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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조선일보주필, "이제 북한을 생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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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조선일보주필, "이제 북한을 생각할 때"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2) 마감이냐, 시작이냐

***22. 마감이냐, 시작이냐**

피의자 김현철의 영장청구 혐의사실 어느 구석에도 한보와 관련된 범죄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한보사건의 몸통은 이제 미궁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접어들었다. 사회적 재판이 일찌감치 피고로 점찍어 ‘기소’했던 김현철은 비록 총액 32억2천만원의 알선수재와 총액 33억3천만원의 증여금에 대한 13억5천만원의 증여세 포탈 혐의라는 사법적 응징을 받게 되었지만 ‘한보관련 무죄’를 입증받게 된 것이다.

피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권력으로 인한 역프레미엄으로 정치적 희생을 당했다는 항소이유가 될 법한 결론이었다. 김현철은 이런 결말을 이미 예측했음인지 중수부에 소환되기에 앞서 친지에게 한 장의 구술서를 남겼다. 5월15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구술서 내용은 이러했다.

"95년 중반부터 연말까지 동문기업인들을 25~28차례 만난 자리에서 활동비 명목으로 자금을 받았으나 이같은 사실만으로 사법처리를 받을 수는 없다. 구체적인 액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선의에 의한 동문들의 후원마저 범죄시해 사법처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위가 어찌됐든 아버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누를 끼치게 돼 자숙하고 있었다. 이제는 자연인 김현철로써 나를 지키기 위해 나의 결백과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고 대처해 나가겠다.

나를 기업들로부터 이권을 대가로 돈이나 받는 파렴치범으로 몰아 사법처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일반인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당하게 돼 통탄을 금치 못한다. 특히 검찰이 동문 기업인들에게 온갖 협박과 위협을 가하면서 동문 기업인으로서 순수한 후원 마저 대가성이 있음을 밝히려 함에 따라 이들 기업인들이 기업운영에 막대한 피해를 본 데 대해 죄송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청문회에서 밝혔듯이 나는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는 어떤 파렴치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 나는 이권개입과 대가성으로 금품을 수수한 행위는 결단코 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떳떳하게 검찰의 소환에 응하여 검찰에서 나의 모든 결백과 진실을 철저히 규명할 것이다. 순수한 동문모임을 개별기업들의 비리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기섭 전 안기부 차장도 5월19일 구속 수감되었다. 그에 대한 혐의는 전 대호건설 사장 이성호로부터 서초 케이블 TV 사업자 선정과 관련, 1억5천만원을 받은 사실이었다.

김현철이 구속되는 날 동아일보 사회면은 김현철과 김기섭이 신라호텔에서 만난 사실이 있음을 한 증인이 밝혔다고 톱 기사로 보도했다. 청문회에서 박경식 G남성클리닉 원장은 4월21일 김현철과 김기섭이 95년 2월27일 신라호텔 컨넥션 룸에서 만난 사실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증언대에 선 두 김씨는 이를 전적으로 부인했다.

동아일보 사건 특별취재팀은 이 사실을 밝히기 위해 박경식이 그 증인으로 지목했던 신라호텔 여직원 손모씨를 끈질기게 접촉했다. 손모씨는 결국 “날짜를 분명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95년초 호텔 객실에서 두 김씨등 4명의 손님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이 보도는 결국 김현철과 김기섭의 청문회 증언은 거짓이었음이 판명났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왜 손모 증언자가 진실을 밝히지 못했는가에 있었다. 이 여직원은 기자에게 그동안 진실을 밝히지 못한 것은 “그랬다가는 나를 포함해 가족이 피해를 보는 게 아닌가 겁이 났고 호텔직원으로 일하다가 알게 된 사실을 밝혔다가 회사측에 혹시 피해를 줄까봐 걱정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박경식이 청문회에서 자신을 목격자로 지목하자 회사의 승인 아래 보름간 휴가를 받아 외부와의 접촉을 피했고 그 뒤 부서를 옮겨 근무하고 있었다.

자유․진실․정의는 바로 한보사태를 통해 이 사회가 굳건하게 만들어 내야 하는 가치관이다. 가치관은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사회 속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일상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의지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적 체험을 통해 확인되고 구축되며 개인의 생각 속에 행동 규범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감사원 사무관 이문옥은 진실을 말했다가 사법적 처벌을 받았다. 물론 그는 뒤에 법적으로 복원되긴 했다. 그러나 사회와 그가 속한 조직사회에서 그는 얼마나 그의 행동에 대해 평가받고 있을까.

제일은행 박석태 전 상무는 한보사건의 진상에 접근할 수 있는 증언을 한 죄책감 때문에 자살을 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어쩌면 이것이 한보사태의 진실규명의 ‘사회적 한계’일지 모른다. 검찰을 고발한 제이슨 리의 이한영사장이 그 뒤에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았는지 걱정하는 시민적 반응이나 ‘그 사람 똘아이 아니야?’라는 권력의 영역에 할거해 있는 지배세력의 비아냥이 바로 지금 우리의 사회의식 단계를 농축한 것이라면, 청문회 1백번 열고 검찰이 1백일이 아니라 3백65일을 칼을 휘둘러도 자유․진실․정의가 큰 물줄기로 흐르기는 어렵다. 누구와 누가 만났는냐는 작은 증언 한 마디를 놓고 공포에 떨었던 손모양은 이런 세상의 문법을 누가 가르쳐 주어서 안 것은 아닐 것이다.

김현철의 구속으로 한보 사태는 일단 어떤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상 ‘국정표류’를 이유로 이쯤 해서 끝내자는 인위적인 시나리오나 자생적 여론도 슬슬 등장하기 시작한 흐름이 나타났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끝까지 ‘몸통’을 밝혀야 한다는 세론이 완강했다. 김현철이 구속되던 날 조간의 두 신문에 대조적인 글이 실렸다. 하나는 조선일보 김대중주필의 칼럼이고 그와 반대되는 문건은 한겨레신문의 사설이었다.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의 칼럼: '김현철 이후'**

나라 밖에 나가 보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한 곳에 정신을 쏟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로서는 나라 안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고 절실하겠지만 어쩐지 너무 그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회의 참석차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머무르는 동안 미국인들이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제기한 화두는 북한문제였다. 물론 외국인들의 관심과 관점이 우리의 것과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와 대립할 수도 있다. 또 우리로서는 정치부패를 청소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이 외골수로 ’김현철‘과 대선자금에 몰려있고 리더십은 지리멸렬이며, 대선 정치싸움은 극에 달하고, 경제는 방치된 채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세계를 향해 자존하고 자구할 수 있는 민족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많은 기업인들을 도마위에 올려 정치자금 제공의 내막을 들추는 작업을 재개하는 것의 당위와 파장을 비교 교량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나라 밖에서 보는 ’우리문제‘가 밖에서는 작아 보일는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우리의 정체성을 살리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5개월을 그것에 바쳤다.

이제 김현철씨의 사법처리를 계기로 여기서 한숨 돌리고 그 ’이후‘를 냉철히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남북간에 공히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귀국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순간 우리 앞에 던져진 한국신문들의 어지러운 톱기사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절실했다.

***한겨레신문 사설: '한보몸통' 묻혀선 안된다**

... 아마도 검찰은 현철씨를 사법처리함으로써 넉달 넘게 국가 전체를 뒤흔들어 온 한보의혹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지을 모양이지만, 그런 검찰의 처사를 납득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보사건의 몸통이 밝혀지기는 커녕 한보의혹 자체가 ’실종‘ 또는 ’암장‘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1차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가 축소. 은폐 수사라는 국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수사 책임자까지 바꿔가며 재수사에 나선 검찰이 ’태산명동에 쥐 한 마리‘를 내보이고 ’수사종결‘을 강변하려 해서는 안된다. 만일 김현철씨를 알선수재 혐의로만 구속한다면 그가 한보와는 전혀 무관하지만 각종 이권에 개입해서 돈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사법처리를 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현철씨는 한보사태의 유탄에 맞은 꼴밖에 되지 않는다. 백보를 양보해서 ’별건수사‘라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현철씨가 안기부의 극비정보를 사유화해서 국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가부간에 수사결과를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또 대선자금은 수사의 본류가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검찰은 한보비리의 몸통과 대선자금에 대한 명쾌한 수사만이 땅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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