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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 목사가 전한 '1997년 북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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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 목사가 전한 '1997년 북한의 진실'

<손광식의 '1997 비망록'> (9) 북의 진실은 이랬다

***9. 북의 진실은 이랬다**

북한의 식량난은 객관적 사실로 드러나고 이에 따라 4자회담도 긍정적인 쪽으로 기류가 변하는 듯했다. 워싱턴발 기사는, 북한이 4자회담에 참석할 경우 대북식량 지원을 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장해 달라는 뜻의 메시지를 미국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 2월 이후 식량 등 경제지원이 선행되어야 4자회담에 참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는데 이번 메시지는 '식량지원 보증'만이라도 이뤄지면 4자회담에 참석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일부 후퇴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북한의 메시지는 이날 전화통화를 통해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한·미정부는 "식량지원의 규모와 시기를 전제로 한 4자회담 수락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초 3월 16일 귀국 예정이었던 북한 외교부의 김계관 부부장 일행은 체류기간을 일단 18일까지 연장했는데 한 북한소식통은 "이들이 4자회담과 관련한 평양의 훈령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 필요할 경우 미국체류가 더 늘어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곽선희 소망교회 목사는 연변과학기술대학 이사장 자격으로 3월 11일에서 15일까지 북한을 방문, 김경운 나진·선봉 행정경제위원장과 나진에 <과학기술 국제경제무역대학>을 설립키로 합의했다. 이 대학의 설립 운영비는 50억원, 총장은 남북인사 각 1명. 이 대학은 6개월제와 1년제, 4년제등 3개 교육과정을 설치할 예정이었다. 영어, 무역, 컴퓨터 강좌를 개설하고 교수진은 한국인 40명을 채용키로 했다. 곽 목사는 북한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3월20일 밤 선교관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북한실정을 비공개로 전했다.

"우선 오늘의 얘기는 어떤 문서로도 외부에 전파되지 않도록 당부한다. 북조선은 남한쪽에서 나오는 어떠한 문건도 샅샅이 종합보고되기 때문에 식량지원 등 우리의 선의도 왜곡하거나 정치적 해석을 붙이는 경향이 있어 오늘의 북한방문 얘기도 잘못 전달될 수가 있다. 그만큼 남과 북의 불신은 상호 깊은 골이 패여 있다.

이번 북조선 방문에서 그쪽 분들과 만나 나는 좀 대담한 얘기를 했다. 이젠 서로 사실은 사실대로 보아주고 사실대로 믿어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북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차차 드러나게 된다. 1년6개월 전 내가 북조선에 갔을 때와 비교할 때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식량사정은 극에 달한 느낌이었다.

돌아와 보니 조선일보에 김정일의 비밀 연설문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더라. 거길 보면 김정일이 군대를 방문했을 때는 사기가 충천하고 혁명사업에 열성적인데 김일성종합대학엘 가보면 기가 죽어 있고 당 일꾼들은 일을 손 놓고 있다고 질책한 대목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민군대는 밥을 주지만 김일성대학엔 밥이 충분치 못하다. 이제 이데올로기는 밥에 의해 와해의 국면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북에서 '남한 바로알기'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북한 영주권을 가지고 있어 아무 곳이라도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 이런 흐름을 짚어 볼 수가 있었는데 적어도 그곳 주민의 50% 이상은 '남한 바로 알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쪽에서도 '북한 바로 알기'가 진정한 의미로 확산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남과 북은 서로 실체를 확인하고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안다는 사실마저도 커다란 낙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시골 장마당에 가 보았다. 한 2천명 정도가 모여 거래들을 하고 있었는데 6.25전쟁 당시의 피난시절을 상기해 보면 근사치가 나올 듯하다. 이 장터는 그 동안의 배급경제가 식량위기 이후 무너짐으로써 생겨난 것인데 이를테면 제한적인 화폐시장의 인정이다.

사람들은 거의 걸인 정도의 입성이었으며 물건도 바닷가에서 잡은 게 몇 마리, 옥수수 가루로 만든 떡 몇 개 이런 식이었다. 떡장수는 바구니 위에다 그물을 치고 팔고 있었는데 이유인즉 어린애들이 그걸 덥쳐 매맞아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훔쳐 달아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떡을 입에 물고 달아나다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는 꼴을 보았다.

남쪽에서는 북의 이런 실정에 대해 '그게 사실인가'하고 보지 못했으니까 반신반의하지만 그걸 목격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처참한 비극이다.

나는 잠도 잘 자고 깊이 자는 편인데 이번에 북을 다녀온 이후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얼마 동안 계속되었다. 길거리에서 무엇을 줍는 사람들을 보았다. 식량을 싣고 가던 트럭이 흘린 나락을 줍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슨 한 주먹 그런 수준이 아니라 몇 알갱이의 옥수수를 찾는 것이었다.

농촌에 가면 벼를 베고 난 그루터기를 헤집은 흔적을 보게 되는데 벼 뿌리에 남은 곡기될 만한 허연 부분을 찾은 것이라고 했다. 또 호미로 밭같은 곳을 헤집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동면중인 뱀과 개구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쥐까지 잡아먹는 것 같은데 이런 '수확'을 얻는 날이면 온 집안이 화기가 돈다고 했다.

엄청난 경제위기는 평양공항에서도 느꼈다. 공항에 불빛이 없었다. 안내원은 회중전등으로 출구를 안내해줄 정도였다. 자식들의 목을 눌러 죽였다는 얘기는 전설이 아니다. 실제로 북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화이다. 왜 이같은 상황이 되었는가.

다락밭 탓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당은 스위스의 계단식 포도밭을 보고 대대적인 다락밭 개간을 전개했다. 그러나 홍수가 지자 다락밭 농토는 황무지로 변했고 그 흘러내린 토사는 평지마저 박살을 냈다. 그리고 그 퇴적물들은 강 하류로 흘러 들어가 역류현상을 일으킴으로서 유역의 농사마저 휩쓸어버리는 '황폐화의 도미노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수십년의 집단농장 체제는 엄청나게 생산성을 퇴화시켰다. 경작자유와 소유권이 인정된 손바닥만한 앞마당 텃밭을 보면 옥수수 하나가 팔뚝만하다. 그런데 집단농장의 사과 한알은 한주먹도 안된다. 나는 어렸을 때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사과의 크기를 알수 있다. 그때 내가 먹은 사과는 엄청나게 컸었던 기억이다.

왜 이렇게 작아졌는가. 모든 곡식과 과일이 그러하듯이 품종개량을 안 한 것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노동집약적 산업구조를 자랑한다. 따라서 기술집약이 가져오는 생산성 증가의 위력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북의 이러한 극한 상황이 어째서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가. 바로 '북침'의 긴장이 전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남침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전쟁의 최초 경험은 남쪽의 경우 북한의 탱크와 인민군의 등장이었다. 그 사실을 남쪽의 사람들은 목격하고 체험한 것이다. 남쪽이 그런 전란의 상황에 들어갔을 때 북한은 어떠했는가. 대포소리도 안 들린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들이 전쟁을 '목격'한 것은 9.28수복 이후 유엔군과 국군에 의해 북진이 이루어졌을 때이다. 전쟁을 목격하고 체험한 것은 바로 이때인 것이다. 남쪽으로부터 쳐들어 와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인 것이 그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6.25전쟁인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적 진실이라던가 그런 차원이 아니다. 게다가 북으로부터 후퇴할 때 유엔군은 평양 등 여러곳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렸다. 이것이 또한 북한 주민에게 각인되어있는 전쟁인 것이다.

당과 김정일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 전쟁의 경험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악몽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참아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쪽에도 체제를 지키는 사회집단이 있다. 전쟁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당은 먹여주고 입혀주고 김일성대학을 졸업시켜 주었다.

그 자애로운 일을 김일성이 해 주었기 때문에 이들은 바로 김일성이 어버이인 것이며 자신들도 그렇게 믿고 어버이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 놓는다는 인생관과 충성심을 갖고 있다. 그 숫자가 2만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조선 사회주의는 드디어 먹는 문제로 하여 이런 구조의 위기를 맞고 있다.

'남한 바로 알기'는 주로 젊은 대학생층 등 지식인 계급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북한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약 3백만대가 깔려 있어 바깥세계에 대한 정보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도 남쪽의 선교방송을 들을 수 있었는데 마침 방송에서는 우리집 딸아이의 목소리가 나오더라.

그러나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확인 사이에는 커다란 낙차가 있다. 앞서 말한 '남침', '북침'처럼. 큰일은 이제 북조선체제의 온존이 아니라 붕괴이다. 무너지면 천만명 이상이 유민이 되어 남으로 내려 올 수밖에 없다. 그것을 어찌 감당할 수가 있는가. 더욱이 그들은 지금 극한 상황을 체험하고 있다.

평양을 떠날 때 그 쪽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제발 흡수통일일랑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해 주십시오. 물론 그는 정치적 입장에서 말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걱정해야 할 쪽은 이쪽이다. 북조선이 자체 붕괴하더라도 지금의 피폐한 경제상황, 극한적인 주민심리와 남쪽에 대한 불신에서 그렇다.

지금 우리가 지원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옥수수 한끼를 지원하는 데 한달 비용이 8백원이다. 우리 기준으로 하면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곳의 기준으로는 지금 그 돈은 한 동포를 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우리의 잣대가 아니라 그쪽의 현실과 잣대로 식량문제를 보아야 한다. 도와주면 남쪽 동포가 도와준 것을 알겠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남쪽 바로 알기'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사실을 체험으로 확인하는 실증은 바로 당과 김정일장군도 해결하지 못하는 식량을 어디선가 해결하려 하고 있으며 상당 부분이 남쪽의 동포라는 사실에서이다.

김정일도 말했다시피 이미 당은 식량문제에서 손을 놓았다. 국가와 당은 그 문제를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그리고 먹고 산다는 것은 바로 생존의 문제이며 그 어떤 이데올로기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와해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의 한계를 가장 격심하고 폭넓게 체험하는 과정에 들어간 것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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