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현철 청문회의 예기치 못한 희생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현철 청문회의 예기치 못한 희생자

<손광식의 '1997 비망록'> (18) 증인의 돌연한 자살

***18. 증인의 돌연한 자살**

4월 25일 국회청문회장. 김현철의 증언이 있는 날이었다. 한보사건의 하이라이트이며 이른바 현철 게이트의 진위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모두에서 그는 국민과 아버지에 대한 짧막한 사과를 하고 심문에 응했다. 맹형규위원의 심문에 대한 증언에서 그는 담담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답변해 나갔다. 그러나 한보철강 방문 등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조용한 목소리로 부인했다.

"박경식과 만난 것은 10번 정도이다. 아버지를 돕는 입장에서 인물을 천거하고 그런 일은 있다. 청와대에 추천한 인물로는 정대희씨 뿐이다. 개인비서를 지내던 최동열씨를 민정비서관실에 직접 추천한 일은 없고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물의를 빚어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봉선화 5인방'에 대해서 아는바 없다. (증권가 5인방은 대선 때 돈을 돌리던 그룹으로 알려졌었다.)

개인의 사익을 챙기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아버님이 취임초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장개석이 며느리에게 상자 하나를 주었는데 그 속에 권총이 들어 있었다, 사치를 좋아하는 며느리에게 부정부패에 대한 경고였다.

경영연구회는 알지 못한다. 정보근․이웅렬씨는 안면이 있다. 황태자 그룹은 사실 아니다. 이민화 (메디슨)사장은 박경식씨 사건을 통해 처음 알았다. 송사내용은 박경식씨가 가지고 와서 내가 본 것이다. 맨 뒤에 보니까 무혐의 처리된 것으로 되어있더라. 고박사(대통령 주치의 고창순)에게 여쭤 본 적은 있다. 그것 뿐이다.

이우성씨는 알고 있다. 대선 때 우리를 많이 도와 준 분이었다. 이우성씨가 최근 큰 부자가 되었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이웅렬(코오롱 그룹)회장과는 고대동문으로 잘 알고 있다. 이동통신때 나를 판 일이 있지 않나 해서 언짢았다. 민방사업자 선정에 개입했다는 예로 박태중을 통한 광주의 모건설업자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른다.

이성호씨와는 알고있다. 이성호와는 북한산 등산을 하곤 했다. 소사 휴게소 건도 나와는 상관 없다. 나는 그런 청탁하는 사람과는 잘 만나지 않는 것을 주변에서는 잘 알고 있다. 박태중씨는 절친한 친구다. 그러나 무슨 사업을 하는 지는 알지 못한다. 같이 사무실을 이용했을 뿐 뉘앙스는 다르다. 사법적 처리대상이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이날의 자기변론은 뒤에 상당 부분 위증으로 드러났다.

한보사태는 결국 한 인명을 희생시키는 '사건 속의 사건'을 일으켰다. 박재윤 전 통상산업부장관을 출두시켜 청문회를 진행하고 있을 즈음 망원동에서 한 자살사체가 주택가에서 발견되었다. 주인공은 바로 11일 전 이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왔던 박석태 전 제일은행상무였다. 대학 2년생인 셋째딸 은영양에 의해 발견된 박씨는 서울 마포구 망원1동 자신의 집 거실 안에서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못을 박은 뒤 빨래줄로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박씨는 이보다 앞서 26일 밤 10시경 극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 119구조대에 의해 목동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으며 집으로 옮겨 온 뒤 정상을 찾은 듯 하여 부인이 잠깐 자리를 빈 사이에 재차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2층 박씨의 서재 책꽂이에서 짧막한 유서가 발견되었다.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기영엄마 미안하오. 기영아. 소영아. 은영아. 수영아. 송주야 미안하다. 아빠는 약했지만 너희는 굳세게 살아다오. 제일은행 임직원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윤진식비서관님, 박태영의원님, 김원길의원님, 죄송합니다. 여보, 화장해 주시오. (한강으로) 이철수행장님, 신광식행장님 죄송합니다.

1997. 4. 못난 아빠 못난 남편 불효자."

박석태. 서울상대를 졸업하고 66년 제일은행에 입행, 지점장 심사부장을 거쳐 이철수행장 때인 94년 이사가 됐으나 한보철강사건의 문책인사로 3월주총에서 자리를 물러나 있었다. 그는 은행을 그만둔 뒤 상당한 우울증 증세를 보여왔으며 자택에서 칩거해 왔는데 청문회 증언 이후 상당한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제일은행 근무시절 꼼꼼한 성격에 성실한 업무태도로 해서 은행내에서 상당히 신망이 높았던 인물이었다고 신문들은 소개했다.

처신도 비교적 좋아 자신이 살고 있는 망원동 단독주택이 80년대 말 수재를 입었을 때 북한에서 보낸 구호미를 받을 만큼 '가난한 은행원'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신랄한 심문을 받았는데 "제일은행 임직원들에게 대단히 죄송하고 국민들에게 누를 끼쳐서 어떤 때는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죽음에 가장 직접적인 충격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국회 청문회 특위위원들이었다. 위원들은 "박씨는 비교적 솔직하게 진술했다", "이번 사건으로해서 직장까지 잃은 박씨에 대해 동정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씨와 한동네에 살고 있다는 신한국당의원 박주천은 "박씨를 찾아가 위로의 말을 건네자 박씨는 '이런 식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박의원은 또 "박씨로부터 청문회 내내 자신의 아내가 TV를 보며 하루 종일 울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국민회의 의원 김원길은 이날의 증인인 박재윤장관에 대한 심문에 앞서 "(서울상대) 동문인 박상무의 자살소식을 듣고 솔직히 말해 증인심문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고 허탈감을 나타냈다. 신한국당의 이사철의원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처참한 일이다. 꼭 우리가 박씨를 죽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충격의 여파는 청문회장의 분위기를 바꿨다. 그의 자살 다음날 청문회를 방청석에서 지켜 본 한 기자는 이렇게 썼다.

"...박석태 전 제일은행상무의 자살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열린 국회한보특위 청문회. 증인들에 대한 예우가 특히 눈에 띄었다. 증인으로 나온 박청부 증감원장, 이수휴 은감원장이 한보사태의 '주역'이 아닌 데도 원인이 있지만 위원들의 심문태도 자체가 적어도 이날만은 크게 변했다. 국민회의 의원 김경재는 한보의 전환사채 발행자료를 갖고오지 않았다는 박원장의 답변에 대해 결코 높지 않은 목소리로 "그럼 그 자료를 갖고 오셔야죠"라고 점잖게 꾸짖었다. 김경재는 오후 들어서도 이원장이 답변을 길게 하는 것을 허용하고는 "귀중한 시간을 많이 뺐겼으니 앞으로 귀중한 답변을 해 달라"고 '예의'를 갖췄다.

한보 정태수․김현철에 대해 답변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은채 몰아쳤던 자민련의원 이양희도 이날은 토론식으로 심문, 처음으로 답변시간을 길게 주는 기록을 세웠다. 신한국당 김문수, 국민회의 김민석도 주로 사실관계를 따져 물었다. 증인이 제보에 바탕한 추궁을 부인해도 더 이상 따져묻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체 시간을 따지면 이날 청문회에서는 어느 날보다도 증언시간이 길었다. 하루에 수십번씩 "짧게 하세요" "묻는 말에만 답변하세요"라는 호통을 들어야 했지만 이날은 불과 1-2차례 있었으나, 그것도 조용한 목소리에 그쳤다. 증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듯한 추궁도 1-2차례 있었으나 습관성에 따른 '실수'로 보였다.

그러나 박 전상무가 증언에 나섰던 17일 청문회장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한보로부터 뇌물 받았어요?" "은감원 감사에서 중징계를 받았죠?" "거짓말 하지 마세요"라는 등 흡사 '피의자 신문'을 연상케 했다. 시종 고개를 숙이고 자책하던 그를 향해 "고개 들고 답변하라"는 호통도 있었다. 답변할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길게 설명하려 해도 위원들은 "내 시간이 2분밖에 안남았는데 이따가 시간 줄게요"라고 말하고는 질문을 마치면 , 다음 위원으로 그냥 넘기기 일쑤였다.

17일과 29일의 청문회에서 달라진 것은 박 전상무의 갑작스런 죽음과 증인밖에 없다. 청문회장 보도진석에 앉아있던 기자들과 방청석 사이에선 "이제야 진짜 청문회를 하는구먼"이라는 두런거림이 들려왔다."

이날 청문회를 집에서 지켜보고 있던 두 감독원장의 부인은 울지 않았다. 서울상대 동문이기도 한 박씨의 죽음으로 '인격살인'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음날도 이런 기류는 계속되었다. 특위위원들은 장철훈 조흥은행장에게 외압을 물리치는 행장이 되라고 격려까지 했다.

사건의 주인공 박석태가 자신의 자살을 통해 사회에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는 어떤 항의의 목적으로 혹은 부정과 비리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책임감으로 자살의 길을 택한 것으로는 보기 힘들었다. 그가 남긴 유일한 단서는 '약한 아버지였다'는 것과 자신이 입에 올렸던 국회의원, 전임 은행장들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분하고 원통한 것이 아니라 죄책감이다.

세간에서 '진짜 자살해야 할 사람'으로 지탄받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미안하다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신문은 비리로 뒤엉킨 사회가 그를 죽였다고 말했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증언석에 나와 피의자의 입장에 섰던 증인들이 아닐까. 그는 특위위원들의 압박에서 박경식과 같은 '거침없는' 소신도 갖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부인 일변도나 답변거부로 일관한 '피의자 쪽' 증인들처럼 배짱도 없었다. 보다 기 막혔던 것은 31년 직장까지 날린 이 사건에서 '사회적 피고'로 몰리면서 자기변명 한 번 제대로 못한 피압박의 상태였을 것이다.

그가 증언하러 나왔던 날도 그는 여러차례 자신이 여신총괄부장으로 임명된 후 고달픈 은행업무에 대해 말할 기회를 가지려고 애썼지만 아무도 그것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입을 막아버렸다. 이미 그를 청문회장은 '증인은 죄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으로 증언석에 끌어 낸 것이다. 그는 권력사회와 시민사회라는 대칭적 입장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고 죽었을까. 약하고 미안했던 그는 이미 은행의 중역자리를 물러났지만 권력사회의 문법을 버리지 못하고 죽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는 입을 봉해버려야 하는, 그래야 평판이라도 다시받아 그 울타리 속에 다시 들어갈 수도 있는 '권력의 계율'이 몸에 배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은행이라는 권력사회에의 복귀가 '증언'이라는 '배신'에 의해 참담하게 무너지게 된 그것이 바로 죽음을 선택케 한 것이다. 엄격하게 진실을 말하자면 그는 자살이 아니라 '타살'된 것이다.

그가 죽자 '진실을 말하려 했던 증인'으로 국회특위는 평가했다. 진실을 말하는 청문회에서 진실을 말하려 노력했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이 모순은 무엇으로 설명되어야 하는가.

한편 이날 김기수 검찰총장은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5월10일 이전에 김현철씨를 구속하고 한보특혜 대출비리와 현철씨 비리의혹사건을 사실상 마무리 할 방침"리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이회견을 박석태씨 자살사건을 밀어내고 1면 톱으로 보도했다. 김총장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의 수사결과 현철씨는 한보특혜 비리와 관련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현철씨를 구속하지 않으면 축소수사라는 비난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한보사건과 무관한 개인비리로 현철씨를 구속하지 않을 수 없다. 현철씨를 구속하는 것은 사실상 표적수사나 다름없기 때문에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도의적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권 일각에서 정치인 수사에 반발, 이번 사건이 마무리된 뒤 검찰총장을 경질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절대 외압에 의해 물러나지 않겠으며 스스로 물러날 때라고 판단되면 그 때 물러날 것이다."

김총장의 회견을 놓고 검찰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분석들이 나왔다. 검찰간부들은 대체로 임기 4개월여를 남긴 시점에서 '책임진다'는 말을 한 것은 총장의 어려운 입장을 벗어나기 위한 '뜻'이 숨어있는 것 같다고 보았다. 재수사 착수 이후 검찰수뇌부는 수사 실무진과 소장검사들의 반발과 권력핵심부의 '주문' 사이에서 곤혹스런 입장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가 중도퇴진을 암시하는 발언을 한 것은 이를 공개적으로 흘려 수사실무진의 반발을 누르는 한편 검찰수뇌부의 입장을 굳히려는 '언론플레이'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어떻든 김총장이 김현철 처리를 5월10일로 못박음으로서 한보사태는 서서히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는 어떤 시나리오가 준비되고 있다고 보여졌다.

비록 본인은 아무런 외압에 의해서도 영향받지 않는다는 설명을 붙였지만 권력사회, 더 좁혀 말한다면 대통령과 검찰총장은 '권력의 문법'을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발동시키고 있다는 강한 인상이었다. 다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검찰의 위상, 그리고 통치권자의 권위를 최소한이나마 확보한다는 상호간의 속셈이 교환되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