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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뛰어든 화교재벌 양빈,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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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뛰어든 화교재벌 양빈, 누구인가?

김정일과 2000년부터 친분, 탈세ㆍ주가조작 혐의도

"양빈(楊斌·39)이 누구냐."

북한이 중국 접경지역인 신의주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한 뒤 23일 미국 CNN방송 등의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설명회를 가지면서 중국의 2대 부호 양빈(楊斌)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을 함께 초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외에서 양빈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홍콩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양빈 회장은 최근 북한과 함께 북신의주 경제특구 개발계획을 입안해 왔으며 지금까지 북신의주에 4천만~5천만위안의 자금을 투자했다. 또 24일 북한과 대북투자 계약을 체결한 뒤 투자규모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개방정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양빈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2000년부터 김정일과 독대, 북한땅 1백50헥타르 제공받기도**

양빈 회장은 1963년 생으로 올해 나이가 39세에 불과하다. 이처럼 젊은 실업가인 그가 북한과 인연을 맺은 것은 재작년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콩의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FEER)지 보도에 따르면 양빈 회장은 2000년 12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독대했다. 이때 그는 김위원장으로부터 "농업발전에 위대한 업적을 세우신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써달라"는 당부와 함께 고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부근 1백50헥타르(45만평)의 땅을 제공받기도 했다.

양빈 회장은 그후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상하이 지역의 발전상을 확인하고 돌아온 직후인 그해 7월4일 평양원예총회사와 남새(채소)와 화초를 재배하는 '평양 유럽·아시아합영회사' 설립 조인식을 가진 것을 계기로 대북한 투자에 본격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대다수 화교재벌이 그렇듯 중국 정계와 외교가에도 두터운 인맥을 구축하고 있으며, 한국의 정치인들도 중국에 건너가 그를 만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주목되는 것은 신의주 특별행정구에서 차지할 그의 위상이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채택한 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에 따르면, 신의주 특별행정구는 입법권과 사법권 및 행정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며 특구 주민권을 가진 외국인도 입법의원이 될 수 있다. 현재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높은 신임 등을 고려할 때 양빈 회장이 신의주 특구의 주민권을 획득할 외국인 1호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으로 북한이 추진할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에서 양빈이 결정적 대내외 창구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네덜란드 국적 앞세워 중국에 진출하면서 탈세·주가조작으로 부 축적**

양빈 회장은 지난해 미국의 포브스지가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 출신으로 화훼. 부동산·관광 등의 사업을 펼쳐 75억위안(약 1조9백억원)의 부를 쌓은 점을 높게 평가해 '중국 1백대 부호' 중 2위로 뽑으면서,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한 중국의 대표적 청년실업가이다.

하지만 그는 국내외적으로 양면적인 이미지를 소유한 특이한 인물이기도 하다.

우선 그는 화훼 사업으로는 건실한 사업가로 해외에도 알려져 있지만 최근 중국내에서는 탈세와 정경유착, 주가조작의 상징으로 비난받고 있다.

양 회장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면서도 지금까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그는 엄청난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중국정부로부터 불법적인 토지 사용과 탈세 등의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어우야 그룹의 주가는 지난 7월 인민일보의 보도 직후 11%나 폭락했다.

그는 1963년생으로 다섯살 때 고아가 되었다. 해군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해군대 교수요원까지 지낸 장교 출신인 그는 1987년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교에 유학 중 네덜란드 시민권을 획득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네덜란드 정부가 중국 유학생들이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면 무조건 시민권을 주었던 인권정책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양빈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자신의 전공인 정치학을 포기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중국으로부터 실크 등 직물 수입업에 손을 댔으나 곧 당시 초창기 단계였던 중국의 화훼산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난초 등의 꽃씨를 중국에 수출하며 짭짤한 수익을 올린 그는 1994년 중국에 건너가 난초 종묘회사를 차렸다. 이 과정에서 그는 네덜란드 시민권을 톡톡히 활용했다. 외국인 지위를 이용해 꽃씨 재배에 필요한 장비를 면세로 구입하는 특혜를 누린 것이다.

몇 년만에 중국 8개 성에 종묘회사를 차려 어우야그룹(유로아시아그룹)으로 급성장시킨 그는 1997년 가장 큰 신추안 성 소재 회사를 상하이 증시에 상장했다. 2년 뒤 주식을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는데, 그가 주식을 처분하기 직전 주가가 급등한 것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주가조작 시비가 일고 있다.

***꽌시(關系)를 앞세운 본원적 축적**

양빈은 랴오닝성의 선양(瀋陽)시를 사업 본거지로 삼아 사세를 확장해 왔다.

FEER에 따르면 겨울이 별로 길지도 않은 이곳에서 종묘온실재배사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보실라이 시장과 절친한 사이"라는 점이 거론된다. 양빈이 종묘재배공장을 처음 세운 인근 따롄(大連)시 시장이었던 보실라이는 이후 양빈이 정치적 인맥을 쌓는 중요한 '꽌시(연결고리)'가 되어주고 있다.

양 회장은 정치적 후원자를 끌어들이는 수완이 능란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적 망명을 했던 불온한(?) 전력의 소유자가 중국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노동집약적 산업과는 거리가 먼 자본집약적인 종묘재배업으로 중국 농업의 상징이 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는데, 그 이면에는 꽌시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리란칭 중국 부총리와 보실라이 선양시장이 양빈의 공장시설을 둘러보고 격찬을 한 뒤 각종 혜택이 주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양시에 있는 종묘재배사업은 어우야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2000년 8천1백만 달러 매출에 2천3백만 달러라는 높은 수익을 올렸으며 지난해에는 전년대비 두 배의 성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빈은 지난해 7월 어우야그룹을 홍콩증시에 상장시켜 8천5백만 달러의 자금을 끌어들였는데 이 과정에서 72%의 지분을 차지했다.

***양빈의 최대도박, 테마파크 건설**

하지만 FEER에 따르면 종묘재배사업은 양빈 회장이 벌이는 전체사업과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서는 자그마한 부분에 불과하다. 양빈의 최대 야심작은 랴오닝성 선양(瀋陽) 시내 북쪽에 있는 '허란춘'(荷蘭村.네델란드 빌리지) 건설사업이다.

이 사업은 선양시 종묘사업장 부근 옥수수밭 4백헥타르 부지에 네덜란드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국제사업재판소와 암스테르담역을 재현하고 30만 평방미터(약 9만평)에 걸쳐 50개의 빌딩을 세우는 등 테마파크와 주상복합단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테마파크에 7백50m에 달하는 실내 인공해변과 16헥타르 규모의 실내 열대정원, 살아움직이는 공룡 등을 설치하는 구상은 실제로 사업에 착수됐다. 이러한 사업이 양빈 회장의 상장회사와는 별개의 주체로 진행된다고 하지만 투자자들은 유로아시아의 돈이 '네덜란드 빌리지'로 흘러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까지 양 회장은 3억6천만 달러를 홀랜드 빌리지 사업에 투입했는데, 이중 자신의 개인자산이 2억4천만 달러이고 나머지는 중국상공은행(ICBC)의 대출이다.

총예산은 8억5천만달러로 잡혀있지만 전문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두 배 이상 소요자금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하루 입장료가 1백50위안(18달러)에 달하는 테마파크는 밑빠진 독이 될 위험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선양시는 실업률이 20%에 달하고 인구밀도도 희박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미 기존에 만들어진 중국의 테마파크들도 적자를 면치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UBS워버그증권사도 "테마파크는 투자가치가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빌리지 사업은 랴오닝 성의 최우선 국책사업으로 선정돼 헐값의 부지와 저리의 자금 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심지어 네덜란드 빌리지 하수시설 공사에 죄수들이 대거 동원된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리란칭 부총리는 지난해 9월 "네덜란드 빌리지 사업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보실라이 시장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말 선양시 고위층에 대한 대대적인 부패혐의조사 당시 양 회장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정치적 배경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FEER은 "양빈 회장은 사회적 통제가 미비한 신사업에 진출해 부와 명성을 쌓아왔다"면서 "그의 전성기가 하루아침에 끝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북한 개방, 자칫 하면 러시아 전철 밟을 수도**

이처럼 양빈은 39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 제2의 재벌이 되기까지에 각종 편법과 꽌시를 총동원한 가장 중국자본가적(?) 전력의 인물이다.

그가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북한을 주목한 것도 그 특유의 승부사적 도박기질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또한 그가 북한 개방이라는 중국정부와도 밀접한 국가사업에 뛰어든 이면에는 현재 중국내에서 탈세 및 주가조작 혐의로 위태로와진 자신의 위치를 보호하려는 다분히 카멜레온적 의도도 숨겨져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디 홍콩과 상하이의 초기 건설자가 아편전쟁으로 부를 축적한 영국상인들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리스크가 큰 개방사업과 투기적 자본세력의 결합은 어찌 보면 필요악적 측면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개혁·개방이 끝내 마피아의 득세로 이어졌듯, 자칫 잘못하면 북한의 개방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위험성도 상존한다 할 것이다.

북한에 출현한 양빈의 존재를 앞으로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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