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도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는 데 대해 바른미래당의 내홍이 격화되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20일 오전 9시부터 4시간30여분 동안 이례적으로 긴 의원총회를 열어 당내 의견을 수렴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결과 브리핑에서 "선거법에 대해 최종 협상에서 타결된 안을 (정개특위 간사인) 김성식 의원이 설명했고, 사개특위 간사 오신환 의원이 공수처 및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저희 당 안을 설명했다"며 "앞으로 꾸준히 당의 의견을 모아 가기로 했고, 원내대표와 사개특위 간사가 책임감을 갖고 협상에 임해 최종 협상안이 도출되면 다시 의총을 열어 최종 의사결정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선거법 외에 논의된 사항과 관련, 공수처법 및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바른미래당 당론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부분이 관철되지 않으면 (선거법을 포함한) 패스트트랙 절차를 더 이상 진행되지 않기로 했다"며 해당 내용은 △공수처의 기소와 수사 분리 △공수처장 인선은 추천위를 구성하되 추천위의 3/5의 동의를 얻도록 함 △공수처장 추천위 구성은 법무장관·법원행정처장·변협회장 외 국회 추천 위원을 4명으로 하고 그 중 여당 1명, 다른 교섭단체(야당) 3명으로 함 △검경 수사권 조정안 관련 검찰 및 경찰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동일하게 인정함 등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날 의총에서 패스트트랙 협상에 대한 추인을 받지는 못했으나, 김 원내대표 등 바른미래당 지도부의 패스트트랙 추진 의지는 재확인됐다.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일각에서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려면 의원총회에서 2/3 이상 찬성으로 당론을 결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현재 당헌 내용은 그런 내용을 정한 게 아니다. (당론은) 국회에서 자율투표를 원칙으로 하되 당 의견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는 경우에 당론 결정 절차를 거치고 2/3의 찬성이 있을 경우 당론에 따른 '투표'를 권고하는 취지의 규정"이라며 "패스트트랙에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우리 당으로서 중요한 문제임은 틀림없으나, 그 문제를 결정할 때 반드시 의원 2/3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다"고 못박았다.
즉 김 원내대표는, 당론으로 지정하지 않더라도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기존 여야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 성원과 관련해 브리핑에서 "당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의원 25명(비례대표 박선숙·이상돈·박주현·장정숙 의원 제외) 중 박주선 의원을 제외한 24명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날 의총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패스트트랙 추진에 반대한 이들은 8~9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병국(5선)·유승민(4선)·이혜훈(3선)·유의동·이언주·하태경(이상 재선)·지상욱·김중로(초선) 등 8명의 의원은 당 지도부가 의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패스트트랙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의총 소집을 요구했다. 4시간30분의 마라톤 의총은 이들의 요구에 따라 열린 것이었다.
특히 바른미래당 창업주인 유승민 전 대표는 전날 의총 소집 요구서에 서명을 한 데 이어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패스트트랙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유 전 대표는 "선거법 패스트트랙은 안 된다는 얘기를 분명히 (의총에서) 했다"며 "선거법과 국회법은 지금보다 훨씬 다수당의 횡포가 심할 때도 숫자의 횡포로 결정한 적이 없다. 특히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 어떤 다수당도 이 문제는 끝까지 최종 합의를 통해 했던 것이 국회의 전통이었는데, 패스트트랙은 결국 숫자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전 대표는 이어 "저는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2가지는 충분히 우리 당의 안을 내고 패스트트랙도 태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선거법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재강조하고 "그러면 21대 국회에 가서 다수당이 나타나 자기들 유리한 대로 (선거법 개정을) 하게 하는 길을 터주는 사례가 된다. 때문에 선거법은 패스트트랙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을 당의 입장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좋은 선거법이라도 패스트트랙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유 전 대표와 가까운 유의동 원내수석부대표도 의총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같은 이유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선거법 문제는 당내 소통의 문제가 아니고 정치인이 가진 기본 철학의 문제다. 소통한다고 해서 소신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만약 패스트트랙 추진이 강행될 경우 원내수석부대표직을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때문에 향후 바른미래당 원내지도부가 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과 어떤 내용의 협상을 타결하든 추가 내홍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 원내대표뿐 아니라 손학규 대표도 지난 18일 "그나마 패스트트랙을 걸지 않으면 그동안 무르익었던 선거제도 개혁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지 않겠느냐. 나도 처음에 패스트트랙을 반대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추진 강행 의사를 보이고 있다. 손 대표는 지난해 12월 열흘 간의 단식농성을 통해 선거제도 개편 관련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