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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정태수 리스트' 33명중 24명에게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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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정태수 리스트' 33명중 24명에게 면죄부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3) 여당의 반격 '사정'

***23. 여당의 반격**

DJ의 부활을 재확인한 국민회의의 전당대회는 대통령후보와 총재경선에 나선 정대철과 김상현이 DJ의 손을 잡고 흔들자 크게 고양되었다. 대의원들은 각목과 돈봉투가 판을 치던 과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은 “뻔한 시나리오가 아니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으며, 자민련은 “내각제로 당론을 변경하지 않는 한 후보단일화를 위한 공식협상은 있을 수 없다”며 자당의 전당대회가 끝나는 6월24일까지 결론을 내고 나오라고 덫을 놓았다.

한보사태에 따른 생산적 긴장으로 ‘질서’가 이룩된 정치집회였지만 역시 정치는 돈 없이는 힘들다. 국민회의는 이날 전당대회를 치르는데 모두 9억3천여만원을 썼다고 했다. 행사이벤트 및 시설비용으로 3억원, 4천3백여명의 대의원 숙박비로 2억원, 대의원 한사람당 거마비 5만원씩 2억원 홍보인쇄물 및 잡비로 2억원이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공식 통계상의 숫자가 그러하다는 것일 것이다.

정치 게임이야 대통령 자리라는 엄청난 과실을 따먹기 위한 한판 잔치를 향하고 있었지만 경제는 계속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흐름이었다. 진로에 이어 대농그룹이 깨졌다. 국민회의가 전당대회의 잔치를 열고 있을 즈음 서울은행은 금융단 기자들에게 부도에 몰린 대농에 대한 처리방안을 발표했다. 대농의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은 대농, 미도파, 대농중공업, 메트로 프로젝트 등 4개 업체를 ‘부실징후기업 처리협약’의 적용업체로 긴급 지정, 이를 각 채권은행에 통보했다.

부실기업처리 협약이란 한보사태가 낳은 제도적 산물로 금융부채가 2천5백억원이 넘는 대기업이 부도에 직면해 있을 때 이를 막아주도록 금융단이 공동대처하는 제도이다. 대농은 96년 결산 결과 3천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제2금융권이 급속히 자금을 회수함으로써 부도위기에 몰려 왔었다. 대농그룹의 박용학명예회장과 박영일회장은 그룹산하 기업에 대한 보유주식 전량에 대한 포기각서를 제출하고 이 비상조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농의 경영위기가 드러나자 금융가에는 ‘예비 부도 그룹 리스트’라는 것이 저승사자의 명부처럼 떠돌았다. 그 여파로 뉴코아와 해태가 유탄을 맞았다. 해당 기업은 곧 그것이 루머라고 해명에 나섰지만 루머는 또다른 루머를 부르는 연쇄화 현상이 일어났다. 더욱이 전체적인 경제의 흐름이 내려앉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하는 기업이 설사 부도위기가 진실이 아니더라도 상처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부도방지협약’이라는 경제적 긴급출동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이것은 정치적 냄새가 배어 있었다. 워낙 한보부도 사태가 몰아 온 파장이 엄청났으므로 ‘당장이나마 모면하자’는 응급처방에 불과했다. 묘수가 아니라 결과에 따라서는 악수로 변하는 그런 대응이라는 것이 세평이었다. 이 문제를 가장 밀도있게 비판한 것은 "문제 있는 부도방지 협약"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의 5월21일자 사설이었다.

"토착기업의 한 상징이던 진로가 쓰러지더니 이번에는 한국 면방업의 대부격인 대농도 사실상의 부도상황에 들어갔다. 최근의 이같은 일련의 부도진행은 우리 경제의 위기적 상황을 가장 실감나게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사태를 평가하자면 이제 겨우 우리경제는 시장원리에 지배받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지 모른다.

개별적, 미시적으로는 제각각 사정은 달라보이지만 최근 수개월간의 잇따른 대기업 그룹의 연쇄적 부도사태를 분석하면 의외로 많은 공통요소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의 하나는 이들 부도재벌들이 하나같이 빚 많고 재무구조가 나쁜 점이다. 최근의 부도재벌들은 일찍부터 차입비율이 유난히 높고 자산구성과 재무구조가 취약한 그룹들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지금까지 부실그룹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팽창주의적 개발정책과 관치금융, 정경유착과 시장 독과점 등의 핵심적인 시장외적인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은 이들 그룹들이 나쁜 재무구조에도 불구하고 과잉투자와 사업확장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단 재벌급에만 진입하면 무한정의 금융차입이 가능하고 그룹내의 상호출자와 상호 지급보증으로 서로 결속해 놓으면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력까지도 손댈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과 시장지배력을 확보하게 되니 어느 기업가가 재벌되기를 마다할 것이며 무슨 사업인들 손 안대고 싶을까.

세번째 공통점은 연쇄부도 재벌들이 또한 하나같이 세습 2세들이 소유와 경영의 전권을 행사하며 무리한 투자와 과시성 사업확장을 예사롭게 단행하고 있는 점이다. 이같은 공통점을 잘 음미하면 결국 최근의 일련의 사태는 빚 많고 무리하는 재벌은 반드시 쓰러진다는 교훈을 우리 모두에게 주고 있다. 철통같은 선단경영이 변화와 도전의 새 경쟁시장에서는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으며 유착과 관치금융의 시대가 지나면 차입경영이 오히려 명을 재촉할 수 있음을 이번 사태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시장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신호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엉뚱하게도 부도방지 협약을 만들어 30여년만에 겨우 싹이 보이는 시장경쟁을 인위적으로 제동함으로서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얻은 모처럼의 소중한 교훈을 무위로 만들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변화에 어둡고 방만한 재벌은 이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엄한 시장원리가 확립되지 않는 한 현재의 한국경제 위기는 결코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점에서 법적 근거도 모호한 부도방지 협약은 득은 적고 실만 많은 해악적 제도이다."

전쟁이든 변란이든 엄청난 혼란과 파장을 일으키는 사태는 스스로 자기전개의 과정을 갖는다. 때로 그것은 시간적 요소에 의해 진화되고 소멸하기도 하지만 시대를 이끄는 힘에 의해 진정되기도 한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의 이니셔티브를 잡고 있는 쪽에서 개입, 평정의 시나리오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을 구속한 것을 계기로 국면전환의 카드 하나가 권력쪽에 의해 던져졌다. 공직자에 대한 대대적인 비리조사였다.

5월중순에 접어들자 사정당국이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를 내사하고 있다는 정보가 언론에 흘러나왔다. 한보사태와 김현철 게이트는 서서히 퇴장하는 흐름으로 들어갔다. 일체 식사와 검찰조사를 거부하던 김현철도 평상으로 돌아가 밥도 잘 먹고 조사에도 순응하기 시작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등장했던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의 처리도 완결됐다.

총 33명의 대상자 가운데 문정수 부산시장, 김상현 국민회의 의원, 노승우 신한국당의원, 박희부 전 신한국당의원, 최두환 하근수 김옥천 등 전 민주당의원 정태영 전 자민련의원 등 8명만 불구속 기소하고 24명은 무혐의로 처리하되 한보로부터 받은 돈에 대해 증여세를 추징키로하고 ‘마감’했다.

김덕룡․서석재․김수환(국회의장)․김명윤․박성범․박종웅․나오연․문정수․하순봉 신한국당의원, 황명수 신한국당 전의원․나웅배 신한국당 전의원․김용환. 김현욱 자민련의원․이철용 신한국당 지구당위장, 김윤환 신한국당의원․이중재 민주당의원․이석현 국민회의의원․노기태 신한국당의원․김봉호․김원길 국민회의의원․김한권 전 충남지사․이동호전 내무장관․오탄 민주당 전의원등은 모두 선거자금이나 정치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으나 대가성이 없으며, 한승수 신한국당의원(전 부총리)은 사실무근, 최형우 신한국당의원은 리스트에 없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에게 적용되었던 포괄적 뇌물죄 적용은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행정 최고권력자와 똑같이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리고 이같이 처리한 것이다. 이 사법적 처리가 발표되자 ‘유력무죄’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유력한 정치인들은 기소하지 않고 무명급만 기소하는 2중기준이 발동되었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검찰의 이 에필로그에 대한 국민적 반발은 사정당국이 광역․기초단체장 15명을 곧 수사하여 임시국회 이전에 처리한다는 새로운 국면 전환에 밀려났다. 그 뒤쪽에서 YS는 당초 5월 중순에 하기로 했던 92년 대선자금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표명을 안하겠다고 슬쩍 몸을 숨겼다. 아시아 위크지는 97년 아시아 파워 50인 랭킹에서 YS를 전년의 12위에서 23위로 끌어 내렸다.

대중의 시각집중이 분산되는 또하나의 이벤트가 있었다. 때를 같이 하여 북한으로부터 귀순한 김원형․안국선씨의 일가족 기자회견이 5월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안기부에 의해 마련되었다. 이들 보트피플 두 가족은 북한은 지난3월에 전쟁준비를 위한 점검을 한 바 있으며 그 쪽에서는 7월에서 10월 사이에 전쟁이 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외국에서 온 식량은 구경도 못했고 아마 군대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5월23일 청와대. YS는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민들의 정서는 잘 알고있으나 5년전 대선자금에 대해 국민에게 속시원하게 밝힐 만한 자료가 없어 매우 안타깝고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말은 완곡하고 우회적이었지만 한보의 ‘몸통’과 직결되어 있는 92년 대선자금을 공개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제까지 ‘대통령의 고백’을 요구해 왔던 이회창도 이 말을 수용했다. 대선자금문제는 이래서 하룻밤 새 “일체 없었던 걸로 하자”는 것으로 신한국당의 당론이 바뀌어버렸다. YS의 강공책이었다.

한편으로는 청와대 사정팀을 동원하여 고위 공직자 정치인들에 대한 부정비리를 조여들어가고 대선자금문제는 뚜껑을 닫아버려 국면전환을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자신의 아들 현철이 검찰에 의해 구속되면서 예상되었던 시나리오였다.

야권은 사태의 흐름이 바뀌자 일제히 강도 높은 성명을 내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제까지 YS의 임기보장을 담보해 왔던 야권은 이런 식으로 갈려고 한다면 ‘하야문제’도 불사하겠다고 들고 나왔다. 물론 진실의 문제이기보다는 대선을 향한 정치공세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손을 대고 있는 고위공직자 부정 비리조사가 이미 야권에 대한 표적수사임이 드러난 이상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분위기로 격앙되었다.

한편 검찰쪽은 사정과 관련, 공개적으로 거명된 사람중 유종근 전북지사는 모건설업체에서 인허가와 관련, 수억원을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나 송언종광주시장 홍선기 대전시장은 아직 이렇다 할 비리가 드러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청와대 사정쪽은 장. 차관을 포함하여 70여명을 내사중이라는 첩보를 언론쪽에 흘렸다. 특히 비리인사중에는 광역단체장, 그중에서도 여당인사보다는 야댱쪽이 더 많다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이런 YS의 강공책이 나온 배경이 된 것인지는 몰라도 1분기 경제지표는 당초 우려하던 심각한 국면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97년 1분기중 GDP(실질국내총생산)은 전년비 5.4%로 93년 2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지만 전망치 5%보다는 높았다. 하지만 심각한 국제수지와 외환지표에는 어떤 언급도 없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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