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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비늘'을 건드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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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용의 비늘'을 건드린 것인가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0) 산은 총재 이형구 미스테리

***20. 산은총재 이형구 미스테리**

이 기사는 한보게이트를 여러 갈래로 탐색해 낼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했다. 우선 기사의 소스가 어디인가. 신문은 그 소스를 검찰 고위관계자라고 표시했다. 통상적으로 고위관계자를 인용할 때는 '상당한 지위'를 말한다. 이 범주에 속하는 인물로는 심재륜 중수부장, 김기수 검찰총장, 최상엽 법무장관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검찰의 이 중요한 정보가 중수부에 의해 리크되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특히 전체 언론을 상대로 하는 중수부의 수뇌나 지휘 검사들이 발설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전직 검찰총장이었던 모씨의 말에 의하면 이런 류의 극비 조사문서는 검찰총장의 캐비넷 속에 보관된다고 했다. '정치적으로' 검찰총장이 판단하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중수부장은 그 캐비넷 속에 들어간 자료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정치적 해결'로 끝이 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검찰의 오랜 관례다.

여기서 고위 관계자는 김기수총장일 수 있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임기에 구애됨이 없이 거취를 스스로 결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는 검찰총장이고 보면 검찰안에서의 압력을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고 뒷날 청문회장에 다시 출두할 지도 모른다. 보도처럼 김현철과 김기섭이 안기부장과 비밀리에 회동하고 압력행사를 논의했다면 김총장의 '반란'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똑같은 입장에서 최상엽장관이 그랬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전임 중수부장이었던 최병국일 수도 있었다. 사실상 이 조사내용은 그가 지휘했던 수사 당시에 나온 것이다.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한보측일 수도 있었다. 아들도 구속되고 재산도 압류된 마당에서 '반격'을 가하기 위해 그 자료내용을 언론에 흘렸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야말로 '핵폭탄'의 뇌관을 작동시켜 어떻든 지금은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는 권력에 강력한 압력의 메시지를 띄워보자는 뜻일 터이다.

어떻든 이 보도에 얽힌 것을 탐색해 보아도 사건의 뒤에는 복잡한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바야흐로 사건의 핵심에 접근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6백억원 이상 1천억원미만의 자금이 YS에게 건네졌다고 볼 때 미스테리 속에 있었던 한보에 대한 특혜금융지원의 고리가 풀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기간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은 한보청문회에서 은행장등 증인들이 '자율적'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진실은 청와대와 산업은행 주도라고 할 수 있다. 현대그룹은 92년 대선직후 산업은행의 시설자금을 신청하려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실은 YS의 정주영에 대한 반감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대출불가'를 통고했다. 당초 산업은행 계획에 올라 있던 수천억원의 대현대 시설자금은 '노는 돈'이 되었고 산업은행은 이 돈의 수요자를 찾아 이재벌 저 재벌에 '대출 세일'을 했던 사실은 금융가에 공공연히 알려졌던 비밀이었다.

92년 당시 대선을 취재했던 기자들이나 편집간부들은 자금문제로 고전했던 YS캠프가 선거 막바지에 돈이 풀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한보가 뿌린 새 정권에 대한 베팅자금이라고 본다면 얘기는 풀린다. 정태수로서는 도박이긴 하지만 확율 높은 게임에 돈을 건 것이다.

YS가 집권한 후 이형구 당시 산업은행 총재를 둘러싸고 한 가지 얘기가 돌았었다. '틀림없이 입각한다'는 소문이었다. 주변의 관측이 아니라 본인이 그렇게 말한 것으로 언론계에는 알려졌다. 그의 언행이 보기에 따라 자기과시가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소문에는 진원지가 있었다. 당시 이 전총재는 동경에 간 일이 있었는데 자신이 새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강한 암시가 담긴 발언을 했고 그것이 은행 안을 한 바퀴 돌아 밖으로 전파된 것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도 YS와 그의 장관 기용이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충청도(충남 청양) 출신에다 YS와는 어떤 연결도 없었다. 애써 찾는다면 서울 문리대 동문이라는 정도다. 그는 최초의 문민정부 각료명단에서는 빠졌지만 자신만만했다. 얼마 후 그는 노동부장관으로 입각했다. 그러나 장관 재임 몇 개월만에 산은총재시절의 대출비리로 구속되었다.

수년 전의 비리로 장관을 잡아 넣게 된 사실을 놓고 '권력의 집안들'에서는 미스테리라고들 했다. 물론 '민중의 문법'으로는 수년 전이 아니라 10년 전 것이라도 파사현정해야 옳을 일일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문법'에서는 그 정도의 비리는 정치적 이유가 없는 한 검찰총장의 캐비넷에 수사자료가 보관되고 끝나는 케이스였다. 사실상 당시 이 전 총재를 구속하게 된 사유는 이미 일차조사가 끝나고 '없던 일'로 덮어 둔 사건이었다. 나중 본인도 왜 장관재직중에 자신이 구속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억울하다는 차원보다 '권력의 문법'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검찰쪽 얘기는 그 사건이 한 신문(동아일보)에 대서특필됨으로서 YS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추리는 이랬다. 정태수는 기업인이다. 그는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집권당 후보 YS에게 엄청난 지원을 했다. '밥상머리에서 노대통령이 그렇게 가르쳐 주려고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던 또다른 기업인 정주영과는 극대극의 인물로 단순화되었을 것이다. 그는 YS에게 기업인의 '표상'이 되었을 법 했다. 적어도 그는 여당의 대통령후보로서 대가를 주어야 하는 '보은'을 생각했을 것이다. 산업은행 이형구총재에게 한보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그것은 정치 게임에 속한 일이었으므로. 산업은행의 이총재도 그 부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정부의 기간산업 계획을 민간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통해 육성하는 것은 바로 산업은행의 직무이다. 현직 노태우대통령을 협박하다시피 해서 후보직을 쟁취한 YS이긴 했지만 여당의 후보이다. DJ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거가 시작되면 모든 기관장들이 관성적으로 혹은 이해타산을 저울질하며 집권세력을 지원하는 게 불문율이다. 한보청문회에서 밝혀진 대로 산은 지원이 선거가 끝나는 날짜까지로 되어있었던 것은 이 총재의 계산(혹시 YS가 낙선할 경우)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어쨌든 산은의 한보지원은 상황을 이용한 경제와 정치의 복합게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YS가 당선이 되자 한보는 YS정권에서 엄청난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의 비밀은 가신그룹이나 선거자금을 담당했던 현철 라인정도가 '관리'할 만큼 정권의 핵심사항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형구총재의 한보지원도 엄청난 크기로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한보는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후견인을 두게 되었고 전 금융계는 산업은행이라는 신호등을 보고 대출창구를 활짝 열어 놓게 된다. 왜? 은행장들의 목은 고객과 영업수지와 주주총회가 아니라 청와대로 상징되는 권력집단과 대통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YS는 어째서 이형구를 구속했을까. 이것은 고도의 심리분석을 요한다. 물론 신세력쪽에서도 일찌기 서석재의원이 동해 보궐선거에서 후보매수사건으로 감옥에 간 일도 있으니 '법대로'라는 공명정대한 입장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적어도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온갖 역경을 겪어 온 YS로서는 어딘가 다른 점이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들을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권력을 잡으면 사람은 변한다. 더욱이 동양적 권력관은 자신의 유무능을 떠나서, 민주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권위주의적이다. 특히 권력의 속성은 양파껍질을 벗기듯 벗기고 또 벗기면 '혼자 살아남기'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러하듯 자신의 비밀이 들킬까 보아 전전긍긍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했다가는 목이 달아난다.

시대야 달라졌다고도 하지만 어떤 개인의 사회적 생명에 얼마든지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것이 권력이다. 이형구가 알고 있었던 '임금님 귀'는 바로 한보의 컨넥션이 아닐까. 그와 YS의 연결고리는 정치적 혹은 이념을 같이한 동지라든가 혈연, 지연 관계는 아니다. 그가 비밀을 지키고 충성을 바칠 때는 감옥에 갈 이유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비밀이 새어나가고 어떤 형식이든 '자존망대'의 기미가 있으면 권력자의 눈은 변한다. YS의 주변은 YS의 눈짓 하나로 침묵했다는 일화가 시중에까지 흘러 나올 정도이다. 이형구는 자주 'YS가 자기를 결코 못버릴 것이며 크게 쓸 것'이란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보면 이것은 '용의 비늘'을, 그것도 돈과는 거리가 먼 청렴성을 강조하고 있는 YS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는 것으로 생각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그가 감옥으로 간 진실은 아닐까.

돌다리가 아니라 쇠다리라도 먼저 두드려 보고 건넌 김시형 산은총재가 계속 한보를 지원한 것은 이런저런 분위기를 자신의 총재의자를 놓고 저울질한 후 나온 답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니 모든 은행장들이 다 그렇다고 보아도 대체로 맞는 답일 것이다.

언론의 추적 탐색보도들은 세 갈래로 갈라져 '발전'해 나갔다. 이성호 전 대호건설 사장을 내세워 관리해 오던 김현철의 비자금중 87억원이 세탁되었으며 그 돈은 이사장의 자금관리인인 김종욱 전 대호건설종합조정실장의 장인 박모씨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관리해 왔다고 폭로했다.

워커힐 빌라 비밀회동 기사는 김현철과 김기섭을 같이 만난 고위 관계자가 바로 권영해 안기부장이며 아직도 김현철의 국정개입은 계속중에 있음을 짐작케 한다고 사안 자체가 증폭되었다. 핀치에 몰린 권영해부장은 김현철이 워커힐로 불러서 나간 것이 아니라 청문회에서 고생도 했고 그래서 자신이 두 사람을 부른 것이라고 극구 해명했다. 그러나 이 비밀회동은 예의 '대책회의'가 형식만 다를뿐 권력방호를 위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야당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 기사를 특종했던 중앙일보는 다음날 신문보도에서 북한은 이미 3년 전에 핵을 개발했다는 황장엽의 진술을 1면톱으로 보도하고 워커힐 비밀회동 후속 관련 기사는 1단기사로 내리 깔았다. 그리고 '고위 관계자'는 권영해 안기부장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안기부의 노출을 막아주려는 자율적 노력인지 혹은 특종보도에 따라 반발을 보였을 안기부 쪽과의 타협으로 '북의 핵개발'로 지면 흐름을 바꿔 놓으려 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92년 대선자금문제는 동아일보가 터뜨렸다. 그런데 기사를 더욱 발전시킨 것은 조선일보였다. 한보가 YS에게 건넨 돈은 총 9백억원이며 워커힐에서 김종국 한보 전 재정본부장이 정태수의 지시에 따라 서석재에게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검찰소식통을 인용한 이 보도는 역시 정태수가 1월31일 검찰에 구속되어 YS에게 엄청난 규모의 선거자금을 제공했다고 이미 진술한 바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롭게 정치자금문제로 초점인물이 된 서석재는 "나는 정총회장을 모른다. 이건 얼토당토 않은 마타도어다"고 펄쩍 뛰었다. 검찰총장 김기수는 정태수한보총회장이 검찰조사에서 그같은 진술을 한 일이 없으며 그 보도는 '오보'라고 김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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