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문민도 썩더라"**
-김대통령에 대해 심경의 변화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언로가 막힌 상태에서 김대통령과 국민에게 직언하는 것이다. 그동안 인간적으로 고뇌하고 갈등했다. 현철씨는 대통령 정치참모로 있을 이유가 없다."
-롯데호텔에서 김덕룡 강삼재 정형근 김무성씨가 현철씨와 만났다고 했는데.
"그 두 번째 테이프는 아무래도 이상해서 내 나름대로 함정을 만든 것이므로 의미를 두지 않는게 좋다."
-김덕룡씨는 현철씨와 맞총질을 했다는데.
"김덕룡씨는 현철씨와 가깝지 않다. 김덕룡씨가 영부인께 '사이비 종교인 만나지 말라'고 하자 영부인이 '아저씨, 종교문제까지 말하지 말고 정치만 해요. 아저씨가 빨갱이요?'라고까지 했다."
-김기섭차장이 현철씨에게 주연을 여러번 베풀었고 96년 8월14일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1646호 등 방 세 개를 얻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데.
"층은 달랐고 룸에서 만나기로 돼 있었다."
-이홍구씨가 총리로 지명되기 며칠 전에 알았는가.
"하루 전이다."
-증인은 95년 가을 현철씨가 '보근이, 태중이와 4명이서 술 먹자'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보근씨는 96년 봄 청와대비서관 소개로 김현철씨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현철씨가 술 먹자고 한 것은 쌀살한 날이었다. 95년 겨울은 아니고 늦 가을 아닌가 싶다"
-현철씨를 만나 무엇을 했는가.
"민심도 전하고 이러저러한 사람들은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있다는 말도 했다."
-김대통령이 출마를 권유했다는데.
"88년 1월 초 제주도 하얏트호텔에 수행해 내려갔을 때 당시 김총재가 '남이 자기를 어덯게 보느냐'가 정치라면서 출마를 세 번 권유했으나 거절했다."
-현철씨와 정보근회장이 한 번밖에 만나지 않았다는데.
"현철씨는 두 번 만났다고 했는데 내가 아는바로도 한 번 더 있다. 현철씨는 나를 백번도 더 만나고 몇번 안만났다고 했다."
-박태중씨가 돈줄이라는 것은 어떤 근거인가.
"항상 박태중씨 사무실 안에 현철씨 사무실이 있었다. 모든 사무실 비용도 박씨가 냈다. 박씨가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인정한 적도 있다. "
-증인은 김현철에게 고속도로 휴게소 한 건 해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장학로사건이 나기 전인 94년 장씨에 좋지 않은 소문이 있다고 했더니 현철씨가 내 뒷조사를 한 적이 있다. 내가 항의하자 그가 미안하다고 했고 내 신임을 묻는 의미에서 아무거나 하나 부탁해 놓고...."
-현철씨가 '보고서가 좋지 못한 것이 집중적으로 올라온다'고 했다는데 무슨 의미인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나 여러 곳에서 받는다."
-현철씨가 쓰는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눈 먼 돈이 많다. 박태중씨가 한 달에 1천만원씩 대준다고 했다."
-리츠 칼튼 헬스클럽 회원권 얘기를 꺼냈다. 여기를 조사해 보니 정몽규, 박태중, 이웅렬이 다 있었다. 박씨 회원권이 정보근씨와 비슷한 시기에 돼 있다면 돈 출처를 조사해 보라고 했다는데.
"김현철씨 집사(박태중)하고 정보근하고 같은 회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시기가 비슷하다고 했다."
-대선 때 한보가 많이 도와주었다고 했는가.
"못들었다."
-고박사가 보건복지부와 검찰에 압력을 넣었다고 스스로 얘기 했는가.
"스스로 시인했다."
-김희완위원장(경실련)에게 녹음테이프를 준 시점은.
"96년 10월말이나 11월 초다."
-이성재의원도 테이프를 달라고 했나.
"메디슨이 이의원을 비난하는 광고를 싣자 새벽에 이의원이 전화를 걸어 왔기에 '테이프를 내 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와 김위원장, 이의원 등 세명이 만났다. 그때 김위원장은 자기도 폐기처분했다고 했다. 이의원이 그 후 현철씨를 만났는지 현철씨에게 전화하니 '테이프 때문에 전화했느냐. 이미 대책회의 다 했다. 터뜨리려면 터뜨려라'고 했다."
-92년부터 사용한 현철씨 사무실은 몇 개냐.
"여러번 옮겼다. 현철씨가 근무한 사무실은 항상 하나였다. 오전에는 개인 사무실에서,오후에는 롯데호텔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이성호씨가 북한에 다녀 온 건 맞느냐.
"맞다."
-이것이 바로 현철씨가 북한문제에 개입한 흔적이라고 보는데.
"잘 모르겠다."
-김대통령 취임 후 현철씨를 어떤 자리에서 만났나.
"호텔과 사무실에서 만났다."
-현철씨에게 부탁한 것 있나.
"없다. 현철씨의 필요에 의해 만났다."
-현철씨에게 장학로 청와대 부속실장 등에 대해 말했다는데.
"김대통령이 취임 후 한 푼도 안받겠다고 해서 아래 사람들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썩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
-현철씨와 1백번 만났으면 친구사이인가.
"주인집 아들하고 하인 사이이지, 친구 사이가 아니다."
-메디슨사건과 고속도로 휴게소 청탁을 해결 해 주지 않아 틀어진 것 아닌가.
"아니다."
-관련 인사 흥정하고 협박하려고 녹음한 것 아닌가.
"그런 사실 없다."
-한이헌씨가 (당신을 가리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는데.
"그건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박태중씨 강남 건물 탈세 부분은.
"'중단시켜라'는 말을 들어 (국세청이) 중단시킨 줄 아는데, 나중에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그가 착각이라고 한 것은 세무조사등 혹시 불이익을 생각한듯함. 나중에 사실로 밝혀짐)
-증인은 한보사건의 몸통이 누구라고 보느냐.
"절대 권력자 앞에서는 누구나 하인이다. 홍인길의원 말처럼 바람만 들어도 날아간다는 표현이 맞다."(몸통에 대한 중요한 암시)
-현철씨 만날 때 시간은.
"보통 10~30분이다."
-청문회 준비를 어디서 했나.
"서울 근교 호텔에 있었다. 여당인사와 관계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지 말라고 전화가 많이 왔다."
-고소사건과 관련, 서울시경 소속이라는 50대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는데.
"김모씨라는 사람이었는데 목소리는 지금도 기억한다. 부탁받고 전화한다고 말했다."
-현철씨에게 청와대비서진들이 한 번에 1천만원씩 술값으로 쓰고 있다고 말 한 적이 있나.
"2번 얘기했다"
-현철씨가 돈 주려고 하지 않았나.
"현철씨가 여러번 주려했지만 거절했다."
이날 증인 박경식은 야당측 위원들로 부터는 격려와 찬사를 받았고 여당측과는 시종일관 적대적 자세를 유지했다. 청문회가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이긴 했지만 어차피 대선을 앞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으므로 증인을 볼모로 잡은 여.야의 정치공방으로 이미 흐름은 바뀌어 있었다. 특히 이날을 깃점으로 이제까지의 표적이었던 '한보'와 '공직자뇌물'로부터 '김현철게이트'로 옮아가 그 흐름은 보다 노골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박경식은 앞서의 증인들과는 달리 거침없는 답변과 의혹을 풀 수 있는 내용을 말함으로서 청문회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켰지만 과연 그의 진실이 무엇일까 하는 데는 많은 의문을 남겼다. 그는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 시대의 의인'인가. 그렇게 볼 수만은 없는 여러 측면을 연출해 보였다.
선과 악의 대결에서 이미 자신은 '선'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자기암시 속에서 증언을 계속했다. 일반 대중으로부터 이미 평가절하를 받은 국회의원들을 마음껏 공격하여 박수를 받아내는 정치적 계산에도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정치와는 담을 쌓고 있는 한 사람의 의사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예의 메디슨 사건 대목이 나오면 흥분하고 나섬으로서 인간적인 감성을 표출시키는 단순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떻든 박씨는 '청문회 산술'을 열심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계산력을 연마한 인상이었다. 이날의 증언을 통해 박씨는 현철씨를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지만 그가 국정문란의 유죄판결을 받게 하는 데 상당한 자료를 제공했다.
다음날 증언대에 앉은 사람은 문제의 박태중. 이른바 김현철의 '집사'로 알려져 온 이 증인은 박경식과는 대조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매우 침착하고 겸손한 태도로 심문에 응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오직 하나 그가 시인한 게 있다면 자신이 작성했다는 '반격 메모' 뿐이었다.
' DJ와 JP에 대해 맞불을 놓자'는 그 메모는 자신이 작성한 것이며 그것은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는 과정에서 심리적 혼란이 일어나 그냥 끄적거려 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어떤 특위위원도 그 메모의 흐름과 내용이 신동아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김현철이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놓고 추궁하지는 않았다. 어떻든 박태중은 김현철 의혹에대한 공격에 수문장 역할을 해 냈다.
증언대에 불려 나왔던 기업총수, 공직자, 은행장, 국회의원들에 비해 두 박씨는 답변방향은 극 대 극이었지만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합리화와 대응논리에 당당했다는 점이며 세속적 표현을 빌린다면 '꿀리지 않은 자세'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런 공통점을 생산하게 하였을까.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차이인가. 아니면 두 박씨의 일상이 '권력의 세계'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 해답은 후자쪽에 있을 것이다. 권력의 핵심 가운데서 그들은 고상하고 명분을 앞세우는 기득권 세력들의 비굴하고 음모적이며 부패한 또다른 세상을 보았을 것이다. 심문석에 앉아있는 특위위원들을 한 사람은 깔보았고, 또한 사람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침착하게 내려다 본 것이다. 두 박씨는 자신들이 직간접으로 이번 사태에서 '피고석'에 앉을 수도 있다는 진실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것은 '썩은 정치의 세계'라는 부도덕성이 보다 큰 '거악'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박태중씨의 "아닙니다"로 일관된 증언으로 청문회가 김이 빠지자 이미 예견되었던 바이지만 '북풍정국'의 모습이 머리를 내밀었다. 권오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박태중의 증언이 속개되고 있는 같은 날 오후 국회외무위에서 "황장엽씨가 오랫동안 북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종이에 써 놓은 것은 없겠지만 많은 이름을 알 수도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른바 '황장엽 리스트'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더욱이 때를 같이하여 안기부 기밀이 매주 김현철에게 제공되어 왔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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