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일부 언론이 불씨 되살린 '김현철 게이트'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일부 언론이 불씨 되살린 '김현철 게이트'

<손광식의 '1997 비망록'> (7) 세론의 표적이 된 김현철

***7. 세론의 표적이 된 김현철**

3월의 두번째 주초는 역시 대북관계와 대선을 앞둔 정국의 흐름이라는 두 기류가 오버랩 되었다.

대북 흐름에는 황장엽 망명에 대한 3국간의 타협점이 성사되고 있다는 것과 북이 4자회담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대목이 추가되었다. 한ㆍ중 양국은 황이 3월 17, 18일께 북경을 떠나 제3국에서 약 한달간 머문 뒤 한국으로갈 수 있도록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 합의에 대해 북한도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신문은 전했다. 김영삼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한보사태는 또다른 이벤트에 의해 '자연 소멸' 될 수도 있다는 계산이 가능해지는 국면이었다. 사실 한보사태가 되살아날 수 있는 국회의 특조위는 여야간의 지리멸렬한 협상과 이해득실 때문에 뉴스의 흐름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다만 동아일보가 1면 톱에서 청문회와 관련하여 김현철씨의 국회증언 문제를 다룸으로서 새로운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사실상 이같은 탐색보도는 언론이 추구할 수 있는 의혹사건에 대한 정통적인 보도문법이다. 권력의 심장부가 관련되어 지하로 숨어들게 되는 사건이 새로운 국면전한을 이루게 되는 것은 대체로 언론의 새로운 폭로나 탐색에 의해 이루어진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그렇고 '지식인'이라는 말을 등장케 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 그러했다. 민주적인 진보는 그러한 사건들을 국가와 국민이 어떻게 소화하고 자신의 체질로 만들어 가느냐에 있다. 그것이 권력보다는 법질서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는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국면들이 나타나더라도 한보사태는 자기전개를 하게 되어있고, 집권세력이 그 방향을 조율하더라도 이 사태의 본질적 해결은 진실이 어디에 있느냐에 있다. 그것이 자꾸 지하에 묻히면 다시 폭발할 때의 폭풍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더욱이 한보사태는 정치, 경제,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연관되어 있는 대사건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일부 언론은 'YS가 무엇이냐' '국가의 위기부터'하고 소리를 높이고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우국론이라면 하나의 전제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한보사태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헤게머니를 장악한 일부 언론이 '한보의 늪'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켐페인에 목청을 높이는 것은 진정 나라 걱정에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라꼴이 이 지경'이라거나 '국가가 위기다'하는 논리 속에 묻혀 있는 '범권력 패밀리'의 생존 논리를 간파해내야 한다.

언론 권력의 진정한 존재 의미는 권력과의 긴장관계 유지이며 한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문법을 개발하는 것이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중이 굴복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 터이다. 이런 헤게머니 언론은 때로 비판정신을 내세우거나 우파적 국가주의로 사회와 대중을 압도하려 한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면 자신들의 과거는 은폐해 버린다.

정치적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도 비판하고 매질하지만 진정한 언론의 비판정신에 의하기보다는 한 수 높은 권력의 위치에서 호통친다. 그리하여 국가 밑에 오직 자신들이 존재할 뿐이라는 오만이 자라난다. 중대한 사건과 사태가 발생한 뒤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또다른 사건과 사태가 발생하여 원래의 국면이 뒤로 밀려 나면 언론은 무슨 켐페인이나 국가위기론 같은 것을 들고 나와 본질로부터, 진실로부터, 그 중대한 '현장'을 떠나게 한다.

핵심에 들러리를 세움으로써 중대사건을 희석시키거나 아니면 '드러내면서' 감추는 문법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은 때로 언론공작에 의해, 또 때로는 자신들의 제작 이데올로기에 의해 또는 기업적 이기주의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른바 민주화, 문민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이런 현상은 언론에 천착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권력은 이같은 언론의 내부구조를 잘 알기 때문에 회유, 협박, 협상이라는 방법을 통해 공격과 비판을 교묘하게 봉쇄해 나간다.

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비리로 밝혀진 수서사건의 경우에 이런 실례가 있다. 이 사건도 당시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폭발했다. 현직 대통령이 바로 부정의 핵심이었던 만큼 사회적 충격도 대단했다. 검찰의 조사가 진행되고 고위 공직자 여러 사람의 목이 달아났고 쇠고랑을 찼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인 핵심은 요지부동, 검찰의 수사는 일정한 선에서 '마감'되었다. 시간의 흐름과 권력 우위의 관계에서 양생되어 온 언론문법에 따라 신문지면에서도 그 사건은 서서히 마감되었다.

한 언론사의 칼럼니스트가 '마감' 이후에도 이 문제를 줄기차게 탐색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공보처 장관으로 하여금 그 칼럼자에게 수서문제를 '마감'해 주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그래도 칼럼은 계속되었다. 언론인 출신인 청와대 정무수석은 직접 '조율'에 나섰다. 경영 쪽에 그 칼럼자를 인사조치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칼럼자는 곧 직위해제되었으며 내부적으로는 외유를 권고 받았다.

청와대에서 조율을 행사했던 그 인물은 훗날 한 언론사의 대표가 되었다. 가끔 유능했던 편집책임자나 그래도 언론을 나름대로 지키려 했던 간부나 기자 혹은 칼럼니스트가 별안간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면에는 이런 언론공작이 개입되어 있다.

YS의 대국민 사과 성명, 개각 단행 대선국면의 전개 등으로 바뀌는 듯 하던 시국의 흐름은 그러나 옛날식으로 '마감'되지는 않았다. 권력과 언론의 묵시적 관행에도 불구하고 시대상황과 구조가 변해버린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YS의 차남 김현철의 YTN사장 인사 개입 등을 폭로했으며, 동아일보는 국회의 국조위에 비공개 조건부로 김씨의 증인 출두를 여당이 청와대에 건의했다고 보도했다. 한보사태는 다시 본류로 물꼬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동아일보의 보도.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대통령 민정비서실로부터 고위공직자들의 각종 인사동향을 사전에 보고받아 정부인사에 적극 간여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10일 "주로 민정비서실의 공직기강담당 비서관이 현철씨에게 사적으로 공직자 동향에 대한 보고를 해왔으며 인사개입엔 현철씨가 직접 간여하거나 이원종 전 대통련 정무수석비서관이 대리인 역할을 해왔다"고 폭로했다.

이 소식통은 특히 현철씨가 YTN뿐만 아니라 KBS 등 공영언론 매체의 고위간부직 인사에도 깊숙히 개입해 왔으며 KBS의 경우엔 이사로 있는 K씨가 현철씨와 이 전 수석의 의사를 KBS 사장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현철씨와 이 전 수석의 인사개입은 KBS내에서 큰 반발을 사 지난 94년 3월 KBS측에 A씨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도록 종용했으나 대학교수 등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반발, 9대 3으로 부결되기도 했다는 것. 그 후 이 전 수석이 홍두표사장을 크게 질책했다는 것이다.

또 현철씨는 YTN인사개입 내용이 담긴 현철씨의 전화통화 기록을 공개한 박경식(서울 송파구 G남성크리닉 원장)씨와 사이가 좋았던 지난 95년1월 박씨의 형인 박경재 변호사를 KBS 객원해설위원으로 위촉하도록 했다가 현철씨와 박경식씨의 사이가 나빠진 뒤인 96년 1월 다시 KBS에 압력을 넣어 박 변호사를 그만두게 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한편 박경식씨는 구체적인 사례로 지난 94년 말 이홍구 현 신한국당 대표가 총리로 지명되기 전 현철씨가 전화를 걸어와 "참 좋은 분이시다. 곧 총리가 될 것이다. "라고 알려줬다고 폭로했다. 박씨는 이어 "지난 95년 2월 27일 신라호텔에서 김기섭(전안기부 운영차장) 오정소(전국가보훈처장)씨와 함께 현철씨를 만났는데 이틀 후 오씨가 안기부 1차장에 임명됐다"며 안기부 인사개입의 의혹도 제기했다."

이 두 신문의 보도를 계기로 하여 '김현철 게이트'는 도하 각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야당은 곧바로 김씨의 의혹을 '국정문란 행위'로 간주하고 정치적 공세를 폈다. 더욱이 이같은 폭로과정에서 한보의 정보근 회장이 리츠 칼튼호텔과 대호 헬스클럽의 멤버십을 제공하고 자주 회동해 왔다는 사실이 전해짐으로서 권력의 은밀한 거래가 드러나 '김현철 게이트'는 다시 대중적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검찰은 즉각 정보근을 소환하는 등 재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검찰의 재수사는 그동안 검찰에 빗발쳤던 공격에 대한 조건반사인지 혹은 1차조사에서 드러난 바와같은 '혐의 없음'에 목적을 둔 것인지 혹은 이번에야말로 검찰의 위상을 다시 세워보는 계기로 삼으려 하는 것인지는 역시 결과를 두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세론이었다.

게다가 이 새로운 사태, '김현철 게이트'를 몰아온 장본인인 박경식의 녹음테이프의 유출경위와 김현철ㆍ박경식의 그동안의 관계는 미묘하고 복잡하여 '진실에의 신뢰성'에 몇가지 의문이 얽혀들어 있었다. 그 폭로의 순도가 높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박경식은 한때 MBC의 시사토론자로 이름을 날렸던 박경재 변호사의 실제(實弟). 박경재는 재치있는 사회와 달변으로 연예 스타 못지 않는 인기인의 자리를 누렸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수 유연실(나중 누드집 발행으로 알려진 인물)과의 스캔들로 방송가를 떠났다.

그의 동생인 박경식은 남성전용 G클리닠의 원장인 의사로 김현철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특히 그는 YS의 상도동 시절부터 이 집안의 주치의로 있었기 때문에 '가신그룹'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그가 청와대 주치의자리를 노렸으나 그것이 여의치 못했고 '메디슨 사건'으로 현철씨와 사이가 틀어졌다고 했다.

"박경식(44)씨는 의료계에서 '별난 인물'로 통한다. 한양대 의대를 나온 박씨는 한때 대전에서 병원을 개업했었고 서울 백병원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는 비뇨기과 전문의로 박경재변호사의 친동생. 박씨는 경관 좋은 숲 속에 호텔같은 남성 전문병원을 세우는 게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등 야심이 간단치 않은 사람으로 의료계에 알려져 있다.

그는 의료계에 있으면서도 정치권에 관심이 많았으며 김현철씨와의 교류도 그래서 이뤄졌다는 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87년 대선때 친척의 소개로 상도동과 인연을 맺은 박씨는 당시 대통령 후보인 김대통령의 주치의를 맡았었고 이어 손명순 여사의 주치의도 담당했었다. 그 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대통령의 주치의란 사실을 드러내놓고 말했는데 이런 것들이 청와대에서 시빗거리가 되곤 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현철씨와 자연스럽게 알게 돼 자주 어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철씨와 결정적으로 사이가 벌어진 것은 94년에 터진 이른바 '메디슨 사건'때로 전해진다. 초음파진단기 납품문제로 박씨가 메디슨사를 고소하면서 김현철씨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하면서 둘 사이가 벌어진 것으로 주변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당시 박씨는 의료기 전문업체인 메디슨사로부터 초음파진단기를 구입했다. 그러나 성능이 당초 예상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하자 교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메디슨 쪽에서는 이를 거절했다. 화가 난 박씨는 의학전문지에 메디슨을 악덕업자로 고발하는 글을 썼다. 메디슨사 건물 1층 상설전시관에서 일하는 한 인테리어 업자를 시켜 자신의 병원 인테리어 공사를 한 뒤,"메디슨측이 공사대금을 미리 받고서도 작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메디슨쪽은 곧 박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발했고 박씨도 초음파진단기의 성능과 관련, 메디슨사를 맞고소했다. 박씨는 이때 김현철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는데 이는 김현철이 메디슨사를 비호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박은 첫번째 공격으로 96년 9월 김현철이 국민회의 이성재의원을 가르켜 '절룩거리는 XX'이라고 말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 녹음테이프를 공개했다. 김현철은 박씨의 공격을 받자 그를 회유하려고 했는데 그 중간에 끼었던 인사로는 여당의 대권주자인 박모씨도 있다고 했다. 이 문제에 대권주자의 한 사람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은 하나의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현철 게이트'는 집권세력 쪽에 미묘한 기상변화를 깔아 갔다.

대선주자의 한 사람인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의 이름이 등장한 것도 그 한 예이다. 그가 총리에 임명될 때 김현철이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적어도 임명전에 김씨의 입에 의해 알려졌다는 사실이 공개됨으로서 이미지에 금이 갔다. 당직개편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임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는 김현철과의 관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아야 했다.

'김현철 게이트'와 관련성이 있는 또 한사람의 대권주자인 최형우 신한국당 고문이 3월11일 아침 민주계의 김덕룡, 서석재의원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조찬모임을 갖던중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적어도 권력 내부의 긴장을 상징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또한사람의 대권주자인 이회창고문은 같은 날 한양대에서 열린 교양강좌 특강에서 "한보사태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의혹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정부가 새롭게 조사해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국정조사에서도 의혹이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집권세력의 내부는 바야흐로 '세미 코마' 상태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한 최형우의원의 상태 역시 '세미 코마'(중간정도의 혼수상태)였다.<계속>
.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