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편이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다. 언론에서도 연일 '바뀐 선거제도를 적용하면 각 당별 의석 분포는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주제의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사례1) 여야 4당의 합의안인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내년 총선 결과는 민주당 133석, 한국당 109석, 바른미래당 33석, 정의당 18석으로 예측됐다. (…) 기준점이 되는 정당득표율은 가장 최근의 전국단위 선거인 작년 6월 지방선거 당시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을 대입했다. 득표율은 민주당(51.42%), 한국당(27.76%), 정의당(8.97%), 바른미래당(7.81%), 평화당(1.52%) 순이었다. (2019.3.19. <한국일보> 4면, '선거제개편안 적용해보니… 민주당 10석 늘고, 한국당 13석 줄어든다')
(사례2)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공개한 정당 지지도 조사와 각 당의 현재 지역구 의석 구조를 선거제 개편안에 적용한 결과 민주당은 129석, 한국당이 110석, 바른미래당이 20석, 평화당이 14석, 정의당은 16석으로 각각 나타났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36.6%, 한국당이 31.7%, 바른미래당이 5.9%, 평화당이 2.1%, 정의당은 6.9%로 각각 집계됐다. (2019.3.19. <국민일보> 3면, '4당 합의안 적용 땐 정의당 +11석, 바른미래당 -9석, 민주당 +1석, 한국당 -3석')
이 두 신문뿐 아니라 비슷한 논리 구조의 기사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엄밀하지 못하다. 달라지는 의석 분포가 과연 비례대표 의석 배분 방식의 변동 때문인지, 아니면 2016년 총선 당시의 정당 득표율과 2018년 지방선거 득표율, 또는 현 시점에서의 정당 지지율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뀐 선거제 때문이냐, 지지율 변동 때문이냐'는 2가지 변수를 한 번에 섞어서 시뮬레이션(예측)한 결과다.
현 시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각 당의 지지율이 2016년 대비 현재 어떻게 달라졌고, 그에 따라 의석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가 아니다. 때문에 비교 대상은 (시뮬레이션에 대입하는 정당 비례득표율 예상치를 무엇으로 넣든) 동일한 지지율 기준에서 '현행 선거제도(병립형. 지역구 253석 대 비례 47석) 대 변경 선거제도안(연동+병립형. 지역구 225석 대 비례 75석)'을 적용한 결과가 돼야 한다.
그러지 않고 현재의 의석 분포와 단순 비교해 "민주당 10석 늘고, 한국당 13석 줄어든다"(한국일보), "민주당은 현행 128석에서 1석 증가하고, 평화당은 현행(14석)을 유지하게 된다. 정의당은 16석으로 현행보다 3배 가까이 의석이 뛰면서 (…) 바른미래당은 현행 29석에서 20석으로 9석이 감소(한다. 국민일보)"와 같이 비교하게 되면 착시가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일부 언론이 지적한 의석 수 변동의 주 요인은 '선거제도 개편'이 아니라 '지지율 변동'에 가깝다. 지지율 변인은 동일하게 상정하고, 선거제도만을 검증 대상 변인으로 놓았을 때의 비교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한국일보의 사례
한국일보는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인 조건에서 50% 연동형 배분 규칙을 적용하되, 비례대표 득표율 가정치에 2018.6.13. 지방선거 때의 정당별 득표율을 대입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 133석, 한국당 109석, 바른미래당 33석, 평화당 0석, 정의당 18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평화당 의석이 왜 '0석'이 되는지, 현재 지역구 의석을 어떤 방식으로 환원해 반영한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신문은 현재 251석(4.3 보선 대상지역 2곳 제외)인 지역구 의석을 어떻게 225석으로 변경 산출했는지 상세 방식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이 가정을 그대로 적용한다.)
그렇다면 한국일보가 적용한 '6.13 지방선거 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되, '현행 선거제도 그대로' 선거를 치를 경우엔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지역구 의석은 그대로 두고, 현재 47석인 병립형 비례대표 의석을 6.13 지방선거 지지율에 따라 배분할 경우 민주당은 비례 47석 중 25석, 한국당은 13석, 바른미래당 4석, 평화당 1석, 정의당 4석을 가져간다. (현행 공직선거법 189조 1항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을 득표했거나 지역구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5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각 정당"을 비례대표 의석 배분 대상으로 규정한다. 이 가정에서라면, 평화당은 비례 득표율이 3% 미만이지만 지역구 의석이 14석이므로 현 제도 하에서 비례 의석 배분 대상이 된다.)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더하면, '6.13 지방선거 득표율 + 현행 선거제' 모델에서의 정당별 득표는 민주당 140석, 한국당 109석, 바른미래당 20석, 평화당 15석, 정의당 5석이 된다.
이를 한국일보 시뮬레이션 결과값, 즉 민주당 133석, 한국당 109석, 바른미래당 33석, 평화당 0석, 정의당 18석과 비교하면,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단일 변수로 인한 영향이 도출된다.
즉 6.13 지방선거 수준의 득표율이 내년 총선에서 그대로 나올 경우, 선거제도 변경의 순수한 효과는 '민주당이 7석 줄고, 한국당은 변동이 없고,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은 각각 13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민주당·정의당에 유리한 선거제 개편'이라는 통상적 인식과 달리, 선거제도 개편으로 인한 순수한 효과는 '한국당에 불리하지 않고, 최대 수혜자 중 하나가 바른미래당'이라는 결론이 된다.
반면 지지율 변인에 따른 결과는? 2016년 총선 득표율(및 그 이후의 이합집산)과 2018년 지방선거 득표율 변동에 따른 정당 의석 수 변화(선거제도는 현행 제도대로 고정!)를 보면 '민주당은 현재 128석에서 12석 늘고, 한국당은 113석에서 4석 줄며, 바른미래당은 29석에서 9석 줄고, 평화당은 14석에서 1석 늘어나고, 정의당은 6석에서 1석 줄어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일보 시뮬레이션 결론인 '민주당 늘고 한국당 준다'라는 가설의 더 큰 변동 요인(주 변인)은 선거제도가 아니라 지지율이었음이 증명된다.
이런 면에서, '6.13 지방선거 득표율'이라는 기준이 내년 총선 결과를 예측하는 데 유효한 가정치인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당시는 4.27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12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여당 지지율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이고, 바른미래당은 공천 내분 등으로 최악의 선거 결과를 맞기도 했다.
2. 국민일보의 사례
국민일보는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인 조건에서 50% 연동형 배분 규칙을 적용하되, 비례대표 득표율 가정치에 2019.3.18일 리얼미터 정당지지율 조사 결과를 대입했다. (YTN 의뢰, 3.11~15일간 전국 2517명 대상. 상세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에 따라 민주당 129석, 한국당 110석, 바른미래당 20석, 평화당 14석, 정의당 16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A)
그렇다면 국민일보가 적용한 '리얼미터 정당지지율'을 기준으로, 현행 선거제도 그대로 선거를 치를 경우엔 어떻게 될까?
현재 47석인 병립형 비례대표 의석을 이 정당지지율 여론조사 결과값에 따라 배분할 경우, 민주당은 비례 47석 중 20석, 한국당은 18석, 바른미래당 3석, 평화당 2석, 정의당 4석을 가져간다.
이를 지역구 의석과 더한 전체 의석은 민주당 135석, 한국당 114석, 바른미래당 19석, 평화당 16석, 정의당 5석이 된다. (B)
(선거제도 변동의 효과) A와 B를 비교하면, 2020년 총선 정당 비례대표 지지율이 리얼미터 정당지지율대로 나올 경우, 선거제도 변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는 '민주당 6석 감소, 한국당 4석 감소, 바른미래당 1석 증가, 평화당 2석 감소, 정의당 11석 증가'가 된다. 한국당 의석도 줄긴 했지만 민주당이 더 많이 줄었고, 바른미래당은 오히려 늘어났다.
(지지율 변동의 효과) 현행 선거제 하에서 치러진 20대 국회의 현재 의석 분포와, 21대 총선도 똑같이 현행 제도대로 치러진다는 가정(B)를 비교하면 '2016년과 2019년의 정당별 지지도 차이에 따른 의석 수 변동 효과'를 추정할 수 있다. 각 당의 지지율 변동에 따른 결과는 '민주당 7석 증가, 한국당 1석 증가, 바른미래당 14석 감소, 평화당 2석 증가, 정의당 1석 감소'이다.
국민일보 기사의 결론이 공교롭게도 '민주당 +1석, 한국당 -3석'인 것은, 이 두 가지 변인을 종합한 결과로 추정된다.
'2중 변인 시뮬레이션'의 함정
위에서 살펴봤듯이, 변인(또는 변수)이 2가지 이상이 될 경우 각각의 변인에 따른 결과를 따로따로 추정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모델링·시뮬레이션 예측에서 '변인 통제'는 기본이다.
<프레시안>의 18일자 해설 기사(☞선거법 바꾸면 한국당 의석만 줄어든다? 가짜뉴스!)가 20대 총선 결과만을 비교 사례로 삼고 있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이고, <연합뉴스>의 19일자 예측보도(☞'여야 4당 합의안 적용시 민주 18석↓·한국 16석↓·정의 8석↑') 역시 20대 총선 결과만을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했다.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 역시 19일 간담회에서 20대 총선 결과만을 가지고 예측한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는데, 이 또한 같은 이유로 보인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여론 관심의 크기를 감안한다 해도,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등 현재의 의석수 분포 원인값(20대 총선 정당별 지지율) 외의 다른 변인을 근거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나, 특히 그 결과값을 현 의석 분포와 단순 비교하는 것에는 엄밀한 주의가 따라야 한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예측 보도는 특정한 정치적 주장, 이 국면에서는 선거제도 개편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에 힘을 싣는 결과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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