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제도 개혁 마감시한이 임박한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선거법+개혁법안 패키지 패스트트랙' 제안에 대해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의견이 접근하는 모양새다. 범(汎)보수진영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바른미래당마저 김관영 원내대표 기자 간담회를 통해 긍정적 입장을 밝힌 것.
김 원내대표는 10일 낮 기자들과 공개 오찬 간담회를 갖고, 준비된 모두발언을 통해 "지난 금요일(8일), 공식적으로 민주당에서 '선거법을 포함한 10개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며 "민주당의, 특히 선거법에 관련한 이번 제안에 대해, 나름대로 여러 현실적 고민들을 고려한 상당히 진전된 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어 "바른미래당은 당내 의견을 수렴하고 야3당 조율을 거쳐 월요일(11일)부터 본격적인 패스트트랙 대상 법안을 확정하고 단일안을 만드는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겠다"며 "이런 논의과정을 거쳐서 가급적 신속하게 패스트트랙에 관한 단일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특히 선거법을 제외한 다른 법안을 일종의 '패키지'로 묶는 방안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패스트트랙 대상으로 되는 법안은 최소화해야 한다"면서도 "우리 당이 그렇게 강하게 반대할 법안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고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쳤다. 바른미래당은 당초 "민주당이 주장해 온 각종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연계하는 (것은) 정략적인 모습이고 여당으로서 책임감없는 것"(2.27 바른미래당 최고위, 김 원내대표)이라는입장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패스트트랙 제안을 받아들여 협상을 시작하게 된 배경으로 한국당의 소극적 태도를 들었다. 그는 "오늘까지 한국당이 '선거법 협상에 임해달라'는 바른미래당의 제안에 대해서 어떠한 대답도 없다. 한국당의 태도에 깊은 유감"이라며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 한국당의 모습에서, 더 이상은 이 문제를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당이 의원직 총사퇴 운운하는 것은 자격이 없다. 최소한 선거법 관련 협상 노력,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한 뒤 협상이 무산됐을 때 그런 이야기가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한국당에서 '권력구조 개헌 논의를 선거법 개정과 같이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선거법 개정이 완료된 후 (개헌을) 논의하기로 합의해 놓고, 지금 와서 '개헌 논의를 해야만 선거법을 논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약속을 스스로 뒤집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실제로 만약 한국당이 끝까지 협상에 임하지 않는다면, 이번 주(3월 2주) 안에 패스트트랙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협상을 진행하고 논의를 이어나가도록 하겠다"고 못박아 말했다. "아시다시피 패스트트랙은 330일이 걸리기 때문에, 내년도에 개정된 선거법으로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부득이 다음주 안에 패스트트랙 안에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단 그는 "패스트트랙에 넣는다고 해서 330일 후에 그 법을 그대로 표결하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고 "최악의 경우"라며 "패스트트랙을 기화로 해서 한국당이 협상에 본격적으로 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한국당이 협상의 장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하고 촉구한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은 실제 추진되는 것보다 한국당을 향한 압박 수단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바른미래당의 기존 입장과 가깝다.
선거제 개혁 관련 상황은, 지난 8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선거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며 "공수처법·공정거래법 등 10개 개혁 법안을 야3당과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협상하겠다"고 공식 선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민주당은 자체 선거제 개혁안으로,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225 대 75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지난 7일 의원총회에서 확정했다. 이에 대해 바른미래·평화·정의 등 야3당은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한국당은 "선거제를 패스트트랙에 태우겠다는 것은 독재국가"라며 "의원직 총사퇴도 불사하겠다"(나경원, 8일 원내대책회의)고 강력 반발했다.
코너 몰린 한국당 "의원 정수 축소, 비례대표 폐지"…정치혐오 포퓰리즘으로 '판 깨기' 시도
범여권 또는 범진보진영으로 불리는 민주·평화·정의당 외에, 상대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더 비판적이던 바른미래당까지 주말을 지나며 민주당 발(發) '패스트트랙 패키지' 열차에 탑승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 됐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일요일인 10일 오후, 당초 예정에 없던 당 소속 정개특위 위원들과 원내 지도부 간의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나온 한국당의 입장은 바른미래당 등 야3당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여야 4당이 추진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막기 위해 정치혐오 여론을 등에 업으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나 원내대표는 "현 대통령제에서라면 국민 요구에 따라 국회의원 정수를 10% 감축하자는 것이 저희(당)의 안"이라며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폐지하고, 의원 수를 조정해서 정수를 270석으로 하자"고 밝혔다. 이 경우, 현재 253석인 지역구 국회의원 의석수는 오히려 17석 늘어나게 된다. 이는 여야 4당은 물론, 시민단체 등이 주장해온 정치제도 개혁과는 180도 반대되는 내용이다.
비례대표 폐지, 의원정수 축소 등은 정치 혐오 정서가 강한 한국의 유권자들에게 일정 부분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주장일 뿐 실효성·개혁성은 전혀 없다는 게 전문가들 간의 일치된 평가다.
예컨대, 이미 6~7년 전인 2012년 가을 당시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의원 정수 100명 축소'를 주장했다가 "반(反)정치 포퓰리즘", "정치 혐오적 태도"라는 비판을 받고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개혁을 해야지, 무조건 정치를 없애자고 하면 되겠느냐", "'세금 줄이자'는 얘기와 같다. 감세한다고 하면 당장 국민들은 좋아하지만, 세금을 통한 재분배를 줄여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에겐 오히려 나쁜 정책이다" 등의 비판을 쏟아냈었다.
그런데 한국당이 돌연 6년만에 이처럼 무리한 제안을 들고 나온 것은, 바른미래당 등 다른 야당들을 설득하는 것은 아예 포기하고, 오히려 반정치 여론을 등에 업고 여야 4당이 추진하는 선거제도 개혁과 정면으로 맞서 이를 좌절시켜 보겠다는 셈법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제1야당인 한국당을 빼놓고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여야 4당의 사정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정의당을 본인들(여당)의 '2중대'로 하기 위해서 이 법안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라고 본다"거나 "분권을 위한 내각제 개헌 없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는 등 다른 야당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거침없이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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