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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부, 우량은행 지분 팔아라"

KDIㆍ외국계ㆍ은행권 등 잇따른 대정부 주문

"정부여, 안 팔리는 공적자금 투입은행 주식보다 사겠다는 이들이 많은 우량은행 주식부터 팔아라!"

재정경제부를 향한 국책연구기관, 은행권, 외국계 투자가의 최근 잇따른 주문이다. "팔고말고는 정부 마음"이라는 전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의 발언이 나온 뒤 잇따르는 반응이다. 요컨대 "팔고말고는 정부 마음이 아니라 은행 마음이어야 한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 견해인 것이다.

특히 외국계 투자가들은 이번 논란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연 앞으로 한국경제가 시장경제로 갈 것인가, 아니면 관치경제로 회귀할 것인가를 가늠할 중요한 바로미터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불투명성이 극대화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재경부의 우량은행 주식 처분 여부는 한국에 대한 외국계의 지속적 투자 여부를 결정짓는 결정적 잣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KDI, "팔고말고는 정부 마음이 아니라 은행 마음이어야 한다"**

재경부등 경제부처의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1일 전윤철 부총리에게 은행 민영화 방안에 대한 용역평가 결과를 중간보고했다.

보고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국민은행 주식 9.64% 처분문제였다. 그동안 대다수 연구가 간과했던 정부의 우량은행 보유주식 처리문제를 공론화한 것이다. 보고서의 결론은 "정부의 은행지분 보유는 (정부가 아닌) 은행의 상업적 판단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KDI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뿐 아니라 국민,외환,제일은행 등의 경우도 정부의 잔여지분을 공모 등의 방법으로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정부의 '은행 민영화계획'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은행 민영화계획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 등 금융기관의 민영화 일정만 잡혀있는 맹점을 지적한 것이다.

KDI는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정부의 지분보유는 '비시장적 방법'으로 정부가 은행경영에 개입하는 통로를 제공하게 되고 건전성 감독 및 규제자의 역할과도 상충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요컨대 은행장 인사를 비롯해 경영간섭의 수단으로 작용할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윤철, "팔고말고는 정부 마음이다"**

KDI 보고서는 금융시장 및 국민은행등 민간은행의 최대주주그룹인 외국계 투자가들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시의적절한 문제제기였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과연 정부가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은행 민영화 최고책임자인 전윤철 부총리의 감정이 상당히 격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 부총리는 KDI보고서가 재경부에 접수된 같은 날인 21일 오후 KBS라디오에 출연한 자리에서 "국민은행장이 정부 보유 지분을 팔라고 하는데"라는 질문이 나오자 "정부가 매각할 때가 되면 팔 텐데 은행장이 그런 얘기를 할 바 아니다"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정부가 주식을 갖고 있는 것을 계기로 은행 경영에 관여했다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적이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괘씸하다'는 반응이었다.

전부총리의 이같은 반응은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앞서 12일 한국경제학회 초청강연에서 정부보유 지분 매각을 공론화한 데 따른 것이었다. 김행장은 이날 강연에서 "정부는 불과 9%의 주식을 갖고 있음에도 7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외국투자가들은 항상 정부의 은행경영 관여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며 "아무리 해명해도 믿지 않는만큼 정부가 보유주식을 팔아줬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강연을 했다. 김행장은 또 정부의 지분보유에 따른 감사원, 기획예산처 등의 감사로 인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재경부 금융정책 책임자는 발끈 했다. 하지만 국민은행이 직접매수 방식을 택하고, 시장가격보다 높은 프리미엄을 얹어준다면 팔 용의도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국민은행 주식을 팔 경우 최소한 1조6천억원대의 공적자금 회수가 가능하고, 이렇게 되면 10월 열리는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에서 정부의 입장이 상당히 당당할 수 있다는 판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재경부 수장인 전윤철 부총리가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정부 마음'론을 펼침에 따라 현정부내 매매 가능성은 희박해진 게 아니냐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22일 오후 이근영 금감위원장, 어윤대 공적자금관리위원 등이 참석한 한국경영학회 통합학술대회에서 완전한 은행 민영화의 필요성을 재차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김행장은 "정부가 보유 은행지분을 매각하겠다는 원칙만을 세운 뒤 구체적 실천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반공모를 통한 국민주방식 매각,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허용 등 다각적 방안의 도입 필요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재차 정부의 국민은행 보유지분을 매입하고 싶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명한 셈이다.

***외국계, "아직 우리는 한국정부, 한국정치를 안 믿는다"**

이같은 논란을 지켜보는 시장의 반응은 어떤가.

한 외국계 대형펀드의 책임자 말을 들어보자.

"정부대응이 적잖이 실망스럽다. 국민은행은 우리 외국투자가가 70%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국제적 은행이자, IMF사태후 대표적인 한국 금융구조조정 성공사례다. 그런데 정부가 왜 아직도 국민은행 지분을 갖고 있는지 이해가 안간다.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판단때문인가. 물론 주가가 더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은행 주식을 판다면 한국증시 전체의 주가가 더 많이 올라 한국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정부의 은행 민영화 의지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아직 우리는 한국정부, 한국정치를 안 믿는다. 극단적으로 말해 정권이 바뀌면, 정치논리에 따라 우리 외국투자가들이 가장 신뢰하는 CEO인 김정태 행장까지도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이 온다면 우리 외국투자가는 한국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하는 시장에 머무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도 결코 이런 사태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외국투자가들이 계속 한국시장에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과연 정부가 국민은행 주식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지금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공적자금 투입은행 임원도 유사한 지적을 했다.

"재경부 관계자들이 은행경영에 관여 안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치더라도, 한국은 정치논리가 아직도 지배하는 사회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년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누가 아나. 새 정치세력이 등장하더라도 경제계가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장사를 잘하고 있는 은행에서는 정부가 완전철수해 줘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현정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구조조정 노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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