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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황장엽 망명사건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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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황장엽 망명사건 출현

<손광식의 '1997 비망록'> (3) '깃털'은 구속되고

***3. '깃털'은 구속되고**

한보사태 발생 스무하루가 되는 2월11일, 신문 방송은 일제히 정치권의 뇌물수수자를 밝히고 나섰다.

우선 신한국당의 정재철 당의장, 그리고 상도동 가신 출신 홍인길의원 두 사람이 구속되었다. 3명의 은행장이 구속된 이후 검찰의 '쿼타 채우기'가 시작된 것이다. 또 하루가 지나자 구속자의 급수가 한 단계 높아졌다. 국회 재경위원장이자 신한국당 중진이며 한때 '좌 형우 우 병태'란 말이 돌 정도로 권력의 핵심으로 알려졌던 황병태의원과, YS의 측근중 측근으로 알려져 온 김우석 현직 내무부장관이 전격 구속됐다. 물론 이 와중에서 당론을 이유로 '끼워넣기 수사'에 들러리를 서지않겠다고 버티던 권노갑 국민회의 의원도 덩달아 구속되고 말았다.

이 단계로까지 검찰수사의 표적이 수위를 높이자 일반시민들이나 언론은 아연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은행에 압력을 넣은 진짜 실세가 차츰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물론 그 기대심리란 것은 관극심리와 같이 흥미진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 표적은 YS의 차남 김현철로 겨냥된 바 있었기 때문에 흥미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확인에 있다고 보는 쪽이 보다 정확하다 할 것이다.

언론들은 연일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식으로 논평의 수위를 높여 배후 압력의 진원지가 그의 둘째아들 현철임을 암시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황병태. 김우석까지 올라갔던 '수사쿼타'는 돌연 주말을 앞두고 필름이 끊기고 있었다. 그 이상 수준은 더 밝혀질 것이 없다는 검찰측의 반응이었다. 외곽 사태가 일변한 것이다.

이 사태가 발생한 지 스무이틀째가 되는 2월12일, 북한의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겸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황장엽과 그의 심복인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 김덕홍이 중국 북경주재 한국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의 정치·사회기류는 별안간 불연속선으로 빠져들어갔다. 이러한 사태변전 속에는 한반도만이 지니는 정치, 사회 더 나아가 경제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특질이 숨어 있다. 남북문제는 어쩌면 숙명적이기도 하고 또 아주 거대하고 완강한 틀이기 때문에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또 진실이면서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고 진실이 아니면서도 진실로 변하기도 한다.

그 한 예가 1972년의 '7.4 남북 공동성명'.
'7.4 공동성명서'는 남북권력이 권력의 문법으로 피차의 이해가 최초로 일치하여 만들어낸 작품이라고들 말한다. 남쪽의 박정희대통령과 북쪽의 김일성주석이 각자의 권력기반 확충을 위해 남북카드를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다분히 정치공작적 관점이다. 이것이 진실일까.

그러나 당시 북한에 들어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위급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극약을 준비해 갔고 새벽에 호위총국 요원들이 자신을 깨워 어디론가 끌고갈 때 (나중에 김일성주석이 독대를 위해 그를 호출했음이 확인되기는 했지만) 실체적 위기를 느끼고 이 독극물을 사용하려 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권력안보의 이유 때문에 양쪽 권력이 접근했다고 볼 수만은 없는 요소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떻든 이런 이벤트에 대한 해석의 경계선은 분명하게 그어지지 않으며 그 불분명한 그림은 그대로 인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 대중의 의식의 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보파동에 따른 검찰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에 오인환 공보처장관이 불쑥 내민 '황장엽 망명'도 예외는 아니다. 곧바로 야당이 "비밀리에 처리해야 할 사건을 즉각 공표하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정치적인 책략"이라고 공격한 것도 정치공작론에 기초한다. 음모론적 시각이다. 물론 여당은 남북문제까지도 그런 음모로 보는 야당의 인식을 두고 반격에 나섰지만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는지는 역시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만 이런 추리는 가능할 수 있다.

황장엽 망명사건 발발 며칠전 이수성 총리는 한보사태가 발생했는데도 국무위원들이 아무런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음을 질책하고 곧이어 스스로 사의를 표명한 바 있었다. 따라서 국무위원을 중심으로 YS행정부는 책임의식과 충성도를 저울질 받게 되었다. 황장엽사건이 발생한 곳은 외무부 재외 공관이고 사건의 속성상 통일원이나 안기부가 뒷처리를 맡게 되어 있다. 나중 외무부쪽에서 "우리는 뒷치닥거리하기에 바쁘다"는 불만스런 반응이 나왔음에 비추어 볼 때, 이 충격적 사건의 공표는 한보 사건수사의 진행과 어떤 연결고리를 맺고 있었다고도 볼수 있다.

이수성 총리의 내각인책론은 물론 국민을 향한 것이겠지만 권력의 이너써클에서는 이 난국에서 "주군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누가 막느냐"는 충성심과 연관된다. 오인환 장관은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낸 언론통으로 세론의 향방과 언론의 관계를 기술적인 부분까지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장관의 목을 타의이건 자의이건 너무도 빈번히 날려온 YS가 유일하게 임기 시작 이래 고스란히 자리를 지켜준 유일한 인물이다.

장관의 자리는 무엇이 지켜주는가. 이 질문에 "국민을 위한 충정"이란 어리석은 답변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식과 지혜"란 답도 "틀렸읍니다"이다. "권위와 행정능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다 아니다. 그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오직 권력자에 대한 충성심이 충분조건이다. 그렇지 않아도 YS권력을 두고 '가신정치'니 뭐니 한다. 가신정치는 봉건적 요소 가운데도 가장 전근대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장관의 자리는 권력내부의 문법으로는 오직 복종, 충성이 지켜줄 뿐이다. 그래도 사건에 휘말려 혹은 이러저러한 혐의로 장관의 목이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사법적 낙인이나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혹은 사회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재생의 길'을 보장받는다. 상대편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정치인이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수뢰사건으로 걸려들어 복역까지 한 공무원도 장관도 되고 도지사도 된다. 청와대의 일개 비서관으로 수서사건에 관련돼 나쁜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던 청와대 비서관은 사업가로 변신, 바로 문제의 한보그룹 하청기업으로 돈도 벌고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한보사태는 황장엽의 망명사건으로 의도적인 것이었든 의도적이 아니었든 간에 예의 희석국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더욱이 잇따라 일어난 이한영 피습사건으로 뉴스의 전면으로부터 물러났다. 이한영은 북한 김정일비서의 전처로 알려진 성혜림의 조카로, 자기 말마따나 북한의 로얄패밀리 출신으로 그쪽의 권력내부의 치부를 폭로해 왔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황장엽의 망명으로 권위와 체통에 먹칠을 당하게 된 북쪽 권력으로서는 보복의 대상이 된다는 개연성으로 해서 이 사건까지 겹친 '북한 신드롬'은 더욱 민감한 기류를 탈 수밖에 없었다.

야당등 일부에서는 황장엽망명사건 등에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 다시 말해 권력의 핵심을 숨기기 위한 정치공작용으로, 지금 그의 망명을 밝혀서는 안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발표했다는 사실을 두고 정치공작의 냄새가 난다는 공격이 있긴 했지만 상황기류를 바꾸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런 의문점 등을 제시한 국민회의와 DJ는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조선일보는 <'황 망명'과 비뚤어진 시각>이란 사설을 통해 "우리는 국민회의가 항상 색깔론의 희생자라고 주장해 온 것을 기억한다. 김대중총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기를 용공주의자로 모는 정부-여당의 책략을 규탄했다. 그런 국민회의가 황씨의 망명에 내 놓은 논평은 우선 환영이 아니라 '의심'이었으며 망명이 이루어진 첫 날에 쏟아낸 말들은 속사포같은 공격형 어투들이다"라고 비판했다.

큰 사건이나 현상 혹은 사태는 일단 그것이 일어나면 인위적으로 방향수정이 되거나 자기전개를 하게 된다. 한보사태, 황장엽 망명사건-이한영 피습사건등으로 뒤엉킨 1997년 2월의 시국도 적당한 공작이 얽히면서 자기전개를 해 나갔다.

이런 와중에서도 여론은 이른바 은행대출에 압력을 가한 '핵심'으로 몰려있는 YS의 차남 김현철을 검찰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아니,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 성공이랄 수도 없었다. YS쪽에서 스스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김현철은 국민회의의 한영애. 설훈 의원이 자신을 한보후원의 핵심으로 몰아간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라 하여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그것을 조사한다는 명분이었으므로 피의자 아닌 원고의 입장으로 검찰로 간 것이다. 물론 검찰은 형식은 그럴지라도 한보의 외압 구실 여부등 관계된 사항은 모두 조사한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상기할 것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의 말이다. "대통령(권력)은 국민에게 그럴듯하게 보여줘야 하지만 여론대로 쫓아가서는 아무것도 안된다"고 말한 바 있다. 형식은 국민의 요구를 따르고 있지만 내용은 권력의 문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 바로 김현철의 검찰소환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두고 세간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 사태 속에서 이미 한보회장 정태수는 부도덕한 기업인, 당진제철소는 부적절한 프로젝트로 유죄평결되었다. 결국 엄청난 비자금을 마련하여 그걸 권력주변에 뿌리고 그 대가로 수개 은행을 사금고처럼 만들어 5조원을 끌어내고 그걸 부실하고 부정한 자금으로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정태수만 그랬을까.
수출 드라이브, 공업화, 경제성장이란 말이 휩쓸고 있던 시대에 있어 기업세계에는 정태수의 공식이 일반화되었었다. '부채=성장'이다. 부채는 부의 원천이며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물론 부채의 다른 한면은 자본이다. 고급스럽게 말하여 다른 사람에게서 끌어들인 타인자본이다. 이 자본으로 새로운 부가가치, 그것도 이자의 몇배에 달하는 이윤을 남기게 되면 그건 아마 성장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도 경제성장론 교과서에 있는 성장전략의 하나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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