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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오른쪽 눈'과 아들의 '왼쪽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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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왕의 '오른쪽 눈'과 아들의 '왼쪽 눈'

<손광식의 '1997 비망록'> (12) '김현철 일병 구하기'

***12. '김현철 일병 구하기'**

한보사건이 소강상태로 흐르는 가운데 한 흥미있는 외신이 들어왔다. 이른바 김현철씨의 비선 라인의 행동반경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심을 일으킬 만한 기사였다. 일본의 유력지 아사히 신문은 95년10월 김현철이 정태수총회장에게 한보의 비자금을 북한의 나진 선봉자유무역경제지대에 투자하도록 권유했다고 했다. 보도내용은 이러했다.

"중국 연변 소재 용흥집단공사 최원철 회장에게 확인한 결과 현철씨의 권유로 한보의 정총회장이 대북 합작투자를 제안, 일단 시범사업(운수업)으로 한보가 5억원을 투자하기로 계약했으며 이 과정에서 현철씨가 수차례 최회장을 만나 “한보의 대북진출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으며 한보의 고위관계자도 이런 사실을 간접 시인했다. 현철씨는 북한 쌀지원 문제와 관련해 밀사 역할도 했다.

현철씨는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사건에도 개입, 사전에 황비서의 망명의사를 확인한 뒤 김영삼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는 96년 9월초 10일간 중국을 방문, 황비서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씨를 북경에서 만나 망명의사를 확인했으며 북한 김정일비서 여동생의 남편인 장성택 노동당조직부부장의 측근과 만나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동시에 ‘회담이 실현될 경우 거액의 경제협력을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같은 물밑공작도 같은 해 9월 북한잠수함 침투사건이 발생, 한국정부가 강경자세를 취해 결렬됐다. 현철씨는 북한산 마그네사이트와 쌀과의 교환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북경에 체재중이던 미국 곡물상인 카길사와도 접촉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청와대측의 부인으로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MBC는 심야특집 프로를 통해 통산산업부에 이어 강경식 부총리가 이끄는 재경원에 대한 청문회를 보도했으나 일반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원칙론이나 어물어물 넘어가는 예의 답변대응으로 별다른 새로운 사실이나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는 진전이 없었다.

이러한 정부태도와 연관이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정무1장관실은 국정조사 청문회대책을 만든 사실이 밝혀졌다. < 정세분석회의 결과보고>란 큰제목과 <국정조사 청문히 대책>이란 소제목을 달고 있는 이 문건은 16절지 두 장으로 되어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전망**

야당은 이번 청문회에서 현철씨 관련 의혹을 최대한 증폭시켜 국민감정을 자극, 궁극적으로 대통령과 문민정부에 치명타를 가해 향후 대선정국의 확실한 주도권 행사를 기도.
새 진용 개편 이전까지 여권은 확고한 권력의 무게중심 없이 대야전선, 대국민 홍보전에 심대한 무력증 노출.
청문회 정국에 효율적 대처 실패시 청문회 종료후 재야 노동 학생의 반정부투쟁 촉발 우려.
경제위기를 포함한 총체적 난국수습과 정권 재창출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권의 단합과 결속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시점.
따라서 대권논의 자제. 이대표 중심의 일치된 단결로 여권의 모든 역량을 결집시켜 야당의 총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청문회 충격 최소화에 주력, 국면반전을 시도할 필요.

***대책**

1. 선제공격에 의한 적극 공세로 기선제압- 도상훈련 등 사전준비 철저, 긴밀한 팀워크 확보 필수(현철씨의 한보 무관, 이권개입에 따른 금품수수설 사실무근이라는 바탕하에 출발). 현철씨에 대한 지나친 비호 인상을 탈피해 쟁점사항에 대한 선제질문으로 공세적 방어 전략 구사. 질문순서 협상시 가급적 우리측 특위위원을 상위 순번에 포진. 질문내용도 사실관계와 불가피성을 적절히 배합, 현철씨의 충정과 해명을 유도해서 부각할 수 있도록 고려.

2. 현철씨 증언태도의 참회 순화 모습 연출- 기본적으로 본인의 분노를 삭이고 국민에 대한 사죄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 야당의 파상공세로 자칫 (현철씨의) 성정이 흐트러질 우려가 있는 바 야당 전략에 말려 절대 흥분하는 일이 없도록 현철씨측에 사전 철저 당부. 청문회 개시 전까지 가급적 교회에 자주 가는 것을 노출, 참회하는 모습을 부각시키는 등 사전 여론순화방안 강구. 청문회장 출두시 수행원 대동 자제.

3. 대언론 협조요청- 언론과의 감정해소가 급선무임을 감안, 개편 여권지도부에 대한 언론의 호감을 활용하여 언론계와의 접촉 확대 및 협조요청 긴요.

이 문건보다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게 한 또다른 검토보고서가 나와 정가를 긴장시켰다. 역시 정무1장관실에서 작성한 이 문서는 그 내용보다도 김수한국회의장이 YS를 독대하여 내각제 문제를 이야기한 후 곧바로 나왔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억측을 불러 일으켰다. 문제의 보고서는 <내각제 문서>.

***개헌제약 요인**

*절차상 요건
1. 재적의원(297)의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기 위해 다음의 조항 필요-- 신한국당(157명)과 국민회의(78명)의 85%이상 찬성. 신한국당(157명)과 자민련(45명) 찬성. 신한국당 일부(75명이상)와 국민회의 전원 자민련 전원 찬성.
2. 국민투표에서 국민설득문제 제기-- 3김 영향력 존속, ‘국민에 대한 국회의 쿠데타’ 등의 주장에 대한 설득논리 필요. 개헌추진에 국민회의를 배제할 경우 경제문제에 이어 정치문제로 인한 혼란해소에 어려움.

*개헌시기
현행 헌법상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최소 50일, 최대 1백10일 소요.(개정안 공고 20일이상, 국회의결 60일이내, 국민투표 30일이내). 대통령 선거일인 12월 18일 이전에 국민투표를 하여야 하므로 늦어도 8월까지 합의 필요.(9월개정안 마련. 10월 개정절차 진입). 한보특위 5월4일 종료, 사법처리 5월중 완료, 6, 7월 임시국회를 감안하면 시기 촉박.

*현역의원 잔여임기 처리문제
개헌시 현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하는 것이 논리적(98년1월까지 관련 법처리 후 늦어도 내년 2월초에 선거.
(2월25일 정부 구성) 개헌필요 의석수를 확보하기 위해 현역의원의 잔여임기를 보장해 줄 경우 개헌안에 ‘15대 임기보장’ 항목을 삽입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으나 국민에게 설득력이 부족.

*명분상 제약 요인
3김의 정치적 영향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바 이것은 세대교체에 역행하고 문민정부의 역사적 소명의 하나로 천명된 ‘3김정치 청산’에 위배. 한보사태, 경제위기 등 난제해결을 위해 매진하여야 할 시점에 권력투쟁 형식으로 비쳐져 정치적 냉소주의 양산.

*향후 관리방안
현단계에서 내각제 개헌에 대해 대통령이 수동적으로 방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어려움. 기존의 입장과 당내노선에 대한 오해 등 고려. 또한 개헌이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내각제 개헌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방법이 오히려 효과적일 것임. 따라서 당의 단합을 해칠 목적으로 ‘개헌불가’ 당론에 반대하여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인사에 대해서느 자제요청 필요. 다만 3월 27일, 28일 연찬회에서는 당인사들의 의견 개진시 개헌에 대한 당내 기류를 파악해 볼 필요성은 있음. 또한 개헌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할 경우에는 당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 내각제 논의는 일면 현철정국의 시선분산, 당내 반 이대표군 포용, DJP연합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으므로 5월 한보사태 해결시까지는 잠복하는 것도 도움.

이 비밀문건은 정무1장관실의 권찬호정무담당관이 작성한 것인데, 신경식장관은 문건의 내용은 자신도 본 바 없으며 자신이 지시한 바도 없고 참고용으로 실무자가 작성한 듯 하다고 잡아떼었다. 이 문건은 3월 27일 천안 신한국당 연수원에서 열린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 핫이슈로 등장했다. 신경식장관이 아무런 정치적 의미가 없다고 말했지만 ‘진의’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한편 서울에서는 같은 날 심재륜 중수부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한보그룹 정태수총회장 일가의 총재산이 2천9백81억원에 상당하다고 밝히면서 이 재산을 모두 압류, 환수조치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정총회장의 3남이자 이 그룹의 회장인 정보근을 소환, 곧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고 했다.

밝혀진 정씨 일가의 재산 내역은 96년 12월말 현재로 부동산 8백77억원(공시지가 기준), 주식 1천3백85억원(액면가 기준), 전환사채 7백10억원, 예금채권 9억원 등이었다. 정보근에 대한 혐의는 한보철강의 회사자금으로 전환사채 2백72억원 상당을 자신의 명의로 구입하고 개인세금 34억원을 납부하는 등 회사공금을 개인용도로 유용한 것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심부장이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이같은 전격적인 조치들을 놓고 정계는 초긴장상태에 들어갔다. 이날의 조치는 심부장이 이 사건을 맡기 전 한 택시운전사가 말했다는 "감옥에 몇차례 들락거리면서도 정태수씨가 이번 사태를 일으킨 것은 재산이 있기 때문이므로 아예 거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적이 있을 터였다. 이제 마지막 코너에 몰린 정태수가 그동안의 묵비권을 풀고 ‘폭탄’을 터뜨릴 것이라는 것이다. 돈받은 정치인 50명내지 60명의 명단을 불어버릴 경우, 정계는 여야할 것 없이 대폭발의 ‘빅 뱅’이 들어닥칠 것이라고 언론은 보도했다.

이같은 대검중수부의 공격적 수사가 시작된 배경과 연관된 것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의 지도적 종교계 인사가 하루 전 청와대로 김대통령을 예방했다. 순복음교회 당회장 조용기목사와, 수원침례교회 담임목사이며 극동방송 사장인 김장환목사였다. 조목사는 이날 면담에서 김대통령에게 이런 우화를 얘기했다.

옛날 어느 왕국에서 밀밭농사가 풍년이 들었는데 한 무리의 탕아들이 말을 타고 와 밀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왕은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의 두 눈알을 빼 놓겠다”고 엄한 영을 내렸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범인을 알아내고 보니 왕의 아들이었다. 왕은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주위의 신하들은 "어떻게 아들의 눈을 뽑느냐"고 반대했다. 왕은 고민 끝에 자신의 오른 쪽 눈과 아들의 왼쪽 눈을 뽑았다. 김대통령의 결단과 희생을 얘기한 것이다.

김목사도 다윗과 그의 아들 압살롬의 이야기를 했다. 반역을 꾀한 아들이 정부군의 창에 찔려 죽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다윗은 다시 심기일전, 나라를 잘 이끌어갔다. 김대통령의 분발을 촉구한 것이다. 그래서 YS가 결단을 하고 용기를 북돋게 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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