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검찰을 고발한 사장**
아들 문제로 YS가 핀치에 몰리자 권력의 내부에서는 "주군의 번쾌(유방의 명장)는 어디갔느냐" "전위(조조의 호위장군)는 우리 진영에 없느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신한국당의 원로의원 이만섭은 "전두환에게는 장세동이가 있었는데 YS진영에는 도대체 누가 있느냐"고 공개성토까지 하고 나섰다.
그 인물(번쾌나 전위)이 정재철인가, 김우석인가, 홍인길인가, 황병태인가. 그렇게 만들기로 하고 검찰청 앞마당에서 그들이 공격의 화살을 받기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5조원이란 돈이 지속적으로 풀려나가도록 했다는 배후 압력 세력으로는 직무와도 거리가 있고 받은 돈들이 홍인길을 빼고는 정치권력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떡값' 수준이며 인물들의 위치도 '깃털' 소리도 불거져 나왔지만 앞뒤가 안 맞았다.
사건 해결에 대한 권력의 문법대로라 하더라도 아직 번쾌급도 전위급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세론이었다. 대선주자의 한사람인 신한국당 김덕룡은 자신의 연루설이 보도되자 공작, 음모라고 펄쩍 펄쩍 뛴 것을 보면 이미 번쾌도 전위도 장세동도 사라졌는가. 하긴 새로운 권력을 만들기 위한 레이스가 시작되었으니 충성보다는 현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검찰총장은 부하 수사책임자가 보고해 오는 사안을 보고 정치적으로 미묘한 사안, 예컨대 대통령과 관련된 건이 있으면 그것을 캐비넷에 넣고 열쇠를 돌린다. 그러면 그것을 본 중수부장이나 서울 지검장은 '아, 이 선에서 그치는 것이로구나' 하고 '알아서' 처리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된다고 했다. 검찰총장의 수명은 그런 역할과 정비례했던 것이 과거의 관습이었고 또 능히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인물을 검찰총장으로 기용하는 데 별다른 이의가 검찰에는 없었다.
적어도 안기부장 , 검찰총장, 국세청장 등 권력행사를 직접 집행하는 최고 책임자들은 언제부터인가 자기편 안에서 사람을 찾아 자리에 앉히는 것이 불문률로 되어 왔다. 혹여 그쪽 사람이 아닐지라도 자리에 앉고 난 다음에는 권력내부의 질서를 따르지 않으면 안되고, 또 그래야 자신의 지위와 출세가 보장된다는 불문률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권력자에 대해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권력이 유지되는 질서요 권위라는 현실을 인정 안 할 수는 없다. 문제는 탈법, 월권, 불법에 속하는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해낼 수 있도록 허용받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그들이 모두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권력의 소사이어티(집단)에서는 진실이니 정의니 이런 것들의 가치는 행동과 판단의 기초가 아니라 오직 알고나 있을 상식에 불과할 뿐이다.
일시적 가치관의 동결이라고나 할까. 수많은 전직 관료와 정치인과 검찰과 언론인이 그 권력의 자리를 떠난 다음 백수가 되어서야 시국과 불법과 비민주와 부패에 대해 비판의 소리를 높이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곤 해 왔다.
여기서 숨을 멈춰 '한보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원성의 대상은 정태수인가, 한보인가, 은행장인가, 은행인가. 아니면 YS인가, 현철인가. 좀더 본질로 들어가 권력의 부패인가, 부패한 권력인가.
일본 도카이대학 교수인 이리타니 도시오의 저서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는 다음과 같은 권력의 본질론이 나와있다.
"원래 권력을 휘두르는 자는 대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허세를 부리는 인간으로, 그저 약자에게만 강한 척 위협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한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자신이 본질적으로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인간이거나, 혹은 그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해도 결코 타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무시하는 권력자는 그 결점을 밖으로 드러내게 된다. 또한 그 결점을 드러내고도 그것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측은 결점을 받아들이는 측, 즉 언제나 고분고분 권력자에게 복종하는 인간들측에 선다.
예전의 왕권사회나 봉건시대로부터 천황이나 왕제, 또는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형태의 국가들, 그리고 그 밑의 관료사회에 이르기까지, 권력자가 숨기려해도 숨길 수 없는 결함이나 추태(보통 인간인 이상, 예를 들어 정사나 검은 돈의 거래가 중심이 되는 스캔들이나 연설할 때의 실수 등)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같은 실태를 보고도 못 본 척 하고 여전히 권력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권력자의 측근들은 권력자를 감싸고 그의 사기를 북돋워주는 데 전념해 온 측근들이다. 만약 결함이나 추태를 지적하면 권력자의 권위가 실추되기 때문에 권력자에 대해 아첨하며 굽실거리는 것이 여태까지의 관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결점의 과시가 끝까지 오랫동안 지속될 리가 없다. 그래서 그 결점이 어떤 한계에 부딪쳐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게 되면 종전까지 권력자를 떠받들었던 추종자들은 그들과 결별하든가 반역을 일으킨다. 그때서야 비로소 권력자의 가면은 벗겨지고 그들의 권력은 실추되고 마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의 흥망성쇠는 그런 권력투쟁의 분열이 반복되면서 빚어지고 있다. 추종하는 부하보다 권력자 쪽이 능력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뛰어난 경우에는 그러한 폭로는 좀처럼 빚어지지 않지만, 추종자와 대동소이한 인간이 권력자가 된 경우에는 그런 결점을 숨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와 같은 일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다른 경쟁자에게 권력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험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결점투성이인 권력자라 해도 일단 상대가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곧 체념하고 자기의 보신을 위해서 고분고분 추종하는 풍조도 있다. 그런 풍조가 만연하는 이유는, 권력을 장악한 자로부터의 어떤 제재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신상에 해로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추종자, 복종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상대를 항상 주의깊게 살피고 있다. 그러나 항시 상대를 객관적으로 봐서는 따라갈 수 없으므로 될 수 있는 한 권력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처신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권력자가 있는 조직집단에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비결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한보사태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바로 권력, 진보하지 못한 권력이며 국민법정이 있어 피고석에 세워야 할 것은 바로 이 권력의 오류요 부패인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박정희 시대에도, 전두환 시대에도, 노태우 시대에도, 김영삼 시대에도, 그리고 김대중 시대에도 그대로 권력의 집안들을 에워싸고 조금도 변함없이 관류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권력의 타락이다.
드디어 YS는 2월의 마지막 주말, 아들 김현철을 검찰에 출두토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김현철을 불러 26시간 동안 조사를 진행했다. 명예훼손 사건의 고발인치고는 거의 피의자에 가까운 조사로 비쳤다. 그러나 조사결과 "김현철씨는 한보와 관련하여 무혐의"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검찰청 마당을 떠나며 "국민과 아버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어차피 결론은 그런 방향일 수밖에 없었던가. 그는 피의자가 아니고 고발자이며 원고이지 피고가 아니었다. 소박한 입장에서 보면 그는 오히려 검찰에 의해 인권탄압을 받았다는 아이러니가 연출되었다. 억울해서 자신의 불명예를 씻어달라고 하는 사람을 밤잠 안 재우고 조사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물론 검찰은 검찰대로 논리가 있을 것이다. 야당쪽에서 제시하는 의혹에 혐의를 두고 조사하는 입장이 아니라 본인이 제출한 무고혐의 고발을 조사하는 형식을 취했으되 검찰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국민의혹을 푼다는 자세를 가미하여 검찰의 '기술력'을 발휘했다고 변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출두 이후 국민적 실망으로 다시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 갈래로 전개되어 갔다. 하나는 김현철의 '비선조직', 다시말해 그의 월권적 정치행위에 대한 규탄이고, 다른 하나는 검찰에 대한 시민적 공격이었다.
그의 월권행위와 비선조직 문제는 급기야 안기부 쪽으로 비화하여 사적 정보 채널이었던 김기섭 운영차장이 면직됐다. 그의 면직은 파면인지 의원면직인지는 분명치가 않았다. 일단 안기부 쪽은 그의 면직으로 불똥을 껐다는 입장이고 본인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의원면직'이라고 주장했다. '김기섭 파장'은 이후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언론에 의한 탐사보도나 여론환기도 흐지부지해지는 상태였다. 다만 한겨레신문이 사설을 통해 '김기섭 사건 덮지말라'로 죽어가는 여론을 환기시켰을 따름이다.
"안기부 운영차장으로 있던 김기섭씨 문제에 대한 정부의 조처는 이해하기 어렵다. 김영삼 대통령이 차남 현철씨를 '근신'케 한 뒤 매스컴이 경쟁적으로 다룬 김기섭씨의 행적은 국민들을 놀라움과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그는 안기부의 주요 정보를 공식 경로가 아니라 일개 시민인 현철씨에게 '보고'하는 등 국가기밀 유출혐의를 받고 있으며, 온갖 이권사업 개입 등 무성한 추문의 당사자이다.
안기부 운영차장이 어떤 자리인가. 국가정보기관의 예산과 인사를 책임맡아 있으며, 세계로 뻗은 신경망을 통해 수집되는 주요 정보가 집중되는 곳이 아닌가.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정보유출과 이권개입 혐의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안기부 스스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 혐의의 진위를 가리고, 나아가 미처 소문에도 오르지 않은 비리가 더 있는지를 파악하여 국민 앞에 진상을 소상히 밝힌 뒤 응분의 조처를 서둘러 취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이 바른 길과는 거리가 멀다. 이번 내각 개편에서도 안기부 책임자는 문책당하지 않았다. 안기부가 한 조처라곤 김씨를 '의원면직'한 것밖에 없다. 검찰은 이번에도 "떠도는 소문만 가지고는 수사할 수 없다"는 하나마나한 말만 하고 있다. '떠도는 소문'이 수사의 단서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그 소문의 신빙성과 그에 담긴 사안의 비중에 달려 있다. 따라서 김씨가 당연히 수사대상에 올라야 한다는 점을 부인하는 검찰의 논리는 그들 스스로도 속으로 웃을 말장난일 뿐이다.
김씨에 대한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문제는 김씨 개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국민의 상식은 안기부 간부에 의한 정보유출과 이권개입이 어떤 개인의 과욕에 의한 돌출적인 비리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상식은 지난 3일자 (한겨레)의 보도에 의해서도 일부 뒷받침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고교선배인 청와대 수석에게 별도로 정보보고를 한 안기부 간부가 있었으며, 재벌 비서실에 수시로 정보를 흘리다 적발된 안기부 직원도 있었다.
이제 정부가 대답할 차례다. 정부는 김씨 주변의 '떠도는 소문'에 대해 왜 말이 없는가. 정부는 이 소문에 대해 '내사'했는가. 내사했다면 그 결과를 왜 밝히지 않고 있는가. 아니면 이런 엄청난 혐의에 대해 내사조차 아니한 무슨 말못할 사정이라도 있는가.
우리는 현 단계에서 이 소문이 모두 사실이라고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처도 해명도 하지 않고 있는 동안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기왕에 일어난 물의만 가지고도 안기부장에게 감독책임을 물어야 옳다고 본다."
이를 도화선으로 세론은 심상치 않게 흘렀다.
YS는 방향 선회를 시도했다. 김광일 청와대 비서실장, 이원종 정무수석, 이석채 경제수석 등이 경질되고 후임에 김용태(비서실장), 강인섭(정무), 김인호(경제) 등이 기용되어 시국기류는 요직인사 개편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뒤이어 이수성내각이 사퇴하고 서울시장을 역임했던 고건이 후임 총리로 내정되고 국회는 곧 이를 인준했다. 낡은 정치공식에 의한 예의 '수습'이라는 정치적 수순이 진행됨으로서 김현철문제는 일단 사정권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시민적 공격은 한 기업가의 신문광고로 새로운 이벤트를 맞았다. 노조파업과 공무원 부패를 공개적으로 비판 고발한바 있는 제이손산업주식회사 대표 이영수는 본인의 말마따나 '목숨을 걸은' 대검찰 고발장을 2월27일 도하 각 신문에 광고 형식을 통해 공개했다. 그의 고발장은 <마피아의 총대로 만든 잣대!>라는 극렬한 비판의 제목을 달고 있었다.
"한보비리에 대한 검찰수사 발표를 보면서 나는 도대체 검찰의 잣대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생각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천인공노할 기소유예로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무죄라는 법 해석을 했는가 하면, 세기적 반사회적 부정부패 비리를 수사할 때마다 검찰은 정의의 칼로 부정부패 비리를 척결하기보다는 '마피아의 총'으로 오히려 부정을 은폐하고 옹호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빠징코 사건의 배후가 그렇고 수서사건의 배후가 그랬고 한보비리 수사보고가 그렇다. 어디 이들 뿐인가? 역사적인 사건은 다 그랬던 것 아닌가?
검찰은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거늘 어찌 감히 국민 앞에 수사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무엄하고도 오만방자한 소리를 한단 말인가.?
새로운 역사의 물길을 잡아야 하는 이 중차대한 순간에 이 나라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패하고 무능하면서도 교활하고 줄을 잘 타는 검찰의 수뇌부들임을 검찰 스스로는 알아야 한다.
건국 이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부정부패 비리의 척결을 되뇌었건만 언제나 잡은 것은 피라미와 송사리, 변죽만 건드리고 감히 누구도 검찰에 손을 대본 자가 없다.
이제 국민은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된다. 국민의 힘으로 검찰이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눈앞에 닥쳐오는 통일을 바라 보면서 우리들 모두가 꼭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가 일어나 부정 부패의 뿌리를 뽑는 일이다. 통일된 조국마저 썩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에게 고용된 검찰이 부정을 은폐하고 수사내용마저 자신의 고용주에게 보고하지 않고 도리어 성난 얼굴로 거절을 하는 위협적인 행위는 분명 이것은 배임이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용주로서 부패한 권력의 시녀로, 하수인으로 전락한 검찰의 수뇌부인 법무장관,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수뇌 및 다수의 검사들을 이 날짜로 해고한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해야 할 검찰에 대한 청소가 아닌가?
어느 정권도, 여당도 야당도, 언론도, 종교계도, 학계도, 노동계도, 학생운동권도 검찰에 손을 댈 수 없다면 이제 우리 국민들밖에 누가 할 것인가?
오늘날 부정부패 비리의 실질적 옹호세력으로서의 배후는 "권력은 구속영장에서 나온다"는 한국적 법철학의 틀 속에서 법 위에 군림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다수의 정치적 검찰과 그 수뇌부가 아닌가?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백해무익한 '영감'들을 그냥 둘 것인가?
외롭고 쓸쓸한 이 싸움에서 나는 지금 위험한 제의를 하고 말을 하고 있는 줄을 잘 알고 있다.
모진 고문에 살점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며 뼈가 으스러져 피투성이 된 채 죽어갈지라도 내가 살고 또 우리 후손들이 "수천년을 두고 살아갈 이땅"에서 부정부패 비리가 끝이 난다면 하나뿐인 이 귀한 목숨일지라도 내 어찌 주저하겠는가? 나는 이미 도마위에 오른 도미다! 우린 모두 다시 태어날 각오가 절실하지 않은가?
우리 힘으로 "검찰이 다시 태어나게 하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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