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진도 규모 5.4의 포항 지진 원인이 지열발전소였음이 최종 확인됐다. 포항 시민 사회는 환영의 뜻을 표하는 한편, 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일 오전 10시 30분 정부조사연구단은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지난 1년 간의 지진 연구 결과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로 인한 '촉발 지진'이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책임 공방 등이 거세지는 한편, 지열발전소 폐쇄 논의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자회견에는 이강근 정부조사연구단장(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을 비롯해 해외조사위원 5인이 참석했다. 이들은 그간 계속된 논란에 관한 최종 설명에 주력했다.
지열발전소가 지진 원인
연구단에 따르면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이 지진의 주요 원인이 됐다. 포항지열발전소는 지하 약 4㎞ 깊이까지 두 개의 주입공(PX-1, PX-2)을 파, 그곳에 물을 주입해 거기서 생긴 열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했다(EGS, 인공저류시스템).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물 주입시 발생하는 압력과 물을 넣고 빼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지반 손실이 지반을 약화시켰다.
이에 더해 해당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에 있던 단층에 점차 압력이 쌓였다. 두 주입공 중 2017년 포항 지진의 본진은 PX-2 부근이었다.
이번 지진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연구단은 '촉발 지진' 개념을 사용했다. 그간에는 유발 지진이냐 자연 지진이냐가 쟁점이었는데, 연구단은 포항 지진의 경우 단순 유발 지진으로만은 설명이 어려웠음을 고려했다.
이강근 교수는 "PX-2에 고압으로 물을 주입함에 따라 미소 지진이 단층면상에 유발(유발지진)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과적으로 그 영향이 본진의 진원 위치에 도달했다"며 "압력이 누적돼 거의 임계응력상태에 있었던 단층에서 포항 지진이 촉발(촉발지진)됐다"고 설명했다.
즉 지열발전소로 인한 유발 지진이 오랜 기간 포항 지역에 미소 지진을 일으켰는데, 그 힘이 마침 발전소 아래에 있던 단층을 자극함에 따라 최종적으로 큰 지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강근 교수는 "포항 지역에서는 당초 미소 지진 활동도 관측되지 않았으나 2015년 11월 1일부터 미소 지진이 검출되기 시작했다"며 "집중적으로 이수 누출이 발생한 시기가 2015년 10월 31일인데 바로 다음날부터 미소 지진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시간상 (인공 지진임이) 정확하게 확인된다"고 밝혔다.
포항지열발전소는 PX-1과 PX-2 지점에 2016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수리자극(물 주입)을 실시했다. 연구단에 따르면 이 때마다 발생한 압력이 지진 단층을 자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간 유발 지진론을 부정한 쪽에서는 지열발전으로 인한 유발 지진은 진도 3.5 정도가 한계인데, 포항 지진은 규모가 너무 커 학계의 이론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 유발 지진이 더 큰 지진을 자극했다는 이론이 만들어져 이 같은 논란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조사위원단장인 쉐민 게(Shemin Ge) 콜로라도 대학 교수는 "유발 지진은 응력 등이 인공적으로 주입됨에 따라 생기는 압력으로 발생하는 지진이고, 촉발 지진은 그 크기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커짐에 따라 발생하는 지진"이라며 "포항 지진의 경우 PX-2에서 유발된 지진이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자극해 본진을 촉발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게 교수는 이어 "해외조사위원회는 만장 일치로 포항 지진이 EGS 자극으로 인해 촉발된 지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강근 교수는 유발 지진과 촉발 지진을 구분한 이유로 "이전에도 물을 주입한 부피나 압력으로 인해 어느 정도까지 지진이 날 수 있다(유발 지진)는 발표가 있었는데, 포항 지진은 그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컸다"며 "범위를 구분하기 위해 (촉발 지진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있어 말씀드린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대상 소송 이어질 듯
결국 유발 지진이냐 촉발 지진이냐를 넘어, 포항 지진의 주요 원인이 지열발전소임이 명확해짐에 따라 앞으로 손배소 등의 추후 쟁점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장을 가득 메운 포항 시민들은 조사단 연구 결과가 인공 지진으로 확인되자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한편,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에 나설 뜻을 비췄다.
포항 시민 71명은 이미 지난해 10월 국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올해 초 2차 소송에서도 1100여 명이 소송에 추가로 참여했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이제 포항 시민 전체가 대 정부 소송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앞으로 줄소송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소송 규모도 전례없이 커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포항 지진으로 인한 총 손실액은 3000억 원이 넘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포항 지진으로 인한 시설물 피해 규모가 총 2만7317건이고 피해액은 551억 원 규모로 추정했다.
소송과는 별개로 다양한 쟁점이 수면 위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지열발전소 운영사인 넥스지오와 정부가 지진 위험 가능성이 있음에도 발전소를 운영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포항 시민 사회에서 강경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바젤의 경우 지열발전으로 인해 진도 3을 넘는 지진이 발생하자 즉각 발전을 멈추고 1년여 간 지진 위험도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는데, 포항지열발전소에서는 그 같은 과정이 생략됐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연구단은 지진 책임을 어디에 둬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연구단 소관 사항이 아니"라며 답변을 거부했으나,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강근 교수는 "지금은 포항지열발전소가 발전 행위를 하지 않고 있지만, 그냥 두기로 할 경우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메니코 지알디니(Domenico Giardini) 스위스 취리히공대 교수는 "지진 예측은 불가능하다"며 "이제는 지진 예방을 위해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건물을 보호하는 규정 등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연구단은 포항 지역 사회의 불신감을 고려한 듯, 조사단 연구가 독립적 환경에서 이어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강근 교수는 "조사단은 정부로부터 철저히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했고 어떠한 보고도 요구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2016년 경주 지진이 포항 지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도 연구단은 밝혔다. 연구단은 두 지진이 서로 영향을 미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경주 지진은 자연 지진이라고 밝혔다.
이강근 교수는 "2011년 도호쿠 대지진과 2016년 경주 지진이 포항 단층에 어떤 변화를 가했는지도 연구단은 조사했다"며 "두 지진이 포항 지진 단층을 움직일 정도로 응력을 가하지 못했다는 게 결론이며, (이들 지진보다) 훨씬 큰 자극이 (지열발전소의) 수리자극으로 인해 가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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