 고향과 다름이 없다. 내 어린 시절의 도주와 아픔이 깃들인 곳이다. 해남 출신의 한 가난한 노동자가 대학생들에게 맞아 죽었다. 개인적으로 말하더라도 이렇다.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웬 난데없는 귀족혁명이랑가.”"<계속>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