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파산 도미노**
1차 산업의 황폐화로 북한이 무너지고 있을 때 남한쪽에서는 2차 산업의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또하나의 재벌그룹이 쓰러졌다. 동남은행과 서울은행은 삼미그룹의 주력기업인 삼미특수강의 어음 11억1천9백만원을 부도처리했다. 삼미그룹은 재벌순위 26위로 96년말 현재 그룹 총자산은 2조5천3백78억원, 매출은 1조4천9백25억원이며 2천4백78억원의 적자를 낸 바 있다. 은행여신은 96년말 현재 1조3천7백60억원이며 제2금융권 차입도 5천2백37억원으로 총부채는 1조8천9백97억원에 달했다. 삼미가 도산하자 언론은 '제2의 한보'의혹으로 이그룹 역시 최형우, 김현철이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삼미그룹에 대해 '정치권 실세들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주장이 지난 수년간 끊임없이 제기됐으며 법정관리신청을 계기로 이같은 의혹들이 한꺼풀씩 벗겨질 것으로 보인다. 제기되고 있는 정치권 컨넥션은 김영삼대통령의 차남 김현철과 김현배 삼미그룹회장, 그리고 최형우 신한국당고문과 서상록 삼미그룹부회장-김현철 삼미그룹전회장-김현배 회장의 관계를 두 축으로 하고 있다.
김현철은 삼미그룹 김회장의 고려대 2년 후배로 평소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경영연구회' 등 현철씨의 사조직이 거론될 때마다 김회장의 이름이 거명되곤 했다. 포철의 일부관계자들은 "포철이 삼미의 창원공장 및 북미공장 인수협상에 나선 것은 현철씨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포철 일각에서는 "삼미측이 현철씨를 믿고 그랬는지 원자재 외상매각대금 9백억원을 탕감해 달라는 투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면서 포철 임원진이 문제를 놓고 고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보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되고 김현철의 정․경개입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포철에 대한 이같은 요구는 수그러들었고 포철도 삼미의 북미공장 인수를 거절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미의 정치권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인맥은 이 그룹 서상록 부회장. 그는 신한국당 최형우 고문의 친구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미그룹의 한 임원은 "서씨는 미국에서 최씨를 만나 여러 차례 식사를 하면서 친해졌다. 그는 그룹 내부경영에는 간여하지 않고 대외활동에만 주력했다"고 말했다. 철강산업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이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세 차례 미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경력이 있는 서씨가 삼미에 전격 영입된 것은 김현철 전 회장의 결정이었다. 서씨 영입과 관련, 김현배 회장은 "형님과의 개인적 친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씨 영입을 계기로 삼미는 최 고문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해 왔고 대신 최 고문은 삼미를 엄호했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 관측이다. 삼미는 지난 3월 13일 부도직전까지 몰리다가 겨우 막은 일이 있다. 그후에도 삼미측 고위임원들은 "결국 포철이 인수할 것" "부도야 나겠느냐"며 뭔가 믿는 데가 있는듯한 표정이었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이었다. 김회장은 이같은 세간의 의혹에 대해 "삼미는 스스로 경영해 왔으며 외부의 지원이나 압력을 통한 바는 없었다"며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한 번도 만나 본 일이 없다"고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포철의 한 관계자는 "재계 청년기업가를 중심으로 복잡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김현철을 고려대 동문인 김회장이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믿기 어렵다"며 "이같은 주장은 김회장 발언의 전체적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회장은 '법정관리 신청전 채권은행과 사전협의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협의 후 지난 주말 은행감독원에 보고까지 했다"고 말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제일․상업은행장들과 말이 엇갈리고 있다."
삼미 도산은 두 개의 기류를 형성했다. 하나는 연쇄부도로 현재화할 금융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한보에 이은 삼미부도로 부실기업그룹과 권력의 유착관계가 계속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또다른 많은 도산위기의 기업이 줄을 서 있다는 것이 재계의 정보이고 보면, 불가분 부도 시리즈는 계속될 전망이었다. 경제의 위기가 실체화됨으로써 어떤 '혼란'마저 예측되는 분위기였다.
특히 권력구조의 변화시기에 들어선 만큼 그동안의 권력과 재벌의 연계철선이 서서히 무너짐으로써 부도사태는 가속화될 잠재성마저 있다는 관측이 지배되고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의 도미노현상은 무시 못할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시국 흐름을 두고 국민성을 탓하기도 했다. 리더십의 빈곤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권력의 분산으로 빚어지는 기강해이로 분석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자질론'이 공공연히 탁상의 화두로 등장했다. 이미 재벌급 가운데 우성이 넘어가고 한보가 터지고 삼미가 도산되었다. 그리고 경제전망은 캄캄하며 외환은 계속 부채누증이고 국제수지적자가 확대되고 있었다.
한편 검찰은 김현철 게이트와 관련하여 의사 박경식을 소환, 철야조사에 들어갔다. 경실련에 제공한 녹음테이프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경실련은 김현철관련 비디오 테이프가 절취에 의해 경실련 쪽으로 유출되었다는 비난을 받자, 이번에는 박경식이 맡겨 두었던 김현철관련 녹음테이프 4개를 공개해 버렸다. 이미 경실련의 유재현 사무총장과 양대석 사무국장은 사표를 냈고 특히 양씨는 절도죄로 입건되어 경실련도 이 단체의 생명이랄 수 있는 도덕성이 크게 훼손되었으며, 조직도 상당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공개된 녹음테이프에서는 새로운 사실의 폭로는 없었으나 김현철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대호건설의 이성호사장에게 특혜로 맡게 했다"는 사실과, 그의 재산관리인으로 떠올라있는 박태중에 대해 세무조사가 진행되던 중 김현철로부터 압력이 있어 국세청 조사가 중단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보사태는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갔다. 이날 최상엽 법무부장관은 최병국 대검중수부장을 인천지검장으로 전보하고, 후임에 심재륜 광주지검장을 임명하는 인사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최장관은 "대검 중수부가 한보사건 수사에 최선을 다했으나 수사외적인 요인에 의해 일부 오해가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검찰 내부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불식시키고 보다 공명정대하고 투명한 검찰의 수사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의 수사책임자인 중앙수사부장을 교체함으로써 검찰이 심기일전해 진상규명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건의에 따라 인사를 하게 된것"이라고 말했다. 한보수사의 문책성 인사였다.
검찰내부는 정치논리에 검찰이 희생당했다는 격앙된 분위기였다. 당사자인 최병국 부장검사는 "차라리 선비의 목을 치는 게 낫지 이런 식으로 욕을 보여서야 되느냐"며 불쾌감을 토로했다. 무엇인가 권력내부에 흐름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문책이라면 무엇을 문책 삼은 것인가. 김현철에 대한 수사가 미흡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그에 대한 수사기술이 미숙하여 '덮을 것을 덮지 못한 것'이 유책사유인가.
형식으로는 법무장관의 인사권 발동이지만 김대통령에게 보고 안할 수 없는 중요한 인사조치였다. 정치권의 압력을 김대통령이 받아들여 검찰이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잡은 것인가, 아니면 YS의 또다른 반격인가. 이회창 대표는 인사내용을 몰랐고 고건 총리만 알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당과 행정부는 독립적인 자기 권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나가기로 권력분할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했다. 어떻든 이날 이윤성 신한국당 대변인은 중수부장의 경질설에 대해 발표 직전까지도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공식 입장을 공표하기까지 했었다.
또하나의 사태진전은 대검 중수부가 김현철의 자금관리인이자 최측근인 박태중의 서울 서초구 우면동 집과 박씨의 사업체인 심우, 우보전자, 로토텍, 파라오 등 다섯 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실시한 사실이었다. 한보철강 설비도입과 관련하여 김현철이 독일 SMS사로부터 2천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에 따른 것이었다. 이날 법원에 제출한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내용은 이러했다.
"현철씨 최측근인 박씨가 한보철강의 열연설비 도입시 한보철강 대리인자격으로 독일 SMS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국제시세보다 50% 높은 가격으로 이면계약을 한 뒤 차액인 2천억원을 받아 현철씨에게 제공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영장을 청구한다."
이 리베이트 흑막을 터뜨린 사람은 국민회의 임채정 의원이었다. 그는 이 문제를 2월에 열린 임시국회에서 폭로한 바 있었다. 그것이 되살아난 것이다. 임의원에 의하면 그 내막은 이러했다.
박태중은 외국의 철강설비에 대해 잘 아는 국내의 어느 인사에게 접근했다. 그는 "대통령의 정치를 도우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돈을 만드는 방법은 원전이나 철강시설을 도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철강도입 쪽을 택하기로 했다. 우리를 도와달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충분히 하겠다"고 했다. 임채정은 독일 SMS사뿐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베스트 알핀사와 일본 고베철강으로부터의 설비도입 과정에도 리베이트 흑막이 있다고 했다. 그는 3개 회사로로부터 받은 돈은 5천억원 내지 1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리베이트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시세보다 비싼 설비계약 금액이었다. 한보철강이 독일 SMS사로부터 도입하기로 한 시설은 1백만t규모의 박슬래브설비로 도입에서 가공까지 투자액은 7천7백97억원. 반면에 포항제철은 독일 만네스만사의 연산 90만t 설비 2기를 짓는 데 6천2백억원을 썼으며 미국 뉴코사는 SMS사 1백만t 설비 2기에 4천6백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한보철강은 SMS사와의 거래에서 포철보다 1천5백억원, 미국 뉴코사에 비해서는 2천2백억원을 더 쓴 셈이 된다.
이 자금중 상당액이 비자금으로 조성되었다는 의혹이었다. 그리고 이런식의 비자금은 전체 설비와 공정에서 조출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95년 준공된 당진제철소 A지구의 경우 연산 1백만톤 봉강설비와 2백만톤 박슬래브설비 등 2가지 설비를 들여올 때도 포철 등 다른 업계에 비해 3천억원 이상 많은 투자비가 들어갔다. 현재 건설중인 B지구는 코렉스설비에서 2천8백억원, 제2열연설비와 냉연설비에서 5천7백억원이 국내업체보다 과다하게 투자되었다.
특히 한보가 코렉스용량을 1기에 75만톤규모라고 발표했으나 포철이 시험가동중인 코렉스설비와 똑같은 오스트리아 베스트 알핀의 60만톤급 C-2000모델. SMS사는 독일 뒤셀도르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종업원 4천명, 연매출 6조원인 세계적 제철설비업체다. 이 회사는 80년대 중반 첨단공법인 박슬래브공법을 개발하여 미국 전기로업체인 뉴코사에 납품한 바 있다. 한보는 뉴코사에 이어 두 번째로 1단계공사에서 박슬레이브공법을 과감하게 도입했었다. 박슬레이브공법은 전기로에서 고철을 녹여 기존 슬레브보다 두께가 얇은 슬레브를 만들고 이를 압연해 핫코일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었다.
대검 중수부장의 돌연한 경질이 있었고, 그 날 국회 한보특위는 당진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검찰에 의해 '2천억원 리베이트 흑막'이 공식화되었다.
이 세 가지 사실은 어떤 연관관계를 갖고 있지 않을까. 권력의 속성은 드러내면서 감추는 것이고 보면, 표면상의 변화는 지극히 미묘한 느낌을 주었다. 기존의 문법대로라면 국회는 야당쪽을 주축으로 드러내면서 문제를 확대할 것이고 권력쪽은 '죽이면서 살리는'쪽으로 갈 것이다.
이 사건의 궁극은 어차피 권력이동과 관련될 수밖에 없었고, 야당은 YS를 마지막 목표로 할 것이며, 여당과 검찰은 표를 의식하는 한편 밉든곱든 대통령의 보호를 명분으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YS는 이 사태를 수습하는 정치적 힘을 잃고 있었지만 집권세력으로서는 아직 대통령으로 있는 그가 '강자 그룹'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김현철의 '국정문란'은 또다른 사건 하나를 드러냈다. 자신의 개인비서인 정대희(34)를 96년 10월부터 공무원 신분이 아닌 데도 청와대 정무비서실에 근무하도록 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그의 요구가 있었고 이원종 전 정무수석도 총무수석실에 협조요청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측은 "정씨가 당초 정무비서실 정식직원으로 임명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자리가 없어 공보처 전문위원으로 임명해 청와대 파견형식으로 근무할 것을 제의했으나 정씨가 이를 거절, 그동안 (5개월간) 무단근무를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정씨는 정무비서실에 책상을 마련하고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실 행정관>이라는 명함과 경호실로부터 출입증까지 발급받아 근무해 왔으나 직원명단에는 올라 있지 않았다. 언론은 이 사실을 일제히 보도하면서 그의 청와대 근무는 사인(私人)인 현철씨가 개인적 필요에 따라 자신의 심복을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 근무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큰 파문이 예상된다고 몰아갔다.
언론의 공세는 엄청난 파도를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해일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뒤안쪽에서는 '언론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도 일어났다. 제4부니 뭐니 하면서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어디다 팽개쳐 두고 이제와서 의혹, 개탄, 성토의 시리즈에 열을 올리고 있느냐는 비난이었다. 언론 내부에서도 자성의 소리가 등장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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