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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행장이 말하는 '금융발전의 5대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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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정태행장이 말하는 '금융발전의 5대 걸림돌'

"정부, 왜 국민은행 주식 안팔고 사사건건 간섭하나?"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작심하고 정부를 세게 몰아부쳤다. 한 마디로 말해 정부가 도리어 금융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행장이 12일 저녁 연세대 알렌관에 모습을 나타냈다. 김행장은 지금 휴가중이다. 하지만 오래 전에 잡혀있던 강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김행장을 초청한 집단은 한국경제학회(회장 정창영). 국내의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모여 만든 이 학회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제10차 국제학술대회(12~13일)에 참석한 경제학회 회원 1백여명을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하게 된 것이다.

이날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구조조정의 성과와 과제'였다. 하지만 주최측은 그에게 '구조조정의 현장에서 느낀 걸림돌'을 중점적으로 말해줄 것을 주문했다.

"한국의 구조조정의 대표적 성공사례를 일군 경영자로 해외에서 더 높이 평가되고 있는 김정태 행장으로부터 구조조정의 현장에서 느낀 생생한 체험을 듣자"는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강단에 선 김행장은 20여분간 그 특유의 거침없는 직설법으로 한국금융이 나아갈 방향과, 이를 위해 청산해야 할 걸림돌들을 조목조목 설파해나갔다.

김행장은 이날 현재 금융산업의 추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을 다섯가지로 요약해 발표했는데, 특히 힘주어 강조한 대목은 '여전한 관치(官治)'였다.

공적자금투입은행들에 대한 시도 때도 없는 각종 금융감독당국의 중복 감사,'자리 만들기'식으로 변질된 공적자금투입 금융기관간 지주회사 설립, 국민은행에 대한 부적절한 정부 감사와 경영간섭, 은행 합병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정부 규제 등, 이날 김행장은 작심한듯 평소 자신이 느껴온 관치금융의 문제점을 설파했다.

김행장은 특히 국민은행과 관련, "액면가 이하로 국민은행주식을 사들여 현재 9%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정부가 왜 주가가 액면가보다 12배나 올랐는데도 이를 팔지 않느냐"며 정부에 대해 국민은행 보유지분을 매각해줄 것을 공개리에 요구하기도 했다.

김행장은 또 '자은행 인수' 방침을 밝힘으로써 추가 은행합병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 금융계에서는 국민은행에 보유지분 매각을 희망하는 은행들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국민은행의 추가 은행인수가 멀지 않은 시일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다음은 김정태 행장의 강연 요지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 강연: "감사 받다가 시간 다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짧은 시간내에 상당한 구조조정을 이뤄냈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앞으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향후 구조조정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사항들을 몇 가지로 요약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첫번째 걸림돌은 각종 금융당국의 감사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을 우량은행과 공적자금투입은행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일단 공적자금투입은행으로 분류되면 이 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각종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감사를 받다가 시간을 다 보냅니다.

예금보험공사, 금융감독원, 국회 등의 감사가 줄줄이 이어져 아예 감사대비팀을 운영하는 곳도 있을 지경입니다.

이들 은행에게는 선진금융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해도 감사다 뭐다 해서 역량을 갖출 시간이 없습니다.

***'자리 만들기'식 지주회사는 잘못된 일**

두번째는, 잘못된 방향입니다.

금융산업의 미래를 위한 구조개편을 논의하면서 과연 한국에 리딩 뱅크가 몇 개 있어야 하느냐, 니치마켓(틈새시장)을 파고드는 지역중심 은행이나 상호신용금고 같은 특화은행들이 리딩 뱅크와 함께 병존할 수 있느냐 하는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제 결론은 "국내에는 니치마켓 플레이어 역할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행장으로 있던 주택은행은 주택담보대출만으로 은행업무의 80%가 이루어진 특화은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속 해나갈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돼 합병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국내 수익성 1위의 주택은행과 국내 규모 1위인 국민은행이 합병한 게 지금의 통합 국민은행인 것입니다.

그런데 합병을 통해 은행을 대형화한다고 할 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 확실한 방향을 짚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은행이 대형화되는 과정에서 한 번 실수가 있으면 그대로 맛이 가버립니다.

한국에서 은행의 대형화를 지주회사 형태로 끌고 갈 것인가,아니면 자회사를 끌고 가는 식으로 할 것인가의 논란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주회사를 만들어 보니 '자리 만들기'식이 되는 폐단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식으로 지주회사를 만들면 안됩니다. 지주회사와 자회사 상호간에 정보공유가 되어야 하는데, 100% 자회사 정보 공유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정부, 왜 국민은행 주식 안팔고 사사건건 간섭하나?"**

세 번째로, 민영화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에 대해서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민영화를 말하면서도 100% 민영화를 안하고 있습니다. 국민은행의 경우 정부가 9%, 해외투자가들이 70%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해외투자가들은 "정부가 관여하지 않느냐"고 매번 질문해 옵니다.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국민은행이 민영화되었다면서 감사원 감사, 심지어 공기업 평가단의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공기업이냐"고 공기업 평가단에 항의를 했더니 그 심사에서 국민은행이 꼴찌가 되었습니다. 수익을 올려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었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민영화하려면 정부는 한 주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국민은행은 직원들에게 세 번에 걸쳐 무상주를 지급했습니다. 10%, 10%, 6%씩 모두 26%의 무상주를 지급했습니다.
정부는 액면가 이하로 국민은행주를 매입해 현재 국민은행주가가 6만원을 넘어도 안 팔고 있습니다. 잘 나가는 은행이 있으면 규제를 풀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뒤쫓는 은행들도 잘 됩니다.

기획예산처가 접대비를 통제하는데 세법상 접대비 한도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30~40억원이 접대비 한도입니다. 국민은행의 지점만 1천1백개가 넘는데 한 지점에서 1년에 2백만원 쓰면 끝입니다. 실제로 지점당 한 달에만 접대비로 2백만원을 쓰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식으로 규제하면 어떻게 합니까. 공적자금투입은행을 민영화할 때 정부는 1주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정부 허가 받으려다간 소문나 합병 못해"**

네 번째, 소유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금융발전심의위원으로 있을 때 "은행도 자은행을 갖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어떤 은행의 대주주로 참여해 경영을 잘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입니다. 해외에는 그런 모델이 많습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규제가 풀렸습니다.

그러나 '정부 허가를 받는 경우'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정부 허가 받으려다 소문 나버리면 허사가 됩니다. 허가하려면 깨끗이 허가해주면 좋겠습니다.

국민은행은 현재 대형 리딩 뱅크가 되었습니다. 자산총액이 2백조원(1천7백억 달러)에 이르고 자기자본이 10조3천억원(90억 달러)에 달합니다. 국민은행은 홀딩컴퍼니(지주회사)로 가기보다는 자회사들을 독자적으로 경영하면서 정보공유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국민은행은 7개 자회사를 정리해 현재 7개 자회사가 남아 있습니다.

신용카드 부문은 아직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은행 내에 카드사업부가 있는데 이를 매각할 것인지 지속할 것인지 추가합병을 할 것인지 다각도로 검토중입니다. 자은행 인수문제는 언론 등에서 워낙 민감하게 보도하는 사항이어서 언급을 자제하겠습니다.

***"은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

마지막 다섯번째는, 사람 문제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은행의 구조조정에서 시스템은 금방 고칠 수 있는 부분입니다. IT(정보통신)투자를 확대하고 있는데 국민은행의 IT통합은 빅뱅 방식이라고 해서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입니다. 트랜색션 볼륨(거래건수)이 하루 2천3백만건으로 세계적인 규모입니다. 그래서 국민은행 전산통합의 성공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는 9월 추석 무렵에 가동할 예정인데 무슨일이 있어도 이를 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스템보다 은행에서 중요한 문제는 역시 사람입니다. 세계 수준의 은행이 되려면 직원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본점 직원을 중심으로 2백여명 정도에게 안식년을 실시해 1년뒤 희망부서에 배치하도록 했으며 세계 톱클래스의 MBA(경영학석사) 출신들을 국적 불문하고 채용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호주, 유럽 등지에서 여러 사람들이 와있습니다.

또한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4년 근무 후 세계톱클래스의 MBA 과정에서 학위를 받게 할 방침입니다. MBA보내는 데 어떤 조건도 달지 않습니다. 또한 맥킨지 등 세계적인 컨설팅업체들과도 제휴해 선진금융을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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